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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4화 (15/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4화

그렇게 고민을 매일매일 내일의 나에게 미루다 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변명을 좀 해 보자면, 나는 이렇게 쉬어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지난 10년간 하루 이상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던 데다, 이렇게 폭신한 침대에서 안전하게 자다 보니 그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호텔 안에 헬스장이 구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단한 기구는 없었지만 지금의 나에겐 러닝머신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최근의 내 일과는 이랬다.

일어나 있을 때는 무조건 헬스장에 가서 몇 시간씩 뛰었고, 그러다 도저히 걷지도 못할 정도로 지치면 방으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

배가 고프면 근처 음식점에 가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되는 날.

체근민 수치는 개미 눈물만큼밖에 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운동을 거르지 않은 나에게 주는 보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아침 운동을 끝내고 점심을 먹은 후 숙소로 삼고 있는 호텔의 근처, 강남역의 뒷골목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개인 카페로 향했다.

참고로 오늘 점심은 인터넷이 보증하는 맛집, 호텔 근처 백반집에서 먹은 돌솥비빔밥 정식이었다.

한국의 식도락 최고다.

여기는 최근 내가 인터넷 커뮤니티 후기를 뒤져 찾아낸 디저트 맛집이었다. 이 일주일 정도 내 얼굴에 익숙해진 알바생이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무엇으로 드릴까요?”

“음…… 혹시 추천해 주실 거 있어요?”

“저는 모카 프라푸치노가 제일 맛있더라고요.”

“그럼 그걸로 한 잔 주세요. 그리고 녹차 마카롱도 하나 주시고요.”

“프라푸치노에 휘핑도 올려 드릴까요?”

“네, 아주 많이.”

알바생이 진열대에서 빵빵한 녹차 마카롱을 꺼내 주었다. 나는 프라푸치노와 마카롱을 들고 이 일주일 간 앉았던 창가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내 컨디션은 한마디로 최고였다.

햇살도 좋고, 오늘은 잠도 푹 잘 잤다.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여유인지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한 입 베어 문 마카롱은 맛있었고 모카 프라푸치노의 초코 휘핑은 최고였다.

원래의 모습은 찾아보기도 힘들게 내용물이 빵실해진 디저트들…… 이건 더 이상 외국의 디저트가 아니다. 이쯤 되면 이건 K-디저트다!

내가 한참 프라푸치노와 디저트를 즐기고 있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말을 걸어왔다. 나 말고는 손님이 없어 심심한 모양이었다.

“저, 이 근처에서 일하세요? 이 며칠 계속 여기로 오시길래.”

“아니요, 근처에서 일하는 건 아니고요. 거의 백수예요.”

아르바이트생의 시선이 동정, 혹은 공감의 것으로 변하기 전에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필요할 때만 일하거든요.”

“와, 부럽다. 그럼 여행은 안 가세요? 전 여행 가려고 돈 모으고 있는 건데.”

“아, 그러시구나. 저는 멀리 떠나는 여행은 많이 해 봤거든요. 이제 질려서요.”

“대박. 완전 부러워요.”

어지간히 심심했는지 아르바이트생이 이제 어디를 여행 다녀왔는지 물어볼 기세길래, 나는 웃으면서 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또 올게요.”

밖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쳤다. 완연한 겨울이었다.

햇살이 비치고, 강남 한복판의 거리 양쪽으로 커다란 유리창이 달린 가게가 즐비했다.

평일 대낮이었다.

오가는 직장인들은 아주 분주했고, 군데군데 보이는 장비를 걸친 헌터들도 이미 일상적인 풍경에 불과했다.

나도 남은 프라푸치노를 빨대로 쪽쪽 빨면서 그 흐름에 섞이려고 할 때였다.

“으악!”

갑작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비명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내 쪽으로 걸어오던 한 남자가 입을 벌린 채 내 등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경악하고 있었다.

“피해요!”

내가 뒤늦게 님페의 바람을 발동하려는 순간, 바로 등 뒤에서 굉장한 바람과 소음이 스쳤다.

사람들이 나의 뒤를 보며 비명을 지르고, 고함치며 다가오거나, 도망가거나, 혹은 인도 저편에 있는 사람들은 핸드폰의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돌아보았다.

“어어어!!”

“저거, 저거 왜 저래!”

“구급차 불러!”

“……저거 설마…….”

내가 뭘 어떻게 할 새도 없었다.

등 뒤로 지나간,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불타는 트럭이 건물로 돌진해 부딪혀 폭발했다.

건물 근처의 인도를 걷던 사람들은 운 좋으면 피했고, 운이 나쁘면 그 트럭에 휘말렸다.

건물을 들이박은 트럭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불길이 순식간에 사람들을 휩쓸어 갔다. 휘말린 사람의 비명은 불꽃보다 늦게 찾아왔다.

차가 돌진한 건물은 다행히 그대로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창문의 유리는 비산하며 거리로 내리꽂혔다.

평화롭던 거리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했다.

나는 급하게 트럭이 처박힌 건물을 확인했다. 자욱한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다친 건 분명해 보였다.

망설일 새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소지창을 소환했다.

‘아, 젠장. 회복 포션은 하급만 두 개 사 놨는데.’

그래도 아쉬운 대로 응급 처치는 할 수 있겠지.

나는 일단 근력, 체력 강화제를 최대한으로 복용하고 근력 강화 효과가 있는 반장갑을 착용했다. 이 정도면 적어도 20분 정도는 구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준비를 마친 내가 곧장 트럭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남자 하나가 내가 가던 길을 막았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현장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함부로 손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뭐지, 우연히 지나가던 구급 요원인가?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멈칫하는 사이 남자가 트럭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아니, 아무리 구급 요원이라고 해도 그렇지. 나처럼 몸에 걸친 장비도 없어 보이는데 저거 괜찮은 거야?

“이거 실제 상황입니다!”

남자가 갑자기 오른쪽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카메라였다. 나는 경악했다. 남자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길을 가는데 저 트럭이 갑자기 건물로…… 걱정 마세요, 구급차 불렀으니까! 제가 일단 한번 다가가 보겠습니다!”

“저 미친 새끼가 뭐 하는 거야?”

나처럼 다친 사람들이 없나 보려고 다가가던 사람들 중 하나가 그렇게 내뱉었다.

구급 요원이라 먼저 처치하려고 사람들을 제지한 건가, 했더니…… 남자의 퍼포먼스는 갈수록 과해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제가 구급 자격증 땄거든요. 이럴 땐 일반인들이 나서는 것보다 제가 운전자를 구출할 수 있으면 해 보려고 합니다. 아, 짬뽕먹고싶어 님, 5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이런 상황에서 저런 짓을 하고 싶냐?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남자의 오른손에서 카메라를 빼앗았다. 카메라를 향해 이상한 몸짓을 하고 있던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

“꺼져, 이 새끼야!”

나는 카메라를 내동댕이치는 동시에 남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근력을 최대한 강화해 최종 수치가 60이 된 내 주먹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남자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튕겨 나가듯 쓰러졌다.

“그 5000원으로 이빨이나 사라, 개자식아.”

짜증 나는 남자를 처리한 나는 재빠르게 트럭을 향해 뛰어갔다. 이미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트럭 운전석 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춤추는 인영이 보였다.

“……젠장.”

운전석에 있던 사람은 이미 늦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운전수가 죽었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까 사람과 함께 건물을 들이박았으니 트럭 밑에도 사람이 깔려 있을 것이다.

나는 한번 숨을 들이 킨 후 트럭의 밑으로 두 손을 집어넣었다.

- 당신의 허약한 신체 때문에 앙겔루스의 가호가 지닌 고통 경감 효과가 떨어집니다.

- 경고! 당신의 생명력이 저하됩니다.

오냐, 일주일 만에 보니까 반갑구나! 빌어먹을 시스템 같으니!

두 손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아니, 실제로 불덩이에 손을 댔으니까 불에 타고 있는 게 맞지!

“윽!”

나는 힘을 주어 트럭의 몸체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리고 피 냄새가 느껴졌다. 트럭 밑에 깔려 있던 남자가 힘없이 팔을 들어 올렸다.

부상은 심한 것 같았지만 살아 있었다.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이 어어, 하는 소리를 냈다.

“살아 있다! 살아 있어!”

“누가 좀 꺼내 봐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가 트럭을 잡고 있는 동안 불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트럭 밑에 깔린 남자의 팔을 붙잡고 빼냈다.

나는 사람들이 남자의 몸을 빼내는 동안 이를 악물고 트럭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생각해 보았자 아픔밖에 느껴지지 않으니까.

- ‘관철하는 아귀’의 특성 보정을 받아 당신의 의지력이 강화됩니다. 고통을 절반밖에 느끼지 않습니다.

아주 고오맙다, 시스템 새끼야.

내 체감으로는 영원 같았지만 실제로는 몇 분 되지 않아 깔려 있던 남자가 무사히 빠져 나왔다.

“다들 물러나요!”

사람들이 우어어, 하고 소리를 내며 트럭에서 몇 걸음씩 물러났다. 사람들이 안전해진 것을 확인한 나는 그때야 겨우 트럭에서 손을 놓았다.

심한 화상을 입은…… 아니, 그냥 불속에 처넣은 두 손은 거죽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나, 싶을 정도로 아팠다. 차마 내 손의 상태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나는 눈을 돌린 채 소지창에서 포션 중 하나를 꺼내어 손바닥에 부었다.

치이익.

무슨 열 오른 금속을 식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괘, 괜찮으세요, 헌터님?”

“저는 괜찮으니까 남은 포션 좀 저 사람한테…….”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포션으로 다친 부상자를 응급 처치해 줄 생각이었던 나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내 감이 나에게 무언가 불길한 것을 속삭이고 있었다.

― 이 일주일간 너무 평화롭지 않았니? 이상하지, 너한테 이렇게 긴 여유가 주어질 리가 없는데.

내 시야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진,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쿵, 쿵, 쿵.

바닥이 울리고 있었다.

‘아.’

나는 허리의 검에 손을 올렸다.

부상자 옆에 모여 상태를 살피던 사람들도 슬슬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강남 한복판에서 이렇게 큰 사고가 났으니 대로변의 모든 건물에서 사람이 몰려나올 법도 한데, 사고가 났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 외에 인파가 몰리는 기색이 없었다.

‘설마.’

“뭐야, 다들 어디 갔지?”

“구급차는 왜 안 오는 거야?”

그 순간 갑작스럽게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코를 막았다. 쿵쿵 울리는 바닥의 진동 또한 거세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 서, 설마……!”

거리를 맴도는 것은 피와 내장이 썩어 들어가는 냄새.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 일주일간 보지 않아 속 시원하다고 좋아했던 황금색 글씨로 된 시스템 메시지가, 드디어 허공에 떠올랐다.

나에게만 보이는 개인 메시지가 아닌, 전체 공지였다.

- 경고!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납니다.

메시지가 뜨는 동시에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거리의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핸드폰의 알람 소리는 그 자체로 기괴했다.

사람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재난 문자다!”

“몬스터, 몬스터다! 도망가!”

“던전 브레이크다!”

젠장, 이게 무슨 난장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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