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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6화 (17/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6화

그렇게 나는 한동안 모두와 함께 이우연이 연출해 내는 ‘쇼’를 관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쇼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이우연이 오른손을 한 번 휘두르면 푸른 불길이 날름거리며 몬스터를 휩쓸었고, 건물을 타고 올라가며 불길을 피하려던 몬스터는 날아오른 이우연의 왼손에 들린 검에 목이 날아갔다.

1차 몬스터 웨이브는 몬스터의 등급이 낮은 만큼, 저렇게 강력한 광역기로 조져 버리면 끝난 거나 다름이 없다.

몬스터가 꾸역꾸역 몰려나오던 거리에는 이제 몬스터들이 타다 만 시체들이 즐비했다.

이거 뭐야. 마술쇼야?

일반인들이 대피해 있던 건물 안에서 환호성이 거리로 울려 퍼졌다.

“이우연! 이우연!”

“멋지다, 모나미!”

지금 모나미라고 한 거 누구야?

헌터들 사이에서도 안도감이 흐르고 있었다.

헌터들은 이제 방어선을 넘어가 이우연이 쏟아 낸 마법을 운 좋게 피했거나, 혹은 빗맞아서 비실대는 몬스터를 확실히 처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건물 내로 침입해 가려는 몬스터들을 함께 처리했다.

한 건물의 유리문으로 꾸물꾸물 기어가는 공벌레 같은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유리 너머로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한 여자가 입을 크게 벌리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발치에 누워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무언가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무척 많이 다친 남자가 누워 있었다.

뭐지, 포션을 달라는 건가?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여자의 입모양을 읽었다.

“아까, 당신이, 구한 사람?…… 아.”

그러고 보니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기 전에 트럭에 깔린 사람을 구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몬스터에게로 달려갔다.

다행이다, 살아남아서.

- 1차 몬스터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 최대 업적자: 이필연

- 2차 몬스터 웨이브까지 대기 시간이 주어집니다. 00:20:00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전체 공지로 뜬 그 시스템 메시지 덕분에 거리로 다시 한번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가 이우연의 이름을 연호했고, 그 환호를 들으며 이우연이 드디어 땅으로 착지했다.

천사처럼 날아서 땅 위에 내려선 이우연이 얼기설기 구축한 방어선 근처에 모여든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인사를 할 상황은 아니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영원 길드 소속이 아닌 헌터분들도 제 지시를 따라 주시길 바랍니다.”

“아, 알겠습니다!”

“뭘 하면 될까요?”

불신이 넘치던 헌터들 사이사이, 여기저기서 대답이 쏟아졌다. 극적일 정도의 변화였다.

하기야 저 정도 능력을 보여 주며 내려왔으니 그것도 당연한가.

나는 땅에 내려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이우연을 천천히 살폈다.

멀찍이 볼 때보다 가까이서 보니 더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자가 지는 윤곽의 얼굴이었다. 전형적으로 사진보다 실물이 나은 타입이다.

무엇보다 그는, 생각보다 키가 훌쩍 컸고 덩치도 큰 편이었다. 마검사라고 하더니 정말로 상당히 단련한 체구였다.

심지어 팔다리도 길고, 하필이면 달라붙는 검은 목 폴라를 입고 있어서 팔의 근육이 잘 보였다.

젠장,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도, 나도…… 근육이 사라져서 그렇지……!

이제 이우연은 헌터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몇몇 헌터들과는 눈길을 주고받는 것을 보니, 아마도 아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줄곧 한국에서 활동했을 테니 당연한가.

“안타깝게도 이 구역 내에 영원 길드와 헌터 스토어 본점 건물 자체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헉, 그럼 헌터는 여기 모인 수가 전부겠군요.”

“네, 그러니 먼저 마법을 쓸 수 있는 헌터, 그리고 광역 스킬을 쓸 수 있는 헌터들은 왼쪽으로 모여 주십시오. 근접전 특기인 분은 오른쪽입니다. 치유 스킬을 쓰실 수 있는 분들은 제 옆으로 와 주시고요. 2차 웨이브 대비해서 팀을 짜겠습니다.”

생긴 것만 보면 천사 같은 얼굴이, 천사 같은 미소를 짓고, 합당한 말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모두 따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일단 오른쪽으로 가서 섰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들 이우연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도 그럴 게 등장이 등장이었다.

타이밍을 노린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압적인 연출이었다.

모두가 몬스터가 몰려오는 방어선 너머를 절망적인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때,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구세주처럼 내려온 헌터.

물론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했다. 이렇게 나서서 능력을 썼으니, 이제 헌터들이 아까 나한테 말했던 것처럼 누구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날개 같은 이동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빨리 등장할 수도 있었을 거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대개 이런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구역은 그리 넓게 설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보면, 투명한 원형의 막이 저 건물 위로 생성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원형의 막이 둘러져 있는 곳이 구역 안이다.

이우연은 영원 길드와 헌터 스토어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고, 여긴 강남역 근처이니…… 님페의 바람을 이용했을 때 구역 끝에서 끝까지 달리는 데 15분 컷 정도일까.

“……5분 남짓인가.”

애매하네. 일부러 늦게 나온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 빠르게 나타난 것도 아닌 것 같은 시간이다.

랭킹 2위 플레이어의 성향을 단정 짓기에는 아직 근거가 부족한데…….

“저기요, 저기요.”

내 옆에 서 있던 다른 헌터가 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나는 생각에서 빠져 나와 고개를 들었다.

“네?”

“저, 이우연 헌터가 부르고 있어요.”

“엥?”

나는 그제야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옆까지 다가온 이우연을 발견했다.

정말이었다. 마치 연예인이라도 본 것처럼, 주위에 있는 헌터들이 호기심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그 시선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이우연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우연입니다.”

뭐야, 이 새끼.

나는 불신감에 가득 찬 채로 내게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았다.

뭐지, 얘 왜 나한테 악수 청하는 거야?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단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제가 지금 손이 더러워서.”

“저는 상관없는데.”

이우연은 여전히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라면 거절당했으니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손을 거둘 텐데 이우연은 그러지 않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자, 악수.”

나는 이우연이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옆에서 나를 불렀던 헌터가 뭘 하냐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잡지 않고 이우연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예, 그렇군요. 저는 상관있어서.”

그 대답에 헉, 하는 소리가 났다. 옆에 서 있던 다른 헌터들이 낸 소리였다. 10분 후에는 몬스터가 몰려올 텐데 다들 구경났군.

사실 나도 딱히 이우연의 악수를 굳이 거절하면서 시선을 끌고 싶었던 건 아니다.

악수가 꺼려지는 건 다름 아니었다. 아주 드물기는 했지만 헌터 중에는 신체를 접촉했을 경우 발동되는 스킬을 보유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타르토스에서 한 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 나는 처음 보는 타인에게 잘 접촉하지 않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은 부자연스러웠다.

이우연이 내게 굳이 찾아와 악수를 청할 이유가 뭐지?

그야 이우연이 내 정체를 알게 된다면 내게 유감을 가질 가능성은 많았다. 나는 지금 랭킹 2위인 이우연을 누르고 랭킹 1위에 올라섰으니까.

그렇지만 내 정체를 모르는 이상, 이우연에게 나는 지금 이 많은 헌터들 속 1인이었다.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설마 나한테 한눈에 반했나?

그런 어이없는 일이.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거 진짠가? 이우연이 금사빠라는 말은 못 들어 봤는데. 나중에 한번 검색해 봐야겠다.

나는 슬슬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우연은 내가 뒤로 물러서는 꼭 그만큼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사, 생략하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처음 뵙는 분이라 이름이 궁금해서요.”

그렇게 묻는, 스윽 가늘어진 이우연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감돌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금사빠는 무슨, 저 새끼…… 뭔가를 눈치챘다. 뭔지는 몰라도.

설마 타인의 상태창을 보거나 플레이어명을 볼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사기꾼 같은 스킬이 존재할 리가…… 아니, 시스템이 있는 한 불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차원도 이동했는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등 뒤로 땀이 주르륵 흘렀다.

평소의, 그러니까 능력치가 정상인 나라면 저런 불여우 새끼랑 한판 붙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불여우랑 붙어서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불여우 날갯짓에 타 죽으면 끝이다.

주위에 몰려들어 있던 헌터들은 무슨 착각을 하는 건지, 다들 나와 이우연에게서 한 치씩 멀어지고 있었다.

나와 이우연의 대화, 아니, 공방은 계속되고 있었다.

“당신이 대한민국에 있는 헌터를 모두 아는 건 아닐 텐데.”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굳이 내 이름을 묻는 이유는?”

“하하하.”

이우연이 갑자기 웃었다. 누가 봐도 예뻐서 호감을 가질 법한 웃음이었다. 미소를 지은 채 이우연이 허리를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고개를 귀엽게 갸우뚱하고 기울이며, 연기하는 것이 아주아주 분명한 자세로 이우연이 물었다.

“혹시 지금 우리 싸우고 있는 건가?”

나도 씩 웃으며 똑똑한 발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설마, 초면인데.”

“그래, 초면에 악수 한번 하자는 게 그렇게 큰일이었나?”

“당신이 무슨 스킬을 가졌을 줄 알고?”

그 말을 들은 이우연은, 그때껏 짓고 있던 미소를 없애고서 순간 무표정을 지었다.

내심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내가 한 말이 그의 정곡을 찌른 건가, 아니면 그게 원하는 말이었던가.

“아, 그런 걸 걱정하는 거였어?”

이우연이 곧 언제 무표정을 지었냐는 듯, 다시 웃으며 두 손을 들고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까지 끌어온 주제에 생각보다 깔끔하게 물러나는군. 악수를 하겠다는 건 포기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과하지. 정말 처음 보는 얼굴이라 잘해 보자는 의미에서 악수를 청했을 뿐이야. 그나저나 당신이라. 그쪽, 몇 살이야?”

“너보단 많이 먹었을 것 같은데.”

“하하. 아닐 것 같은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 아닌가?”

그 말에 이우연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발밑을 가리켰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이우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한 거야?”

“그래, 어딜 보나 내가 길지?”

이 새끼가?

“뭐야, 초딩 싸움이야?”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 나와 이우연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헌터들이 하나같이 눈길을 피했다.

- 2차 몬스터 웨이브까지 대기 시간이 주어집니다. 00:05:26

흘깃 허공에 떠 있는 시스템 메시지에 눈길을 준 이우연이 고개를 돌렸다.

“뭐, 좋습니다. 초딩 싸움은 2차 웨이브가 끝난 다음에 승부를 내기로 하고.”

지금 본인이 초딩 싸움이라고 말한 거냐? 내가 어이없어하는 와중, 이우연이 박수를 쳐 헌터들의 주목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일반인의 보호와 헌터 자신의 안전입니다. 그러려면 모두가 함께 싸우면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번에는 그 말을 들은 헌터 모두가 그 말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몬스터 웨이브를 앞에 두었는데도 아주 유쾌한 분위기였다.

야, 너 이 새끼…… 방금까지 같이 초딩이었던 주제에 갑자기 너 혼자 정상인인 척하면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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