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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95화 (295/318)

어쩌지? 어쩌지? 진짜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해? 모르겠어. 정말 어떻게 하냐고!

그 좋아하는 검술 훈련조차, 오늘만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부여잡은 채 끙끙거릴 뿐이었다.

“넬. 그, 이번에 새로운 깨달음을 좀 얻은 것 같아서요. 내일 대련을 좀 청하고 싶은데.”

“혹시 내일 시간이 되신다면, 저와 함께 영지 경영에 대해서 더 알아보지 않으시렵니까?”

이안, 그리고 레토. 마치 짠 것처럼 시간차를 두고 다가온 두 남자.

심지어 동시에 내일 약속을 잡고 싶다는 의사까지 보내왔다.

한쪽을 도저히 어떻게 미룰 수도 없다,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아무리 넬이라도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기에, 어쩔 줄을 몰랐다.

여태까지는 어떻게 둘의 사이를 잘 조율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두 남자는 이제 은근히 선택을 해달라고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왜들 자꾸 이러시는 거죠?! 제 입장은 생각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언젠가 귀족 자제들과 영애들이 모였던 파티에서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대단한 두 남자 옆에 끼어 있어서 좋을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두 남자가 선택을 해달라고 종용할 때 굉장히 난감해질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얼른 하나를 밀어내고 하나를 택하라고 말이다.

당시엔 그냥 질투에 눈이 먼 영애들의 말이라고만 여겼었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니 엘가가 ‘헛소리!’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그냥 둘 다 가지면 되는데 뭘 고민하냐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니었어….’

둘 다 가지면 된다는 그 말은, 엘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공가의 후계자다. 후일 제국에 단 셋뿐인 대공이 될 여인이다.

당연히 그 권세는 황제 다음으로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맞게,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반려를 여럿 둘 수도 있다.

하지만 넬은 아니다. 그녀의 가문은 이제 겨우 회복을 시작한 곳에 불과하다.

설령 그 전이라고 해도 넬의 가문은 기껏해야 남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일개 남작 가문에서 반려를 여럿이나 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것도 한 명은 차기 제국 10강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굉장한 실력자.

다른 한 명은 차기 리토리오 대공이 신임하는 차기 가신단의 일원이다.

둘 모두 아직이다뿐이지 조만간 중앙 정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될 터.

그에 반해 넬 자신은 남작 가문의 영애에 불과하다.

작위 귀족이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남작이다. 그 이상은 불가하다.

황실 기사단에서 경험도 해보고, 황제의 관심도 받았지만 그뿐.

아주 잘 해봐야 자작으로의 승작이 전부일 것이다.

‘남작가는 물론이고 자작 가문의 가주가 반려를 여럿 두었다는 전례는 없어!’

못해도 백작 가문은 되어야 가능한 일, 그것도 제국백은 되어야 한다.

본격적으로 반려를 여럿 두는 건 후작 가문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결국 엘가의 응원은 본인의 기준에서 바라본 그녀의 실수였다.

다만 넬은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뭐라고 할 생각이 없었다.

엘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이었으니까.

둘 모두에게 마음이 있다면 둘 다 잡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전례가 없다뿐이지 제국법으로 안 된다! 하는 것도 아닌데.

거기에 겁을 먹어서 괜히 놓치는 건 너무 아쉽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엘가 공녀님께서는 나랑 반대 되시는 경우인데.’

차기 리토리오 대공임에도, 여럿의 반려를 두는 것이 아닌.

반대로 누군가의 여러 반려 중 하나가 되겠다는 게 엘가의 결심이었다.

그 사실에 세간의 모두가 놀라움을 넘어서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냐고 말도 많았다.

그나마 엘가였기에 그 정도로 말이 끝난 수준이었다.

만약 후작가에서 그리 했다면 더 많은 구설수에 올랐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엘가는, 그리고 리토리오 대공가는 그런 말들에 흔들리지 않았다.

더불어서 얼마 후 돌아온 존 나센의 두 남매가 그 소리들을 일거에 없애버렸다.

한 번 생각해봐라. 저 멀리, 몇 달은 걸리는 또 다른 대륙에 맨몸으로 건너가서.

돌아올 때 집채 만한 거대한 강철덩어리를 두 개나 짊어지고 왔다.

이전의 일들을 볼 이유도 없다. 그냥 그것만으로 끝이다.

그런 가문과 혈연을 맺는 거다. 할 수만 있다면 정실이 아니어도 좋다.

‘엘가 공녀님은 마음이 놓이시겠구나. 카일 님께서 누구를 얼마나 들여도 되는, 지금으로선 대공가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곳의 자제 분이시니까 말이야.’

분명 존 나센 가문은 자신과 같은 남작가.

하지만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실은 그 이상으로 봐야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승작에 관한 논의도 몇 번 있었다던가.

“하아아….”

자신이 조금만 더 대단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나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둘 모두를….

‘어? 아, 아닙니다! 그런! 어떻게 둘을 전부 다! 그러면 안 됩니다!’

옆에 여인을 자그마치 넷이나 거느린 카일이 있어서.

그리고 자신 옆에 이안과 레토가 동시에 붙어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 솔직히 그건 좀 말이 안 된다.

부부의 사랑이란 원래 한 명에게만 주고, 한 명에게만 받는 것이다.

때문에 제국민들 사이에 종종 바람이 난 남녀에 대한 처벌까지 있지 않은가!

도리도리!-

열심히 고개를 내저으며 못된 생각을 쫓아내는 넬.

그리고 얼른 둘 중 한 사람을 택하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대신했다.

“…넬? 뭐하고 있나요?”

이때, 다음 학년 준비도 할 겸 잠시 아카데미에 들른 티샤가 넬을 발견했다.

그녀를 확인한 넬은 아아! 하고 반갑다는 듯이 바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갑자기 왜 이러나, 하고 티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넬을 쳐다보는 찰나.

“티샤 님. 조언을 좀 구하고 싶습니다!”

“조언이요? 어떤 건데요?”

혹시 이제 와서 주술에 관심이 생겼을 리는 없고.

무슨 조언을 듣고 싶어서 이러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안 님과 레토 님. 두 분 사이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에 대한 조언을 좀 듣고 싶습니다. 티샤 님도 연애 중이시지 않습니까!”

“…저한테요?”

살짝 어이가 없어진 티샤였다.

본인도 한 남자를 두고 여럿이나 나눠먹기로 한 사람인데.

다가와선 한다는 말이 대뜸 연애에 대한 조언이라니.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말이죠.’

난처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지만 일단 티샤는 넬의 고민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티샤는 현재 넬의 진짜 문제점을 파악해냈다.

“…넬. 뭐 하나 물어볼게요.”

“네, 티샤 님.”

“지금 걱정하는 게, 세간의 시선인가요? 아니면 당신과 이안, 그리고 레토 씨인가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세간의 시선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그러면 두 사람이 중요한 거잖아요. 물어봐요. 가서, 나는 이래서 고민인데, 당신들은 어떠냐고. 나는 둘 중 누구도 고를 수가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계속 마음을 붙잡을 수 있냐고.”

티샤의 대답에 넬이 크게 당황해서는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이냐고, 큰 실례가 아니냐고.

“실례이긴 하죠. 카일도 그랬었고. 하지만, 그래야 답을 내놓을 수 있어요.”

“어떤….”

“지금의 저와 다른 분들 같이. 포기를 하거나, 아니면 너무 좋아해서, 포기할 수 없어서. 그래서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또 때론 화합하면서 함께 자리에 있는 것으로요.”

그러자 넬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그게 안 된다고 답한다.

자신은 남작가의 사람이다. 반려로 여럿을 들인 전례가 없는 곳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둘을 연인으로서 대할 수 있느냐고.

넬 나름 고민이 되는 부분을 다시 한 번 털어놓았다.

“그럼 포기할 거예요?”

“…예?”

“안 되니까, 불가능하니까. 이안이 되었든 레토 씨가 되었든 포기할 거냐고요.”

“그, 그래야만 한다면….”

“글쎄요. 차라리 그럴 바에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노력을 하는 건 어때요?”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노력을 하라니.

넬이 이해를 못 했다는 표정을 짓자 티샤가 입가에 미소를 그린다.

“당신이 제국의 백작,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로 올라가면 되잖아요.”

“제가, 제가 어떻게! 저는 그저 검술 좀 잘 다루는 일개 기사 지망생에….”

“그렇게 속단하지 말아요. 고작 그 정도였다면 카일이. 그리고 카일의 누나 되시는 분께서. 더 나아가 카일의 고향 사람들이. 넬, 당신을 좋게 봤을까요? 전 아니라고 보는데.”

티샤는 넬의 수준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검술에 문외한이기에.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카일도, 레아도, 그리고 존 나센의 사람들 모두가.

넬이 단련을 하며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볼 때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사람들과 몇 번이나 만나서 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미소를 지어준다는 건, 그만큼의 합당한 가치가 있다는 것.

흘린 땀방울과 그동안 보낸 노력의 시간이 헛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

“아직 시간은 많아요, 넬. 그러니까 당장 그 걱정을 할 바에 차라리 당신의 미래를 더 크고, 더 멋지게 설계하세요. 혹시 모르잖아요? 카일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잘난 이안과 레토 씨. 이 둘을 당신이 아앙! 하고 한 번에 물 수 있을지!”

“그런… 정말로 제가 그럴 수….”

“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당신을 믿어 봐요. 혹 당신 스스로를 못 믿겠다면 저를 믿어요. 제가 또 마녀라고 불렸잖아요? 으으음! 이렇게 보니까 넬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네요!”

미래가 보인다, 티샤의 그 말에 넬이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거린다.

“어떤… 미래입니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말투에, 티샤가 까르르 웃곤 답한다.

“두 남자의 손을 모두 붙잡고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넬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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