선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곳, 집중 방호 구역이 완전히 뚫렸다.
마석실이 피격 당하여 물이 들어오고 있다.
배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재료인 마석이 없다는 것은.
바람 없는 배, 심지어 저을 노조차 없는 것과 같다.
심지어 엔진실까지 당했다. 완전히 작동을 멈춰버렸다.
주변에 가장 두꺼운 철판을 덧댔음에도 무력하게 관통 당한 것이다.
‘빌어먹을. 대체 얼마나 강력한 대포를 쓰기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망망대해까지 넘나든 든든한 배였지만.
지금은 파도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덩치만 큰 뗏목에 불과하다.
마석들이 대부분 유실되면서 대포도 쓰기 힘들어졌다.
“가이님! 적함이 접근 중입니다!”
“어쩝니까. 오기 전에 제압 사격이라도 합니까?”
부하들의 말에 가이는 입술을 깨물곤 고개를 내저었다.
발포한다고 해도 당장 장전되어 있는 포탄만 사용 가능하다.
그 이상은 마력석의 부족으로 뭘 해볼 수가 없다.
‘차라리….’
그래. 차라리 적함이 근접하면. 그 때 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한 번의 공격으로 적함의 기동성을 빼앗은 후.
이쪽의 전투력을 믿고서 차라리 적함 쪽 인원들을 제압하는 게 더 낫다.
“복구는 가능하나?”
“방수판을 덧대고 있습니다. 일단 침수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전까지는 기동이 불가능합니다. 아마 한 시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 중입니다.”
한 시간. 10분도 버티기 빠듯할 것 같은데.
가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적함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다가오면 된다.
아직 비행병이 하나 남아있고, 마법 대포도 장전된 한 발 정도는 쏠 수 있다.
상황이 비관적이긴 하지만, 어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괜히 부정적으로 보면서 부하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자들 아닌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고 중얼거리던 가이가 별안간 ‘어?’ 하고 탄식을 흘린다.
점점 속도를 줄이던 적함, 그리고 그 위에서 사람 하나가 바다로 뛰어내린 것이다.
풍덩―!
육지가 보인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은 얕은 바다가 아니다.
이런 거대한 배들이 오고 다니는, 대해의 한가운데다 이 말이다.
그런 곳에 갑자기 뛰어든 것도 황당한데 그 사람이 대뜸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
“어어어…?”
그리고 그 속도는, 어지간한 배 따위는 진작 넘어설 정도로 엄청났다.
“뭐, 뭐야. 뭐야 저 사람!”
“가이님!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바다에 뛰어든 것도 황당한데.
수영을 해서 다가오고 있다? 여기가 땅 위라도 되는 줄 아나?
배 위로 오르려면 반드시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다.
발을 디딜 곳이 없다. 발을 디디지 못 하면 힘을 받을 수 없다.
총사들도 바다에서는 그 전투력이 급감하게 된다.
“혹 줄 걸어둔 건 없겠지?”
“예. 없습니다. 비행병들을 내보낼 때 전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저 인간은 도대체 무슨….”
가이의 눈동자에 또 다시 황당함이 서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수영하던 남자가 사라졌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 찰나.
쿵!-
둔중한 소리가 뱃전을 타고 선내로 울려 퍼진다.
심지어 한 번으로 끝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쿵! 쿵! 쿵!-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가이가 알아보라고 명령을 하려는데.
주변을 살피던 선원이 기겁을 해서는 다급히 외친다.
“저, 적 등선! 외벽을 타고 올라옵니다!!”
외벽을 타고 올라온다니? 분명 붙잡을 게 하나도 없었다고 했는데?
급히 선체 벽을 확인한 가이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저, 저게 뭐야.”
조금 전까지 수영을 하던 남자가, 선체 벽에 손과 발로 구멍을 내며 올라오고 있다.
강철로 만들어진, 단단하기 짝이 없는 배인데.
마법 대포에도 견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만들어진 전쟁 병기인데.
쿵! 쿵!-
저 인간은 무슨 지점토 만지듯 하면서 기어코 위로 올라왔다.
“….”
“….”
추격대 대장인 가이도, 그 참모인 포크만도, 그리고 여러 선원들 모두.
갑작스레 등장한 한 청년 앞에서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어서 수영을 하는데, 그 속도가 말이 안 되는 수준.
그리고서 배 위로 올라오는데 강철 벽을 맨손으로 짓이겨버림.
마침내 나타난 그의 몸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체 병기이기까지.
“안녕하세요,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배 위에 있는 이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카일이 입을 연다.
“일단 자세한 대화는 나중에 하고, 얌전히 같이 좀 가주시죠. 그렇게 해준다면 무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뭔가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데. 이러려고 남쪽에 온 게 아니란 말이야.’
엘가는 깊은 한숨을 몇 번이고 내뱉었다.
그건 티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똑같이 한숨을 흘린다.
“티샤. 아무래도, 내 실수 같아요. 괜히 남쪽으로 오자고 했나 봐요.”
“아뇨, 엘가님. 엘가님 실수가 아니죠. 이런 불가항력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뭔가… 진짜 뭔가 썩 마음에 안 드네요.”
어떻게 카일이 가는 곳마다 이런 난리가 생기는 것인지.
이 정도면 모든 사건사고는 다 달고 다니는 사내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더 대단한 건, 그걸 충분히 제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그런 무시무시한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방금 전에 소식이 하나 들어왔어요.”
“어떤 소식이요?”
“한 독립 영주에게 그 정체불명의 선박 쪽이 접근했다고 해요. 그리고 망명 신청을 했는데, 무슨 공화국이니, 의원이니, 그리고 왕실의 마지막 혈통이니 어쩌고 했다고 해요.”
“어… 정말 뭔가 엄청난 일이 생겨버린 것 같은데요.”
엘가와 티샤는 서로를 바라보며 볼을 긁적거려야만 했다.
분명히 쉬려고 온 건데. 건국절 연휴 동안 여유롭게 지내려고 온 것인데.
의도치 않게 정말 엄청난 상황에 껴버린 모양새였다.
“자매님들.”
멀리서 성녀가 미소를 지은 채 두 여자 곁으로 다가온다.
걱정이라는 두 여자와는 다르게, 성녀는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성녀님은 괜찮으세요?”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요, 엘가 자매님?”
“카일이랑 같이 좋은 시간 보내려고 온 건데, 이상한 일이 생겼잖아요.”
그 말에 성녀는 으음, 하고 잠깐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갑작스레 일이 생긴 부분은 퍽 아쉬운 게 맞다.
한껏 바다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사람들과 마주하고.
카일은 대뜸 원판 투척을 하더니 바다로 뛰어들기까지 하고.
“걱정스러웠던 건 맞아요. 하지만… 결국 카일 형제님이 전부 정리하셨잖아요?”
“그건 그렇긴 하죠.”
“저는 그 분을 믿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걱정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게 바로 남편을 믿는 아내로서의 자세라는 것일까.
뒤늦게 그걸 알아챈 엘가와 티샤는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한편, 카일은 이안을 대동한 채로 한 장소에 나와있는 상태였다.
“그, 카일.”
“왜요.”
“굳이 나를 데리고 와야 하나? 그….”
“레토랑 넬이 걱정된다면, 더더욱 여기 집중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말이지?”
그거야 너 배경 쌓아주려고 이러는 거지요.
내가 미쳤다고 넬이랑 떨어트리려고 이러고 있을까.
전장에서 공을 세웠다고 하지만, 기사 권유도 받았다고 하지만.
아직 귀족 작위는 받지 못 했다. 그러니까 무언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지금의 이 그림은 썩 나쁘지 않았다.
“제국, 남쪽 독립 영주들, 망명자들, 그리고 추격자들까지. 상황이 불안할수록 힘이 있는 자들을 찾기 마련이니까. 이안, 당신을 제국에서 필요로 하는 순간이 조만간 올 겁니다.”
자신만만한 어조로 그리 말하는 카일이었다.
덕분에 이안은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고.
그렇게 둘은 걸음을 옮겨 회담장 입구에 다다랐다.
급히 도착했다는 제국 측 황실 인사와 남쪽 독립 영주들을 대표하는 파르달 섬의 영주.
그 둘이서 망명자 집단과 그 망명자들을 요청하는 추격대를 조율할 것이다.
의견이 분분할 테지만 결국 선택권을 쥔 쪽은 제국이다.
이미 카일이 몸소 나서서 ‘힘의 격차’를 여실히 알려주었으니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그 때, 마찬가지로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남성이 다가온다.
카일은 그를 보고서 적당하게 인사를 건넸다.
“포크만 씨. 다시 뵙네요.”
그 정체는 추격대 참모인 포크만.
가이 혼자 들어간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옆에 계신 분은….”
“제가 가르치고 있는 친구입니다. 굉장한 실력자죠.”
“아아….”
탄성을 흘린 포크만이 이안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안 또한 그 인사를 적당하게 받아주었다.
“어찌 될 것 같나요.”
“아무래도, 저희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러겠죠. 그쪽이 벌인 짓이 있으니.”
빼도박도 못 한다. 어찌 되었든 적대 행위를 한 건 자신들이니.
거기서 망명자들을 내놓으라고 하면 제국 쪽이 퍽이나 잘 들어주겠다.
“저, 그런데. 카일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어떤 형식의 마력 슈트를 착용하신 겁니까?”
“…예?”
이건 갑자기 무슨 귀신 씨나락 까 처먹는 소리인지.
카일이 이해를 못 했다는 표정을 짓자 포크만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때 보여주신 모습들을 보면, 분명히 마력 슈트를 착용하신 것 같은데. 저희 슈트처럼 엄청난 크기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말입니다. 혹시 옷가지 수준으로 구현이 되는 겁니까?”
이제야 포크만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카일은 알 수 있었다.
그 때 본 충격적인 광경이, 자신들처럼 마력 슈트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모양.
‘이런 어리석고 우매한 중생을 보났나.’
혀를 찬 카일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순수 육체의 능력입니다. 슈트요? 왜 그런 걸 입습니까? 왜 그런 거에 기댑니까? 그까짓 것 없어도 충분히 다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몸인데.”
음음. 카일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안.
덕분에 포크만은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