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8화
“뭐, 뭐야!”
“누가 죽인 거야?!”
“A급이었는데!”
“이우연 말고도 랭커가 있는 거 아닐까?”
뒤늦게 A급 몬스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목소리들이 들떠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고무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지금 상태에서 그리 쓸 만한 전력은 아니니까.
내 마력 수치가 그나마 정상이기에 일부러 내 클래스 보정을 받을 수 있는 무명의 활을 택했으나, 그렇다고 이 활을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 계산으로는 50에서 70발 정도가 한계였다.
그것도 마력을 따졌을 때만 그렇다는 거지, 내 근력과 체력이 그렇게 버텨 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이제껏 꺼내 들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방금은 몬스터가 막 빠져나오는 중이라 미간을 정확히 맞추었지만, 날뛰는 몬스터를 상대로 했을 때 내 명중률은 확 떨어진다.
즉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는 많아 봤자 몇 십 마리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빛을 비집고 나오는 몬스터 떼는 마치 바퀴벌레 무리처럼 보였다.
개중 몇은 날개 달린 깃 없는 새처럼 생긴 놈도 있었다.
저거 꼭 공룡같이 생겼는데…… 와이번인가? 끈적한 진액이 날개와 머리에 엉겨 붙은 회색빛의 새가 불을 토하며 날아올랐다.
놔두면 귀찮아지겠군.
나는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았다.
힘차게 날아오르던 괴물은 화살에 가느다란 목을 관통당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지상으로 낙하했다.
“또, 또 처리했어!”
“대체 누구야?!”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그것도 잠시.
내가 쏘아 떨어트린 괴물의 시체에, 그 뒤를 따라 나오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몬스터들이 고개를 처박고 시체를 먹기 시작했다.
“우, 우욱……!”
그 광경을 정면에서 본 헌터들은 구역질을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비단 내가 죽인 괴물만이 아니었다.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것들이 워낙 많아 서로가 방해라도 되는 건지, 개중 약해 보이는 개체는 헌터가 아닌 뒤에서 밀려 나오는 다른 몬스터에게 공격당하고 있었다.
방해되는 서로를 물어뜯고, 그 시체를 넘어 또다시 다른 몬스터들이 나오고, 그새 새롭게 생겨난 시체는 갈가리 찢겨 바닥을 적셨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건물 안에서는 연신 숨죽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런 사람들의 절망까지도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기도 했다. 이제껏 몇 번이고, 몇 십 번이고 보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광경을 볼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 2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28:20
여전히 틈새를 비집고 몬스터가 나타나고 있었으나 생성 속도는 슬슬 줄어드는 추세였다.
이제 몬스터들은 헌터들이 방어선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도로로 접근하고 있었다.
가끔 일반인들이 대피해 있는 건물을 부수고 진입하려는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도발해 시야를 좁혔다.
나도 시위를 당겨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와이번 몇 마리를 더 쏴 맞추었다.
- 마력을 담은 화살이 다섯 번 연속 적을 사살하였습니다!
- 활에 관련된 스킬이 깨어날 준비를 합니다.
그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내게 필요한 스킬은 저런 것도 아니고.
뭐, 그야 시스템 메시지가 뜰 정도로 나름대로 활약한 것이기는 했지만 내 활약은 이제 아무도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몬스터를 맞이할 준비를 한 헌터들은 이제 제각기 무기를 부여잡고, 하늘에 떠오른 구세주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즉, 이우연이다.
“……내 상태가 정상이기만 했어도.”
이렇게 말해 봤자 뭐하냐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일어 오르는 것 같았다.
딱히 몬스터를 잡는 일이 기꺼운 것은 아니다. 남이 한다면 당연히 미루고 싶다.
그렇지만 막상 이렇게 눈앞에서 저런 강자를 마주하고, 지금의 나는 힘을 빼앗겨 무력하니…… 속이 쓰렸다. 쓸모없는 경쟁심이다.
활 없는 시위를 당기던 나는 저쪽 멀리 하늘을 날고 있던 이우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날개를 퍼덕이던 이우연이 나와 눈이 마주친 걸 알고 싱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기쁨 따위 없이 여전히 냉정했다. 그의 머릿속 계산기도 나와 비슷하게 굴러가고 있으리라.
던전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몬스터는 언뜻 보기에도 수백 마리. 나와 이우연이 계산한 숫자대로였다.
지금 나를 비롯한 다른 헌터들이 몬스터를 도발하며 최대한 한곳으로 모은 이 시점.
이우연이 여기서 몬스터를 막아 내지 못한다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 했다.
나는 이우연에게 보란 듯이 그를 향해 마력의 화살을 겨누어 보였다.
한번 날뛰어 보시지, 그런 뜻이었다.
이우연은 아까 전처럼 오른쪽 손을 들어 올렸다. 입술이 달싹거리는 것 같았다.
그의 곁에 마력의 흐름이 응집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전에 쓴 마법은 헬파이어와 비슷해 보였다. 이번에는 뭘 쓰려나?
사실 나는 지금 이우연이 부러워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만일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체근민 수치가 바닥을 기고 있는 이 상황에 무척 도움이 될 텐데, 아쉽지만 내게는 마법의 재능이 전혀 없었다.
내가 아는 최강의 마검사인 루카스가 말하기로는 내가 마법을 쓰기에는 무척이나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그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루카스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뭔데?’
‘섬세함.’
루카스 이 개자식.
그럼 저 불여우 새끼는 나한테는 없는 섬세함이 있다는 거야, 뭐야.
경쟁심이 불타오른 내가 이우연이 마법을 시전하는 걸 빤히 바라볼 때였다.
“응?”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이우연이 빈 왼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쏘는 시늉을 하더니 윙크하며 검지에 입김을 후, 불었다.
……뭐 하는 거야?
“저 새끼 진짜 미친놈인가?”
내가 중지를 세워 보여 주자 이우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원하던 반응이 아닌가 보지?
그렇게 장난치는 와중에도, 이우연의 오른손에는 착실하게 마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허공에 거대한 푸른빛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루카스와 같은 색깔의 마법진이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마법진이 푸르게 불타올라 하늘의 색마저 물들였다. 삽시간에 불길의 빛깔로 적셔진 그 광경 속에서, 이우연이 날개를 펼친 채 검을 들었다.
그 검이 몬스터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괴력의 불이 도로 위를 휩쓸었다.
그냥 불길이 아니었다. 태풍처럼 일어난 불길이 용암처럼 몬스터를 잡아먹고 있었다.
불길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역한 냄새의, 반쯤 녹다 남은 몬스터 시체뿐이었다.
- 2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25:10
나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멍해졌다.
“아니, 대체 왜 저렇게……?”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2분 남짓. 웨이브가 시작되고 겨우 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내 등골에 섬뜩한 소름이 달렸다.
……설마.
“와, 와아아아아!”
“이우연 미쳤어!”
“한국 최강이다!”
“우린 이제 살았어!”
몬스터의 시체를 확인한 사람들의 고함이 거리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방금 전까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환호와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여전히 날개를 펼친 이우연이 내게로 휙, 날아왔다. 그는 약간 황당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는데. 예상외로 바로 전멸이네요? 몬스터도 더 생성되지 않고.”
나는 그런 이우연을 올려다보며 내 입술을 짓씹었다. 잠긴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너, 혹시 몰라서 이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우연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혹시 또 의뭉스럽게 깔아뭉갤 생각이라면 정말 한 대 패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우연의 눈동자에는 순수한 의문이 가득했다.
“왜 그러는 거예요?”
이우연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거대한 절망이 나를 덮쳤다.
이우연은 지금 상황이 어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혹시 이제까지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어?”
“이렇게 단시간에 진압한 경우 말인가요? 애초에 한국에서 이런 대규모 던브는 몇 번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게 처음이긴 한데…….”
이우연이 의아한 듯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 설명을 듣고서야 납득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멍청했다.
한국에서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가 대규모로 일어난 것은 5년 전 처음 시스템이 나타났을 때였다. 그 이후에는 일어나더라도 소규모거나, 혹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하기야 이렇게 대규모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러니 이우연이야 당연히 최대한 많은 숫자를 한번에 절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야 희생자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젠장, 1차 몬스터 웨이브 대기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이우연이 옥상의 난간에 내려선 채 고개를 숙인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심상찮음을 느낀 건지 그의 눈에 서서히 의심이 내려앉고 있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건물 밑에서는 여전히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이우연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그래, 확실히 모두가 승리를 예감할 만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2차 몬스터 웨이브 출현 몬스터의 80퍼센트 이상이 즉살당하였습니다.
- 2차 몬스터 웨이브가 중지됩니다.
- 최대 업적자 : 이필연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메시지 출현에 놀라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오로지 나 혼자 분노해야만 했다.
“젠장.”
기본적으로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몬스터 웨이브를 도중에 멈추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있다.
웨이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 플레이어가 몬스터 대부분을 처리한 경우.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승리를 인지하고 몬스터 웨이브를 중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다.
다음 순간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
- 경고! 3차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몬스터 등급 제한이 있습니다(등급 랜덤 출현)
“뭐?”
이우연이 검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의 시선이 멍하니 시스템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그렇다. 이렇게 이전 회 차의 몬스터 웨이브가 중도에 멈출 경우, 다음번 몬스터 웨이브는 이렇게 대기 없이 바로 시작된다.
- 3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00:00
- 3차 몬스터 웨이브에는 ‘보스 몬스터’ 가 출현합니다.
- 보스 몬스터가 해당 구역을 벗어나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마치 강한 호적수를 두고 경쟁심을 불태우기라도 하듯이.
환호성에 휩싸여 있던 거리에는 이제 침묵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를 힘조차 사라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 고요한 절망 속에서 이우연과 눈이 마주쳤다.
아연한 시선.
이우연은 붉은 입술을 꽉 악물고서, 아까까지 보이던 장난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깨문 입술이 찢어져 피가 턱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저건 활성화 시간이 무한대라는 뜻인가?”
“그래, 클리어 조건을 지키지 않는 이상 나갈 수 없다는 뜻이야.”
클리어 조건은 랜덤으로 출현하는 랜덤 등급의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것.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우연이 눈을 감았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내 탓이로군…… 시스템의 악의를 예상했어야 하는데, 경솔했어.”
“아니, 네 잘못이 아니야.”
딱히 위로하려 던진 말이 아니었다.
그저 사실이다.
이건 이우연의 잘못이 아니다. 이우연은 이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니까.
솔직히 타르토스에서도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의 제대로 된 공략법이 알려진 것은 내가 그 세계에 떨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애초에 공략법이 알려지려면 살아남아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건 즉, 그때까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도 직접 겪어 보지 못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전혀 몰랐잖아.”
이건 그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도 만일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면, 그 잘못은 이런 경우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미리 경고하지 못한 내게 있었다.
알아본다고 알아보았지만 나는 한국의 사정에 아직 너무 무지해서, 어떤 정보를 알려 줘야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
하지만 결국 이우연의 실수도, 내 실수도 모두 이 상황의 원인은 아니다.
“저 빌어먹을 시스템이란 새끼는 언제나 저러니까.”
마치 죽어라, 죽어라, 하고 고사를 지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활을 집어넣고 에이펙스의 광검을 소환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은 한심하게도 힘이 부족했다.
이우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우연을 마주 바라보며 뻔뻔하게 웃어 주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를 넘기려면 다소 뻔뻔하게 구는 편이 좋다고, 아리아드네가 그랬더랬다.
아무리 후회하더라도 이건 이미 일어나 버린 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후회가 아니라 해결이었다.
“그러니 일단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이우연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