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9화 (2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9화

“나는 내가 살아남을 걱정을 하는 게 아니야.”

이우연이 무거운 눈으로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귀에도 사람들의 동요가 들려오는데, 저 이우연의 감각에는 얼마나 더 많은 절망이 들리고 있을까.

“고정형 던전이야 A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보스 몬스터가 출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런……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서 보스 몬스터가 출현한 경우는 처음이야. 클리어할 때까지 이 구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나는 이우연의 말을 들으며 소지창에서 근력 강화제와 체력 강화제를 꺼내 복용했다.

이렇게 억지로 근력과 체력을 늘려 보았자 검 한 번 휘두르면 또 경고 메시지가 뜰 테고, 효과가 떨어지면 부작용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는 수밖에.

“방금 말했지만, 이건 딱히 이우연 씨 탓은 아니야.”

“위로는 필요 없…….”

“그렇게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어 봤자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차갑게 떨어진 말에 이우연의 눈썹이 움직였다.

별로 긴 인생은 살아 보지 못했지만, 지난 10년간 타르토스에서 살아남으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이미 일어난 일을 아무리 곱씹고 후회해 보았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님페의 바람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이제 공중에서 몇 마리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으니까.

“그럴 시간에 몬스터 한 마리라도 더 처리해. 그러면 그만큼 안전해질 테니까.”

이우연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웠으니까.

나는 건물의 난간을 발로 세게 박차며 난간 밖으로 몸을 날렸다. 중력이 작용하며 몸이 추락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우연이 떨어지는 나를 따라 밑으로 휙, 날아 내려왔다. 잠시 눈이 마주쳤다. 이우연은 황당해 보였다.

“원래 그렇게 본인 몸을 막 쓰는 스타일이야?”

항변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바람 때문에 도통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건물의 벽을 발로 박찼다.

건물을 오르는 것과 달리 내려가는 것은 비교적 힘을 덜 소모해서 좋다.

겨우 몇 초 만에 나는 충분한 높이까지 내려왔고, 내 몸이 바닥으로 완전히 추락하기 전에 님페의 바람을 작동시켰다.

바람이 바닥을 강하게 박차며 떨어지는 내 몸을 위로 들어 올렸다.

나와 비슷한 속도로 바닥에 내려선 이우연을 본 헌터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이우연 헌터님!”

“어떻게 하면 좋죠?”

“대책은 없나요!”

다들 목소리가 다급했다.

그 다급함은 필사적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2차 웨이브 때 미친 듯이 몬스터가 밀려 나오던 빛이 새는 틈새가 사라졌다.

당장 이 거리에는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게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 3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00:00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는 여전히 아무런 변동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혹시 3차 웨이브는 동시다발로 생성된다는 거 아닌가요? 고정형 던전 안과 환경이 비슷한데.”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이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런 것 같군요.”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서는 보통 구역의 중심에서 몬스터가 생성된다.

하지만 이렇게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면 그 법칙이 사라지고 구역 내에 몬스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기기도 했다. 이 구역 자체가 고정형 던전처럼 변화하는 것이다.

즉, 몬스터가 어디에서 생겨날지 알 수 없다.

이건 정말 운이 좋지 않은 경우였다. 나도 10년간 두 번 정도밖에 겪어 보지 못했을 정도로.

헌터 중 하나가 파리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럼 일반인들의 피난은 어떻게 하죠? 고정형 던전과 비슷하다면 건물 내에 갑자기 몬스터가 생길 수도…….”

“맞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보스 몬스터를 찾아내서 없애야겠죠.”

“하지만 그 보스 몬스터는 어떻게 찾아내죠? 이거, 최초 공략이나 다름없는 건데. 정보도 없고…….”

“여기서 혹시 S급 이상 던전 공략에 참여해 보신 분 있습니까?”

이우연이 물었으나 수십 명의 헌터 중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혀를 찼다.

아니, 영원 길드와 헌터 스토어 본점이 있는 곳 바로 옆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는데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운이 지지리도 없다.

이우연도 같은 생각을 한 건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쪽은 경험이 좀 있는 것 같던데, 뭐 좋은 생각 없어요?”

“글쎄…….”

나는 헌터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별 기대가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개중 몇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건 뭔데 이우연이 의견을 묻냐, 뭐 그런 느낌인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뭘 알 리가 있나. 내가 이 브레이크를 만든 것도 아닌데.”

“그럼…….”

“그러니 브레이크를 일으킨 놈한테 물어봐야지, 이런 건.”

나는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몇 명 중 하나가 짜증이 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저기요, 지금 그걸 누가 몰라서…….”

“나는 보스 몬스터에 대한 상세 조회를 원해.”

- 3차 몬스터 웨이브에는 ‘보스 몬스터’ 가 출현합니다.

- 최초 출현 보상으로 보스 몬스터의 공략 팁이 주어집니다.

- 해당 규칙에 대한 상세 조회가 가능합니다.

그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황금색의 글씨로 공지가 떠올랐으니까.

나는 다른 헌터들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황당해 보였다.

“이, 이런 경우가 있다고?”

“원래 보스 몬스터 정보 따위 안 알려 주잖아!”

황당해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이우연이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시스템 이용을 잘하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나도 그냥 해 본 거야. 물어봐도 손해 볼 건 없잖아.”

나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이 세계에서는 시스템과 던전이 나타난 지 겨우 5년이 되었다고 했던가.

다들 플레이어명을 바꿔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아직은 살아남는 것에 바빠 시스템 자체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발상의 전환은 하고 나면 쉽지만, 하기 전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기에 어려운 것이다.

나도 타르토스에서 비싼 대가를 치러 가며 이용 방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시스템이 이용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한국의 헌터들은 시스템을 천재지변처럼 여기고 있었다. 벼락이나 태풍에게 무언가를 묻는다고 대답해 줄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지.

게다가 사실 묻는다고 다 대답해 주는 것도 아니다. 시스템이 무언가를 대답하려면 상황과 정확한 단어가 모두 충족되어야만 한다.

뭐, 이렇게 내가 물꼬를 틔웠으니, 게임의 나라답게 이제 온갖 시스템 공략 팁이 속출하지 않으려나.

물론 살아 나간다면 말이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들릴 수 있도록 말했다.

“규칙에 대한 상세 조회를 요청한다.”

그러자 시스템은 기다렸다는 듯 긴 메시지를 허공으로 띄웠다.

나는 출력되는 메시지를 읽었다.

“‘보스 몬스터’는 이미 필드 내에 소환되었습니다.”

이번 메시지는 전체 공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읽어 낸 메시지를 듣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상세 조회창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같은 메시지를 읽고 있으리라.

- 플레이어들은 보스 몬스터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화살표로 방향이 표시됩니다.

- 보스 몬스터가 패배를 인정하는 경우는 보스 몬스터가 부리는 몬스터의 80퍼센트 이상이 죽었을 때입니다. 보스 몬스터를 공략할 수 없다면 다른 몬스터들을 공략해 보세요!

게임 가이드처럼 친절하게 쓰인 팁.

그래, 갑자기 멋대로 게임의 규칙을 바꾼 주제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시스템은 빌어먹을 놈이지만 정확한 단어로 명령하면 정보를 준다.

물론 그 정확한 단어를 찾아내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지만…… 타르토스에는 20년간 축적된 노력이 있었고, 나는 그걸 10년간 배워 왔다.

메시지를 다 읽었는지, 이우연이 손바닥 위에 나타난 붉은색의 화살표를 보았다.

화살표는 동동 뜬 채로 앞쪽을 향해 있었다. 화살표를 잠시 바라본 이우연이 헌터들에게 지시했다.

“여러분들은…… 구역 내에 생성되는 다른 몬스터를 찾아 처리해 주세요. 일반인들에게 상황도 알려 주시고요.”

“이우연 헌터는요?”

“저는 이대로 보스 몬스터 공략을 진행하겠습니다.”

“호, 혼자 공략하시려고요?”

“네.”

아까 전 이우연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여전히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제가 보스 몬스터를 공략할 때까지 최대한 인명 피해를 막아 주십시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이우연은 그렇게 말하고 날개를 펼쳤다. 그는 자리를 떠나면서 잠깐이지만 의견을 교환한 나조차 뒤돌아보지 않았다.

내 노련함과는 별개로 원거리 사격 능력은 보스 몬스터 공략에는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냉정한 판단이었다.

나도 눈앞에 동동 뜬 화살표를 바라보았다. 이우연이 떠난 자리에 헌터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럼 어, 어떻게 하죠?”

“일단 건물 안에 들어가서 상황을 알리고 대피시켜야죠.”

“아까처럼 조를 짜서 움직일까요? 몬스터가 나타나면 처리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상하네.”

헌터 중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멈칫했지만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이상하지 않아요? 3차 몬스터 웨이브는 시작됐는데 이렇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게…….”

그 말이 퍼지자 수면 위로 파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모두의 얼굴에 깨달음과 당황이 퍼져 나갔다.

“어? 그러네.”

“건물 안으로 대피한 사람들이 너무 조용해.”

“호, 혹시 이미 다……!”

“마법이에요.”

모두가 그렇게 말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혀 소리를 냈다.

쇠가 긁히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내 손가락 위에서 붉고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제각기 마력이 반발하고 있었다.

이미 시전되고 있는 마법을 깨부수려 할 때 일어나는 현상.

그 의미를 아는 마법사들이 얼굴을 굳혔다.

“설마…… 몬스터가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가요? 그것도 이 구역 전체에?”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적어도 A급 이상이라는 건데…….”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사용한다면 S급 이상일 거예요.”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건 지금 나타난 보스 몬스터가 마법을 사용할 뿐 아니라, 몬스터들의 80퍼센트 이상이 죽는다면 패배를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헌터들에게 하위 몬스터들의 위치가 쉽게 알려지지 않도록 소음 차단 마법을 건 것이다.

내가 원래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 정도의 몬스터는 혼자 처리하기 버겁다.

“그, 그럼 이우연 헌터 혼자 공략 가능한 거야?”

“다들 보스 몹 공략을 도우러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요.”

나는 곧바로 부정했다.

“여러분은 이우연 헌터의 말대로 다른 몬스터를 처리해 주세요. 몬스터들은 이미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했을 테니까.”

다른 헌터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홀로 간 이우연은 옳은 판단을 했다.

지금 여기 있는 헌터들은 우연히 이 자리에 모인 오합지졸들이니 떼로 몰려가 보았자 떼로 죽을 게 뻔했다.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 둔다고 좋은 것은 아닌 게, 경험이 없는 이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이 내가 아직 여기 남아 있는 이유였다.

나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투명하고 희게 빛나는 검에 마력을 싣자 검날이 붉게 변했다.

“흡!”

검을 내리치는 순간 공간이 찢어질 것 같은 괴상한 소리가 울렸다. 검을 잡은 손에서는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마(魔) 속성 몬스터에게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 보스 몬스터의 마법, ‘무덤 속의 고요한 어둠’을 파훼하였습니다.

- 경고! 당신의 신체가 에이펙스의 광검을 사용하기에 부적절한 상태입니다. 체력이 급속도로 소진됩니다!

알 바야?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피로함으로 끝나지 않았다.

컥, 하고 목구멍에서 핏물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겨우 이런 시시한 마법 하나 깨 먹었다고 이 정도로 타격이 크다니. 짜증이 났지만 성질을 부릴 시간은 없었다.

나는 핏물을 억지로 다시 삼켰다.

마법이 깨진 순간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악, 살, 살려 줘!”

“이거 놓지 못해, 이 괴물 새끼야!”

이제껏 들리지 않았을 뿐, 이 거리는 이미 지옥이었다.

몬스터의 괴성과 사람들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헌터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미 무기를 집어 든 채 비명이 들려오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쪽에 합류하고 싶었으나…… 참담한 심정이었다. 짓씹은 입술에서도 피 맛이 났다.

나는 아직 내 주위에 남아 있는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마법은 깼습니다. 사람들을 잘 부탁드려요.”

“그, 그러는 그쪽은 어떻게 할 건데요?”

누군가 물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저는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러 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