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온 손님들이니만큼 각별히 대하도록 해라, 태자.”
동쪽에서 온 이들을 전부 물린 후, 황제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
제국을 곤란케 하던 왕국 연합이나 각 섬의 독립 영주들도 아니고.
대놓고 제국 경영에 발을 걸던 유목 부족도 아니다.
찾아오자마자 극도의 예를 취하며 제국의 위세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손님으로서 얼마든지 대해줄 수 있는 일.
황제는 거기에 만족하여 황태자더러 직접 맡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일 존 나센. 그대가 나서서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라. 운이 좋다면 그들을 통해, 제국의 영향력이 저 동쪽 너머에까지 닿을 수도 있는 법이다.”
이 부분은 카일 또한 은근히 바라고 있던 거라 할 수 있었다.
현재 제갈소연이 가장 궁금해하고 또 바라고 있는 부분.
자신과 호위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신물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
더해서 그 일을 행한 은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일과 관련된 곳의 사람인 카일 자신이 나서는 게 좋다.
저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존 나센 남작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할 건 그 봉이 이쪽의 물건이 맞다는 증거다.
해서 카일은 황제에게 허락을 구한 후, 손님들을 데리고 아카데미로 향했다.
마침 제갈소연도 이쪽의 생활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궁금증은 교육 상황을 보여주는 게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다.
“대단하군요. 우리가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이런 거대한 교육 기관이라니.”
구파일방마다 각각의 문하생들을 위한 교육이야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국의 모든 이들을 끌어 모아 가르치는 건 없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 했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맹도, 마교도, 그리고 사파도.
이곳처럼 국가를 이룬 것이 아닌 그냥 하나의 단체가 아닌가.
그럼에도 제갈소연은 그 교육 상황에 대해서 굉장한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가… 현재 제가 관리하고 있는 곳이죠.”
실내 연무장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검선이 살짝 흥미가 동한 모습이었다.
무를 정제하고 힘을 쏟는 곳이라 하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을 터.
다만, 이곳 또한 철저하게 외공에만 집중한 것 같다.
이래서는 내부의 단련을 대체 어찌 한단 말인지.
검선은 속으로 그런 궁금증을 지닌 상태였다.
한편, 안쪽으로 나아간 카일은 자신이 쓰는 봉을 제갈소연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이것과 동일하지 않느냐.’ 라는 듯 한 번 흔들어주었다.
“똑같은 물건이군요. 소협의 말대로, 정말 똑같습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 가문에서 난 물건이라고.”
이제 남은 건 그 물건이 어떻게 거기까지 갔느냐,를 설명하는 건데.
그 부분은 카일 또한 아주 살짝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다음 이야기를 듣고 ‘아아! 그렇군요!’ 하고 수긍할까.
우리 아버지께서 이 봉을 슉! 하고 던지니 쾅! 하고 날아갔다! 라고 말이다.
다섯 살 난 꼬마 아이도 ‘에이. 거짓말.’ 하고 돌아설 수준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 이게 사실인데.’
아카데미를 한 번 돌아본 후 카일은 그 날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신년하례식, 바로 그 날. 어쩌다 보니 이상한 내기가 걸렸고.
그걸 증명하고자 자신의 아버지께서 들고 있던 봉을 던졌음을.
“…어. 자, 잠시. 잠시만요. 소협. 지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그쪽을 구했다는 그 물건. 제 아버지께서 그냥 던지신 겁니다.”
“여기서 말인가요? 혹시 우리가 지나쳐 온 평원에서 던졌다거나….”
“아닙니다. 바로 어제 계셨던 황궁에서 던지신 겁니다.”
카일이 재차 설명을 해도 제갈소연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그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설명을 해주는 카일이 보통 사람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거짓말을 할 인물은 아니다. 그래, 분명 그러할 진데.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봉을 던진 게 어떻게 강호까지 닿는다는 건지!
“믿지 못하시겠다면 증인들도 여럿 있습니다. 당장 어제 뵈었던 황태자 전하는 물론이고, 제가 알고 있는 대공 각하 분들도 기꺼이 증인이 되어주실 겁니다.”
“아… 그, 소협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기가….”
뭐,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보게.”
한데, 그런 상황에서 오직 검선만이 잔잔한 모습이었다.
그는 카일 앞으로 다가와서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혹시, 자네의 부친 되시는 이를 만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더 가셔서, 제 고향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런가.”
고개를 끄덕거린 검선은 제갈소연을 바라보았다.
“소저. 우리 다음 목적지는 정해진 것 같구려.”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저는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오? 그리고 나는 이 젊은이의 부친 되는 이에게 호기심이 생겼고. 똑같은 이유가 있으니 응당 갈 길이 정해진 게 아니겠소.”
검선의 말에 제갈소연은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기야, 이곳에 온 목적은 은인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다.
표국 사람들은 이곳에 남겨서 자신들의 일을 하게 두면 되고.
그러는 동안 자신은 그곳으로 가서 만남을 성사한 이후.
다시 돌아오면 일을 마무리한 표국 사람들과 함께 돌아가면 될 것이었다.
‘흠.’
검선을 바라보던 카일은 그 의견에 바로 수긍했다.
“원하신다면 그러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마침 이동 마법진도 있으니 넉넉잡고 사흘이면 다시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이동… 마법진… 이요?”
제갈소연이 두 눈을 껌뻑거리며 이해를 하지 못 한 듯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진법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음. 그, 소저가 있는 곳엔 도술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도술이라고 하면… 네. 있기는 합니다만, 주류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그와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됩니다. 아주 같지는 않지만, 얼추는요.”
차라리 보여주는 게 빠르겠다 싶어서, 카일은 강의실로 이동했다.
마침 마법 강의가 한창인 곳을 보여주니 제갈소연의 반응이 굉장히 재밌었다.
“제가 지금… 뭐, 뭘 보고 있는 걸까요?”
지금 보고 있는 마법은 제국 입장에선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무협 세계관에서 온 이들에겐 허공에서 불이 솟구치고, 물이 흐르며.
번개가 번뜩이고 그 외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이런 거…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허허. 이거 원. 등선을 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려. 이런 세상이 있는데, 무슨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
검선조차도 꽤나 흥미가 동한다는 듯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카일은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이쪽에선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불과한데.
상대방의 반응이 굉장히 극적이면, 말 그대로 리액션이 혜자라면.
괜히 보여주는 쪽에서 더 즐겁고 또 더 보여주고 싶은 그런 이유로 말이다.
*
한편, 카일과 동쪽의 손님들이 있는 곳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곳.
“불길한데요.”
“불길하죠.”
혹 눈치를 챌까 최대한 웅크린 채, 카일과 그 일행들을 추적하고 있는 네 여자.
“비상! 이상한 여자가 카일 옆에 붙었다!”
황녀의 갑작스럽고도 놀라운 경고에 바로 여자들이 모였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의외로 성녀였는데, 그녀답지 않게 조급한 모습이었다.
“카일 형제님께 또 자매님이 생겼다고요!?”
“응. 성녀님. 동쪽에서 온 이상한 사람인데, 카일이랑 같이 다니고 있어.”
그러자 성녀는 ‘이 무슨 가혹한 시련이 있단 말입니까!’ 하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당장도 티샤와 엘가, 황녀 때문에 굉장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차라리 성녀 자리에 있을 때가 좀 더 여유로웠을 정도의, 그런 시간인데!
왜 갑자기 또 다른 자매님이 생겨나서 더 큰 시련을 주시려는 걸까!
“소식 듣고 바로 왔어요. 그게 정말 사실인가요?!”
도서관에 있다가 바로 후다닥 달려온 티샤하며.
“카일이 설마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죠?! 우리 이외엔 더 없기로 했잖아요!”
신뢰와 믿음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리토리오 대공가의 후계자로서.
이번 일이 사실이라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반응의 엘가까지.
현재 네 여자들은 그야말로 비상사태를 선언한 수준이었다.
“일단 가보죠. 아직 아카데미에 있다고 했잖아요?”
“네. 가 봐요. 가서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낫겠어요.”
그렇게 해서, 이 넷이 현재 여기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카일이 딱히 저 검은 머리 여자에게 호감을 비추지 않는다는 것.
더불어서 상대편 역시 카일보다는 카일의 가문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 다행이네요. 저 검은 머리 자매님은 카일 형제님께….”
“방심하면 안 돼, 성녀님. 그러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이번만큼은 황녀님 말씀이 맞아요. 방심하면 안 돼요!”
황녀와 엘가의 진심 어린 조언에 성녀는 ‘아, 네!’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카일이 갑자기 미소를 짓자 티샤가 ‘히익!’ 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제가,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맞게 보신 것 같아요, 티샤 자매님. 카일 형제님 웃으시는데요?”
“웃는다고요?!”
“뭐야?!”
카일 딴에는 그냥 손님들 반응이 굉장히 재미있어서 웃은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여자들로서는 더더욱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가죠.”
결국 이렇게 보고만 있는 건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움직이자고 가장 먼저 제안한 건 황녀. 가 아닌, 티샤였다.
“티샤 자매님?”
“정말로 가려고요, 티샤?”
“네. 가야죠. 가서 알려줘야죠. 카일한테는 다른 곳에 한눈 팔지 말라는 뜻으로. 그리고 저 손님한테는 손님이면 손님으로서 머물다 가라고 말이죠.”
그리 말하는 마녀의 눈에선 요사스러운 기운이 슬슬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