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9화
천태호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아직 이른 점심인데도 불구하고 호구 둘을 낚아서 공돈 60만 원이 생긴 참이었다.
‘진짜 돈 벌기 쉬워졌다니까.’
신이 나서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그는 5년 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후 가까이 있던 던전에 뭣도 모르고 휘말려 들어갔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던 것이, 천태호가 휘말렸던 던전에 지금은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헌터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들과 딱히 친분을 쌓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운 좋게 각성도 했고 살아남았다. 클리어 보상도 꽤 좋은 걸 받아서 덕분에 레벨도 쉽게 올렸다.
그렇게 나름 힘쓸 줄 아는 헌터가 된 이후로는 돈을 벌 방법은 무척 많았다.
사람들이 헌터 각성을 꺼렸던 초기에는 하위 던전만 몇 번 돌아서 아이템을 팔아 치우는 것만으로도 꽤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다만 그것도 초반의 이야기였다. 헌터의 던전 공략이 돈이 된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우르르 하위 던전에 몰리면서 그건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천태호는 아직 블루 오션인 사업 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아직 각성을 하지 못한 일반인들을 각성시켜 주는 것.
던전을 공략하여 나온 아이템이 현실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만큼, 일반인들이 각성에 가지는 열망은 갈수록 과열되고 있었다.
하지만 고정형의, 그것도 소위 꿀인 던전들은 수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천태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직 정부에 미등록 상태인 던전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찾기만 하면 그게 노다지고 로또였다.
각성하기 쉬운 하위 던전이다, 너한테만 알려 주는 거다, 정부에 등록하면 여기도 곧 사람들로 가득 찬다. 그렇게 오픈 채팅방이나 인터넷에 정보를 흘리면 주르르 사람들이 낚여 들어왔다.
그리고 낚여 온 사람들이 모이면 던전 앞을 지키고 서 있다가 입장료 목적으로 돈을 받는다.
물론 실제로 하위 던전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혹시 클리어해서 돌아와도 상관은 없었다.
보통 일반인은 각성한다고 해도 대부분 수치가 일반인 그대로 출력될 뿐이라 각성한 지 꽤 된 자신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뭐, 그래도 사실 천태호 입장에서는 고위 던전인 쪽이 좋았다. 어쨌거나 따지고 들면 귀찮으니까 차라리 위험한 던전에서 죽어 버리는 게 낫다.
던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에서 알 수 없으니 천태호가 처벌받을 일도 없고.
오늘도 너튜브를 보면서 죽치기만 해도 60만 원이 굴러 들어오지 않았는가.
단, 천태호는 자신이 동영상을 보는 와중 허공에 휘황찬란한 시스템 메시지가 뜨는 것을 놓치고야 말았다. 세상이 갑작스러운 랭킹 발표에 시끄러운 것도 전혀 몰랐다.
한참을 영상을 보며 낄낄대다 보니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해가 지는 것이 빠른 산이라 그런지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천태호는 그제야 동영상을 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동영상을 보고 있어서 몰랐는데 산이 온통 조용했다.
오늘은 더 올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벌써 약빨이 다 떨어졌나.”
이런 수익 좋은 사업을 천태호만 생각해 냈을 리 만무했다.
이미 이런 사기 방법이 유행한다며 정부가 경고문을 건 지 오래였다. 예전만큼 사람이 몰려오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나저나 오늘도 클리어 실패인가 보네.”
천태호가 여기 와서 던전을 발견한 지는 2주일 남짓 되었다. 그간 50명 정도가 다녀갔다.
어리면 돈이 없어서 돌아갈 수도 있으니 30만 원, 절박하고 돈이 좀 있어 보이면 100만 원까지도 받아서 수익은 쏠쏠했다.
그런데 그중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두 명 정도는 운 좋게 각성 후 클리어해서 돌아올 만한데도 말이다.
‘진짜 S급 던전인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천태호는 갑자기 겁이 덜컥 들었다.
혹시 이렇게 방치하다 포화도가 높아져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큰일이었다.
천태호가 아무리 사기꾼이라지만 그래도 5년 전 그 악몽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유명 헌터들은 서울에 몰려 있는 만큼 진압되기까지 오래 걸릴 테고.
물론 천태호는 그런 상황에 맞서 목숨을 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럼 벌 만큼 벌었으니 양심적인 시민답게 정부에 신고나 할까?
“던전 신고하면 보상금이 얼마더라?”
미등록 던전을 발견해서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천태호는 대충 이 상황에 맞추어 돈이나 벌고 튀면 그만이었다. 던전이야 스타 헌터들이 알아서 클리어해 주겠지.
“보자, 던전 발견 신고 센터 전화번호가…… 어라?”
막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려던 천태호는 눈을 껌벅였다.
던전으로 향하는 입구에 있는 마름모꼴의 문양이 번쩍이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클리어했나? 50명이나 도전했다가 다 나오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무슨 일이래.
천태호는 몇 시간 전에 던전에 입장했던 두 남녀를 떠올렸다.
남자는 누가 보아도 애송이였고, 여자도 어려 보였다. 뭐, 묘하게 침착해 보이긴 했지만…… 에이, 씨. 따박따박 따지고 드는 거 아니야? 귀찮게.
딱히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천태호는 헌터 생활 초반에 운 좋게 구한 독사의 이빨이 달린 너클을 좀 더 단단히 꼈다.
곧이어 눈부신 빛이 문양 주변으로 퍼지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천태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와, 정말 클리어했구만!”
클리어까지 거의 3~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어떤 등급의 던전과 비교해도 빠른 클리어 시간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몇 시간 전에 본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천태호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 곧 가늘게 좁혔다.
천태호는 그런 여자를 보며 밝게 웃었다.
“각성했나 보네? 축하해.”
나타난 여자의 몰골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부상을 입었는지 여기저기 핏자국이 보였고, 남자는 기절한 상태인지 여자가 부축하고 있었다.
흠, 그래도 얘네가 클리어한 걸 보면 역시 고위 던전은 아닌가? 50명이나 도전했는데 나오지 않기에 겁먹었는데 이 정도면 몇 탕 정도는 더 뛰어도 되겠는데.
천태호가 계산기를 두드릴 때였다.
여자가 천태호를 바라보다가 부축하고 있던 남자의 몸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구급차라도 불러 줄까?”
친절하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던전에서 겪었던 일들이 너무 무서워서 넋이 나가기라도 한 건가.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한 산속, 여자의 옆에서 빛나고 있는 마름모꼴의 문양이 불길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제야 천태호는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천태호는 여자가 자신의 생각보다 좀, 나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 자체는 앳되었다. 대학생인가, 싶을 정도로. 헌터 일 따위는 무섭다고 손도 대지 않았을 것처럼 보드랍고 예쁘장한 생김새였다.
그런데 무슨 눈빛이 저렇게 무서워?
어, 그러고 보니 누구 닮은 것 같은데…… 하지만 천태호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여자가 손을 뚜둑, 하는 소리를 내며 꺾었다.
“뭐였더라? 먼저 화형부터 시작해서 고슴도치형…… 아, 2미터짜리 토끼한테 씹어 먹히는 형도 추가.”
“뭐라고?”
“뭐긴 뭐야. 너한테 내가 내릴 벌이지.”
천태호는 어이가 없어서 허허, 하고 웃었다.
“그래, 하긴 헌터가 각성 초반에 자신감 넘치는 건 국룰이지. 그거 깨 주는 것도 선배 헌터의 국룰이고.”
“국룰이 뭔데?”
“어려 보이는데 인터넷은 안 하나 봐?”
“아, 10년 전에는 많이 했는데. 그간 세상의 유행에서 동떨어져 있었거든.”
이제 여자는 고개도 뚝뚝 하는 소리를 내며 돌리고 있었다.
진짜 나랑 싸울 생각인 건가? 정말 건방졌다. 어려 보여서 봐주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천태호는 손에 낀 너클을 위협적으로 보여 주었다. 너클에 달린 독니가 검은색으로 둔탁하게 빛났다.
“이거 꽤 좋은 무기거든? 근력, 체력을 올려 주는 건 물론이고 조금 스치기라도 하면 D급 독에 중독돼. 여긴 산속이잖아? 바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회복 못 하고 진짜 뒈져.”
“어어, 그래? 그래서?”
초보라서 이 아이템을 설명해 주어도 가치를 모르는 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건 정당방위다. 천태호는 씩 웃었다.
“나 원망하지 마라. 네가 자초한 거니까. 나는 정말 보내 주려고 했는데.”
“그래? 난 보내 줄 생각 없거든.”
여자가 씩 웃었다. 끝까지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건방진 자세였다.
천태호는 울컥했다.
“맞기 전에 수다 떠는 게 취민가?”
“이런 미친년이…….”
이쪽에서 호의를 베풀어 주기까지 했는데 저런 태도라니, 더 말할 가치가 없다. 살인까지 저지를 생각은 없지만 아픈 맛 정도는 보여 줘야겠는데.
천태호는 여자를 향해 주먹을 들었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막 각성한 초보자가 이 주먹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최근에 던전 공략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천태호의 레벨은 15. 어지간한 하급 헌터는 넘어선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천태호의 배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발이 땅바닥에서 멀어졌다.
어라?
천태호는 날아가는 그 순간에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분명히 여자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왜 내 몸이…… 뒤로 날아가고 있는 거지?
멀어지는 시야에서 여자가 발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맞으면 정신을 차려?”
훅, 하고 여자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까만 반장갑이 끼워져 있는 주먹이 다가온 것이다.
여자가 씩 웃었다.
“오냐, 정신 차릴 때까지 맞아 보자!”
뻐어억!
그 말과 함께 주먹이 얼굴을 강타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천태호는 바닥으로 처박혔다. 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날아갔다.
거대한 고통에 천태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 아악! 내, 내 이빨!”
그러나 천태호의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몸이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여자의 주먹이 계속해서 턱을 강타했다.
“이건 황소!”
우직!
주먹이 닿을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천태호의 피가 여자의 얼굴에 튀었다. 거의 악마 같은 형상이었다.
“이건 토끼!”
푸학!
이번엔 입을 주먹으로 맞았다.
이빨이 부러져 목구멍으로 넘어갈 뻔했다. 천태호는 어질해지는 정신을 겨우 혀를 깨물고 막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이 여자가 말도 안 되게 강한 건 확실했다. 천태호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그래도, 내 주먹이 한 번만 스치면!
이 독니가 달린 너클로 한 번만 스치면 되는데!
하지만 천태호의 주먹이 닿기 전에 여자의 주먹이 천태호의 볼을 강타했다.
“이건 고슴도치 몫이다!”
쿠아앙!
아니, 근데 무슨 동물 이름이야?
천태호는 그 주먹에 맞아 땅으로 처박혔다.
여자가 완전히 나가떨어져 버린 천태호의 배를 부츠 신은 발로 꾹 눌렀다. 갈비뼈가 압박되면서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힘이었다.
숨이 막혔다.
말도 안 돼.
이제 막 각성한 헌터가 어떻게 이런 힘이? 아이템이라도 얻은 건가?
천태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여자를 올려다보았지만 여자는 발에 힘을 더 가할 뿐이었다.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면 너도 뒈질 각오 정도는 했어야지.”
“죽, 죽, 일 생각은 없었어……! 돈도 돌려줄 테니까 이 발 좀……!”
“저거 클리어 조건이 뭔지도 모르고 하급 던전이라고 말하고 돈 받고 사람들 들여보냈잖아. 그게 살인죄야.”
“그, 그런 법은 없어! 증거 있어?”
“버업? 증거?”
여자가 발에 힘을 주어 천태호의 배를 더욱 짓눌렀다. 저도 모르게 꽥, 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딴 건 필요 없어, 이 새끼야!”
퍽, 하고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과 함께 시야가 암전했다.
천태호는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 * *
“야, 정신 차려. 야!”
나는 정신을 잃어버린 남자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겨우 이딴 걸로 기절을 해?”
아직 화형식도 못했고, 고슴도치도 못 만들었고, 먹보 토끼한테 던져 주지도 못했는데!
젠장, 정말 내 힘으로 팬 게 아니라 아이템과 근력 강화 포션으로 올린 근력 수치라서 그런가. 기절하지 않을 만큼만 패려고 했는데 힘 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찼다.
에이 씨, 더 팼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