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299화 (299/318)

겨울 방학이 끝났다. 아카데미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누구는 마지막 학년을 잘 보내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을 수 있고.

또 누구는 신입생을 벗어나 이제 처음으로 선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는, 부푼 기대와 떨리는 긴장감을 안고서.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학한 싱싱한 신입생이기도 할 터.

“…후우.”

한껏 숨을 한 번 들이마신 후, 데미안은 아카데미 정문을 넘어섰다.

마침내, 마침내 바로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지난 몇 년 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 같다.

원래도 그 명성이 자자하던 제국 아카데미.

와중에 요 근래 제국이 몸집을 엄청나게 불리면서 인재에 대한 충원도 중요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뽑았다가 행정 업무 차질이 빚어지면 큰일.

하여 중앙 정계 진출은 물론이고 그 중앙 정계와 연이라도 좀 두려면.

무조건 아카데미에 가는 게 이롭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단순히 제 가치를 증명하는 것만 아닌, 일종의 학연을 두라는 뜻으로.

학연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수한 곳의 연이라면 오히려 좋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아무 일 없이 졸업하는 건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니까.

‘다른 친구들은 죄다 떨어지고, 오로지 나만 붙었다.’

데미안이 속한 르세 자작가는 제국 동쪽에 위치한 평범한 귀족가.

그리 강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하게 약하지도 않은.

전형적인 제국의 지방 귀족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말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올라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지금의 데미안처럼, 그냥 귀족도 아니고 차기 자작이 될 작위 귀족으로서.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졸업까지 한다면.

여러 좋은 벗들과 선후배를 두고서 중앙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도 있다.

“우리 르세 자작가가 동쪽의 그저 그런 자작가로 남느냐. 아니면 비록 세력은 동쪽에 있어도 제국 곳곳에 벗을 둔 곳이 되느냐. 그것은 네 어깨에 달렸다. 데미안.”

아카데미로 출발하던 날,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채 말하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부모로서도, 그리고 가주로서도 좋은 사람이지만 그 이상은 하지 못 했다.

욕심은 있는데 그걸 이룩할 그 어떤 세력도 없으니 당연한 일.

자작은 부디 제 아들이, 가문의 후계자가 활로를 모색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데미안 또한 부디 자신이 그럴 수 있기를 희망했다.

자작위도 나쁘지 않지만, 이왕 귀족인 거 대단한 이들과도 조금은 얽혀보고 싶다.

그렇다고 너무 복잡하게는 말고. 적당하게 안부 인사 보내는 정도로.

“환영합니다, 신입생 여러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 제국 아카데미에….”

처음은 역시나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학장의 인사로 시작.

“먼저 아카데미의 위대한 후원자이신, 제국의 합법적인 지배자. 황제 폐하께….”

그 전에 먼저 황제에게 감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

열심히 해라. 그러면 그에 맞는 대가가 너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곳에선 작위가 높아도, 낮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당장 황실의 고귀하신 분들께서도 이곳 아카데미를 거쳐 갔다.

그 분들께서도 이렇다 할 특혜 따위는 받으신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라.

해서 누구는 제국의 행정을 책임지는 공무원으로서.

또 누구는 본가로 돌아가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귀족으로서.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 광명이 비출 날이 올 것이라고 말이다.

“아아. 그리고 신입생 환영회는….”

신입생 환영회. 이게 또 나름 중요한 행사다.

아카데미에 새로이 들어온 학생들에겐 교수들만큼 중요한 존재들이 바로 선배다.

그 선배들과 처음으로 만나 인사와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와중에 비슷한 지역, 혹은 비슷한 관심거리를 지녔으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귀족 사회에서 인맥은 그 어떤 칼보다도 날카로운 무기다.

운 좋게 후작가와 연이라도 닿는다면 정말 최고라 할 수 있다.

그걸 노리고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않은가!

할 말을 마친 학장은 신입생들의 학업 성취를 기대한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러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학생회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후배님들. 아카데미 입학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다들 고생이 참 많았겠어요. 선배로서 다 알죠. 힘들게 왔으니 다들 이곳 생활이 아쉽지 않게, 노력해서 원하는 걸 이루길 바랍니다.”

짝짝!-

박수 소리에 학생회장이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젓는다.

그리고 신입생 환영회에 대해서 설명을 조금 더 한 후.

다음으로 아카데미 내부에서의 활동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혹 신입생 여러분들 중 선배와의 친분을 쌓고 싶다면, 동아리 활동을 권장 드립니다. 단순히 인맥을 쌓는 것만이 아닌, 어쩌면 많은 도움과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데미안은 확실히 들어본 적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카데미 건립과 함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법 토론회’ 라던가.

‘검술 서클’ 같이 단순히 동아리의 틀을 벗어난 곳이 꽤 많다.

들어가는 것도 힘들고 안에 들어가서도 활동하는 게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꽤나 실력 좋은 선배들이 있다고 들었다.

데미안의 목표는 일단 그 두 동아리를 노려보는 것….

“학생회장님! 질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렵게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선배라고 불러주면 좋겠네요.”

“아, 넵! 선배님! 질문이 있습니다! 주술 동아리는 어떻게 가입하는 겁니까?”

주술, 이라는 말에 몇몇 귀족들이 당황한 눈빛을 한다.

마법에 밀려서 영 달가운 시선을 받지 못 하는 게 아닌가.

그런 것을 왜 아카데미에 와서 찾고 있는 것인지!

‘시대에 뒤떨어진 놈들.’

데미안은 그런 귀족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전원이 자신과 같은 지방 귀족 출신들로 보인다.

아무리 중앙 소식을 접하기 힘들다고 해도, 알 건 알아야지.

요즘 들어서 주술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이 생겼는데 말이다.

심지어 이번에 2학년이 된 한 여학생은 주술 연구 공로로 귀족 작위를 받았다.

그것도 황제에게 직접. 평민으로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 일이 일어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주술 이야기에 저런 반응이냐고.’

바로 저런 것들 때문에 시골 귀족이라고 사이좋게 무시를 받는 거다.

실제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정보에 민감하고, 또 세련되게 살려고 하는데.

꼭 저렇게 티를 내는 놈들이 설쳐대서는 그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주술 동아리라면… 아아. 주술 연구회를 말하는 모양이네요.”

“맞습니다!”

“으음, 벌써부터 겁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학생회장의 말에 신입생들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왜 그러지? 혹시 주술 동아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주술 동아리의 인기가 꽤나 높아서요. 거기에 동아리 신청자는 시험까지 치르고서 뽑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각 시험의 성적도 보고요.”

세상에. 그냥 간단한 면접만 보는 게 아니라고?

시험을 치르는 것도 충분히 부담인데 성적까지 확인한단다.

그 말은, 설령 시험에 통과해서 들어가도 성적이 별로면 방출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마법 토론회랑 검술 서클에서도 그런 건 없다고 들었는데?!’

데미안 또한 주술 동아리에 대해서 한 번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건들을 들으니 그 생각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차라리 마법 동아리나 검술 동아리 쪽에 들어가는 게 낫겠….’

라고 생각하던 찰나, 옆에서 건장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선배님! 저도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마지막 질문으로 받겠습니다. 뭐죠?”

“이번에 새로 신설된 단련 동아리는 어떻게 들어갑니까?”

…뭐? 무슨 동아리? 단련 동아리? 그건 또 뭔데.

데미안만 그런 게 아닌 듯 하다. 다른 신입생들도 ‘뭐야?’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단련 동아리라면 현재 2학년의 카일 존 나센 학생이 맡고 있습니다. 만, 거기도 주술 동아리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힘들 겁니다.”

“시험을 보는 겁니까?”

신입생의 질문에 학생회장이 고개를 내젓는다.

“시험은 치르지 않습니다. 대신 매일, 매일이 시험일 겁니다. 알아두세요. 카일 존 나센 학생은 여러분들이 하루 운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다 파악할 수 있다는 걸.”

뭔데 도대체, 그 동아리는 그런 걸 누가 하려고 하냐고.

존 나센에 대해서는 이미 몇 번이고 들어서 알고 있다.

현재 제국에서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고 하면 그곳을 꼽을 터.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아카데미에서 가깝게 지내고 싶은 건 또 별개다.

존 나센이 아주 혹독한 단련을 하게 하는 건 이제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대체 어떤 아카데미 학생이 아카데미에서 그런 고생을 하려고 할까!

“그리고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일단 동아리 고문으로 5황녀 저하께서 계시고, 리토리오 대공가의 엘가 학생과 성녀님도 그 동아리에 있습니다.”

“허억?!”

“거기에 제국 10강 분들께서 인정한 2학년의 이안도 있고, 얼마 전 황실 기사단에서….”

그 말을 들은 데미안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인원 구성이 조금. 아니, 좀 많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인데?

“참고로 검술 동아리를 희망하는 신입생은 반드시 단련 동아리에서 먼저 검증을 받아야 할 겁니다. 듣자하니 검술 동아리에서 먼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거기까지 들은 데미안은 바로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단련 동아리라고 했던가? 이거, 무조건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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