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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3화 (2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화

Chapter 4. 사랑이 담겨 있어서

귀에 들려오는 앰뷸런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이 구역 내에 속하지 않았던 영원 길드와 헌터 스토어 본점 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얼얼한 양 뺨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어쩐다.

당장 내게 닥쳐 온 현실의 문제는 딱 하나였다.

내 정체를 이우연에게 들켰다는 것.

물론 내가 한 일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설령 시간을 돌려 한 시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아이템을 써서 리치를 공략했을 것이다. 아무리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다고는 해도, 그걸 사람의 목숨과 비교할 가치까지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내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다.

지금의 내가 원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장비했을 때 한정. 그것도 단 10분뿐이다.

게다가 10분 사용 후 다시 사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 그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누가 덤벼든다면 답이 없었다.

속이 빈 깡통처럼 차이는 대로 차이는 수밖에.

그리고 사실 10분으로는, 리치를 공략하는 것 정도야 어떻게 해냈지만 만일 이우연이 죽자고 달려든다면, 이우연의 실력을 볼 때 10분 내에 승부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설마, 뭐, 이우연은 그런 성격은 아닌 듯싶지만…… 다른 랭커들은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여기 랭커들이 타르토스와는 달리 호전적이지 않은 성향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나?

운에 맡기는 건 진짜 내 성격이랑 안 맞는데.

나는 슬쩍 이우연을 바라보았다.

전투 때 입은 내상이 남은 건지 여전히 안색은 창백했지만, 그래도 내가 정신을 차린 덕인지 한결 안심한 기색이었다.

……그냥 이대로 한 대 때리고 튈까?

보스 몬스터를 처리한 최대 업적자 공지야 전체 공지로 떴으니 구역 내에 있는 사람들은 다 봤겠지만, 그 최대 업적자인 플레이어가 실제로 누군지는 이우연만 봤다.

게다가 역사 내의 사람들은 다 기절해 있었으니까.

이거 이우연 뒤통수 때리고 튀면 어떻게 더 감출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우연의 뒤통수를 치고 달아난다는 안건에서 문제가 있다면 그건 지금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용사를 기리는 망토는 사용 시간까지 쿨 타임이 일주일이나 남았고, 그래서 내 체근민 수치는 다시 바닥이었다.

이우연도 부상을 입은 상태기는 했지만 이런 저질 근력에 저 매끈하니 볼록한 뒤통수를 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근력 강화제는 더 복용해 봤자 부상만 심해질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이우연의 뒤통수를 빤히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이우연은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웃으며 말했다.

“이제 좀 괜찮아 보이네. 다행이다.”

“……어? 으, 응. 그러는 그쪽은?”

“이 정도야 마력만 회복하면 아무렇지도 않아. 헌터 전용 병원에 가서 포션이나 몇 병 받으면 낫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바로 옆이 헌터 스토어고 영원 길드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 던브는 정말 운이 없긴 했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래서?”

이우연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나보다 한참 키가 큰 이우연이 시선을 맞춘 채로 눈을 휘며 웃어 보였다.

“지금 가 보지 않아도 되겠어? 구역 해제되었으니 헌터들은 물론이고 취재진까지 곧 몰려올 텐데.”

와, 이 새끼 좀 봐라.

나는 코끝이 닿을 것 같은 거리까지 다가온 이우연의 이마를 검지로 확 밀어 버렸다.

별로 힘을 실은 것도 아닌데 세 발자국쯤 순식간에 뒷걸음질 친 이우연이 이마를 감싸며 과장되게 엄살을 부렸다.

“아야야, 아파라. 동네 사람들, 여기 보세요. 랭킹 1위 님이 글쎄…….”

“미쳤냐? 안 닥쳐?”

“입이 이~ 렇게 험하대. 이거 무서워서 살겠어?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걱정이 되어서 내가 살 수가 없네, 아주.”

“………….”

뒤통수를 노리던 것까지 간파당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진짜 이우연…… 조금 소름 끼친다. 혹시 특성이 눈치 빠른 불여우, 뭐 이런 거 아니야?

이우연은 짓궂게 웃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소름 끼친다는 표정이네. 그렇게 내 뒤통수를 뜨겁게 바라보는데 모르는 게 바보 아닌가?”

“네가 이 세상의 절반 이상을 바보 취급한다는 건 잘 알겠다!”

내 말을 들은 이우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로 바보 취급하고 있네, 저 자식.

이우연은 내가 노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레바테인이라고 부르던 그의 검을 허공에 던져 소지창에 집어넣었다.

무방비 상태가 된 이우연이 내 앞에서 두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해 보였다.

“자, 빨리 가 봐. 시선은 내가 끌어 줄 테니까.”

이렇게 하는 걸 보면 이우연은 랭킹 1위의 정체가 나라는 것을 밝힐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나는 이우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야 고마운 일이긴 한데.

“내 정체, 숨겨 주는 이유가 뭐야?”

“이유가 굳이 필요한가?”

“이유 없는 호의는 받아 봤자 찜찜하니까.”

“하하하. 재미있네. 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소지창에서 무언가를 꺼낸 이우연이 손바닥을 내게 내밀어 보였다.

커다란 손바닥 위에는 쌀알만 한 파란빛의 보석으로 된 귀걸이 한 쌍이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

이우연은 귀걸이 한 쌍 중 한쪽을 가져가 자신의 오른쪽 귀에 착용하고, 나머지 한쪽 귀걸이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 귀걸이를 받는 대신 빤히 바라보았다.

이우연이 나를 재촉했다.

“일단 이거부터 받아. 나랑 직통으로 연락할 수 있는 아이템이야.”

“그런 걸 나한테 왜 주는 건데?”

“내가 당신 정체를 말할 생각이 없는 이유도, 또 호의를 가지는 나의 이유라는 것도 지금 당장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우연이 웃으며 귀걸이를 착용한 제 귓불을 톡톡 두드렸다.

“시간이 없지 않나요, 구도하는 방랑자 씨?”

“……야, 방랑하는 구도자거든?!”

“이거나 그거나 비슷하게 들리는데?”

끝까지 얄밉게 말하는 자식이었다.

나는 이우연을 잠깐 노려보았다가 저 멀리서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우연의 말대로 이 자리를 떠나려면 시간이 없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빠르게 앙겔루스의 가호와 에이펙스의 광검을 장비 해제하고 소지창으로 집어넣었다. 이우연이 준 귀걸이도 소지창에 일단 넣었다.

갑옷과 검이 사라지면 이제 내가 헌터라는 걸 알아볼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럼, 나는 이만.”

그렇게 짧게 인사를 하고 빠르게 걸어가는 내 뒤에서 이우연이 태평한 목소리로 나를 배웅했다.

“잘 가, 방랑자 씨! 빨리 치료받고! 연락 기다릴게~!”

아, 진짜 한 대만 칠까? 한 대만 치게 해 주라…….

“어, 저기 이우연 헌터가 있다!”

“이우연 헌터! 괜찮습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한 대 치고 도망갈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이우연을 찾아 헌터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거리 한구석에 멈추어 서서 그들을 관찰했다.

다들 0과 비슷하게 생긴 배지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다들 영원 길드의 헌터인 모양이다.

그들은 이우연의 주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됐네. 이제 안심이다.

이제 나도 자리를 뜨면 그만이었다.

나는 거리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내 숙소인 호텔로 걸음을 옮겼다.

이우연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지옥 같은 귀갓길이었다.

호텔 1층을 걸어올 때 누군가 내 꼴을 보고 수군거렸던 것 같은 기억은 나는데, 뭐라고 말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호텔방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방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씻고 싶기는 했지만 도저히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최소한 옷이라도 벗으려 했지만, 피에 젖어 제대로 옷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경고! 당신의 신체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있습니다.

- 생명력이 저하되어 있습니다! 즉각 회복을 권유합니다.

도대체 저런 시스템 메시지는 왜 띄우는 거야? 저딴 메시지 없어도 내가 지금 딱 죽기 직전이라는 건 나도 안다고.

“쓸데없는 새끼…… 꺼져…….”

- 시스템 메시지가 일시적으로 무음 모드에 들어갑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사실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사용할 때부터 이미 각오하기는 했다.

용사를 기리는 망토는 지금 내게 필요한 아이템이었고,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만능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절대로 낼 수 없는 능력을 억지로 끌어내니 신체에 과부하가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 진짜…….”

딱 죽고 싶은 정도의 고통이 몰려오고 있었다. 전투할 때는 고양감과 악으로 참을 만한데, 긴장이 풀리니 바로 이 모양이다.

돈이 있으면 상급 포션이라도 왕창 사서 부어 볼 텐데 돈도 없고…… 사러 갈 힘도 없다.

그냥 이대로 자자.

자고 일어나면 조금쯤은 나아져 있겠지.

일어나면 그때부턴 또 애들을 구하러 갈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그래,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그렇게 나는 멀어지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그리고 눈을 떴더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아주 오랫동안 꿈을 꾼 기분…….

……아니, 잠깐만. 이거 일주일 전쯤에 완전히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뭐야, 나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는데.

“아, 예나 환자님! 깨어나셨군요?”

그럭저럭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벙찐 채 내 침대 곁으로 다가온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솔방울 간호사님?”

*   *   *

제목 : 일주일 전에 일어난 강남역 돌발성 던브 최대 업적자 말이야

내용 : 누구라고 생각함?

└뭔 소리임? 모나미잖아

└기사 못 봤냐? 1차 2차 같이 참여한 헌터들이 다 최대 업적자 모나미라고 증언했잖아. 천사 날개 달고 내려와서 광역기로 다 조졌다매

└이거 보면 볼수록 아무리 생각해도 모나미가 랭킹 1위가 아니라는 게 말이 안 된다ㅋㅋㅋㅋ 마검사에 이제 공중전까지 가능하단다 이거 실화냐?

└교수님도 공중전은 가능할 텐데

└헐 이거 둘이 붙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ㅋㅋㅋㅋ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 싸움 붙이지 말라고;

└근데 랭킹은 어차피 업적치 기준 산정이잖아. 화력으로만 따지면 제일 센 건 역시 모나미 아니겠음?

└모나미보다 더 약한 사람이 모나미 제치고 랭킹 1위 먹었다는 게 더 말이 안 되지 않냐?

└맞아. 모나미가 던전 공략에 미쳐 있는데 그런 모나미를 업적치로 이기려면 모나미보다 화력이 덜할 수가 없음…… 근데 그게 대체 누구냐고.

└랭킹 발표되고 2주일이 지났는데 아무도 모르는 걸 보니 정부가 발표할 생각이 없는 듯.

└정부도 모르는 건 아니고?

└그런데 모나미 스펙 보니 차라리 시스템 오류라는 게 더 신빙성 있다 진짜 ㅋㅋㅋ모나미 누가 이기지? 세계에 출품하자.

└난 모나미가 하필 날개 아템 얻은 것도 신기함 어떻게 그렇게 찰떡 같은 아이템을 얻었지?

└엔제X너스에서 광고 모델로 쓸 듯 ㅋㅋㅋㅋ ㅋㅋ

└본문 이야기만 하자면 난 글쓴이 뭔 말 하는지는 알겠음. 지금 도는 카톡 찌라시 보는 거 아님?

└ㅁㅈ 지금 찌라시 존나 돌고 있음

└그거 길드들 주식 상장 땜에 그런 거 아니냐?

└공모주 경쟁률 장난 아니더라

└그래서 모나미 아니면 누군데

└랭1방구가 3차 웨이브 최대 업적자래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이렇게 줄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위님 제발 용서를 …… =3

└=3=3=3=3=3

└나도 이거 들었음 친구가 강남역 학원 갔다가 던브 휘말려서 지금 입원중이거든? 그런데 어렴풋이 최대 업적자 이름이 =3인 거 봤던 것 같다고 하더라 카톡 인증 ㄱㄴ함

└네 다음 카더라~

└진짠데 ㅠㅠ

└모나미가 직접 뉴스에서 인터뷰 했으니까 니네 헛소문 그만 떠들어라. 이번에 혼자 던브깨다가 두1질뻔했다고 열 받은 거 못 봄 ?

└모나미는 열 받을 만하지. 한국 헌터 풀은 넓은데 얕아…… 강남역은 헌터의 메카나 다름없는 곳인데 거기서 아무도 고위 던전 공략 안 해 봤을 일이냐?

└이거 진짜 인정임…… 랭킹 1위 등장이 충격이라 여러모로 묻힌 감이 있는데 지금 업적치 랭킹 상위권들 못 본 이름도 많은 것도 충격

└이거 리얼인게 10위권 내 헌터들 중 내가 아는 이름 딱 4명이었음. 모나미, 교수님, 조한율, 김성연! 나머지 헌터들은…… 누구 들어 본 사람?

└ㅁㅈ 평소 자기가 S급 헌터라고 당당하게 방송 나오던 사람들 거의 업적치 순위에 없더라. 그 백사현도 38위더만.

└결국 방송물 들어서 정작 던전 공략은 소홀히 한 거지, 뭐.

└막상 우리가 이름도 못 들어 본 무명 헌터들이 알고보니 업적치 상위권인 거 보면 진짜 …… ㅋㅋ

└근데 백사현 38위도 개 높은 거 아님? 한국에 헌터가 몇 명인데.

└38위도 대단한 거긴 한데 방송에서 입 터는 것만 보면 백사현이 랭킹 1위 해야 되니까 그렇지

└현실 랭킹 1위는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방구

└ㅅㅂ 랭킹 1위는 서러워서 살겠냐? 다음 달 순위 발표 때 플레이어명 갑분본명되어 있는 거 아니냐

└사과해! 사과해! 1위님께 사과해! =3

└야 니들 웃긴다 ㅋㅋㅋㅋ 다른 헌터들 깔 시간에 니들이 직접 던전 들어가서 공략하면 될 일 아님? 누구나 헌터 될 수 있는데 왜 니들은 안하고 욕만 함?

└나는 적어도 백사현처럼 입 털면서 쉽게 돈은 안 벌잖아 ㅋ

└이거 백사현 소속사에 PDF 따서 보냈음ㅇㅇ

└응 느그 백사현 입만 산 새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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