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이 땅에 ‘마법’ 이란 것이 생겨났을 때.
사람들은 그 마법을 어디에 사용하려고 했었을까.
실생활에? 설마. 인간이란 동물이 어찌 그리 순수할까.
시작은 단순한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함이었을지 몰라도.
최전성기를 맞이한 이유는 결국 ‘무기’ 로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도 가장 먼저 발달한 게 대규모 공격 마법이었다.
그 다음이, 공간 이동 마법진을 대표로 하는 이동 마법.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어떤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까.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그러한 고민을 한 번씩 받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무기로서 활용되게 된다.
비록 아주 잠깐 머물다가 사라질 것이라고 해도.
처음 당하는 쪽에선 대비를 하지 않고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공격에 쓰일 수 있는 연구 다음이, 방어 목적으로 쓰일 연구다.
이번에 새로이 유행을 탄 주술 또한 그와 똑같았다.
사람들의 믿음으로 하여금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제국에서 가장 먼저 지시한 것은 주술이 ‘무기’ 로 쓰일 때.
그 순간에 역으로 완벽하게 방어를 할 수 있는 결계 주술의 구성이었다.
“어렵다, 어려워….”
오늘도 티샤는 낑낑거리며 주술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다.
여태까지 그녀가 했던 연구는, 오로지 새로운 주술들을 위한 것이었다.
더 유용한 곳에, 더 쉬운 방법으로서 다가갈 수 있는 방법.
보다 사람들이 주술을 마법만큼이나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길.
‘하지만 지금은 달라. 지금은….’
주술 자체를 밀어주고 있는 황실과, 자금을 대고 있는 바이엔 대공가.
이들이 가장 먼저 해결을 요한 것은 주술의 무기화에 대한 대비책.
슬픈 일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발조차 제대로 떼지 못 했는데.
저들이 염려하는 건 가장 참담하고 슬픈 일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들의 걱정은 기우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당장 티샤 본인도 어렴풋이 인정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주술이 무기로 사용된다면, 굉장히 난처해질 것이라고.
마법처럼 대對마법으로서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주술은 완성되어 적절한 시기에 천천히 퍼져나갈 뿐이다.
좋게 말하면 이것은 향과 같고, 나쁘게 말하자면 독과 같다.
인지하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몸에 들인 후라는 것이다.
“하아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꼼짝도 않고 주술만 붙잡고 있었다.
이러다가 카일이 알면 엄청 안타까워 할 텐데, 라는 생각도 들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으니 운동하는 시간을 더 늘릴 수는 없었다.
‘그나마 지금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도 기적이야.’
새삼 카일이 고마워진다. 현재 체력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 했을 생활이다.
아마도 매일 축 늘어져선 그대로 침대 위에 졸도하는 일상이 계속되었을 거다.
“으읏!”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운 티샤는 바깥 공기라도 쐴 겸 바깥으로 나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후였던 것 같은데, 벌써 저녁 시간이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어두컴컴해진 하늘엔 달과 별만 반짝거렸다.
‘너무 좋아했던 걸까?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미처 몰랐어.’
대공가에서, 그리고 황실에서 주술을 정식으로 받아들인다 했을 때.
티샤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비로소 자신의 노력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이게 단순히 기쁨만으로 될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세상에 정식으로 나선다는 것은 선의와 악의를 동시에 겪어야 한다는 뜻.
만약 이 주술이 순전히 악의로서 행해질 때 예상되는 피해는 얼마나 되고.
그런 일이 벌어질 때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대책은 어떻게 있는가, 등등.
티샤로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 했던 온갖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무슨 힘든 일 있어요?”
그러다 문득, 티샤는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카일?!”
카일을 보자마자 티샤는 바로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품에 안겨선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카일, 카일. 저 너무 힘들어요. 할 게 너무 많아….”
“소식 들었어요. 강의 들을 거 다 듣고, 거기에 주술 연구하고.”
“그리고 카일이 실망하지 않게 운동하는 것도 있어요.”
듣고만 있어도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어우, 하고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냥 주술 연구만 한다고 해도 굉장히 피곤할 것 같은데.
아카데미는 아직 방학 전이다. 심지어 조만간 기말고사도 봐야 한다.
즉, 티샤는 보통 사람은 기겁을 할 주술 연구를 하면서.
거기에 또 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공부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진짜, 엄청 피곤하겠지.’
다행인 점은 티샤가 그래도 체력을 많이 길러두었다는 거다.
체력이 약한 사람은 앉아만 있어도 그냥 몸이 망가진다.
그럼에도 피곤한 건 피곤한 거고, 지치는 건 지치는 것.
해서 카일은 티샤를 품에 안고서 얌전히 기다려주었다.
그녀가 제 품에서 충분히 힐링을 하고,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저 보러 온 거예요?”
잠시 후, 힐링을 마쳤는지 티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든다.
살짝 피곤한 기색이 머물고 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당연하죠. 당신이 아니면 제가 왜 여기를 올까요.”
볼을 만지작거리며 부드러운 어조로 그리 답해준다.
이제는 다른 여인들 생각할 것도 없고, 다가가도 아무 상관이 없다.
덕분에 카일은 이전보다 훨씬 더 편하게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보다, 의외네요.”
“네?”
“티샤라면 주술 연구라고 해서 엄청 즐거워 할 줄 알았는데.”
“아, 아아.”
이해했다는 듯 티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곤 쓴 웃음을 지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순수한 주술 연구였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지금 맡고 있는 연구는, 주술의 무기화를 대비한 것들.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말을 듣곤 절실히 깨달았다.
인간이란, 사람이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무기로서 휘두르는 걸 고려한다고.
그로 인한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라고 이해는 하고 있어요. 필요성도 절실하고. 하지만, 여태 하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어쩔 수 없이 좀 피곤하긴 해요.”
“이해했어요. 티샤가 힘들어 할 만도 하네요. 당신은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사람들의 선의만을 생각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했으니까요.”
다시 티샤를 껴안고서 가볍게 등을 토닥거려준다.
지금 필요한 건 조언도 아니고, 의견 제시도 아닌, 그냥 단순한 응원.
그 외에 다른 건 할 필요도 없다. 오직 그것만 제대로 해줘도 충분하다.
“일 이야기는 그만하고요. 우리 다른 이야기해요.”
“그럴까요?”
“소식 들었어요. 아버님… 아, 그. 남작님이.”
“아버님이라고 하세요. 이미 성녀님도 그렇게 부르시던데.”
“아….”
순간 티샤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버님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카일의 그 말이, 티샤에게는 꼭 이렇게 들린 것이다.
어차피 결혼할 사이인데, 그렇게 부르는 게 맞잖아요! 라고.
“크흠! 그, 그러면! 아버님께서 남쪽에 가셨다고요.”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건 들었죠?”
“네. 그쪽 사람들이 여기 마법이랑 주술을 신기해하는 것도 알고 있고요.”
고개를 끄덕거린 카일은 그 때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마법 이외에 ‘기술’ 부분으로도 굉장히 많은 발전을 이룬 바다 건너 세상.
거기서 새로운 과부하를 주는 운동기구의 가능성을 본 존 나센 남작.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그걸 부탁한 것이라고 말이다.
“…아, 저. 잠깐만. 잠깐만요, 카일? 그러면 그 운동기구를 보러 아버님께서….”
“직접 가고 싶다고 하시네요. 걱정할 거 없어요. 오고가는 데에 한 달도 안 걸려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요?”
어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엄청난 기술력을 지닌 그 세상 사람들도 몇 달을 걸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편도도 아니고 왕복을 하는 데에 한 달도 안 걸린다니.
새삼 본인이 누구와 사귀고 있는 것인지, 누구와 결혼하려고 하는 건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의 세상으로 시집을 가는 건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그러면 전부 돌아간 건가요?”
“전부는 아니고요. 절반 넘게는 이곳에 남기로 했어요.”
“어떻게요? 다들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고 들었는데.”
“성녀님께서 설득을 하셨거든요. 너무 위험하다고 말이죠.”
“아하!”
정확히는 성녀의 설득에 이제 남작으로 인한 오해가 겹쳤지만.
굳이 그 부분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 카일이었다.
“그보다, 티샤. 조만간 기말고사도 있잖아요.”
“윽… 굳이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그런 뜻은 아니고요. 피곤하지 않아요? 쉬엄쉬엄 했으면 하는데요.”
“아… 하지만 일이 좀 많아서요. 맨입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 부지런히 해야죠.”
주술을 제대로 밀어주고 있는 황실과 바이엔 대공가.
그 기대에 대한 부응을 응당 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말.
하지만 카일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못 해남는다고 여기는 쪽이었다.
“괜찮으니까 적당히 해요. 아니다, 아예 오늘은 관두고 저랑 야경 구경이나 가죠.”
“네? 어, 하지만 이번 주 내로 마무리해야 할 일이….”
“누가 부탁한 일인데요?”
“바이엔 대공 각하께서 부탁하신 일이에요.”
“잠시만요.”
그리 말하곤 갑자기 마법 통신구를 꺼내드는 카일이었다.
티샤가 설마? 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사이, 이미 연락까지 한 상황.
[ 카일 공자? ]
“간만에 뵙습니다, 바이엔 대공 각하. 저번 황실 연회 이후로 첫 연락이네요.”
[ 그렇군. 갑자기 무슨 일인가? ]
“오늘 티샤 야근 없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쉬게 해주시죠.”
[ …어? ]
“싫으십니까?”
단 셋뿐인 대공 앞에서 너무 무례하다 싶은 대화.
하지만 문제는, 카일은 존 나센에 단 하나뿐인 막내라는 점이었다.
[ 아, 그. 자네 마음대로 하게. ]
“그래도 된다는 거죠?”
[ 되고말고. ]
“나중에 손익 따지기 없습니다.”
[ …이건 내가 알아서 메우도록 하지. ]
다른 건 몰라도 손익 계산에는 황제에게도 철저한 바이엔 대공.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바이엔 대공조차도 한 발 물러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