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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307화 (307/318)

마리아 남작 부인과 레아가 한껏 기대를 하며 해맑게 웃고 있고.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하고 겁을 잔뜩 집어먹은 제갈소연이 ‘괜찮다.’ 하고 연신 다독거려주는 리어의 품에서 조금씩 진정이 되는 동안.

“후우.”

검선은 극도로 상쾌하다는 듯 긴 호흡을 내뱉었다.

그 맞은편에 선 존 나센 남작 역시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두 남자가 마주하고 선 이곳은, 북쪽의 황량한 너른 대지.

존 나센 남작가의 성에서 북쪽으로 말을 한 시간 가까이 달려야 할 거리다.

그런 먼 곳을, 이 두 남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닿은 것이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번씩 주고받았고 말이다.

‘이것이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내가 꿈꾸던 상대. 맹도, 마교도, 사파도 아닌. 바로 이 머나먼 서역. 그것도 그 끝자락에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얼마 만인가. 이렇게 가슴 뛰는 상대를 만난 것이.

기억조차 흐릿하다. 이리 대단한 상대를 만나서, 흥분으로 몸이 떨렸던 것이.

그동안 애써 감춰둔 것들을 전부 드러내도 모자람이 없다.

아니, 아니다. 감춰둔 것만을 꺼내는 걸론 부족하다.

없던 것마저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부딪쳐야 한다.

지금 눈앞에 선 저 사내는, 그럴 자격이 충분한 고수다.

“통성명을 다시 한번 해야겠구려!”

혹시나 제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리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도 하며.

검선은 수십 년 만에 나타난 제 상대에게 이름을 밝혔다.

“위자운이요! 이 노구에게 새로운 경지로 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줄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다곤 존 나센. 편하게 다곤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하하! 고맙소이다! 늦지 않게 그대와 같은 걸출한 영웅을 만나 이리 반가울 수가 없소! 어디 한번 후회 없이 한바탕 진득하게 놀아봅시다!”

이 자리에 검선의 후지기수들이 있었다면 그 무슨 망측한 말이냐고 기겁했을 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검선, 검의 신선이라고 하지만.

그도 과거엔 대련을 좋아하고 전투를 즐기는, 강호의 한 사람이었으니까.

“자, 그럼 갑시다!”

검은 뽑지 않았다. 그래, 아직은 뽑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즐거운데 벌써부터 검을 뽑으면 너무 금방 끝나지 않던가.

가볍게 말아 쥔 검선의 주먹이 앞으로 내뻗어진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저 단순한 주먹질처럼 보이는 것.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을 ‘주먹’ 이라고 볼 수 없다.

콰직!―

순간 일대의 공기가 뒤틀리며 마나가 찢어지듯 용솟음친다.

검선의 정권과 존 나센 남작의 주먹이 부딪치는 순간.

일대가 마치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엉망이 되어간다.

“허허허허!”

웃었다. 검선은 정말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왜 이런 자를 이제야 만나서, 그동안 시간을 허비했던 것인지!

“…대단합니다.”

웃는 쪽은 검선만이 아니었다. 존 나센 남작 또한 웃고 있었다.

여태까지 만난 강자라 함은, 결국 진짜 ‘강자’ 로 가는 길목 어딘가의 자들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 혹은 그게 끝인 줄 알고 있는 자.

전부 그들뿐이라서 실망도 하고 또 아쉽게도 여겼던 적이 참 많았다.

‘하지만, 저 노인장은 다르구나.’

자신의 이 일격을 정면으로 막아낼 줄이야.

제국이 쩔쩔 매던 그 가한이라는 자도 한 번에 깨끗이 사라졌을 정도다.

한데 그것을 저 노인장은 웃으면서 아주 가뿐하게 받아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좀 더 천천히 즐기고 싶긴 합니다만….”

“알고 있소. 그대 또한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구려. 이 노구만의 설레발일까 걱정했는데! 허허허! 이거 참. 그대와 같은 걸출한 인물이 왜 강호에는 없단 말이오! 통탄할 일이로다!”

스르릉―.

청아한 소리와 함께, 검선이 들고 다니던 검을 뽑아든다.

“그대는 아까 손을 보아하니 검을 잡지 않는 손 같소만.”

“바로 보셨습니다, 노인장. 혹 불쾌하십니까?”

“맨손으로 사람을 대하는 이들은 강호에도 많소이다! 검을 들지 않는다고 무엇이 문제일까! 이러든 저러든 그저 강하면 되는 것을! 왈가왈부 할 생각은 없소!”

그 말과 함께, 검선에게서 한 줄기 번뜩이는 궤적이 흘러나왔다.

손목 부분만 이용해서, 아주 한 번 가볍게 검을 튕긴 것에 불과한 모습.

하지만 바로 앞으로 날아드는 섬광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음!”

존 나센 남작은 그 궤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막내가 참으로 대단한 선물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곤 손날로 그 섬광을 정중앙에서 일격에 맞이했다.

촤아앙!-

“허.”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자신의 출수를 우습게 막아낸다.

그 모습을 보며 검선은 속으로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대단하다. 저 정도면 금강불괴라는 말도 부족할 지경이다.’

극한의 극한까지 외공을 수련한 자에게서 볼 수 있다는 경지.

신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무공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저것은 무공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마치 강철을 두드리듯, 신체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 저 경지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번에는 존 나센 남작이 먼저 움직였다.

한 번 땅을 박차는가 싶더니 그대로 앞으로 밀고 들어와서는.

콰직!-

그대로 검선을 향해 그 거대한 팔뚝을 힘껏 휘두른다.

“흡!”

파아앙!!-

순간적으로 체내의 기운이 흔들릴 정도로 통렬한 힘.

이럴 수가 있다니. 이런 존재가 정말 있을 수가 있다니.

검선은 속으로 감탄하다 못 해 이젠 경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보시오, 대협.”

그렇게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다가, 검선이 입술을 뗀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소.”

“그러시지요.”

“보아하니 외공은 극한의 극한까지 쌓은 것 같은데. 어찌하여 내공 부분은 그 외공을 따르지 않는 것이오? 대협이라면 내공 또한 극한까지 쌓는 게 가능했을 터인데?”

문득 든 궁금증이었다. 이렇게나 외공을 쌓은 자가, 왜 내공은 멈춰있단 말인가.

차라리 내공이란 것을 아예 건드리지도 않은 것이라면 모르겠다.

수준을 보니 분명 내공 또한 일정 부분 이상의 경지에 올랐던 것 같은데.

둘 모두를 증진시켰다면, 어쩌면 저 인물은 자신보다도 먼저….

“저는 신체 단련 외에는 한 것이 없습니다.”

“…뭣이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노인장. 외공이라 하는 게 단련이고, 내공이라 함을 이곳 마나라고 한다면. 저는 그 내공이란 걸 한 번도 휘두르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 말하는 존 나센 남작의 두 눈에는 거짓이 없었다.

저게 진실임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검선은 바로 알 수 있었다.

“…허허. 허허허! 어허허허!”

어이가 없었다. 설마, 정말 외공만으로 저 정도에 올랐다고?

그렇다면 지금 느껴지는 이 내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외공이 극한까지 나아가다 못 해 내공까지 변화시켰다는 것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외공은 외공이고, 내공은 내공이다.

육체를 단련한다고 해서 내부 기의 순환까지 대체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강철을 수 천, 수 만 번 두들기면 안도 겉도 다 단단해지는 법 아닙니까.”

“그건 그렇소. 하지만….”

“전 그렇게 했습니다. 수 천, 수 만. 아니, 수십, 수백 만 번. 그 이상으로.”

“….”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순간 검선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옅게 피어올랐다.

그 미소는, 오랫동안 멈춰있던 그의 발걸음이 한 발자국 떼어지는 신호였다.

*

“카일 형제님! 어머님께서 서신을 보내셨어요!”

저 멀리서 우다다! 하고 달려오는 성녀.

분명 서신 수신자는 카일일 텐데, 왜 신난 건 저 여인인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성녀님. 것보다, 요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런가요? 아무튼, 얼른 확인해보세요! 카일 형제님께서 고향으로 아주 멋진 선물을 보내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얼른요!”

아마도 그쪽 반응들이 가장 궁금했던 모양이다.

연신 재촉하는 성녀를 진정시킨 후, 카일은 서신을 펼쳐들었다.

[ 사랑하는 우리 막내. 잘 지내고 있니? 요즘 운동은 잘 하고 있고? ]

역시나, 도입부는 항상 똑같다. 가끔 운동 이야기는 빼주셔도 좋을 텐데.

[ 막내, 네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단다. 네 아빠도 어찌나 좋아하던지, 사흘 밤낮을 집에도 안 들어오시고 바깥에서 지내셨단다. ]

이야. 검선이라는 그 노인장이 그래도 체력은 끝내주시는 모양이구나!

설마 아버지를 상대로 사흘 밤낮 대련을 유지할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역시 무협 한정 ‘~황’ , ~‘신’, ‘~성’ 들어가는 이들은 최고라니까.

[ 그리고 이 엄마랑 네 누나, 형도 다 한 번씩 상대했단다. 이렇게 보니 세상은 참 넓더구나. 설마 네 아빠와 비슷하게 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조금만 더 했다면 북쪽 만년설산이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단다! ]

“….”

안 돼요, 아버지. 거기까지는 참아주세요. 제가 돌아갈 고향은 있어야죠.

다행히 거기까지 닿지는 않은 모양이다. 돌아갈 고향이 남은 카일은 안도했다.

“…뭐여, 이건 또.”

다음 내용들을 확인하던 카일은 제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혹시 잘못 봤나? 싶어서 두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내용을 눈에 담아본다.

[ 아, 그리고 네 형이 잠시 동안 영지를 비우기로 했다. 조만간 손님들이 돌아가야 한다는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쪽 세상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더구나. ]

순간 카일은 상상했다. 이미 극한의 극한까지 육체를 단련한 리어 존 나센.

이제 거기에 무협의 정수라는 내공과 각종 초식들이 끼얹어지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천하제일인?’

아닌가?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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