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6화
“뭐?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래.”
이우연은 오히려 그렇게 물어본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이우연이 나를 찬찬히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가끔 그러더라고. 특히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렸다가 클리어하면…… 이제껏 겪어 본 적 없어?”
“한 번도 없어.”
나는 단언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메시지였다.
내가 처음 한국에 돌아와 던전에 진입했을 때도 시스템 메시지는 혼란이라는 키워드를 출력했지만, 그때는 그렇게 문장의 형식조차 지키지 못하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내가 이번 메시지에서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운명력’ 정도였다.
운명력이란 타르토스의 시련이 신이 주신 운명이라고 믿는 신관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었다.
신관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보이는 무언가를 신의 의지이자 운명력이라 표현한다.
가령 생과 사의 문제, 천재지변, 혹은 시스템.
신관은 그 운명을 신의 의지에 따라 행하는 것이라 믿으며 ‘성력’을 깨우친다. 성력은 신의 의지가 인간에게 깃들어 신이 허락한 기적을 행하는 것…… 이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그 ‘운명력’이라는 단어가 왜 이 지구에서 출현한 것인지, 그게 정말 의문이었다. 여기에는 신관도 없잖아.
아니, 내가 모르는 것뿐인가?
그러나 이우연은 내 의문을 깔끔하게 일축하며 본인의 의견을 덧붙였다.
“그리고 난 솔직히, 이제껏 시스템 메시지에 딱히 신경 쓴 적 없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저렇게 수상한 메시지인데.”
“애초에 시스템이란 게 정상이 아닌데 더 수상할 게 있나? 무언가 불완전하거나 오류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난.”
그건 정말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나는 이제껏 시스템이 인간에게 악의가 가득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불완전하다고는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한국의 시스템 또한 이제까지는 기본적으로 타르토스의 시스템과 같다, 고 생각했었는데.
‘불완전’, 하다. 시스템이?
이우연은 왜 그렇게 느끼는 거지?
“그리고 새삼 신경 쓰기에는 너무 많이 본 오류 메시지라서. 나는 혼자서 돌발성 던브에 휘말리는 일이 잦거든. 적어도 몇 달에 한 번은 휘말리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건 또 무슨 소리야?
“뭐? 아니, 어떻게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 자주 휘말릴 수가 있어?”
아까도 이상한 시스템 메시지를 자주 봤다고는 했지만, 설마 그게 본인이 돌발성 던브에 자주 휘말린다는 소리일 줄은 몰랐다.
타르토스에서 신벌이라고도 불렸던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는 사실 그리 자주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즉 돌발성 던브에 자주 휘말린다는 것은 당첨이 99개, 꽝이 1개 있는 통에서 꽝만 연속으로 100번 뽑는 경우나 다름없었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우연이 돌발성 던브에 휘말린 경험이라도 떠올린 건지 이번에는 약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리 순한 성격은 아니었다. 놀랄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연이어 물었다.
“하여간에. 그리고?”
“응?”
“그 메시지를 본 다음에는? 무언가 특이한 거, 보지 못했어?”
내 말을 들은 이우연의 얼굴이 드디어 심각해졌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꽤 진지한 문제인가 보네. 미안하지만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메시지가 떠오른 다음 당신이 갑자기 쓰러져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거든.”
“얼마나 오래?”
“글쎄, 5분 정도일까?”
정말 생각보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내 체감상으로는 무척이나 길었던 시간이었는데.
정리해 보면 이우연이 본 것은 깨진 시스템 메시지뿐이고, 옵타티오는 내 눈에만 보인 환상이라는 뜻이 된다.
시스템은 ‘오류를 수정’했다고 했지. 그건 즉, 본래는 옵타티오가 출현하는 국면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거다.
애초에 그 오류는 대체 왜 일어났던 것일까?
이제껏 시스템 자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내게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기도 했다.
그 애들을 구하러 가야 하니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폈다.
“그래, 대답 고마워. 참고가 됐어.”
“어라, 부탁이라는 건 이게 끝이야?”
“하나 더 있긴 해.”
“이게 제일 어려운 부탁인가 보네. 마지막에 말하는 걸 보니. 말해 봐…… 아, 잠시만.”
이우연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자신의 핸드폰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내게 양해를 구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핸드폰을 집어 전화를 받았다.
“숙자 교수님? 무슨 일이시죠? 지금 조금 바빠서…….”
- 이우연 군.
나와 이우연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집인지라 조용했기 때문에 내게도 어렴풋하게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들렸다. 중후한 여성의 목소리가 핸드폰 건너로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숙자 교수님, 이라니. 랭킹 3위로 발표되었던 그 김숙자인가?
가끔 인터넷 게시글에서 모나미와 실력을 비교하면서 사람들이 싸우곤 하던데.
그리고 한동안은 전화 너머 목소리가 길어져서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우연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을 보면 예삿일은 아닌 듯싶었다.
“가-18이라면 신촌 병원 옆에 있는 그거잖아요. 조건은 어떻게…… 아, 알겠습니다. 그래요. 가서 이야기하죠. 시간? 지금 집…… 예, 광화문입니다. 10분이면 충분해요. 지금 가겠습니다.”
이우연이 인사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 내용만 들어서는 바로 뛰어갈 것 같더니 막상 전화를 끊은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묻자 이우연은 그제야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A급으로 분류된 고정형 던전 하나의 클리어 조건이 바뀐 것 같아. 공략하려 입장함과 동시에.”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투명한 느낌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시험하듯이.
그가 무엇을 시험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도중에 클리어 조건이 바뀌었다면 큰일이네.”
“그래, 원래도 A급으로 분류했던 던전이니까.”
“그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아무래도 위험하겠지. 나도 자세한 건 모르니 가서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에 앉은 이우연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쪽을 올려다보는 이우연에게 나는 짧게 말했다.
“나도 갈게.”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우연은 잠시 무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시키지 않았다.
이우연은 나를 따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좋아, 내가 스카우트한 새로운 헌터라고 말해 두지.”
이우연은 두말하지도, 무언가를 물어보지도 않았다. 눈치 빠른 점은 이럴 때 무척 도움이 된다.
그는 그대로 베란다로 걸음을 옮기려다 고개를 내게 돌리고 빙긋 미소 지었다.
“내가 안아서 데려간다고 하면 거절할 거야?”
“그래.”
님페의 바람 사용 가능 시간이 그래도 꽤 늘어난 참이었다. 여기서 신촌이라면 그다지 멀지 않았고, 그 정도라면 충분히 이우연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우연은 당연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 창문을 열었다.
“그래, 그럼 먼저 가지. 빨리 와야 할 거야.”
나는 열린 창문으로 날개를 펼쳐 망설임 없이 날아가는 이우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등 뒤로는 우리 둘 다 손을 대지 않은 예쁜 커피 잔 두 개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이우연은 그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첨언하지 않았다.
아직 서로에게 의구심이 남아 있다.
결국은 그런 것이다.
……이우연을 따라가기로 한 것도 딱히 던전 안에 갇혔을 헌터가 걱정되어서 내린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이우연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던전 입장을 위해서였으니까.
지금 해결해야 하는 가장 급한 문제는 내 형편없는 능력치를 올리는 것이었다.
물론 용사를 기리는 망토가 있고 이건 내게 조커나 다름없기는 했지만 리스크가 너무 컸다. 정말로 급할 때만 사용해야 했다.
일단 평범하게 던전을 차근차근 클리어하는 방법은 아웃.
나는 가뜩이나 레벨이 높아 레벨 업에 필요한 업적치는 많은데, 그 업적치를 올릴 때 필요한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S급 몬스터를 혼자 잡은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레벨이 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바로 내 클래스 보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클래스는 시스템이 나의 행적을 두고 판단해 출력하는 것이고, 현재 나의 클래스는 용사다.
지난 몇 년간 겪어 온 바에 따르면, 용사 클래스는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내 의지에 반응해 레벨이 오르는 것과 관계없이 내 능력치를 올려 주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용사 클래스와 어울리는 상황에 처할 때…… 내가 시스템이 판정하는 용사 같은 짓을 할 때는 더더욱. 그리고 그런 일은 대개 던전 내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특히 클리어가 어려운 던전에서.
그러나 그런 고위급 던전은 한국 정부에서 아무나 입장할 수 없도록 관리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로는 국가시험에서 랭크를 따 자격을 인증하거나, 혹은 S급 이상의 랭크를 딴 헌터의 동행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우연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내가 무엇보다 바라 마지않는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불운이 내게는 기회가 된다.
나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기 전 먼저 장비를 장착하며 약간의 의문을 떠올렸다.
“……대체 왜.”
시스템은 대체 이런 나의 무엇을 보고 나를 용사라고 판정한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님페의 바람을 발동시키며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몸이 추락하며 바람이 사정없이 몸을 때렸다.
뛰어내리는 순간 나는 문득, 아리아드네의 말을 떠올렸다.
그 애는 내가 흔들릴 때마다, 괴로워할 때마다 이렇게 말해 주곤 했다.
“괜찮아요. 당신이 때때로 길을 잃고 방랑하더라도, 언젠가는 길을 찾아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제가 도울게요.”
그 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서 혹시라도 잊지 않도록 나는 내 플레이어명에 그 말을 새겼다. 그 애의 말을 지침으로 삼아 언제나 볼 수 있도록.
내가 아리아드네의 말을 기억하는 한, 목숨을 던져 맞서 싸우기로 한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는 어리석어 또다시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바닥에 부딪치기 직전 나는 발을 쾅, 굴렀다.
바람이 나를 추락 직전에서 공중으로 붕 띄워 냈다. 그리고 다시 추락하고, 다른 발로 한 번 더 땅을 걷어찼다.
순식간에 주위 풍경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 길의 끝이 너희에게로 향하는 것이라면, 위선이라도, 그게 뭐든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