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다녀와요. 특히 카일. 우리 막내는 조심하고.”
“에? 어머니, 저요?”
“그래. 막내가 카일, 너 외에 더 있니? 막내는 항상 걱정이구나.”
마리아 남작 부인의 그 말에 카일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 했다.
지금 이 일행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는 이들이 누구인가.
다름 아닌 리어와 레아다. 남작 부인의 아들과 딸이다.
거대한 대양을 넘어 누구도 닿은 적이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건데.
그곳에서 어떤 이들을 만나고, 그들이 호의적일지 적대적일지 모르는데.
남작 부인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카일만 걱정하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이 맞다, 막내야. 이 형은 네가 항상 걱정이구나.”
“카일. 혹시 또 어디 아프지 않게 운동 열심히 해. 우리 올케들이 감시 잘 좀 해줘요. 만약 군것질 늘어나거나, 게을러지면 얼른 어머니한테 알려드리고요!”
아니, 저기요. 형님? 그리고 누님?
지금 당신들을 더 걱정하는 게 맞는 상황이라니까요!
저는 그냥 신년하례식에 참가하고, 이후 황실과 대공가, 교단을 방문한 후에.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가서 시간 좀 보내면 개학인 게 전부인데?
형님과 누님처럼 몇 달의 항해가 걸리는 엄청난 거리를 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혹시, 나도 같이 가야 하나? 그렇게 알고 계시는 거 아니야?’
오죽했으면 카일이 은근슬쩍 존 나센 남작한테 묻기까지 했다.
리어와 레아, 자신의 형과 누나가 가는 길에 본인도 동행하냐고.
그에 돌아온 남작의 대답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것이었다.
“막내, 넌 가는 동안 못 할 단련을 미리 안 하지 않았느냐.”
“그렇죠?”
“그런데 어디를 간다는 거냐. 남아서 단련이나 하거라.”
운동 미리 했다고 하면 따라가도 된다고 했을 기세다.
아무튼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자신은 그냥 있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다.
걱정을 받을 쪽은 리어와 레아이지 자신이 될 수가 없었다!
“에구, 우리 막내. 아장아장 걷던 게 엊그제 같은데.”
“….”
하지만 남작 부인은 너무나 아련한 얼굴로 카일을 꼭 안아줄 뿐이었다.
“항상 조심하렴. 몸 관리는 하루라도 안 하면 안 돼요.”
“…네, 명심할게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여기서 뭐라고 해봤자 딱히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해서 그냥 얌전히 품에 안긴 채 잘 하겠다, 열심히 하겠다 대답만 한다.
카일의 대답을 들은 남작 부인은 가벼운 미소를 짓곤 막내아들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가장 앞쪽에 서있던 존 나센 남작을 향해 말했다.
“그래. 당신도 잘 다녀오시고요. 리어랑 레아, 너희 둘도 고생 좀 하렴.”
“저와 누이가 고생이라고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가서 멋진 기구들 싸들고 올 테니까!”
이쯤 되면 카일은 물론이고 티샤와 엘가, 그리고 성녀조차도 헛갈릴 지경이다.
부탁한 운동 기구를 무슨 엎어지면 코 닿을 곳으로 가지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 대단한 기술력으로 만든 배를 타고도 몇 달은 걸렸다는 거리인데.
거기를 무슨 앞동네 마실 나가는 것처럼 ‘잘 다녀오렴.’ 이라고 하고 끝이다.
오히려 카일을 대하는 게 더 먼 곳으로 가는 자식을 마중하는 느낌이었다.
“어머님도 같이 가시면 좋을 텐데요. 신년하례식에.”
그나마 가장 존 나센에 적응이 빠른 황녀가 그 부분을 언급했다.
어차피 남작도 가는데, 그 반려도 같이 가면 좋지 않겠냐고.
하지만 남작 부인은 마음만이라도 고맙다며 손을 내저었다.
“바깥양반도 나가고, 거기에 자식들도 전부 나가서. 한 명 정도는 집에 남아있어야죠.”
귀족가 부인들이 그저 단순한 여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바깥의 일을 가주가 맡는다면 가문 안의 일은 마땅히 그 여인이….
“이번 기회에 혹시나 손 봐야 할 기구가 있는지 점검 좀 하고, 또 남작령 사람들의 단련 모습도 지켜보면서 조금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봐야 해요. 저번에 동쪽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 신나서, 자리를 너무 비운 게 미안하기도 했고요.”
“아.”
역시, 평범한 귀족 가문의 안주인과는 무언가 다른 존 나센의 안주인이었다.
*
“아버지. 그냥 먼저 뛰어가면 안 될까요?”
“참거라, 레아. 이 아비도 참고 있지 않니.”
“하지만 몸이 너무 찌뿌둥한 걸요.”
으으! 하고 기지개를 켜는 레아.
그 모습에 눈치를 보던 티샤가 조심스레 사과를 건넨다.
“저, 죄송해요. 괜히 저희 때문에….”
아마도 자신들 때문에 이들이 최대한 속도를 늦추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였다.
“왜 사과를 합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뒤에서 나타난 리어가 그런 티샤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속도를 이전만큼 내지 못 하는 건 맞지만, 대신 다른 방법으로 과부하를 주니 괜찮습니다.”
리어의 양 다리에는 거의 그의 팔뚝만한 사대가 달려있었다.
당연히 레아도, 그리고 존 나센 남작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고 말이다.
누가 보면 포도나무에 포도라도 달린 것 같다고 할 듯 했다.
“네, 맞아요. 올케. 그리고 이미 여러분들은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해요. 제가 찌뿌둥하다고 하는 건 그냥 습관적인 투덜거림이니까 잊어주면 좋겠네요!”
그 말 그대로, 현재 일행들은 원래 이용하는 게 맞는 이동 마법진에 올라타지 않았다.
신년하례식에 딱 맞춰갈 수 있도록 이동 일정을 짠 존 나센 남작.
그의 계획에 본인들 또한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었다.
“아! 혹시 올케들도 이거 차고 싶으면 얼른 말하고요! 배낭에 많거든요!”
심지어 어깨에는 예비 사대까지 꽉꽉 채워왔다.
가끔 사대를 찬 걸 잊고서 험하게 움직여서 터지는 일도 있다던가.
그를 대비한 예비 물품이라는데, 덕분에 티샤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저 무거운 사대를 두른 상태에서 험하게 움직이는 건데요…!’
본인도 사대를 한 번 둘러본 적이 있었다.
물론 저들이 찬 것처럼 자비 없이 모래를 담지도, 저렇게 크지도 않았다.
그냥 적당하게 조금 더 힘이 들도록 하려는 목적이 전부였을 뿐.
“음, 그러면 나 도전.”
와중에 또 명예 존 나센 아니랄까 냉큼 수락하는 황녀였다.
그러자 레아가 ‘역시 황녀님! 역시 존 나센 며느리!’ 하면서 박수를 쳐준다.
문제는 거기서 또 경쟁심이 생겼는지 엘가도 참전했다는 거다.
“…아니, 여러분. 무리하지 말아요.”
덕분에 카일만 속이 타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존 나센 남작도, 레아도, 그리고 리어조차도 말릴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권하면 권했지 걱정스럽다며 제지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괜찮아요! 흡! 이 정도는 해야죠! 그래야 카일과 결혼할 여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강조 안 해도 어차피 엘가님이나 다른 모든… 하아.”
말린다고 해서 더 들을 것 같지도 않다.
그저 미래의 시아버님, 미래의 아주버님, 그리고 미래의 형님까지.
셋이 바라보고 있는데 점수를 따려고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성녀님.”
“네?”
“내려놓으세요. 성녀님은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에요.”
“아니에요, 카일 형제님! 저도 할 수 있어요!”
“단련을 막고 싶진 않지만, 몸 상태는 항상 냉정하게 봐야 해요. 얼마 동안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몸이 확 퍼져서 사대를 벗어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겁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과하게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서, 향후 몸에 어떤 영향을 줄지.
면밀하게 파악하고 예측한 후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녀님이 엄청 노력하신 거 알죠. 아는데, 아버지나 형님, 그리고 누님이 준비한 사대가 정말 만만한 게 아니라서요. 나중에요. 나중에.”
황녀야 뭐 제국 10강이니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고.
엘가도 어릴 적부터 가문 기사들에게 체계적으로 단련을 받아왔다.
하지만 성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 상태에서 혹 뛰다가 발목이라도 다치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다.
“그래도….”
“괜찮아요, 성녀님. 저도 안 하고 있는 걸요.”
‘혼자’ 만 하지 않는 건 누구든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 하지 않는다면.
거기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우리 둘은 나중에 해봐요. 저거 보세요, 딱 봐도 엄청 힘들어 보이는데.”
티샤의 말에 성녀가 아아, 하고 탄식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제로, 기세 좋게 도전했던 엘가는 벌써 힘겨워하고 있었다.
“흐이익!”
“…와, 이거 좀 무거운데.”
존 나센 사대는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것임을.
엘가와 황녀는 이번 기회에 아주 제대로 알게 되었다.
*
제국의 중심, 황실의 안마당, 거대한 심장.
그 표현대로 항상 역동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제도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얼마 전부터는 그 기운이 훨씬 진해졌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신년하례식이 바로 그 이유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뒤로 보내며 다가오는 한 해를 맞이하는.
누군가의 고생에 대한 위로를 건네고 누군가의 미래를 응원하는 때다.
신년하례식의 참석에 공식적으로 제한은 없다.
귀족이라면 누구든, 본인이 원한다면 신분만 확실히 밝히면 된다.
물론 워낙 찾아오는 이들이 너무나 거대해서 눈치를 볼 뿐이지만.
“한 치의 부족함도 없어야 한다.”
이번 신년하례식 주관을 맡은 내무성과 궁내성은 그야말로 총력전 중이었다.
원래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하나같이 제국 정계의 거두들이라 긴장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 했던 이들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존 나센 남작 신년하례식 참가 희망 -
오죽하면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각 부의 장관들에게 비상 소집령이 떨어졌을까.
그리곤 대체 이게 어떤 의도에서 이러는 건지 알아내야 한다는 주제로.
거의 한 나절에 가까운 장관급 회의까지 진행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해보아도 이렇다 할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제발 이번에는 반파 사건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