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5화
Chapter 3. 천사의 강림
거리는 순식간에 비명으로 가득 찼다.
처음 혼란이 온 것은 인도였다.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상황을 조금 더 늦게 알아차린 도로의 차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속력을 내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호를 지킬 리 없었다. 거리의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옥이 되어 가는 풍경 사이, 넓은 8차선 도로 너머로 몰려오는 몬스터 떼가 보였다.
- 시스템 알람 : 몬스터의 등급과 종류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그딴 걸 조회해서 뭐 할 거야? 어차피 다 베야 하는데.
이 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도로를 점령한 몬스터들은 순간 기가 질릴 정도로 많았다.
얼핏 헤아리기에도 수백 마리.
대부분의 몬스터는 도로를 헤치며 달아나는 사람들을 쫓았지만, 몇몇 지능이 뛰어난 놈들은 냄새를 맡고 건물의 문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자 더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했다.
손을 쓸 새도 없이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급한 대로 내 주변에서 깜짝 놀라 엎어져 있던 한 남자를 향해 덮쳐 오는 몬스터 한 마리를 검으로 베어 넘겼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마(魔) 속성의 몬스터에게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돼지의 모습을 한 오크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바로 앞에 있던 탓에 녹색 피를 완전히 뒤집어쓴 남자가 머리를 감싼 채 비명을 질렀다.
- 경고! 당신의 체력이 부족해 에이펙스의 광검이 제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 검을 휘두를 때마다 체력이 현저하게 소진됩니다.
- 물약의 효과 지속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자비 없이 뜨는 시스템 메시지들.
이럴 바엔 죽여라, 그냥!
젠장, 리셋이 되어 버린 내 수치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러닝머신을 탈 게 아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던전이나 공략하고 다닐걸. 이따위 오크 같은 잡몹 하나 베었다고 손목이 덜렁거릴 듯이 아팠다.
안 그래도 화상을 입은 손바닥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아 아파 죽겠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한 남자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으악, 나 일반인인데…… 사, 살려 주세요!”
“방금 살았잖아.”
나는 남자의 팔을 잡고 일으킨 다음 몬스터 반대 방향으로 엉덩이를 걷어찼다.
“살고 싶으면 뛰어!”
“으, 으아아아아!”
남자가 엉덩이를 얻어맞고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가까운 건물 안으로 대피하려고 했지만 건물의 문에는 이미 셔터가 내려오기 시작한 상태였다. 남자가 미친 듯이 내려가는 셔터를 두드렸다.
“제발, 제발 들여보내 줘! 열어 달라고!”
“그럴 시간에 뛰라고, 등신아!”
아오, 진짜 답답하게 구네!
그 와중에 오크 한 마리를 더 베어 넘긴 나는 결국 손목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소지창에서 단검을 꺼냈다.
에이펙스의 광검 효과를 생각해서 들고 있으려고 했지만 지금 내 체력으로 롱소드를 휘두르고 다니는 건 무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헌터 스토어 본점과 영원 길드가 강남역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지점 근처에 있던 헌터들이 많았다.
나 외에도 상황을 파악한 헌터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들어 괴물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저기부터 막아! 방어선을 구축해야 돼!”
“여기로 저 트럭 던져!”
다만 불행한 점도 있었다. 아무리 헌터가 모여들어 봤자 한낮의 강남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몬스터 떼에 짓밟혔고, 헌터들의 방어선이 완벽히 구축되기 전에 침입한 몬스터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 와중이었다. 아까 전 내가 달리라고 윽박질렀던 남자가 울상을 지으며 나에게로 다시 달려왔다. 그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 도와주세요! 건물 안까지만 바래다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그럴 짬이 있는 걸로 보여?”
상황은 급박했다.
헌터들은 몬스터와 싸우면서 자동차니 자판기니 하는 것을 도로로 쌓아 방어선을 만들고 있었다.
나도 헌터들이 방어선을 만드는 동안 앞에서 흘린 몬스터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단검에 독약을 사용해 몬스터들에게 던지는 중이었다.
즉사는 하지 않더라도 저 정도면 인간을 찾기 전에 죽거나 꽤 약해질 거다.
남자가 애타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지만 저는 아직 각성도 못 해서…….”
“지금 이렇게 내 옆에 있다가 뒈질걸.”
그도 그럴 것이 내 생각이 맞다면 곧…….
- 경고! 1차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몬스터 등급 제한이 있습니다(D, F급 한정 출현)
- 1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20:00
-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동안 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황금색의 공지창이 떠올랐다. 헌터들 사이에서 이 악문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남자의 얼굴도 절망에 물들어갔다.
“모, 몬스터 웨이브……!”
하긴, 일반인이라도 5년 전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다고 했으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모를 수는 없었다.
남자가 귀찮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했으므로, 나는 헌터들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돌려 뒤쪽을 향했다.
“건물 문을 열 수가 없다면 지금부터 구역 끝까지라도 달려가. 몬스터는 구역의 중앙에서만 생성되니까, 거기서 버텨.”
“버, 버티다니 어떻게…….”
“여기서 막을 거니까, 빨리!”
가라, 좀!
이번에도 엉덩이를 걷어차야 하나, 그렇게 생각했으나 다행히도 남자는 울면서 달려갔다.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몬스터들을 처리해 나가면서 일단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고정형 던전은 던전 안에 입장해 미션을 클리어하면 던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는 클리어할 수 있는 미션이라는 것이 없다. 대신,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며, 공지된 시간 동안 시스템이 지정한 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
즉, 정해진 시간 안에 살아남으면 된다는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동안 쏟아지는 몬스터는 엄청난 숫자니까.
“젠장! 벌써 구역 제한이 걸렸어!”
“군대 진입 소식은 없었어? 화력 없으면 버티기 힘든데!”
“이미 구역 설정 끝났잖아, 끝나기 전까지는 못 들어와!”
“여기가 지금 제1선이야! 버텨야 돼!”
‘아, 씨.’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겨우 20분. 그것도 D에서 F급의 잡몹들이 튀어나오는 시점에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다니.
사실 이럴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광역기를 가진 마법사나 스킬을 가진 헌터가 범위가 넓은 공격 마법으로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공격하고, 그동안 주위를 근접전 특화 용병들이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반인들에게 몬스터의 주의가 쏠리지 않도록 도발하는 효과도 있으니까.
그래서 홀로 버티는 대신, 광역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를 찾기 위해 헌터들이 모여든 방어선 근처로 온 거였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가장 먼저 생각해 낼 방법이니까. 누군가가 지원하면 그 곁을 보호하려고.
그러나 헌터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면서 엄폐물 사이로 몬스터들을 처치할 뿐, 누구 하나 나서는 법이 없었다.
참다못한 내가 물었다.
“광역 스킬이나 마법 능력 갖고 있는 사람 없어요?”
“아, 나설 사람 없어요.”
“예?”
“이렇게 1차 몬스터 웨이브부터 나서면, 그다음 웨이브는 어떻게 버팁니까? 누가 본인을 계속 보호해 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헌터 중 누군가가 뾰족한 말투로 대꾸했다.
나는 그 태도에 황당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제껏 갖춰 놓은 시스템을 볼 때 꽤 체계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선에 나서 보니 생각보다 헌터들 사이의 불신감이 대단해 보였다.
물론 흔히 있는 일이기는 했다.
광역 스킬이나 마법은 사용자의 극심한 체력 소모를 요구하는데, 몬스터 웨이브는 대개 3차까지 일어나고 갈수록 활성화 시간도 길어진다. 본인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해 불안한 마음은 당연했다.
그래서 타르토스에서는 이럴 경우 전투에 나선 마법사나 용병을 최선을 다해 보호한다는 맹세를 신관을 통해 맺었는데…….
‘여긴 신관이 없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맹점이었다.
물론 타르토스에서도 다들 쉽게 나선 것은 아니었고 절대적인 수단도 아니었지만 그나마 안전 보장 수단이 있었는데, 여긴 그런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너의 목숨을 그저 나를 믿고 맡겨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도 지금은 반드시 누군가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어떻게 하지?
얼기설기 만든 방어선은 헌터들 덕분에 일단 지켜지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은 이제 방어선 너머의 건물에 침입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이, 피 냄새가 느껴졌다.
헌터들도 비참한 표정이었으나 역시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수밖에 없나?
결정하려면 당장 해야 했다. 하지만 머릿속의 저울은 쉽사리 무게를 맞추지 못했다.
- 1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14:24
1차 웨이브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5분가량.
내가 생각하는 방법을 쓴다면 첫 번째 몬스터 웨이브는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럼, 정말로 ‘다음’이 없다.
2차 웨이브, 3차 웨이브는 더 강한 몬스터가, 그리고 더 긴 시간을 버텨야 했다. 1차 웨이브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판에 2차, 3차 웨이브 때는?
다들 제 몸 지키기에 급급할 텐데, 그러면 정말 이 구역 내에 있는 모든 인구가 죽을지도 몰랐다.
그때 내 귀로 찢어지는 비명이 닿았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뭘 저울질하는 거야.
“X발, X까라고 해!”
난 그런 거 못 해! 나는 이를 악물었다.
“소지창 소환……!.”
그때였다.
시퍼런 불꽃이 하늘에 번개처럼 번쩍였다.
하얀 구름이 물들었다가 제 색을 되찾는 순간, 무언가 섬광처럼 방어선 너머, 개미 떼처럼 몰려오던 몬스터들의 대가리에 꽂혔다.
콰아아앙!
땅이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깜짝 놀라 내게로 튀어 오른 커다란 콘크리트 조각을 검으로 쪼개 버렸다.
누군가가 외쳤다.
“이우연이다!”
“이우연 헌터다!”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건물 옥상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았다, 그런 목소리도 들려왔다.
모두가 위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나 또한, 사람들이 연호하는 ‘이우연’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자타공인 한국 최강의 헌터. 시스템 공식으로는 랭킹 2위인 이우연. 통칭 모나미.
그는 얼굴이 가장 잘 알려진 랭커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가 랭킹 2위였다는 게 워낙 충격이었는지 이 일주일간 화제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사정에 어두운 나도 다른 랭커들 얼굴은 모르지만 이우연만은 알고 있었다.
화면 너머로 그를 본 첫인상은 이랬다.
아이돌 같네, 예쁜 인형 같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가 많을 법하구나.
그 정도의 인상이었다.
솔직히 하도 예쁘장한 얼굴이라 속으로 그를 조금 얕보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고개를 든 나는, 약간 눈가를 좁혀야만 했다.
‘그런데 저게.’
실물을 본 인상은 또 조금 달랐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건’ 하늘에서 날아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 천사?”
곁에 있던 헌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멍청한 소리였지만 아예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남자의 뒤에는 황금색으로 물결치는 것 같은 거대하고 흰 한 쌍의 날개가 달려 있었으니까.
날개가 퍼덕이며 이우연이 우아하게 땅으로 착지했다. 그런 그의 한 손에서는 번개 같은 푸른 불꽃이, 또 다른 한 손에는 롱소드가 들려 있었다.
마력이 맺힌 검 끝이 몬스터를 벨 때마다 머리가 날아가고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몬스터를 구워 버렸다.
새까맣게 몰려들던 몬스터는 불길에 정화되듯, 끔찍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죽어 가고 있었다.
몬스터를 태워 죽이는 푸른 불꽃에 비치는 얼굴은, 오묘하게도 아주 예뻤다.
먼발치에서도 선명한 이목구비가 눈밭의 발자국처럼 떠올랐다. 얼굴은 하얗고 머리카락은 까맣고, 그런데 입술은 유독 붉었다.
“어…… 그건 백설 공주였던가?”
내가 혼잣말로 흘린 헛소리를 듣기라도 한 건지, 이우연이 천천히 헌터들이 모인 방어선을 돌아보았다.
잠시 눈이 마주친 듯했으나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날개 달린 천사처럼 생긴 남자는 실제로는 아무와도 시선을 맞대지 않고, 그러나 모두와 눈을 마주친 것처럼 방긋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다들 물러나 있어요.”
어딘가에서 안도의 한숨이, 어딘가에서 감사의 표시를 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누구나 경도될 수밖에 없는 연출.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와, 씨.’
나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저건 진짜 불여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