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일담 1 (9/11)

후일담 1

“에~이. 교수님! 아직도 그 소리세요?”

라이더 재킷에 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돌돌 만 팸플릿으로 제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저를 올려다보며 열을 내고 있는 김 교수의 모습에 껄껄, 웃더니 고개를 돌려 작품 설명에 바쁜 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저 애는 졸업까진 하겠네요.”

“이, 이! 이 버르장머리 없는……!”

“제 버르장머리가 뭐 하루 이틀 없었나요. 솔직히 이젠 인정하실 때도 됐잖아요, 교수님.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요?”

백리워어어언-!

김 교수는 후비적, 귀를 파며 자리를 뜨는 이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성질을 냈다. 몇몇 사람들이 김 교수에게 흘긋, 시선을 던졌지만 그의 분노는 이제 막 시작된 영상 쇼에 조용히 묻힐 뿐이었다.

작품 <주(主)>는 이번 전시 중에서도 스케일이 가장 큰 축에 속했기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강선과 시디과 어벤저스는 작품 설명이 적힌 커다란 포스터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작품 소개를 하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지예준은 조금 긴장한 듯한 얼굴로 조곤조곤 말을 하는 이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정작 강선 본인은 그 따가운 시선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말이다.

글자를 통해 이 세상의 주(主)를 표현했다는 말에 지예준의 어머니는 짝짝, 박수를 치며 핸드폰으로 연신 건물을 촬영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보다 안색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는 강선에게 가족이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펑펑 눈물을 쏟았다. 지예준은 무척이나 당황했고 강선은 그의 어머니를 달래느라 혼이 쏙 빠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지예준의 어머니는 강선에게 저를 편히 이모라고 부르라며 재차 눈시울을 붉혔다. 작은 손으로 제 손을 꼭 잡고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마음 한쪽이 저릿했다.

시디과 사람에게 마이크가 넘어가고, 할 일을 마친 강선은 저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끝났어요.”

“그래. 너무 수고했다, 선아.”

외로움은 이제 익숙한 감정이라 생각했다. 사실은 깊은 곳 어딘가에 꽁꽁 가둬져 있던 것뿐이었는데.

“강선아, 전시 축하해.”

“고마워.”

품에 안긴 커다란 꽃다발에서 싱그러운 향기가 났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남들과는 달리 빈손으로 귀가했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집에 콕 박혀서 말이다.

지예준은 이것보다 더 큰 것을 사고 싶었는데 못 찾았다며 아쉬워했지만 강선에겐 그 어떤 선물보다 소중하고 따뜻했다.

꽃다발에 코를 묻고 향기를 가득 들이마시던 순간,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전시 축하해요.”

“……아.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강선의 앞에 나타났다. 언젠가 그에게 먼저 연락하려 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예준과의 일에 정신이 팔려 까맣게 잊어버렸다.

지갑 안쪽에 자리한 낡은 명함의 주인이자 강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씨익, 웃으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취업 자리는 정했어요?”

“네?”

“아직이라고 해요, 빨리.”

“……네? 아, 아직인데요… 왜 그러시는-”

영문 모를 질문에 얼떨떨하게 말하자 그는 강선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후후, 하고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웬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진지한 모습으로 글씨를 써 나가던 영상 속 그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되었다.-지예준의 어머니는 이미 그런 그를 사기꾼 대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모쪼록 잘 생각해 봐요. 우리가 아직 돈은 좀 없지만 앞으론 많이 벌 예정이거든요.”

그 스튜디오 돈 많지 않나… 하는 무의식이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더 입을 열기도 전 그는 ‘그럼 전 동생 데리러 가야 해서 이만!’ 하며 어디론가 빠르게 뛰어갔다.

강선은 그가 두고 간 서류 봉투를 열어 보다 얼핏 보인 글씨에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빠르게 고개를 들어 그가 뛰어간 방향을 살폈지만 인파에 섞여 든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강선아, 아는 분이야?”

“어…….”

그가 사라진 곳을 한번, 그리고 다시 서류 봉투를 한번.

강선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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