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끌고 온 함선은 가이의 함까지 합쳐서 총 다섯 척.
그 중 어떻게 수리를 해서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건 두 척에 불과했다.
거기에 고향으로 돌아갈 이들을 전부 우겨넣어야 한다.
본국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 한 두려움에 남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혹은 당장 인원이 너무 많아 다음을 기약하는 자들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함선들은 돌아가는 사람들로 꽉 차버렸다.
‘저거 저러다가 무슨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
카일은 속으로 그리 걱정하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정원 초과다. 아무리 봐도, 보고 또 봐도 딱 그렇다.
자칫 잘못해서 침몰이라도 하는 순간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거기에 숫자가 너무 많으니 먹을 것과 마실 것도 문제다.
제국에서 선심을 써서 최대한 많이 실어두기는 했는데.
사람 숫자를 보면 그게 과연 유지는 될지 의문이었다.
제국 쪽에서도 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심지어 저들조차도 잘못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저렇게 간절하게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단 하나.
‘여기 사람들은 너무나도 무서운 사람들이다!’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
듣는 카일도, 그리고 듣는 제국도 당연히 기분이 불쾌할 만한 오해다.
존 나센이 전투에 미쳤다곤 하지만 애먼 사람을 해치진 않는다.
그만한 가치가 있거나, 혹은 숭고한 노력을 욕보이려는 자들에 한해서.
딱 그런 상대에게만 전력을 다하여 상대할 뿐이다.
그리고 제국은 존 나센과 싸웠을 뿐이지, 그들처럼 전투에 미치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상한 오해가 생긴 모양인데 어쩔 수가 없었다.
“저, 카일 형제님.”
갑작스러운 황명을 받고 급히 황궁으로 달려간 황녀.
한동안 일을 안 해서 업무가 너무 쌓였다고 잠시 대공가로 돌아간 엘가.
그리고 미친 듯이 밀려드는 주술 연구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티샤까지.
덕분에 현재 카일의 곁에 있는 여인은 성녀가 유일했다.
“저기, 저 형제분들.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위험하죠. 단순히 인원 초과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거 다 먹이고 마실 게 부족해지면 재앙이고, 당장 편히 쉬기도 힘들 거예요. 듣자하니 마력석이라는 것도 간당간당하다는데.”
파손되거나, 혹은 해수를 너무 많이 먹어서 못 쓰게 된 것들을 제외하고서.
저들이 건져낸 마력석은 두 척의 함을 겨우 본국으로 돌릴 수 있는 양이었다.
문제는, 배의 무게에 따라 잡아먹는 마력석이 더 많아진다는 거다.
일단 계산만으로는 저만큼의 인원을 태우고도 얼추 갈 수 있다는데.
도중에 무슨 문제라도 터지면 그 때는 헬게이트가 열린다고 봐야 한다.
“위험하잖아요. 배 위에서, 바다 위에서의 죽음은 끔찍하다고 들었는데.”
안쓰럽다는 눈빛의 성녀. 그에 카일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들이 이곳 세상을 ‘식민지’ 로 이용하려 했다는 소식은 이미 전했다.
즉, 저들은 성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지극히 악독하기 짝이 없는 자들.
그럼에도 그녀는 저들을 적대하기보다 오히려 동정하고 있었다.
“카일 형제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설득을 하고 싶으신 거겠죠.”
“아, 알고 계셨나요?”
“당연하죠. 성녀님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다 보인답니다.”
거짓말을 전혀 하지 못 하는 성녀이기에, 다 티가 난다.
그런데 성녀는 그런 카일의 말을 살짝 다르게 해석한 모양.
“아아….”
새빨개진 얼굴을 애써 숨기며 손가락만 꼬물거리는 성녀.
그러다가 겨우 심호흡을 하고선 입술을 뗀다.
“저, 그러면….”
“같이 가죠. 성녀님 혼자만 가셔선 크게 집중도 안 할 겁니다.”
성녀를 가볍게 안아든 카일은 훌쩍 몸을 날렸다.
굳이 이럴 필요 없이 그냥 같이 걸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젠 적당히 먼저 들어가주기로 마음을 먹은 후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좋은 기회다.
“우으….”
품속에서 들려오는 짧은 신음 소리에 카일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 성녀님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안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성공했구나. 그래, 이 정도면 빙의할 만 하지. 라고 중얼거리며.
한창 출항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타대륙 사람들 앞에 도달했다.
“잠시, 여러분. 집중 좀 해주시죠.”
카일의 등장에 가이와 포크만을 위시한 모두가 얼어붙는다.
저 남자가 본국 최고의 전략 자산인 슈트를 어찌 다루는지 보았다.
무슨 종잇장 구기듯 구겨서는 ‘이딴 거에 기대지 마라.’ 라는 표시까지 해두었지.
장담하건데, 저 손에 사람이 붙잡히면 잘 말린 공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상상하니 혹시 이대로 다 죽이려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혹시나 그러기 전에 이대로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싶은 순간.
“저, 안녕하세요. 먼 곳에서 오신 형제 여러분.”
무슨 대악마 같은 이의 품에서, 천사의 재림이 이어졌다.
그 이질적인 광경에 모두가 괴리감이 찾아와서 멍한 표정이 되었다.
“바쁘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꼭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
“….”
카일은 한쪽에 기대어 서서 성녀가 하는 일들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아주 열심히 현 상황의 위험성을 알리며, 이러는 게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고향이 그립고, 가족들이 보고 싶은 거야 물론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몸 건강히 가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
지금 이 결정은 너무 위험하다. 굳이 위험을 부담할 필요는 없다.
제국은 그렇게 험한 자들의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선한 곳이다.
당장 당신들을 챙겨주고 본국으로도 돌려보내주지 않는가.
망명자들도 받아주고, 그 외에 각 지역과도 최대한 잘 지내려고 하고 있다.
혹 제국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면 자신들 교단이 안전을 보장하겠다.
비록 악한 이유를 품고 있었다지만 동시에 ‘이래도 되나?’ 라는 의문도 품지 않았느냐.
먼 곳에서 온 형제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그쪽 세상의 신의 가르침을 찾는 이들은 어떤지 알고 싶다.
그렇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돌아갈 새로운 방법이 생길 것이다.
‘엄청 적극적이네.’
본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 관련도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위험하다고 하니 두 팔 걷고 나서고 있다.
선해서 그렇다. 계산보다 그 마음이 먼저 이는 여자다.
그래서 성녀다. 그래서 교단이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본인의 도덕적 우월함을 위한 동정심이 아닌.
완벽하게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지녔기에 그러하다.
“그, 성녀님의 말씀이 물론 백 번 옳긴 합니다. 하지만….”
“시작은 불청객이었다지만, 형제들께서 스스로 손님으로서 머물다 가시면 된답니다. 반성하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과거의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있을 거랍니다.”
성녀의 말에 꽤 많은 인원들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귀환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확실히 배 위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남자니 제국의 눈초리가 사나울까 걱정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자애로운 성녀가 직접 안전을 보장하고, 방책을 제시하고 있다.
흔들릴 만하다. 그래, 사람이라면 응당 흔들릴 수밖에….
“카일.”
흐익!-
바동거리던 카일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찌나 놀랐는지 심장이 가슴을 꿰뚫고 나오는 줄 알았다.
아직도 벌렁거리는 게 통증이 느껴질 정도다.
카일은 몸을 일으키곤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리고선.
“아버지?”
“왜 그리 놀라느냐, 막내야.”
그걸 진짜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아버지.
기척도 없이 다가와선 그 소름 끼치도록 낮은 목소리로 이름까지 부르시고.
자신이 아니라 세상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할 경우 정말로 심장이 가슴에서 출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뭐, 뭡니까. 언제 오셨어요? 아니, 제국엔 무슨 일로….”
“소식 듣고 봉을 내려놓곤 바로 왔다.”
“….”
봉을 내려놓고, 그 부분에서 오싹 소름이 끼치는 카일이었다.
봉을 내려놓았다. 이게 무슨 말이겠는가.
루틴 돌리다 말고 왔다는 뜻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존 나센 남작이.
자신의 아버지가, 무슨 일이 있어도 루틴은 기어코 다 돌리는 그 운동 귀신이!
‘설마 제국이라도 때려 부수려는 생각이신가?’
혹시 이미 황성을 아주 박살내놓고 온 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10강들이 전부 소집되고 있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
“왜 그리 쳐다보느냐?”
“그, 혹시 이제 와서 제국이랑 한 판 하시려는 건….”
“무슨 소리를. 나름 즐거운 일을 만들어주는 제국을 왜 치워.”
고개를 갸웃거리던 존 나센 남작이 말을 잇는다.
“말하지 않았느냐. 소식 듣고 왔다고.”
“무슨 소식… 아, 설마.”
이 인간들이. 그거 이야기 하지 말라고 기껏 다 처리했는데.
아버지 귀에 그 소식이 도대체 들어간 건데!?
카일이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사이, 존 나센 남작은 몸을 돌렸다.
마침 그곳엔 저들이 사람을 태우겠다고 대충 던져놓은 슈트 한 벌이 있었다.
“이게 그것이냐.”
“예? 아, 네. 아버지.”
“으음.”
슈트를 살펴보던 남작은 이내 손가락으로 팅, 하고 슈트를 튕겨보았다.
투―콰아앙!!-
그리고 그 순간, 항구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아무래도, 신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고, 카일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에서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걸 어찌 설명할까.
“….”
“….”
성녀의 눈물겨운 설득에 점차 넘어가고 있던 이들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그러는 사이 남작은 몸을 돌려 그들의 배로 다가갔다.
“사람이 너무 많이 탄 것 같은데.”
“….”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우르르, 하고 바로 하선하는 사람들이었다.
역시 친절한 말보다는 친절한 말과 존 나센이 더 설득이 잘 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