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 잠깐이지만 거대한 혼란이 찾아왔다가 겨우 잦아든 후.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지금, 기습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제국 특사가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파르달 섬의 영주도 불쾌한 것은 마찬가지인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고 그 대상은 망명자들과 추격대, 전원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우리는 억울합니다! 우리들은 정말 모릅니다! 우리들을 돼지처럼 묶어서 끌고 가겠다는 놈들인데, 어찌 관련이 있겠습니까!”
망명자 쪽 대표가 간절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한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듯 했다. 저게 연기라면, 정말 대단한 거고.
그런데 이상한 일은, 추격대 대장인 가이 또한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는 거다.
“우리도 지금 이 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분명 본국에서 보낸 추격대는 우리가 전부였습니다. 당장 타국과의 전쟁으로 도저히 빼낼 선박이 없다고 했단 말입니다!”
“지금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당장 우리 제국의 중요 인물들까지 공격하려고 했다면서!”
“그, 그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건 정말입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겁니다!”
제국 특사가 합리적인 의심을 표출한다.
설마 이런 식으로 시선을 돌려놓고 뒤에서 기습을 가하는.
그런 혐오적이고 비겁한 방법까지 쓰냐는 말도 덧붙인다.
덕분에 가이는 더더욱 다급한 표정과 목소리가 되었다.
저들은 믿지 못 하는 분위기지만, 본인들은 정말 억울했으니까.
‘대체, 대체 이게 무슨! 가까운 곳도 아니고 두 달이 넘게 항해를 했다! 그러는 동안 그런 낌새는 한 번도 알아차리지 못 했는데….’
가이가 허둥거리고 있는데, 카일이 뒤에서 슬그머니 입을 연다.
“그러면 상황이 딱 보이네요.”
“에, 예?”
“당신들이 말하는 본국. 그곳의 지휘부가 당신들까지 그냥 버림패로 쓴 겁니다.”
“그, 그게 무슨… 버림패라니요. 우리들은 절대 그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가이 또한 어렴풋이 그 가정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나 포크만, 그리고 지휘 인원들 모두 그들의 쿠데타에 동참하지 않은 인물들.
맞서 싸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을 들고 같이 싸운 것도 아니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면서 승리하는 쪽에 충성을 맹세하려고 했었다.
“본국 지휘부가 굉장히 급진적인 사람이라면서요. 바깥에 있는 포크만 씨에게 들었습니다.”
“일단, 일단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당신들도 그냥 없애고 싶은 사람들인 겁니다. 먼저 앞세워서 안전을 확인하고, 몰래 뒤따른 이들로 정리하겠다. 내가 보기엔 상황이 이런데.”
카일의 말에 제국 특사가 가장 먼저 나서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고 맞장구를 친다.
그에 질세라 파르달 섬 영주 또한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흘린다.
“…?”
덕분에 눈치가 그리 좋지 않은 이안은 ‘저것들이 왜 저래?’ 하는 표정이 되었고 말이다.
“본국 상황이 이리 험악합니까? 이 정도로 막무가내 식일 줄은 몰랐는데요.”
“제가 알기로… 그, 조금 그렇습니다. 갓 정권을 잡은 터라 대규모 숙청이….”
거기까지만 충분하다는 듯 카일이 가이의 말을 끊어낸다.
그리고 의자를 쑥 빼고서는 그의 옆에 앉는다.
“우리, 확실히 하죠. 정말로 지금 나타났다는 배들, 당신은 모르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다시 물을게요. 정말 중요해서 그래요. 정말로, 아무 상관도 없는 거죠?”
“맹세하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카일은 그 말을 듣고선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제국 특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침 남쪽에도 왔겠다, 이상한 놈들이 나타나서 슈트니 뭐니 기분도 불쾌하게 했겠다, 한 번 제대로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카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국 분들도 그렇고, 남쪽 분들도 그렇고, 지금 오고 있다는 놈들이 손님이 아닌 불청객 아닙니까. 제 말이 맞죠?”
그 물음에 제국 특사와 파르달 섬 영주가 서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처음 보는 자들, 처음 보는 배, 그리고 불순한 의도를 품은 자들.
조난자들도 아니다. 가이의 배와 비슷한 걸 보니 전투력을 갖춘 게 분명하다.
그걸 설마 대화 좀 하자고 여러 척이나 끌고 왔을까? 설마.
분명히 힘으로서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저런 무리수를 둔 것이다.
‘자신은 있었던 모양이지. 그 정도면 뭐 신대륙 정벌이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나.’
사람은 때로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곤 한다.
딱 자신들 세상에 맞춰서 또 다른 세상을 판단하려는 잣대.
덕분에 그러다가 크게 한 번 데이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냥 여기 계세요. 제가 가서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예? 아니, 잠시만!”
가이가 급히 카일을 붙잡아 세운다.
그리고는 지금 다가오는 배가 한 척도 아니고 여러 척임을.
그 안에 총사나 비행 슈트를 입은 여러 개의 편대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지금, 나보고 조심하라는 말이잖아요.”
하지만 카일은 그게 뭐 어쨌냐는 반응만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만만히 봐서는 안 됩니다. 정말 본국이 눈이 돌아갔다면,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강력한 전력들을 더해서 보냈을 확률이 아주 높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거 조심하라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카일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는 순간, 제국 특사가 나선다.
그리고 파르달 섬의 영주 또한 하하! 웃으면서 반대편에 선다.
“카일님. 카일님만 믿고 있을 테니 얼른 다녀오시죠.”
“혹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바로 말씀하시길. 남쪽 섬들은 카일 님과 존 나센 남작령에 최선을 다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별 거 없습니다. 그냥 잠깐 기다리고 계시면 바로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카일은 이안더러 ‘가자.’ 라고 말한 후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가이는 물론이고 망명자 대표도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 본국이 여러 척의 함들을 보낸 거면 엄청난 문제인데.
심지어 그 안에 총사들과 비행 슈트를 입은 여러 개의 편대까지 있다면 더더욱 큰일인데.
어느 누구도 거기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한 모습이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본국에서 군사 목적을 띠고서 왔다면 절대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야 방심을 하여 집중 방호 구역을 내주었다지만, 그들은 다를 겁니다.”
“저 남자의 말이 맞습니다. 특히 총사들은 마력석으로 움직이는 총기를 다루는 자들입니다. 원거리에서 강력한 살상 마법을 다룬단 말입니다.”
망명자와 추격자가 사이좋게 제국을 우려하는, 지극히 희한한 모습.
이 정도면 제국 쪽도 진지하게 걱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들 조용히 하고 기다리시죠. 카일 님이 곧 오신다고 했으니.”
“저, 정말로 다들 이러고 계실 겁니까?”
“카일 님이 다녀온다고 하셨으면 정말 갔다가 오시는 겁니다.”
리토리오 대공가의 차기 대공과 연인 관계라서 그런가.
존 나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외교친화적인 카일이었다.
다른 존 나센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데.
남작조차도 영지 바깥일에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는데.
카일이 나서서 뭔가 언질만 주면 득달 같이 달려들곤 했었다.
그런 부분에서 봤을 때 카일은 제국의 리토리오 같은 포지션이라 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나서서 대화를 해보고, 우호 관계를 이끌어낼 수도 있는 인물.
물론, 그 방식은 어디까지나 존 나센 식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
“….”
“….”
한편, 카일을 기다리던 세 여인들은, 현재는 그 카일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눈치 챈 것이다. 아, 저 남자. 지금 엄청 화났구나.
“카일 형제님이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걸까요, 자매님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 엄청 화가 난 건 맞는 것 같은데.”
“혹시, 엘가님과 성녀님이 타고 계신 배를 공격하려고 했다는 거에 저러는 게 아닐까요?”
은근히 여인들을 한 번씩 띄워주는 티샤였다.
그러자 성녀가 바로 그 말에 티샤까지 같이 띄워준다.
“그런 이유라면 티샤 자매님도 계셨으니 더더욱 그러셨겠네요! 카일 형제님은 저와 엘가 자매님을 생각하시는 것만큼 티샤 자매님도 생각하시니까요!”
엘가도 그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그런 이유로 화가 난 거라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는 생각과 함께.
“레토님. 아무래도 카일님이 엄청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예, 넬 님. 저도 알 것 같네요.”
심지어 그 레토조차도 카일의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조심하는 중.
‘건드리지 마시오.’ 아우라를 뿜어내는 카일은 그야말로 악마 그 자체였다.
그 사이 카일은 이안을 데리고서 무언가를 챙기고 있었다.
“정말로… 이거면 되나? 뭘 하려고 하는지 난 감을 못 잡겠어.”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요. 그냥 어서 오세요, 하고 안녕히 가세요. 하는 거죠.”
물건을 챙긴 카일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충 방향을 계산한 그는 ‘여기쯤이겠네.’ 하고 발로 표시를 해두었다.
“이안. 봉.”
카일의 말에 이안이 공손하게 들고 있던 봉을 건넨다.
그걸 받아든 카일은 가볍게 한 번 휘두른 후 투창 자세를 취했다.
‘어려울 건 없어. 하체에 힘을 주어서 단단하게 지지하고, 상체의 모든 근육을 동원해서 딱 한 곳의 점 부분에 집중한다.’
화가 난다. 정말 화가 나! 여자들이 타고 있는 배를 공격해서?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놈의 슈트, 슈트, 슈트 타령! 왜 사람의 몸을 못 믿냐고!’
당장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던 본인조차도 이 정도 경지에 올랐는데.
그렇게도 몸이 약하던 성녀도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튼튼해졌는데.
저것들은 발전하는 기술과는 별개로, 점점 몸들이 거꾸로 약해지지 않는가!
“흡!”
카일은 들고 있던 봉을, 손님들이 오고 있다는 방향으로 힘껏 내던졌다.
콰과과과과!!-
그 순간, 바다가 쩍, 하고 양 옆으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