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화
Chapter 1. 돌아왔더니 내가 랭킹 1위
그리고 눈을 떴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놀라운 건 아니야. 놀랍지는 않은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눈앞의 간호사를 관찰했다. 내가 눈을 뜬 순간 내 앞에 있던 남자였다.
간호사복에 달린 명찰의 이름은 이 솔방울.
내가 한 10년간 한국에 없어서 감각이 이상해진 건가, 저거 평범한 이름 아니지 않아?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저기, 솔방울 간호사님.”
“예, 강예나 환자분. 얘기하세요.”
“그러니까 제가 5년이나 누워 있었는데도 몸 상태가 정상이라는 거죠.”
깨어난 지 이틀.
그동안 간호사가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열심히 들여다보던 내가 갑자기 말을 거니 반가운 모양인지 솔방울 간호사는 아주 열심히, 친절하고 긴 설명을 해 주었다.
“예, 제 스킬 ‘나이팅게일의 가호’ 덕분입니다. 환자를 일정 상태 이상으로 유지시켜 주죠. 물론 시간이 가며 버프 효과가 줄어들기는 해서, 강예나 환자님은 운이 좋으신 편이에요.”
아니, 뭐. 이틀 전에도 들었던 설명이긴 한데.
나는 솔방울 간호사의 말을 반복했다.
“스킬이라고요.”
“예, 스킬이요.”
솔방울이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딱 5년 전, 던전 브레이크가 뭔지도 모를 때 쓰러지셨으니. 세상이 너무 변해 있어서 많이 놀라셨겠네요.”
“네, 당연히 많이 놀랐죠.”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그래, 놀라기는 했지.
놀라기는 했는데, 내가 놀란 이유는 스킬이나 던전 등의 단어가 생소해서가 아니라 현대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이 이틀간 열심히 신문이니 뉴스니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봤던 이야기라 알고 있기는 했지만,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말하니 실감하는 게 달랐다.
이거, 진짜구나. 현실이야.
나는 침대 위에 앉은 채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앗, 괜찮으세요? 현기증은 없으신가요?”
솔방울이 나를 걱정했지만 머리가 복잡해서 그에게 무어라고 대답해 줄 기분이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한국은 헌터들이 많아서 사회가 잘 유지되고 있고요. 검사 결과 나오면 제가 던전 블루…… 우울증 상담도 받으실 수 있게 조치할게요.”
솔방울이 무어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를 적당히 흘려들으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현대적인 설비의 병실, 일정한 목소리 톤으로 흘러나오는 뉴스, 창밖으로는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과 회색빛의 도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간간이 보였다.
어딜 보나 내가 알고 있던 ‘그’ 한국이 맞는데.
“그럼 강예나 환자분, 또 무슨 일 있으면 부르세요.”
얼마나 떠들었을까, 솔방울 간호사는 내가 대화할 의지를 잃은 것을 알았는지 내 무릎 위에 오늘 자 신문을 내려 두고 병실을 나갔다.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신문을 내려다보았다.
한남동 돌발성 던전 출현으로 인한 사상자 발생
강원도 원주시 고정형 던전 다-72에서 헌터들 간의 충돌 발생……
“하하하…….”
던전, 몬스터.
지난 10년간 타르토스 대륙에서 구르면서 주야장천 들었던 단어다.
이틀 전, 병원에서 일어난 후 한 시간 정도는 이게 꿈이 아닐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언제나 현실에 빠르게 순응하는 편이었다.
이런 일이 두 번째인 것도 있고.
아니, 차원 이동을 두 번이나 겪어서 뭐 할 건데. 한 번이면 충분하잖아.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이미 일어난 현실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어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TV를 열심히 봤고,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스마트폰으로 내가 자주 다니던 커뮤니티도 검색해 보았다.
뉴스의 내용도,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는 게시글도 전부 다 5년 전 내가 알고 있던 한국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바로는 어떻게 해야 치킨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먹짱 비결을 공유하던 커뮤니티의 베스트 게시글이 ‘오늘 강남 맛집에서 S급 헌터 본 썰 푼다.’였던 때의 기분이란…….
하여간, 내가 이틀간 정리한 정보를 보자면 현재의 상황은 이랬다.
1. 나는 5년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장기 입원해 있었다.
난 타르토스 대륙에서 10년을 보냈다.
그렇지만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른 세계에 다녀왔는데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지.
오히려 여기선 아직 24살이라는 걸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다섯 살이나 이득 봤다.
다만 문제라면 지난 10년간 다져 왔던 내 몸은 온데간데없다는 점이었다.
솔방울의 스킬 덕에 5년 전 현대인의 컨디션은 유지하고 있지만, 5년 전의 나는 막 수능을 치르고 대학 합격을 기다리며 탱자탱자 놀던 몸이었다.
치킨과 피자를 먹던 수능 직후 고3의 컨디션이라고 해 봤자 고블린 방망이 한 방에도 죽지. 죽자 살자 검을 휘두르던 내 체력과 근육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즉, 내가 지난 10년간 쌓아 왔던 신체 스펙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었다.
만렙 찍어 놨더니 다시 뉴비가 된 기분이랄까. 망할.
2. 5년 전 한국에 최초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스킬’을 개화시키기 시작했다.
타르토스 대륙에서도 최초의 던전 브레이크가 나타난 후 일어난 현상이었다. 즉, 두 세계에 일어난 것은 거의 같은 현상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다만, 타르토스 대륙은 최초의 던전이 발생한 후 클리어하기까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기 때문에 거의 멸망 전까지 내몰렸지만, 한국은 아직 내가 알던 정부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었다.
던전 발생 후 사상자는 꽤 많은 듯했지만 타르토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기야 한국은 타르토스 대륙과 비교하자면 미안할 정도로 무기의 화력이 뛰어나니, 초반 몬스터 떼의 습격을 빠르게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이 유효했던 것 같다.
전 세계적인 추세를 봐도 그랬다.
3. 사람들이 스킬을 개화하면서 ‘헌터’라는 직업군이 생겼다.
스킬을 개화한 후 던전 클리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생겼다.
뭐, 자연스러운 일이다. 던전에서 얻는 아이템은 귀하기 마련이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사회가 있는 이상 그것이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타르토스에서는 원래 용병이라는 직업이 있어서 따로 헌터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을 뿐, 하는 일은 비슷했다.
그리고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도 ‘헌터’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상당히 활발한 편이었다. 게임의 민족이라서 그런가, 커뮤니티 베스트 게시글만 봐도 헌터라는 직업은 이미 생활 속에 상당히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보면 꽤 희망적이었는데.
4. 타르토스와 달리 이 세계에는 - 최후의 던전이 제시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정보는 이거겠지.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타르토스에서 고룡 옵타티오가 그랬듯, 한국에도 확실한 목표가 있다면, 다시 한번 세상을 구하는 것도…… 한 번 해 본 일이니까.
그렇다면 한 번 더 해 볼까, 그런 생각도 했다.
혹시 모르지. 여기서도 최종 던전을 클리어하면 다시 타르토스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가 가장 처음으로 찾아본 정보는 ‘최종 던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 보아도 그런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최종 던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 것 같았다.
던전을 아예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현실성 없는 일로 치부하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이미 던전과 몬스터, 헌터를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타르토스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타르토스의 경우 옵타티오만 공략한다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물론 알리시아나 나처럼 신탁을 그리 믿지 않는 불신론자는 있었지만 어쨌거나 공통된 목표는 있었다.
그래서 타르토스에서는 전 대륙 차원으로 힘을 모아 최종 목표로 향할 수 있었다.
옵타티오 클리어 때 함께했던 동료들도 그래서 모였던 것이다. 그 거대한 목표가 없었다면 애초에 모일 일이 없었다는 것.
그런데 여기는 그런 목표가 없는 세계라는 거지.
그렇다면 이런 세상은 아무도 구할 수 없다.
던전은 ‘최종 목표’가 달성되기 전까지 끝없이 생성되고, 끝없이 생겨나는 던전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비극일 뿐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머리를 기댔다. 타르토스도 개판이었지만 여기도 만만찮게 개판일 것이다.
어쩌면 타르토스보다도 더.
내가 괜히 10년이나 용병판에서 굴러먹은 게 아니다. 거대한 공통 목표도 없이 그냥 검 들고 가장 센 놈이 다 해 먹는 세계? 치고받고 싸우며 누가 더 센지 겨루는 것밖에 할 일이 없지.
물론 지금 여기는 겨우 5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까진 던전을 공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겠지만…….
“앞으로 개판이 될 게 뻔하단 말이지.”
설마 이 개판이 된 세계도 내가 구해 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내 입장에서는 겨우 며칠 전에 10년에 걸쳐 타르토스 대륙을 구한 참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던전을 클리어해 온 것은 이것만 끝나면 잘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신탁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지만 고룡 옵타티오를 쓰러트리면 어느 정도 괜찮아질 거라고.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강원도 원주 요양 병원의 환자실이다.
창문 너머로 저 멀리 산이 보였다. 치악산인가?
……풍경은 좋긴 한데.
“에휴, 내 팔자야.”
처음 타르토스에 떨어졌을 땐 정말 내가 전생에 죄라도 지었나, 하고 고민했다.
그만큼 나는 갑작스럽게 떨어진 타르토스에서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겨우 몇 마디 말로는 정리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일을.
그때는 정말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국 돌아갈 방법은 없는 듯했고, 나는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도 전에 내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를 써야 했다.
지구에서는 닭 한 마리도 손으로 목을 비틀어 본 적 없는 내가 칼을 들고 몬스터를 처리하고, 때로는 인간과도 싸우며 검에 피를 묻혔다.
타인의 목숨을 끊는 기분은 끔찍했고, 살아남았다는 고양감은 죄악감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었다.
그런 죄악감조차 무디게 느끼게 되었을 때는, 코를 훌쩍이며 현대 한국의 따뜻한 전기장판과 언제 어디서건 터지는 핸드폰을 그리워하다가 그 그리움조차 잊어버렸다.
힘들었다. 정말로 힘든 삶이었다.
그런 삶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죽지 않고, 혹은 죽지 못하고 살아남았다.
그렇게 필요에 따라 던전을 공략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등을 맡길 동료들이, 목숨을 맡겨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소중한 친구가 생겼다.
그러고 나니 나름의 목표가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 이 세계를 지키고 싶다, 는.
그렇게 타르토스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솔직히 나는 이제 지구보다는 타르토스 쪽에 애착이 갔다.
지구에서 사는 20년은 뭐, 학교 다니고, 전학 다니고, 집에서 공부나 하고, 대강 그런 기억밖에 없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나 여기에선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그래서 생각하면 할수록 왜 이 시점에서 지구로 돌아왔는지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울면서 빌 때나 보내 주지.
그것도 내가 기억하던 평화로운 세상이 아니라 던전과 몬스터가 출현하는 세상이 되어 있다니.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머리를 쾅쾅 박았다.
이제 타르토스에서 잘 먹고 잘사는 일만 남았는데 도대체 왜!
왕자도 손끝으로 부리고 용병왕 남매랑도 야자 트는 사이에 대륙 제일의 신관과는 베프였던 내 인생 돌려줘.
“…….”
하지만, 사실 이렇게 찡찡거려 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건 10년간 타르토스에서 살았던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면 일어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어차피 일어날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내가 해 둘 수 있는 일을 해 두는 수밖에 없다.
가령…….
“혹시 치킨 시켜도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