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6월.
짧아진 옷차림 위로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오늘은 지예준이 교생 실습을 나간 지 나흘 째였고-
“요즘은 그 체교과랑 안 다니네?”
“실습 갔어.”
동시에 서로 얼굴을 못 본 지도 나흘째가 되는 날이었다.
“껌딱지 사라지자마자 나한테 붙는 너도 인성 참.”
“먼저 부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
“하계 이벤트 스킨 받아야 된단 말야.”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대화는 게임 속 음성 보이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인 격전지 뒤에서 지붕에 올라간 강선이 마우스를 세심하게 움직이며 적들의 머리를 조준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헤드 샷을 날린 강선의 캐릭터가 화면 구석에 연달아 떠오르며 불꽃 효과를 냈다.
[나는한상연: 딜러 차이 오지죠ㅋ]
팀을 승리로 이끈 건 강선인데 온갖 생색은 한상연이 다 내는 것에 상대 팀원은 [초딩아 수학 익힘책이나 풀어라]라며 쌍뻐큐를 날렸고 한상연은 다시 맞뻐큐로 응대했다.
정말이지 초등학생보다 못한 행동에 한상연을 강제 퇴장 시키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강선은 얼음이 다 녹은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 마셨다.
오늘은 김 교수가 출장이 있어 생각지 못한 공강이 생긴 날이었으나 강선의 기분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제 미리 공강에 대해 고지를 받았던 터라 서프라이즈 느낌으로 한밤중 지예준의 집을 찾아갔지만 눈앞에 보인 것은 또 술에 떡이 된 채 거실에 엎어져 있던 그의 등뿐이었다.
하루도 아니고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 무슨 놈의 학교가 조금만 마셔도 취하는 애한테 그렇게 술을 먹이는지.
확 교육청에 신고를 해 버릴까 했지만 괜히 지예준 앞길만 막는 것 같아 침실 바닥에 깔린 이불까지 그를 질질 끌어다 놓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매일 이렇게 술자리에 불려 나가는 걸로 봐선 걱정하던 것과 달리 나름 사람들 틈에서 잘 적응하려는 것 같기는 하다만…….
바닥에 그를 재우고 침대 끝에 누워 지예준을 내려다보던 강선은 이른 아침 숙취에 괴로워하는 지예준에게 꿀물을 타 주며 그의 눈물 젖은-실제로 울지는 않았지만- 사과를 한 시간이나 받은 후에야 한상연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
“오징어 먹을래?”
“너나 먹어.”
전자레인지에 들어갔다 나와 이상하고 비린 냄새를 풍기는 오징어 다리에 강선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다른 건 몰라도 저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대놓고 코를 막자 한상연은 음식 앞에서 몹쓸 짓 한다며 몇 가닥 없는 다리를 한입에 쑤셔 넣었다.
“야, 응뎅 징땅 히히가앙 항다웅?”
“뭐래, 냄새나.”
“아, 잉엉…….”
재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강선의 인성을 꼬집은 게 분명했다.
열심히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어 넘긴 한상연은 오렌지맛 탄산음료를 가득 삼켜 냈다.
“끄으억. 시디과랑 진짜 할 거냐고.”
“진짜 가지가지 하네.”
쯧쯧.
속으로 혀를 찬 강선은 지예준이 없던 지난 사흘의 기억을 되살렸다.
지예준의 실습 첫날.
대학 수업과 달리 정해진 시간까지 출근해야 하는 고등학교 특성상 지예준은 강선보다 두어 시간 빨리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다. 때문에 강선이 눈을 떴을 땐 지예준은 이미 학교에 도착하고도 남을 때였다.
일 열심히 하라며 메시지를 보낼까 했지만 첫날인 만큼 핸드폰을 확인하려면 적어도 점심시간은 되어야 가능할 테니 이따 전화나 잠깐 하자는 생각으로 터덜터덜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혼자 걷는 캠퍼스가 어색해 빠른 걸음으로 조형관까지 다다라 계단을 오르는데 이제는 꽤 익숙해져 있던 형광 연둣빛 포스터가 오늘은 반절이 사라져 있었다.
시디과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포스터를 철거하고 있던 것이다.
‘저기요.’
‘네?’
강선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러모로 심란하고 허전한 월요일 아침이 머릿속 어딘가를 덜컹, 건드린 기분이었다.
‘혹시 서예과 4학년도 괜찮으세요?’
강선의 그 한마디에 포스터를 말던 이와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던 이, 그리고 주변을 지나가던 다른 시디과 학생들의 시선이 강선에게 꽂혀 들어갔다.
‘네! 그럼요! 졸작 하시는 거면 저희도 좋죠!’
‘저희 과 졸장 선배한테 연락 한번 해 보시겠어요?’
‘저희 진짜 잘해요!’
이날 저녁. 강선은 연락이 되지 않는 지예준에게 아주 약간의 분노와 걱정을 가진 채 포스터를 처음 보았던 날 챙겨 둔 전단지를 다시 꺼냈다.
안녕하세요, 서예과 4학년 강선입니다. 조형관 복도에 있던 포스터 보고 연락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