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봉의 재질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 일단 무게가 너무 과하게 무겁습니다.”
“이걸 대체 어떻게 휘두른단 말입니까? 이리 무겁다면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고선 다섯 번도 휘두르지 못할 겁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무기로서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세가로 돌아온 이후 수십, 수백의 장인들을 만나보았다.
저마다 나이도, 출신도, 활동하는 곳도 달랐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내놓은 답변은 거의 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겪어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재질. 무기로 쓰기엔 너무 과한 무게.’
무림맹 군사, 제갈황의 여식. 제갈소연은 눈앞에 놓인 봉을 만지작거렸다.
몇 달 전, 이 정체불명의 물건으로 인해 목숨을 구명 받았다.
하마터면 함정에 빠져 아버지는 물론이요 맹 전체에 누를 끼칠뻔 했다.
‘그도 아니면 자결을 했다든가.’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다음 일이 충격적이었다.
하늘을 가르며 푸른빛의 섬광을 가득 머금은 채, 적들을 일거에 쓸어버린 일격.
맹에서 최고로 쳐주는 이들에게서도 쉬이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일격으로 사파에서 보낸 자들은 모조리 쓰러졌다.
덕분에 제갈소연과 휘하 무사들은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맹에서 도착한 원군들을 데리고 그들을 모조리 생포해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을 구명해준 이의 정체를.
하다못해 그 은인이 사용한 초식,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알고 싶었다.
“푸른 섬광, 하늘을 가르는 일격이라. 으음… 저로서는 처음 듣는 초식이군요.”
“한 번의 수로 절정 고수들을 제압했습니다. 이건 못 해도 초절정 급의 고수입니다.”
“검법이라면 모르겠는데 봉이라니… 소림에 한 번 물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제갈소연의 뜻도 그러했다. 봉이라면 다루는 곳이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은, 예로부터 봉을 다루는 고승들이 많았던.
현재에도 맹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닌 소림이라 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제갈 소저. 소승으로선 뭐라 해줄 말이 없군요.”
그러나 그들 또한 이 봉에 대해서도, 그리고 초식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오히려 하늘에서 떨어진 봉이라고 하니 그들이 더 신기해 할 정도였다.
그 사이 무림에선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화가 생겨났다.
사파의 술수로 자칫 정마 대전으로 번질 뻔한 맹과 마교가 극적으로 화해한 것.
둘 사이에 사파가 끼어들어 이간책을 썼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던 거다.
서로 서로를 적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싸우는 것은 자신들의 선택.
다른 누군가에 의해 등이 떠밀어져 싸우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둘이 싸우고 나면 분명 사파가 어부지리를 노릴 게 분명한데.
그 상황에서 화해 대신 전쟁을 택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덤으로, 맹과 마교 사이에서 온갖 술수를 벌이던 사파도.
결국에는 전쟁을 반대하던 내부 반목으로 전복이 되어 과거로 돌아갔다.
서로 물고 뜯고, 아주 처참히 싸우는 그런 과거로 말이다.
‘덕분에 이렇게 이 봉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다닐 여유도 생긴 거고.’
하아. 제갈소연은 옆에 놓인 봉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받은 은혜는, 당한 원수는 반드시 갚는 게 마땅한 강호인으로서의 도리다.
그 중 제갈소연은 원수는 용서하고 넘어갈 수는 있다고 해도.
은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고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여인.
아니, 한 명의 당당한 강호인이라 할 수 있었다.
“소승이 보기엔 과거 마교가 기세를 떨칠 때마다 나서주던 신승은 아니실까 합니다. 이 정도 무게의 봉을 깃털처럼 다루어 하늘을 찢으려면, 그 분밖에 없지요.”
“소저. 그 봉, 권왕께서 관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대체 어떤 물건인지, 그리고 거기에 남아있는 내공을 한 번 훑어본다면 상대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시더군요.”
이외에도 여러 소식들이 닿았지만, 딱히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들.
더 이상은 알아볼 수 없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소연아. 맹에서 말하길 서역으로 가면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구나.”
맹의 군사 자리를 맡고 있는 제갈황이 그리 말했다.
그러며 이번에 맹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동쪽 초원으로 표국을 보내게 되었다고.
혹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정보를 얻어 더 넓은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제갈소연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선한 말이었기에 바로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거기에 마침 새로운 인물이 제갈소연 옆으로 등장했다.
“제갈 소저. 누가 되지 않는다면, 이 노구가 동행하고 싶소만.”
“거, 검선께서 말씀이십니까?!”
정파 소속임에도 딱히 맹에 애정을 지니지 않았던 노장.
하지만 일단 한 번 나서면 사파는 물론이고 마교까지도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존재.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화경의 끝자락에 위치했다고 했던가.
그런 인물, ‘검선’ 이 동행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었다.
제갈소연은 물론이고 맹까지도 의문을 제기했다.
세상사에 아무 관심도 두지 않던 분이 갑자기 왜 이러시냐고.
이리 갑작스레 움직이시면 기껏 맺어둔 휴전이 깨질 수도 있다고.
그러자 검선은 오히려 자신이 공식적으로 자리를 비우니 된 거 아니냐고 답했다.
오히려 이 노구가 간다고 하니 내 빈 자리가 무서워서 이러는 거냐고도 했다.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겠지. 다들 은연중에 검선 어르신께 기대를 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맹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위기에 처하면 결국 나타나고 마는.
정까지는 끝내 끊어내지 못해서 투덜거리며 전투에 임했었던 검선이었다.
그런 검선이 자리를 떠나면 맹 입장에선 최고의 검을 잃는 것이다.
아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기약 없는 여정일 수도 있다.
와중에 마교가 정마대전을 일으킨다면 퍽 난처해질 가능성도 있다.
“제갈 소저. 검선께 어떻게 말씀 좀 잘 좀 해주시오!”
“검선께서 떠나시면 맹에는 큰 손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니, 저 분이 제가 난처하다고 가지 않으실 분인가요?
그리고 맹에는 검선 외에도 수많은 고수들이 있는데.
그 분들의 마음이 상하면 어쩌려고 이리 대놓고 붙잡는 건지!
제갈소연은 그 말들을 전부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맹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보니 함부로 그럴 수가 없는 게 현실.
해서 검선에게 일단 왜 동행을 하려고 하는지,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그녀의 물음에 검선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파의 고수들을 일격에 무너트렸다는 그 봉과 주인에 대해 궁금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서역으로 간다는데 서역 또한 알고 싶다.
나이를 먹으니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으면 미련조차 두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조그마한 미련 정도는 남겨두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그 대답은 마치 맹이 자신을 붙잡을 걸 알고 있다는 듯 한 것이었다.
미련을 두지 않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정말로 다 버리는, 완전히 속세를 떠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맹 입장에서는 괜히 검선을 말렸다가 더 큰 걸 잃을 수도 있다는 뜻.
결국 맹주는 제갈소연과 표국의 서역 행에 검선의 동행을 결정했다.
제갈황 또한 검선이 동행한다고 하니 내색은 하지 않지만 다행이라는 표정.
덕분에 제갈소연은 아무 걱정도 없이 맹을 떠날 수 있었다.
서쪽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앞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으면 본인들의 맹 직속 표국임을 알렸다.
거기에 놀란 자들은 바로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
혹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는, 극히 안타까운 자들이 있다면.
맹에서 붙여준 무사들이 그들을 앞에서 치워버렸다.
만약에 정말 압도적인 강자가 나타난다면, 그 때는 검선이 나설 터.
“흐음. 이거, 이렇게나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은 처음 보는구려.”
마침내 경계에 다다르자 검선이 그리 중얼거렸다.
그 말에 제갈소연은 그렇군요, 하조 맞장구를 친 후 검선을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30대 후반이지만, 실상은 아흔을 넘어 백을 바라보고 있다던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그는 너무나 거대한 사람이다.
그런 인물과 함께, 설마 서역행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소저. 그 봉의 주인을 만나면, 어찌 하실 생각인가?”
“당연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이걸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 노구가 잠깐 볼 수 있겠나?”
제갈소연은 순순히 그 봉을 검선에게 내밀었다.
검선은 그걸 조심스레 받아들어선 한 번 들어보았다.
“으음. 무게가 과하게 있긴 하구려.”
무조건 가벼운 것이 좋은 건 절대 아니다.
적당한 무게는 힘에 비례하여 더 큰 힘을 내곤 하니까.
하지만 좋은 재료는 과하지 않은 무게로도 최고의 성능을 낸다.
그리고 그 재료로 만들어진 각종 보검, 보도, 그 외의 보물들은 적당한 무게를 지닌다.
당장 검선이 지닌 그의 검도 강도나 예기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가벼움이 있다.
“이것을 마음대로 다루며, 벼락과 같이 할 수 있는 고수라. 대체 어떤 인물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구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아마, 아주 먼 곳에서 지켜보시다가 도와주신 게 아닐까요.”
“세상을 관조하던 자가 세상사에 관여했다. 흐음, 그 고수가 소저의 일을 어지간히 안타까워한 모양이군. 이러니 더더욱 새로운 세상이 궁금해지는구려. 허허허허!”
이후로 제갈소연은 서쪽에 있던 여러 부족들을 만나게 되었다.
표국은 선물을 하고 정보를 샀으며, 검선은 새로운 기에 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제갈소연은, 봉을 내밀며 이게 무엇인지 아냐고 물어보았다.
처음 만난 부족들은 이게 뭐냐는 눈치였다.
그냥 쇠막대 같은데 뭐 그리 소중히 다루고 있냐고도 했다.
한데 그 이후, 점점 더 서쪽으로 이동해갈수록.
“어어!”
이상하게 이 봉을 알아보는 부족들이 조금씩 늘어갔다.
“용이시여!! 기어코 동쪽까지 그 영광스러운 가르침을!”
…갑자기 용이라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