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252화 (252/318)

“견시! 보고!”

“육지가 보입니다!”

“측정기 결과는? 아직도 고정되어 있나?”

“예. 아마 저곳에 망명자들과 추격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선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추격대 몰래 위치 측정기를 붙여둔 게 신의 한 수였다.’

처음에는 그들이 당연히 실패하거나, 혹은 배신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가족들이 붙잡혀있어서 그런지 그들은 온갖 풍파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코 이 신대륙까지 본인들을 안내하고 만 것이었다.

본국에서는 이것까지 전부 예상하고 있던 것일까.

무조건 살아야 하는 자들, 그리고 무조건 잡아야 하는 자들.

그들이 기어코 한 번도 닿지 못 한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놈들이 닿을 수 있다면 본국의 누구든 닿을 수 있다.

그걸 믿고 은밀하게 함선들을 동원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추격대와 조우하면 어찌 합니까? 우리 정체를 물을 텐데.”

“빠르게 놈들을 모두 처리한다. 어차피 본국으로 돌아가면 쓸데없는 놈들이야.”

쿠데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이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해라.

그것이 현 정권에서 내려온 지령이었고, 밑의 칼과 총들은 그 명령을 충실히 수행 중이었다.

이 자들이 받은 명령은 왕실 혈통의 철저한 말살.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목격자들에 대한 정리.

저들이 돌아가면 왕실의 혈통을 어찌 했는지 사람들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추격대 또한 이 세상에서 응당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혹 신대륙 쪽의 상황이 미개한 곳이라면, 식민지 건설도 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이렇게 많은 함선들이 출정한 것이다.

본국의 상황은 여전히 엉망이지만, 일단 협정을 맺어 전쟁은 중단되었다.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지만 어찌저찌 급하게 막아두기는 한 현 상황.

이 틈을 타서 어떻게든 바깥에 식민지를 만든다면 그 피해를 메울 수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시장 부분과 자원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당장 적국들이 순식간에 강해진 이유도 식민지를 얻어서가 아닌가.

본인들도 어떻게든 그 식민지를 얻을 수 있다면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

라는 게 현재 이들의 생각이었고,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적들의 수준이 높았다면 망명자들은 물론이고 추격대도 전부 사라졌겠지. 하지만 멀쩡히 위치 측정이 되는 것을 보니 그리 위협적이진 않은 것 같군.”

“거기에 우리 전투 인원들도 다수 배치되어 있습니다. 총사만 100여명에 마법 대포와 마력석도 충분하니 잘만 하면 한 지역을 우리가 점령하여….”

쿠구구구….

별안간 앞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육지라면 지진이라도 났나? 싶을 테지만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럴 리는 만무.

하여,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이 고개를 돌리는 찰나.

우우우웅!!-

은빛의 번뜩이는 무언가 해수면을 가로지르며 섬광처럼 날아들었다.

그게 한 번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장관이 펼쳐졌다.

“저게 무슨….”

그 말이 끝이었다. 피해라, 응사해라, 뭐 그런 말을 할 틈조차 없었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해일에 휩쓸리고, 섬광에 꿰뚫려 모든 기동력을 잃고.

전대미문의 재앙이 자신만만하던 이들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우아아아아!!”

먼 곳에서 온 불청객들은 이제 그만 가시라는 뜻에 순순히 따르게 되었다.

*

“….”

“….”

망명자 대표와 추격대 대표, 가이.

서로 상당히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관계인 두 사람이지만.

“대, 대체 이게 무슨….”

지금만큼은 서로가 바로 옆에 선 채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건져 올려!”

이쪽의 배들이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동포들을 건져내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위용을 지닌 채 다가오던, 나름 잘 짜인 함대였다.

거기에 타고 있던 총사만 100여명이라고 했고 또 그 외의 전투 인원과 마법 대포까지 합치면 어지간한 연대 병력 정도는 되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그 모든 것이 저 시커먼 바다 속으로 처박혔다.

아예 두 동강이 난 배, 커다란 구멍이 난 배, 뒤집어진 배.

굉장히 견고하게 만들어진 함선들이 무슨 종잇장 마냥 구겨졌다.

아무리 슈트를 입은 비행병이라고 해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해봤자 마력 대포를 무력화하거나, 아니면 엔진실을 노린다거나.

그런 식으로 배를 공격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아예 통째로 전복시키거나 아예 ‘배’ 라는 개념을 으스러트리는 식은 절대 아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카일님.”

“역시 존 나센의 자제 분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엄청난 광경에도 제국 측 특사와 파르달 섬의 영주는 태연했다.

오히려 하하! 웃으면서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만 보이고 있다.

덕분에 두 사람은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사태를 일으킨 자는 조금 전의 그 젊은 청년이라는 것.

처음에는 무슨 마법이라도 쓴 줄 알았다.

엄청난 규모의 공격 마법이라면 함선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진 청년, 카일의 말은 그들을 기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려울 거 없었습니다. 그냥 이렇게 해서 이렇게 던지면 끝이거든요.”

카일이라는 청년은 옆의 병사가 들고 있던 창을 잡아 들었다.

그걸 힘껏 바다 쪽으로 내던지니, 또 다시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쿠구구구….

“….”

마법 대포는 ‘따위’ 로 만들 정도의 위용이다.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슈트도 저런 힘을 낼 수는 없다.

총사들이 아무리 총을 난사해도 저것에 비할 수도 없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온 것일까.

심지어 하는 걸 보니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닌 듯 한데.

저 청년이 정말 이 악물고 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는 의문이 드니 저도 모르게 ‘혹시 저 사람도? 저 사람도?’ 라는 생각도 든다.

혹시 알고 보니, 이곳 사람들 전부가 저 청년과 비슷한 수준은 아닐까?

“그러면 나머지 일은 제국이랑 영주 분들이 알아서 정리하세요.”

할 일 다 끝낸 카일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일행들에게로 돌아갔다.

감히 슈트 타령하던 놈들도 전부 바다 속에 처박았고, 아주 깔끔하다.

바닷물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지만, 크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누구도 아닌 자신이 나선 것에 대해서.

‘그 슈트인지 뭔지, 형님이나 누님 귀에 들어갔다간….’

오호. 막내야. 다시 한 번 말해보거라. 지금 뭐가 있다고?

어머. 카일. 그런 흉물스러운 게 나타났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그 둘은 분명 그렇게 외치며 우와! 하고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흉측한 것들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주먹만 하게 말아버릴 테고.

‘그것도 다행이라고 볼 수 있지. 만약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아신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카일은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아버지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짓을 벌일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카일. 나보고 그거까지는 하라고 하지 마라.”

돌아오자마자 이안이 건넨 말은 그것이었다.

이미 봉을 던질 때부터 기겁을 하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이안이었다.

대체 어떤 인간이 바다까지 가르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존 나센 사람들이나 할 일이다. 자신 따위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이안.”

하지만 오히려 그 말은, 카일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데에 충분했다.

“사람이, 원래 하고자 하면 다 하는 동물이거든요.”

“아니. 하고자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건….”

“걱정하지 말고 나만 따라와요. 내가 다 하게 해줄 테니까.”

으아아악! 이안은 잘못 걸렸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다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는데.

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와중에 카일은 ‘야! 너도 할 수 있어!’ 라고 하고 있다.

아마도 그의 성격을 고려하면 반드시 그리 되게 할 것이었다.

거기서 절대 못 한다고 말한다? 사신 앞에서 죽여 달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저 앞에서 넬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남자는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존재였다.

카일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이안이 넬 쪽을 바라보게 하면서.

‘님, 그래서 넬 앞에서 약해지는 모습 보일 거?’ 라는 어조로 입을 연다.

“할 거죠, 이안? 할 수 있어요. 우리 해보자고요. 혹시, 못 하겠다는 건?”

“…할 수 있지. 할 수 있고 말고.”

“그러면 이거도 나중에 천천히 알려줄게요.”

“알겠다.”

그래도 카일이 양심은 있어서, 레토에게까지 강요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안 정도 되니까 ‘너도 한 번 해보실?’ 라는 말이라도 하는 거다.

레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제국 10강 정도는 될 수준이 되어야 흉내라도 낼 수 있을 테니.

이건 무력 쪽 탑을 찍는 주인공에게 전수할 법한 것이었다.

“자. 그러면 우리 할 일도 끝났으니, 다시 연휴를 즐기죠.”

“정말로 괜찮겠어요? 마무리까지 하고 와도 되는데.”

엘가가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한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쪽 독립 영주들에게는 물론이고.

제국에도 굉장히 골치가 아픈 상황이 벌어질 뻔 했는데.

카일이 나서서 얍. 하고 봉을 한 번 내던지니 싹 사라졌다.

리토리오 대공가가 외교 부분임에도 일정 이상의 무력을 지닌 것이나.

언젠가 보았던 ‘최고의 외교술은 힘에서 나온다.’ 라는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제가 더 한다고 따로 제국에서 뭘 챙겨주기를 합니까. 이 정도 했으면 많이 했어요.”

얼른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이 이상 관여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 정말 가족들에게까지 전해지는 순간, 큰일이 날 테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