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1화
나는 영업시간 마감 전 ‘스토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원도 원주.
내가 한국에 있던 시기는 스무 살 때까지여서 개인적으로 와 본 일은 한 번밖에 없긴 했지만…… 오래된 것이 분명한 주위의 낮은 건물들 사이에 홀로 선 번쩍이는 최신식 건물이 무척이나 눈에 띄었다.
간판은 깔끔했다.
헌터 스토어
그 밑에는 현란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조한율 헌터의 선율 공방 포션 입점 완료!
“…….”
한국에서 거주한 지가 10년도 더 전의 일이긴 하지만 확실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맞아, 이랬던 것 같아. 나는 화려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 어머나, 손님! 괜찮으세요?”
친절한 직원이 인사를 하려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 몰골이 그만큼 심하기는 한가 보다.
가게는…… 역시 내 애매한 기억 속, 백화점의 명품관이 이랬던가 싶은 느낌이었다. 화려한 진열장에, 막상 놓여 있는 물건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검이 비단 같은 천 위에 놓여 진열되어 있거나 마네킹이 갑옷을 입고 있거나. 다른 한쪽 면에는 색색별로 진열된 유리병이 즐비했다.
아까 전 우성연이 내게 준 포션 병과 같은 병이었다.
“포션 구매하러 왔는데요.”
“아, 던전 공략하고 오신 거구나. 포션이 떨어지셨던 거예요? 아이구, 엄청 고생하셨겠네…….”
“……저, 중급 포션은 얼마예요?”
그 말에 직원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에 이상한 부분이라도 있었나?
“저희는 물론 정책대로 포션 정찰제를 도입하고 있답니다. 스토어에서 구입 가능한 포션 중 상급 포션은 300만 원, 중급 포션은 180만 원, 하급 포션은 30만 원이에요.”
뭐지, 이 애매한 가격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포션은 내 소지금에 비해 비싸기는 했지만 내 체감 물가로 따질 때 타르토스와 비교하자면 말이 안 될 정도로 싼 가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급 포션과 하급 포션의 가격 차이가 이상한걸.
왜 그런 건지 인터넷에서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다행히도 직원이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선율 공방에서 포션 대량 제작에 성공한 이후로 포션 가격이 정말 많이 안정화됐죠? 하급 포션을 이렇게 싸게 살 수 있게 되다니…….”
선율 공방이라는 곳에서 포션을 대량 제작해 냈다, 라.
대단하네.
나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한국은 차가운 자본주의 사회였는데 던전이 발생한 세계에서 이런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가 있다니.
무엇이 대단하냐면, 물론 포션을 대량 제작해 낸 기술도 대단하긴 했다.
타르토스에서도 하급 포션을 대량 제작해 낼 수 있는 마법사들의 협회는 존재했지만, 선율 공방이라는 곳은 타르토스와 달리 대량 제작한 후 가격을 내려 판매한다는 점이 특히 훌륭했다.
뭐, 한국에서는 아직 정부와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세상에서 그런 마음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지.
나중에 한번 찾아볼까. 공방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어떤 포션으로 드릴까요?”
“아, 구매 이전에…… 판매도 가능한가요?”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인가요? 네, 가능하긴 한데 정산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여긴 감정 스킬을 가진 직원이 없어서…… 바로 정산을 원하신다면 아이템 등급에 따른 최저가로만 즉매 가능하세요.”
이런, 아이템을 팔아 돈을 구할 수 없는 경우 지금 내가 살 수 있는 건 고작해야 하급 포션 하나 정도였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가진 아이템을 전부 최저가에 넘기기엔 너무 아까웠다.
한국에서 다시 구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혹시 감정 스킬이 있는 헌터 스토어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이번에도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내가 물은 질문이 이번에도 상당히 기초적인 상식이었던 모양이다.
역시 겨우 이틀 정도 인터넷만 보는 것으로는 정보 수집이 불충분했던 거군.
그래도 직원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바로 정산받으시려면 역시 서울 강남에 있는, 영원 길드 옆 헌터 스토어 본점이 좋죠. 자금력이 제일 좋으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저, 일단 하급 포션 하나만 구매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정보를 얻은 것에 비해 별로 팔아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했는데 직원은 끝까지 친절했다.
직원이 내가 주문한 하급 포션을 꺼내기 위해 진열대로 다가서자 팔목에 달린 팔찌에서 빛이 났다.
도난 방지 아티팩트로군. 정말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체계화된 시스템이었다.
30만 원을 체크 카드로 지불한 후 나는 스토어를 나섰다.
지출은 뼈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화상은 아프고 포션은 필요하니, 직원이 알려 준 대로 강남의 헌터 스토어 본점에 가서 아이템을 팔아 보는 수밖에.
스토어를 나서자 주위는 이제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까 막차 시간이 언제더라.
나는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이미 밤 9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시내에서 다시 새빛 병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막차 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다.
“이거 큰일 났네.”
내일 퇴원이니까 병원에서 하룻밤 정도 더 숙식을 해결하고 내일부터 어떻게 생활할지 계획을 세우려고 했는데…… 여기서 병원까지 어떻게 간담.
돈이 많다면 택시라도 타고 병원까지 가면 되겠지만 나는 일단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다. 그런 점에서 근처 숙박 시설에서 자는 것도 제외.
이번에는 님페의 바람을 다시 사용해서 병원까지 갈 수도 없었다. 이미 제한 시간인 30분은 거덜 난 지 오래였다.
그때 님페의 바람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던전을 클리어한 후 보상으로 한번 몸 상태가 회복된 덕분이라 아까처럼 재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냥 가지 말까.”
차라리 이 근처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 하룻밤 정도 버텨 보는 게…….
그때였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던 한 자동차가 내 앞에 멈추어 섰다.
자동차의 창문이 내려갔다.
“어? 강예나 환자님?”
자동차에 타고 있던 것은 이 솔방울 간호사였다. 솔방울은 나를 보고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무슨 꼴이에요! 오늘 아침에 외출하신 분이! 다치신 거예요?!”
“아…… 네, 좀.”
“그 옷, 아니, 장비…….”
솔방울은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에 고통의 기색이 잠시 스쳤다.
“……타세요. 병원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나는 얌전히 조수석에 탔다. 공짜로 병원에 돌아갈 수 있으면 나야 좋은 일이었다.
솔방울은 다시 시동을 걸며 내게 물었다.
“라디오라도 틀까요?”
“아뇨, 조용히 가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라디오를 틀어 봤자 랭킹 이야기밖에 더 하겠냐고. 더불어 랭킹 1위의 플레이어명이나 이야기하겠지.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충분히 힘들었다.
방랑하는 구도자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한국인의 입에서 듣는 날엔 내 손발이 파괴되고 말 거다…… 내 플레이어명이지만.
그나저나, 솔방울이 모는 차는 연두색의 자그마한 경차로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델이었다. 그래도 내게는 10년 만이라 그런지 좀 신선했다.
나는 자동차 안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10여 년 전, 나이가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땄더랬다.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고, 그걸로 중고차라도 사서 그 차를 몰고 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 보는 게 꿈이었는데.
……실제로는 차를 타지 않고도 멀리까지 가 버렸지.
“…….”
“…….”
그리고 한동안 차 안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나는 솔방울이 내게 무슨 일로 이렇게 다쳤는지 캐묻거나, 적어도 어떻게 바로 이런 장비를 얻은 건지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한참의 침묵 후 그가 물어본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가실 땐 제가 드린 옷을 입지 않으셨어요?”
“아, 그거.”
솔방울의 여동생이 입었던 옷. 그건 마트에 맡겨 놓은 캐리어 안에 있다. 마트에서 옷을 구입한 후 갈아입고 챙겨 놓았더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아입고 나서 마트 라커에 넣어 놨는데…… 내일 퇴원하면서 택배로 부칠게요. 오늘 바로 드리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아뇨, 그냥 가지셔도 돼요.”
그리고 다시 한참 침묵이 흘렀다. 나는 빠르게 흘러가는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 5년 전 던전 브레이크 때…… 가족을 잃었거든요.”
솔방울 간호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선의 옆얼굴이 깜깜한 차 안에서 희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 어쩌다 보니…… 운이 좋게 스킬을 각성했죠. 그래도 던전을 클리어한 후에는 던전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요?”
“비겁하죠?”
“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예나 환자님, 오늘 던전에 들어갔다 오신 거잖아요.”
솔방울은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내 행적을 알아차린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내 몰골을 보면 누가 보아도 던전 공략을 진행한 헌터 같긴 할 터였다. 내가 장착하고 있는 앙겔루스의 가호와 님페의 바람은 누가 봐도 아이템이고.
“예나 환자님도 두려웠을 텐데…… 일어난 지 겨우 이틀밖에 안 되셨는데 각성하고 던전까지…….”
보통은 그렇게 감탄하기보다는 병상에서 일어난 지 이틀 만에 던전에 돌진했으니 미친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할 텐데, 특이한 감각을 가지고 있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간호사님이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솔방울이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뭘요?”
“예나 환자님도 그렇고…… 다들 무서운데도 싸우고 있는데, 저는 스킬이 있으면서도 싸우지 않으니까요.”
핸들을 잡은 솔방울의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 얼굴에 스민 것은…… 죄책감인가.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저도 던전 공략을…… 하는 게 옳은 거겠죠.”
“……말해 두겠는데.”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억지로 던전에 들어가 봤자 자기 손해야.”
무슨 말을 하나, 했는데 생각보다 더 순진하고…… 한심한 이야기였다.
이런 사람들을 몇 명 보기는 했다.
특히 시스템에 의해 ‘각성’한 것이 마치 자신의 숭고한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신관들, 혹은 공명심에 불타는 기사들.
그런 이들 중에서도 처음 던전에 들어가 각성한 후, 몬스터 때문에 겁에 질려 던전 공략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그림자처럼 찾아오는 것이 바로, 누군가는 지키기 위해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기여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이다.
대개는 그것을 던전을 공략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거나, 혹은 아예 의식 밖으로 밀어 버리는 것으로 해결하는데…… 저렇게 얼빠진 놈들이 있다.
차라리 남들처럼 아주 외면하면 될 텐데 저렇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이러나저러나 멍청한 일이었다.
“사명감으로 던전을 공략해 봤자 남는 것도 없어. 그딴 걸 누가 알아준다고…….”
솔방울은 운전하느라 나를 돌아보지는 못했다. 운전 초보인가 보다. 나도 솔방울을 쳐다보는 대신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회색빛의 도로가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무기질적인 풍경.
이 풍경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건 내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러니 눈앞에 놓인 시련을 모두 뛰어넘으면 나는 다시 평온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솔방울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던전에 들어간 거잖아요, 예나 씨는.”
“그래.”
나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너는 내가 아니잖아.”
이 말인즉슨, 시스템으로 강제 랭킹 1위가 된 주제에 스펙은 허접 깡통인 신세가 아니라는 의미다.
생각하니까 또 빡친다.
“당신은 당신 할 일을 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니까.”
“……제가 할 일이요?”
“그래.”
애초에 나는 사실 왜 솔방울 간호사가 고민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이팅게일의 가호는 상당히 유용한 스킬이었다.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지는 못해도 더 악화하는 건 막아 주니,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궁무진했다.
실제로 나도 이 솔방울 간호사의 스킬 덕분에 그나마 컨디션을 유지하며 5년간 누워 있어서, 깬 지 이틀 만에 던전에도 들어간 거 아닌가.
“나는 당신 덕분에 내 할 일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거라도 위안 삼든가.”
핀잔주려고 한 말이었는데, 내 말을 들은 솔방울은 뜻밖에도 아주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강예나 씨.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대체 뭔 말을 하는 건지.”
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솔방울 입장에서 나는 일어난 지 겨우 이틀 된 환자일 텐데 무슨 저런 이야기를 한담.
……정말 이상한 놈일세.
* * *
이우연은 던전을 클리어한 후 모종의 이유 때문에 기분을 아주 잡친 상태였다.
이대로 일주일은 홀로 잠수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폰을 끄기 전 알림창에 이메일이 왔다는 표시가 떴다.
메일의 제목은 간결했다.
안녕하세요, 이 솔방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