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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5화 (6/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5화

“이런 씨…….”

욕이 절로 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말을 뱉지 못하고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이게 습관이 되네.

내 지난 10년간의 베프는 신관이었고, 신관인 아리아드네는 내가 욕이라도 할라치면 언제나 내 입을 손바닥으로 때리곤 했다.

그래서 억지로 말조심을 하던 게 그만 습관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신관이 폭력은 써도 되냐?

어쨌건.

나는 눈앞에 떠오른 글씨를 노려보았다.

노려보았자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눈앞에는 여전히 로딩 중이라는 메시지뿐.

당장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는 상황인데 시스템 창을 이따위로 열어? 이렇게 물음표로 범벅될 거라면 열어 봤자 보이는 게 없잖아.

이러니 정말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 진짜로 먹튀 당하는 건 아니겠지?

5년간 병상에 누워 있었으니 타르토스에서 10년간 단련했던 몸이 사라진 것은 이해했다. 이해하기 싫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설마…… 내 스킬은? 레벨은?

아니, 그것도 다시 쌓으면 된다고 치자. 시간이 걸릴 뿐, 나는 그대로니까 복구하는 것에 그리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정말 싫지만 그렇다고 치자.

사실 시스템이 메시지로 보여 주는 이른바 ‘상태창’에서 보이는 것은 체근민 수치와 마력.

마력을 제외하면 모두 신체적 스펙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 한국에 있는 내 신체는 5년간 병상에 누워 있었던 만큼 근력도 뭣도 없이 평범 이하 수준의 신체였다.

그러니 내 현재의 신체만 가지고 보자면 모든 수치가 일반인보다 못하게 표시되어야 하겠지만…… 10년간 저 빌어먹을 시스템창을 보며 싸워 온 결과, 저 시스템이란 것은 생각보다 융통성이 있었다.

만일 시스템상으로 표시되는 것이 전부라면 lv.1은 죽어도 lv.10에게 이길 수 없을 거고, 체력이 10인 인간은 체력이 50인 인간을 죽일 수 없을 거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상태창에는 표시되지 않는 정신력, 의지, 순발력,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 현실에서의 승패를 가른다.

뭐, 그렇다고 정신력 하나만으로 레벨 차이를 모두 무시하고 썰어 버릴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상태창의 수치만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논할 수 없다는 것 자체는 확실했다.

게다가 ‘특성’, 특히나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나타나는 ‘스킬’의 경우는 더더욱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지금 내 신체 스펙이 일반인보다도 못한 병자 신세라 상태창의 수치가 모조리 하락한다고 한들, 내 지난 10년간의 과거는 몸에 뼈저리게 새겨져 있고, 그 기억도 경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신체가 약해지건, 스킬을 처음부터 개화시켜야 하건, 나는 그걸 다시 복구할 자신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지만…….

“내…… 내 소지창에 있던 아이템들은?”

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아니, 아니다. 솔직히 상관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 넘는 거지. 누가 여기로 오고 싶댔어?”

“예, 예나야?”

넋이 빠져 있던 우성연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놈한테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양심이 있어야지. 상태창도 저따위로 열어 놓고 설마 소지창도 없애는 거야?”

10년간 타르토스에서 진짜 악착같이 살았다.

아티팩트를 모으고, 내 스킬과 성향에 따라 맞는 무구를 구하고, 전설의 엘릭서까지는 아니라도 즉사하지만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게 각종 물약이며 해독제며…….

내가 그걸 어떻게 모았는데?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홀라당 사라진다고? 내가…… 내가 어떻게 모아 왔던 아이템인데?

진짜 아이템까지 뺏어 가면…… 진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콱 죽어 버릴 거야…….”

그때였다.

- 소지창의 데이터 이식이 완료되었습니다.

- 소지창을 확인하겠습니까?

뭐지, 이 공교로운 타이밍은?

나는 허공에 떠오른 글자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이렇게 시스템창이 마치 내 마음을 읽는 것처럼 타이밍을 맞추어 적절한 메시지를 띄워 주는 게 한두 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꽤 노골적인데…….

“으아아아아!”

시스템창의 메시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갑자기 굉장한 고함이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우성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엉망이 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몬스터라도 나온 줄 알았네. 심란한 마음을 소리쳐서 표현한 우성연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게 다 뭐야. 이렇게 죽으면 내가 죽은지도 아무도 모를 텐데…….”

“나올 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나왔어?”

“취준생이라고 했잖아. 나 혼자 고시원에서 공부하다가 카페 글 보고 몰래 나온 거였어…… 딱 각성해서, 성공한 다음 부모님한테 보여 드리려고…….”

우성연이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딱히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그냥 위로의 말을 던졌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 개인 미션이 아닌 게 어디야?”

던전 클리어 조건이 1인당 C급 몬스터 3마리 이상을 사냥하는 것이었다면 확실히 우성연에게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개인이 클리어하라는 조건이 아니라 둘이서 3마리를 잡아도 인정해 주는 모양이니까 우성연은 그냥 내 버스를 타면 될 일이다.

뭐, 물론 나도 현재는 상태창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니까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진짜 죽어 버리는 게 나을지도…….”

내 말은 역시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제야 내가 시스템을 협박한답시고 한 말이 우성연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을지 깨달았다. 아무래도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는 우느라 빨개진 코를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해. 내가 너까지 끌어들여서.”

“난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우성연은 더욱 절망해서 무릎에 얼굴을 박았다. 오히려 더 죄책감을 느끼는 눈치다.

하긴 나를 초보자라고 알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딱히 베테랑 용병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야, 그만 질질 짜고 슬슬 정신 차려.”

어깨를 툭툭 건드려 보았지만 이미 멘탈이 나간 건지 우성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뭐, 내버려 둘까. 쟤가 없는 게 더 나을지도.

솔직히 20대의 건장한 청년이 바닥에 주저앉아 질질 짜고 있는 게 꼴사납기도 했다. 이게 교훈이라도 될 수 있으면 다행이지.

그나저나, 나는 이제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소지창.”

솔직히 약간 걱정했는데 시스템은 얌전히 소지창을 열어 주었다.

허공에 펼쳐진 익숙한 화면에 눈물이 날 뻔했다.

나는 눈을 뜬 이후로 가장 흥분한 상태가 되어 소지창을 뒤지기 시작했다.

보자, 보자…… 내 광검…… 갑옷…… 그리고 죽어라 모은 아티팩트들.

모두 무사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회복 포션이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타르토스에서 옵타티오의 던전을 클리어하느라 포션이고 비약이고 전부 다 끌어 쓴 상태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래도 옵타티오를 클리어할 때 쓸 일이 없었던 해독제라든가, 현재 내 레벨에는 필요가 없지만 일단 모아 두었던 체력, 근력, 마력 증강제는 건재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진짜 눈물 날 뻔했다.

루카스라고 어느 나라의 재수 없는 왕자님은 나한테, 무슨 겨울 다람쥐도 아니고 궁상맞게 왜 그런 걸 모으냐고 했지만 나는 승리했다! 아껴야 잘산다!

나는 빠르게 아이템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방비는 빠른 편이 좋다.

“에이펙스의 광검, 앙겔루스의 가호, 님페의 바람.”

시스템의 별로 없는 장점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 내 몸에 무구들이 장비된다는 점이다.

- 아이템을 장비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몸이 짧게 빛에 감싸였다.

그리고 내 오른손에는 묵직한 감각과 함께 검이 쥐어졌고, 상체를 보호하는 가죽 갑옷과 종아리 전체를 감싸는 두꺼운 롱부츠가 나타났다.

내 체감으로는 겨우 3일간 몸에서 떼어 놓았던 장비지만 어쩐지 감개무량해졌다.

나는 손에 들린 내 검을 바라보았다.

- 에이펙스의 광검

한국 기준으로 치면 S급 던전을 클리어한 후 얻었던 아이템이다. 거의 한 달 넘게 걸렸던 것 같은데 이 검을 얻은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금 내 근력으로 이 검을 제대로 사용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군.

나는 검을 가볍게 허공에서 휘둘러보았다.

역시나, 검은 생각만큼 가볍게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한 번 휘둘렀는데도 사지가 무거워지는 느낌.

빨리 상태창을 보아야 내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텐데 큰일이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보호구인 앙겔루스의 가호는 장비하는 데 딱히 제한이 없다는 점이었다.

천사의 가호가 담겨 있다는 이 검정색 가죽으로 된 갑옷은 가슴팍만을 가려 주기에 사실 방호에 중점을 둔다면 적절한 무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앙겔루스의 가호에는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인 정신 계열 마력에서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옵션이 붙어 있었다.

- 가장 성스러운 대천사의 가호가 담긴 갑옷. 모든 사악한 저주에서 당신을 보호합니다.

S급 던전쯤 되면 몬스터들이 대개 환각과 착시 마법을 걸기 일쑤였기 때문에 내게는 필수적인 옵션이었다. 물론 체력과 근력 수치를 비율적으로 증가시켜 주는 것도 있고.

그리고 님페의 바람은 이동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이었다. 발 주변에 바람을 일으켜 땅을 걷어차며 달리면 말과 비슷할 정도로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물론 이게 내가 평소에 하던 완전한 무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부 착용할 수도 없는 것이, 지금의 나는 상태창이 없어서 현재의 근력 수치가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높은 편은 아닐 거였다.

평소의 내 무구를 전부 장착해 보았자 너무 무거워서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가볍게 검을 횡으로 그어 보았다.

언제나와 같이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과는 다르게 팔에 가해지는 압력이 느껴졌다. 무겁다.

혹시 싶어서 소지창을 뒤져 10년 전에나 썼던 근력을 증가해 주는 옵션이 붙어 있는 검은 반장갑을 끼고 다시 휘둘러 보았지만 조금 낫다 뿐이지, 여전히 검을 휘두르는 팔이 무거웠다.

역시 지금 상태로 광검을 휘두르는 건 무리인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체 얼마나 약한 상태인건데?

뭐, 그래도 혹시 몰라 언제나 단검 몇 개 정도는 상비하고 있는 편이다.

나는 광검을 다시 소지창에 집어넣고 단검 두 개를 꺼내어 허벅지에 찼다.

어쩔 수 없다. 무슨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빠르게 승부를 내는 수밖에.

“야, 너, 그게 도대체 뭐야?”

아, 잠깐 우성연을 까먹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우성연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울었는지 눈이 벌겋다.

“너, 너, 너……!”

“자꾸 너, 너 거리지 마라.”

“지금 그게 문제야? 그 아이템들 다 뭐야? 초보자라며. 거짓말이었어?”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 말에 우성연의 얼굴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그야 나는 그의 말에 맞장구나 좀 쳐 줬을 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나불거렸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

만약 제대로 예의를 갖춰서 이 아이템들을 어떻게 얻은 건지 물어본다면, 대답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아니, 사실 그럴 생각도 없고 여유도 없다.

나는 들판 저 건너편을 가리켰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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