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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화 (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화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마트에서 나는 필요한 일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일단 내가 사용하는 한천 은행의 ATM기가 있어서 수수료 없이 현금을 뽑을 수 있었고, 새로운 기종의 스마트폰도 뽑았으며 가장 급한 옷가지와 신발, 그리고 그걸 담을 캐리어까지.

심지어 그 모든 것들을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아, 핸드폰 빼고. 공산품 최고다.

“핸드폰도 공산품이지만…….”

당장 치킨을 먹고 싶었지만 설탕 뿌린 핫도그의 냄새가 너무 강력했다.

케첩을 잔뜩 뿌리고 한 입 베어 물자 자극적인 밀가루와 소시지의 맛이 입안을 자극했다. 눈물이 날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핫도그에도 울지 않았던 내가 정말 울 뻔했던 건 마트의 푸드 코트에서 김치찌개를 시켰을 때였다. 특유의 쇠 그릇에 담긴 하얀 쌀밥과 뚝배기에 담긴 김치찌개…… 반찬은 어묵 볶음과 시금치에 계란말이.

내가 왜 이걸 잊어버리고 살았지? 한식이 최고다.

“저, 괜찮으세요?”

한참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슬쩍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다.

“아, 신경 쓰지 마세요.”

10년 만에 먹는 김치찌개라서 감동한 것뿐이니까. 그렇게 대답하고 한술 더 뜨려는데 남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던전 가기 전에 밥 먹는 거예요?”

“예? 던전?”

“아닌가요? 저처럼 던전 따라 원정 온 줄 알았는데.”

남자의 눈길이 내 발치에 있는 캐리어를 향했다. 나는 입에 넣은 밥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이 근처에 던전이 있어요?”

“아, 모르고 왔구나. 여기 치악산 근처에 F급 던전 있잖아요. 초보자들 각성하기에는 최적이래요.”

가끔 그런 녀석들이 있지. 조금만 말을 붙여 주면 신나서 아는 것 전부를 떠드는 녀석들.

눈앞의 남자는 무척이나 들떠서 내가 진짜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아닌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 그렇군요.”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 라고 딱 자르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나는 김치찌개를 떠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남자는 무어라 신나게 더 떠들고 있었지만 대부분 흘려들었다.

옷이니 핸드폰은 해결했고, 이제 나는 당장 내일부터 묵을 곳부터 구해야 했다. 병원에서 내일 퇴원하기로 했으니까.

병원비야 정산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아까 ATM으로 내 잔고를 확인해 보니 며칠은 모를까, 장기적으로 살 만한 곳을 구하기에 많은 돈은 아니었다.

일단 10년 전, 아니, 한국 시간으로 5년 전 내가 살던 자취방에 가 볼 생각이었지만…… 5년이나 빈방을 놀려 뒀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제일 급한 건 당장 내일부터 묵을 곳을 구하는 건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던전에 가야 하나.’

한국에서 눈을 뜬 이후 나는 나의 ‘상태창’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즉, 지금의 나는 한국에서 말하는 헌터도, 타르토스에서의 용병도 아니었다. 완전한 일반인이라는 것이다.

사실 혼자 있을 동안 상태창이나 시스템을 호출해 보았지만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글씨는 허공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솔방울 간호사는 내가 각성하고 싶어서 혼잣말을 중얼댄다고 생각했는지, 모든 사람은 최초로 던전에 입장해야만 상태창이 떠오르는 등 소위 ‘각성’을 할 수 있다며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아니, 내가 그걸 몰라서 그랬던 게 아니라고.

뭐, 시스템 메시지고 상태창이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시야가 쾌청해서 마음에 들었는데 이 유예 시간도 슬슬 끝내야 할 모양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헌터 인정을 받는 게 지금 내가 가장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었다. 헌터로 각성한 후 국가에 등록하면 던전 토벌 횟수에 따라서 상금을 지급해 준다고 하니까.

“…….”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별안간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내가 타르토스 대륙에서 쌓았던 능력치가 전부…… 없었던 걸로 처리되는 건…… 아니겠지?

아니지?

나는 숟가락을 꽉 쥐었다. 10년 만에 먹는 김치찌개의 감동조차 순식간에 날아갈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시스템이란 놈이 양심이 있다면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10년간 쌓아 온 내 근육을 빼앗긴 것만으로도 원한이 사무칠 지경인데.

“어때요?”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길래 김치찌개 먹던 숟가락으로 때릴 뻔했다.

“뭐, 뭐가요?”

지치지도 않고 떠들고 있던 눈앞의 남자가 흥분한 채로 내게 물었다.

“그쪽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서 특별히 하는 말인데, 저랑 같이 안 가실래요?”

“……예, 뭐. 그럽시다.”

나는 이어서 처음으로 남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딜 가자고요?”

*   *   *

남자의 이름은 우성연. 성별 남성. 나이는 스물여덟.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다가 스펙만으로 취업이 되는 세상에 환멸이 나는 바람에 취업은 때려치우고 헌터를 하기로 했다나.

특별히 자신이 찾아냈다는 던전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거리가 꽤 있어서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타고, 그러고 나서도 산길을 한참 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트게 되었다. 나는 거의 듣기만 했지만.

물론 가끔 받아쳐 주기는 했다.

“그냥 얌전히 취업 준비나 하지 그래.”

28살이라면 한국에서의 내 나이보다 조금 많기는 했지만 내 체감상 나는 서른 살이기 때문에 대충 동갑이라고 말했다. 우성연은 미심쩍어했지만 나는 당당히 반말하기로 했다.

“야, 너 말투가 뭐 그러냐! 그러는 너도 백수라며.”

“그야 그렇지.”

세상을 구한 용사였지만 억지로 은퇴당한 거나 다름없으니, 지금의 나는 백수다. 소지창을 열 수 없는 이상 진짜 개털이고.

“난 지금은 백수지만 미래 계획은 다 세워 놨어. 헌터 돼서 하급 던전 돌면서 자금 모으고, 그걸로 사업할 거야.”

말만 들으면 아주 건실한 청년이로세.

“헌터가 되면 목숨이 간당간당한 건 알고 있는 거지?”

“에이, 하급 던전만 돌아다니면서 토벌 횟수 채우면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대. 내 친구 중에도 슬라임 던전만 100번 채워서 보조금 타 먹는 애 있는데 개꿀이라니까. 가끔 너튜브로 영상 찍어서 광고로 돈도 벌고.”

“………….”

세상이 아주 말세다, 말세야. 나는 혀를 찼다.

뭐, 이것도 한국 정부가 건재하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시스템이겠지.

기본적으로 던전은 ‘고정형’과 ‘돌발형’으로 나뉜다.

고정형의 경우 처음 생성된 자리에 고정되어 위치해 있고, 던전 내부에 진입할 경우 출현하는 몬스터와 클리어 조건이 동일하다.

그래서 한 번 클리어하기만 하면 그 이후의 공략은 쉽지만, 일정 주기로 계속 클리어해 주지 않고 방치하면 던전 외부로 몬스터가 흘러나온다.

그게 던전 브레이크.

설령 하급 던전이더라도 터지면 일반인들이 피해를 입을 건 당연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택한 방법은 꽤 효율적이었다.

타르토스에서도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쪽은 인력난이 심했다.

대다수의 숙련된 용병은 하급 던전을 도는 대신 상위 던전을 찾아다니며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모으는 등, 최종 목표인 옵타티오를 공략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돌발형’은 말 그대로 돌발형이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던전이다. 대개 클리어하면 사라지고, 위험도도 높다.

이쪽이야말로 정말 신벌이라고 퉁치고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갈 수 있는 게 좋다.

“그러니까 예나 너, 진짜 운 좋은 거야. 로또 맞은 거라니까.”

“그렇구나. 고맙다, 고마워.”

“어허, 성의가 없다.”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야.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나저나 산길 꽤 올라가는데. 정말로 여기가 맞아?”

“맞다니까. 지도에 별 찍어 왔지.”

우성연이 자신만만하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나는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난 현대적인 지도는 정말 못 읽겠단 말이야. 뭐, 맞는 길로 가고 있겠지. 저렇게 자신만만한데.

“이거 우리 진짜 운 좋은 거야.”

우성연의 운이 좋다, 라는 주장의 상세 내용은 이러하다.

고정형 던전은 대개 출현 후 정부에 등록돼서 관리되는데, 소위 개꿀인 하급 던전은 그 순간 이미 경력이 빵빵한 다른 하급 헌터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우리 같은 초보자들은 끼워 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헌터 업계도 레드 오션이라니까. 그러니까 우리 같은 초보자들은 아직 등록 안 된 던전을 노려야 한다는 말씀.”

“어어, 그렇구나. 대단하다.”

그런데, 그가 조사해 온 던전은 우성연이 활동하고 있던 산악 동호회에서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나.

일반인 모임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그들은 던전에 입장한 뒤 별문제 없이 나올 수 있었고, 아무 힘들이지 않고 각성을 할 수 있었다.

“크, 아는 형님인데 바로 외제차 뽑더라. 간지 쩔어.”

“세상이 말세다.”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산길이 좀 힘들어서.”

“헌터로 각성해도 신체는 좀 단련해야 한다는데. 좋은 헬스장 아는데, 소개시켜 줄까?”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에 넉살도 좋지. 나는 그냥 어깨만 으쓱였다. 별로 성의 없어 보이는 태도에도 개의치 않고 우성연이 콧노래를 흥얼댔다.

“혹시 전투 특화 특성이라도 터지면 진짜 로또가 되는 건데 말이야.”

우성연이 흥분해서 말했지만 글쎄, 나는 그 말에는 회의적이었다.

로또라고 부르는 이유 자체는 나도 알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가 각성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개인의 몸 상태에 따라 부여되는 소위 체근민 스펙 외, 특성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전투에 재능이 있다면 개인의 성향에 덧붙여 ‘정의로운 검사’나 ‘불굴의 무술가’ 같은 특성이 발현되며, 솔방울처럼 의료 특화 스킬이 발현되었다면 ‘섬세한 도움의 손길’ 정도의 특성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특성은 같은 계열의 스킬이 발현될 경우 사용자가 스킬을 사용할 때 상당히 커다란 이점을 가져다준다.

나 같은 경우도 특성과 스킬의 궁합이 잘 맞아서 꽤 이득을 보았다.

다만 특성은 어디까지나 특성에 불과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특성은 그저 사전적인 의미인 ‘일정한 훈련으로 숙달될 수 있는 개인의 능력’, 그뿐이다.

빵을 굽는 걸 잘하는 사람에게 네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빵집 열면 어떠니, 하고 가볍게 조언하는 정도의 방향성.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다 좋지만 그걸 실제로 삶을 꾸려 나가는 데 활용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특히나 용병, 아니, 헌터가 되어 살아남으려면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이라도 해내야 하고, 혹은 반대로 적성이 맞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일례로 루카스의 특성은 ‘기적의 승부사’였다.

이건…… 무려 도박에 특화된 적성이었다.

일국의 왕자님이 사기꾼 특성이라니. 알게 된 후 엄청나게 웃어 젖혔더랬다.

어쨌거나 그런 웃긴 특성을 가진 왕자님은, 특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는데도 전투력은 대륙 제일이었다.

이렇게 설령 전투 특화 특성이 있을지라도, 혹은 없더라도 결국 그 특성을 살리는 건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즉 특성이란 이 던전이 출몰하는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적합한지 알려 주는, 단순한 나침반에 불과했다.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라.

나는 그저 마냥 신난 강아지처럼 노난 우성연을 바라보았다.

저런 놈이 대개 빨리 죽는데…….

“…….”

“왜 그래? 많이 힘들어?”

“아니, 괜찮아. 어, 저기 저거 아니야? 뭔가 빛나는데.”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고 우성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저거 그냥 빛 반사하는 유리 조각 같은데…….”

“……계속 가자.”

이놈의 길치는 낫지도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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