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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0화 (11/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0화

그 후.

나는 기절한 남자는 일단 내버려 두고 먼저 던전 신고 센터의 전화번호를 인터넷에서 찾아 전화를 했다.

지구는 참 편리한 게 내가 지리를 몰라도 핸드폰만 있으면 알아서 GPS 신호를 보내 준다는 것이다.

신고 절차도 간단했다.

신고 콜센터 직원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것인지 꽤 친절하게 내 전화를 받아 주었다.

“많이 당황하셨겠어요. 곧 지금 위치로 구급차를 보내겠습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다른 분들 상태를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물론이죠.”

“그럼 던전에 관한 상세 사항 신고와 각성자 등록 건은, 오늘은 정신이 없으실 테니 제가 따로 문자 넣어 드릴게요. 내일 확인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크으, 이 합리적인 일 처리 좀 봐. 나는 갑작스럽게 감동의 물결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실 타르토스에서는 망할 신분제 사회를 욕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현대인인 내 시각에서 보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이 많던지.

그런데 이렇게 신속하고도 합리적인 처리를 보니 눈물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이건 현대 사회 시스템의 승리다.

“으…… 헉……!”

내가 적당히 나무둥치 근처에 기대앉아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우성연이 깨어났다. 그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다 내 얼굴을 보고는 더 놀라서 누운 채 뒤로 기어갔다.

“사, 살려 주세요!”

“……내가 널 죽이기라도 했냐?”

“모, 모, 몬스터가아……!”

이상하다. ‘돌진하는 무사’ 특성은 대개 적만 보면 제가 죽는 줄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달려들고 보는 성격이던데.

아, 처음부터 너무 거대한 적을 만나서 그런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던전 클리어했어. 잘 봐. 여기 밖이잖아.”

“어? 어…… 어어, 그러네?! 어, 그런데 저 남자는 아까 우리한테 사기 쳤던…… 왜 저런 꼴이야?”

우성연이 나동그라져 누운 남자를 손가락질했다. 남자의 몰골은 아주 가관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어깨만 으쓱였다.

“멧돼지라도 만났나 봐.”

산불 맞은 멧돼지한테 치인 게 분명하다.

우성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던전 들어갔다 나온 나보다 더 심하게 다친 것 같은데.”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하, 뭐…… 그건 그렇다.”

우성연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처음 던전에 들어갔다 나온 게 꽤 충격이었던 것 같다.

“진짜 살았구나…….”

“…….”

누가 보면 아주 대단한 전투라도 해낸 줄 알겠다. 나는 한심하게 우성연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교훈을 좀 얻길 바라. 사기꾼에게 당해서 죽을 뻔한 거야, 너.”

앞으로 우성연이 정말 헌터 생활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헌터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이건 정말 뼈에 새겨 두는 편이 좋았다.

나는 진심을 담아 충고했다.

“죽기 싫으면 아무도 믿지 마.”

“그, 그렇지. 너 아니면 진짜 죽었을 거야.”

우성연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가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다.

“고마워, 예나야. 덕분에 살았어.”

“……나, 참.”

방금 전 사람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저렇게 순수하게 감사 인사를 할 줄이야. 저걸 보면 왜 특성이 ‘돌진하는 무사’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너 그러고 보니까 다쳤었지. 회복 포션은 없어? 아이템도 많던데.”

“회복 포션?”

“응, 나 아까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스토어에서 사 왔는데 너 줄게. 잠깐만.”

우성연이 아이템을 꺼내 드는 것을 보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어라, 지구에도 회복 포션이 있다고?

아니, 그걸 가게에서 판다고?

이건 정말 놀라웠다.

내가 깨어난 후 이틀간 열심히 인터넷을 하기는 했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는 아무래도 한정적이었고, 시간도 부족했다.

내가 주로 찾아본 것은 한국에서 헌터들이 어떤 식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지, 그리고 던전의 수와 각 던전의 난이도는 어떤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헌터들이 어떻게 물품을 거래하는 것까지는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엄청 꼼꼼한 것 같더니 포션은 까먹었어? 여기, 얼른 받아.”

우성연이 내게 선선히 포션을 내밀었다. 나는 일단 포션을 받아 들었다.

우유가 담겨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한 유리병.

-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열람 가능합니다.

- 이름 : 힐링 마법이 담긴 C급 회복 포션

- 제작자 : 선율 공방

- 효과 : 사용자의 외상, 내상 회복을 빠르게 도와줍니다. 음용, 외용 가능.

아, 마력이 담겨 있는 거구나. 순간적으로 타르토스에서 쓰이는 포션을 생각하고 깜짝 놀랐다.

타르토스에서 ‘포션’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신관이 성력을 담아 만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법사도 이렇게 힐링 마법을 응용해 포션을 만들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신관의 포션보다는 재생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다만 신관의 성력은 끝이 정해져 있는 만큼, 이론상으로는 마력을 무한으로 재생할 수 있는 마법사의 포션이 훨씬 더 저렴했기에 많이 쓰이기는 했다.

뭐, 저렴해 봤자 일반인이 섣불리 거래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다만…….

“고맙게 받지.”

그렇지 않아도 던전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고통이 심했다. 특히 고슴도치의 가시가 박혔던 팔과 황소의 불에 지지다시피한 등이.

나는 계속 착용하고 있던 앙겔루스의 가호의 어깨끈을 약간 헐겁게 한 뒤 포션의 뚜껑을 열고 목 뒤, 옷 안으로 대충 약을 흘려 넣었다.

등에 뿌린 액체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각과 함께 상처에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꼼꼼히 바르는 게 아니라 상처가 군데군데 남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고통이 꽤 경감되었다.

“어어, 그거 그렇게 쓰면…….”

우성연이 당황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고 나머지 약은 대충 찍어서 팔의 상처에 문질렀다.

어차피 C급 포션이라 대단한 재생력을 볼 순 없었지만 긁힌 정도의 상처는 금방 아물었고 심하던 고통도 꽤 가셨다.

“고마워. 그나저나 이 포션을 산 스토어가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다고? 이 포션은 얼마였어?”

“어? 30만 원. 그런데 돈은 안 줘도 돼.”

“돈 주려고 물어본 거 아닌데.”

마법사의 마력이 담긴 포션이, 아무리 하급이라지만 30만 원밖에 하지 않는다고?

말도 안 될 정도로 값싼 가격이었다. 도대체 한국 헌터계의 포션 시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어쨌건 빨리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 강원도 시외버스 터미널의 스토어를 검색했다.

떴다.

‘영업시간 10:00~21:00’…… 지금부터 뛰어가면 여유롭게 도착하겠는데.

“그럼 이제 난 간다. 구급차 곧 온다고 했으니까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치료받아.”

우성연이 일어난 나를 따라 엉거주춤, 따라 일어섰다. 그는 한껏 당황한 눈치였다.

“어? 이렇게 간다고?”

“그래.”

나는 우성연 근처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남자를 패는 데 사용한 근력 강화제는 순간적으로 근력 향상을 도와주지만 활성화 시간이 무척 짧았다. 그러니 병원에서 저 남자가 일어나 난동을 피우면 귀찮아질 거다.

물론 근력 강화 포션 따위야 많으니 저 남자를 한두 번 더 패 주는 일이야 어려울 것 없지만, 지금 나는 시끄러워질 만한 일은 피해야 했다.

“저 사기꾼, 경찰에 신고하는 건 너한테 부탁할게. 할 수 있지?”

“그거야 당연하지! 이체 내역도 있고 카페 글도 캡처해서 가지고 있으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그런데 예나야, 너 어떻게 가려고? 구급차 타고 시내까지 가는 게 더…… 아, 아이템?”

굳이 숨길 것도 없었다. 우성연은 이미 던전 내에서 내가 님페의 바람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가 우성연에게 당부할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네가 봤던 일, 던전 안에서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해 줘.”

“헐, 대박.”

우성연이 왜인지는 몰라도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이 과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 어쩐지 너무 세다고 생각했어. 역시 숨겨진 S급 헌터인 거야?! 정부 소속? 일종의 암행감찰이구나?”

이 녀석, 아무래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은데…….

우성연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죽는 날까지 이 비밀은 지켜 줄게!”

“……뭐, 그러든가.”

내게 유리한 착각이라면 정정하지 않아도 나쁠 건 없지. 나는 우성연에게서 등을 돌리고 이동할 준비를 했다.

우성연이 물었다.

“저, 혹시 연락처 물어봐도 돼?”

“안 돼.”

“……네.”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지.

나는 님페의 바람을 이용해 땅을 박찼다. 주변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흐려지고, 목표로 하는 장소만이 선명하다.

바람이 기분 좋게 내 몸을 타고 올랐다.

- 경고! 님페의 바람을 사용하기에 당신의 체력이 부족합니다.

아까 던전 내에서 본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 님페의 바람에 사용 제한 시간이 생깁니다.

- 제한 시간 00:30:00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업적치를 정산받은 덕에 체근민 수치가 모두 그 절망적인 수치 정도는 벗어난 덕분이었다.

거의 일반인에 가까운 스펙으로 한국 기준 B급 정도는 되는 던전을 클리어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훨씬 더 몸이 가벼워졌다.

좋아, 30분 내로 달릴 수 있는 곳까지 달려서 버스라도 잡아타고 스토어까지 가는 거다.

“또 만나아―!”

뒤에서 우성연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바람에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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