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273화 (273/318)

“그, 카일. 처음 출발할 때부터 느꼈던 건데 말이죠.”

존 나센으로 향하는 길. 한동안 말이 없던 티샤가 조심스레 입술을 뗀다.

“지금 우리, 어디 순례 가는 건 아니죠?”

“아하핫!”

티샤의 말에 조용히 이동하던 황녀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무리엔 교단 소속 사제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너무나 경건한 표정을 지은 채 이동하고 있었다.

저들 대부분이 조만간 어딘가로 고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들었다.

목적지는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 이번에 존 나센으로 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고행 전의 확인 작업과 이후 조언을 얻기 위함인 건 맞았다.

“티샤 자매님 말씀이 맞아요. 요즘 교단에선 존 나센으로 가는 걸 순례라고 부른답니다.”

뭐야. 진짜로 지금 이걸 순례라고 한다고? 도대체 왜?

북쪽이 교단의 시작인 것도 아니고, 종교적 교리가 만들어진 곳도 아닌데?

카일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자 성녀가 미소를 짓는다.

“교단에 새롭고 신선한 바람을 이끌어준 곳이니까요. 이후 더 신실한 마음을 지니면서, 더 경건하게 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북쪽으로 향하는 게 순례길이 되는 건 당연하죠.”

참고로, 존 나센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 순례길은 무조건 걸어서 이동한다고 한다.

다만 이번 같은 경우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부득이 이동 마법진을 이용했다.

대신 그 전에 미리 그만큼의 거리를 미리 걷고 또 뛰었다고 한다.

‘좋은 습관이네. 혹시나 운동 못 하면 어떻게든 채운다는 마인드.’

가끔 그러는 경우가 있다. 운동하다가 일이 생겨서 못 하면, 그냥 넘어가는 거.

그래서는 안 된다. 만약 그 시간대에 못 하면 시간을 비워서라도 해야 한다.

그게 존 나센이다. 그리고 그 존 나센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지닐 행동이다.

“으으. 카일. 나 괜찮아요? 이상하진 않죠?”

요 며칠 잦은 야근과 밤샘 때문이었는지.

다크 서클이 생긴 걸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 엘가였다.

단순히 미용 부분만 우려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누가 보면 운동을 안 해서 체력적으로 문제가 많은 걸로 보이는 것 같다고.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존 나센’ 으로 향하는데 그런 오해는 싫다는 것.

“네. 이제 괜찮아요. 그리고 고향에서도 밤샘은 그리 권하지 않아요. 몸을 해치는 일이라고 말이죠. 밤을 새서 피곤한 걸 보고 약하다고 하지는 않는답니다.”

더욱 즐거운 운동을 위해선 더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수적인 곳.

그래서 항상 삼시세끼 꼭 챙겨먹고 제때 꼭 자는 게 바로 존 나센이다.

“카일 말이 맞아. 언제였더라? 내가 예전에 존 나센에 갔었을 때 몸을 너무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혼난 적이 있어. 음, 맞아. 확실히 그랬던 적이 있지.”

“황녀님이 혼이 나셨다고요?”

“어. 성녀님. 정말로.”

당연히 전혀 상상이 안 간다는 반응을 보이는 성녀였다.

그리고 옆에서 나란히 가던 엘가와 티샤도 성녀와 비슷했다.

강하기도 하고 또 워낙 본인의 세계가 확고한 인물이 바로 황녀인데.

황제도 차마 뭐라고 하지를 못 하는 자식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그 황녀가 혼나는 광경이라니. 이거 상상도 잘 안 간다.

“카일. 저기.”

이때, 티샤가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반가운 기색을 보인다.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저 앞에서 다가오는 한 노인 때문.

“오셨습니까, 작은 도련님.”

“이번에도 닐 영감님이 마중이네요.”

“하하! 또 어쩌다보니 제가 가장 먼저 루틴을 끝내서 말입니다!”

정확히는 먼저 끝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거다.

모두가 기겁할 만큼의 운동량을 소화하는 존 나센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주 직계 쪽은 그 배는 되는 단련을 하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닐 영감은 나이가 꽤 많다.

이제는 몸을 좀 위해서라도 과하게 움직이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저번 여름 방학 때 닐 영감이 하던 말을 들은 기억이 나는 카일이었다.

‘물론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좀 있지. 아니, 좀 많이 있지.’

늙어서 몸 좀 사려야 한다는 노인이 제국 10강과 즐겁게 대련을 하고.

몸 상태를 보면 어지간한 제국 기사 따위는 웃으면서 부러트릴 것이다.

보여주기 식이 아닌, 말 그대로 순도 100퍼센트의 전투 근육이란 뜻이다.

“그리고 뒤에는….”

으음, 하고 턱을 만지작거리며 잠깐 동안 무언가를 고민하는 닐 영감.

그러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운을 떼었다.

“다시 뵙는군요. 아가씨들. 존 나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번 여름 방학에는 손님으로서 대우했던 닐 영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호칭부터 시작해서, 영락없는 존 나센의 사람으로 대한다.

이미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리 작은 도련님 좀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한 술 더 떠서 오히려 그렇게까지 인사를 건넨다.

덕분에 살짝 긴장하고 있던 여인들의 표정이 대번에 풀렸다.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아이고, 정정하기는요! 삭신이 쑤시는데!”

아하, 삭신이 쑤셔서 봉에다가 원판을 그렇게 끼우고 다니시는구나.

이렇게 보면 존 나센에게 있어 죽음이란 대체 무엇일까 싶다.

자연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지간해서는 힘들 것 같단 말이지.

티샤, 엘가, 성녀, 그리고 황녀까지.

모두와 일일이 인사를 나눈 닐 영감이 뒤쪽으로 시선을 둔다.

“음. 이번에도 다른 손님들이 계시는군요. 보아하니… 교단 분들 같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교단과는 접점이 많아진 닐 영감이다.

덕분에 그 문장을 보자마자 바로 교단임을 알아차렸다.

“네, 영감님. 이번에 아주 먼 곳으로 여정을 떠날 분들인데, 그 전에 우리 존 나센으로 순례를 오셨다고 합니다. 어때요. 괜찮지 않나요?”

“순례라고요? 이상하군요, 작은 도련님. 우리 존 나센에 그럴 일이 있었습니까?”

닐 영감의 의문에 카일은 몸소 해소해주기로 했다.

일단 그를 데리고서 교단에서 찾아온 사제들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사제들의 현 상태를 보여주며, 1년 전만 해도 처참했음을 상시시켜주었다.

“지금은 티가 안 나지만, 여기 이분들 진짜 심각했어요.”

“작은 도련님께서 그리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로 심했나 봅니다.”

존 나센에서 단련 부분으로 가장 유한 반응을 보이던 게 카일이다.

그 카일마저 너무 심각했다, 라고 할 수준이었다니.

이야기를 들은 닐 영감이 아이고, 하고 탄식까지 흘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보세요. 영감님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카일의 물음에 닐 영감이 흐음, 하고 사제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1년 전만 해도 계단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사람들이다.

걷기만 해도 헉헉거리며 뛰는 건 상상도 못 했다는 이들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은 건강함이 충분하다 못 해 넘치는 상태가 되었다.

“일단, 우리 영지의 어린 애들 정도는 되는군요.”

상황 모르는 누군가 듣는다면 굉장히 무례한 언사일 수도 있다.

본인들의 어린 애들에 비유를 한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하지만 존 나센의 어린 아이들이 누구인가.

함성을 지르며 맨손으로 몬스터를 찢어버리는 작은 괴물들이다.

제국 쪽 기사와도 능히 싸울 수 있는 유의미한 전력이다.

“오, 평가가 꽤나 후하네요.”

“아직은 보완해야 할 곳이 좀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1년도 채 안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이에 기울인 노력하며, 본인 스스로와 싸워 이긴 의지하며. 마땅히 칭찬 받을 만합니다.”

존 나센의 직계는 아니지만, 그 직계와 연이 많은 닐 영감이다.

그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왔다면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으로 봐도 무방하다.

닐 영감의 평가에 카일이 웃으면서 성녀를 향해 살짝 눈웃음을 짓는다.

이 정도면 가주를 만나도 꽤나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뜻.

덕분에 내심 긴장하고 있던 성녀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엘가는 ‘나중에는 우리 기사 분들 한 번 데려올까?’ 생각도 했다.

생각해보니 저런 식으로 이쪽 사람들의 우호도를 끌어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는 사이 일행들은 경계를 지나 마침내 진짜 북쪽에 들어서게 되었다.

“저번하고 왔을 때는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그렇죠? 사실 겨울이 다가오면 여기 분들도 생활 패턴이 좀 달라져요.”

“아… 확실히, 날이 워낙 추워서 그런 건가요?”

엘가가 그리 묻자 카일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한다.

덕분에 예? 하고 엘가의 표정이 이상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춥긴 하죠. 엄청 춥죠. 그래서 더 많이들 활동한답니다.”

“어… 엄청 추운데도 그런다고요?”

“네. 아마 지금이면… 음, 딱 빙해氷海 로 나아가서 수영들을 하고 있겠네요.”

너무 춥고 너무 험해서 제국 사람들은 금지라고 부를 정도의 장소, 빙해.

하지만 존 나센 사람들에겐 그보다 더 완벽한 조건의 수영장이 없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얼어 죽는다. 그래서 움직이면 더 많은 과부하를 받는다!

“처음 거기서 수영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아하하! 저도 기억납니다, 작은 도련님. 그 때 수영을 하라는 남작님의 말씀에 기겁을 하고선 여기에서 어떻게 수영을 하냐고 하셨죠.”

“윽.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어요?”

“당연하지요. 그리고 다음도 기억합니다. 도련님께서 작은 도련님을 안고 같이 들어가셨죠.”

“그 때 얼마나 놀랐는지 영감님은 모를걸요. 형님이 집어던지는 줄 알았다고요.”

마치 너무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카일과 닐 영감.

한편, 그 뒤에서는 네 명의 여인들이 긴장한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죠? 아니죠, 카일?’

‘이거 불안한데. 정말 수영해야 하나?’

‘나도 그런 곳에서 수영은 좀 자신이 없는데.’

‘이,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이라도 배울 걸 그랬나요?!’

희미한 불안감에 점점 말이 없어지는 여인들.

그보다 더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교단의 사제들이었다.

‘신이시여. 부디 우리들을 살피소서.’

‘이것은 얼마나 커다랗고 힘겨운 시련입니까.’

다시 한 번 신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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