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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7화 (28/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7화

이우연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따라가며 도착한 곳은 신촌역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커다란 대학 병원 근처였다.

그건 나에게도 꽤 익숙한 풍경의 건물이었는데,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달라진 것은 커다란 대학 건물의 정문이 폐쇄되었고, 그 주위를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군인들이 경계하는 선을 넘기 직전에 멈추어 섰다.

나에게 다가와 무언가 주의를 주려던 군인 중 하나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우연 헌터다.”

“김숙자 교수님께 연락해.”

군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우연은 바로 그쪽 무리에 합류하는 대신 천천히 내 곁으로 내려왔다.

“강예나 씨, 빠르네. 그런데 던브도 아닌데 건물 밟고 다니면 신고당하니까 조심해.”

이런 젠장.

나는 혀를 찼다.

주위를 경계하던 군인들 사이로 한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우연이 마주 걸어갔다. 군인들도 이우연의 얼굴을 아는 듯 자리를 비켜 줬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여자가 이우연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이우연은 가볍게 웃으며 묵례했다.

“숙자 교수님.”

“이우연 군.”

아, 저 사람이 김숙자인가.

나는 호기심에 김숙자를 자세히 살폈다.

나이는 50대 후반쯤일까?

호칭이 교수님이기에 나도 모르게 온화하거나 까다로운 학자 스타일의 인상을 상상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아마 길거리에서 지나치다 보았다면 배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키가 훌쩍 크고 마른 몸에, 걸친 것은 종아리까지 오는 검은색의 긴 가죽 코트와 가죽 바지였고, 그 손에는 차림과 어울리지 않는 짧은 완드형 스태프가 들려 있다.

“하하. 오랜만이네요, 교수님. 이런 식으로 뵙다니.”

“지금 웃을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우연 군.”

김숙자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저도 모르게 흠칫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이다.

던전 공략 도중에 클리어 조건이 바뀌었다더니, 그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간 사람 중 지인이라도 있는 걸까?

다만 이우연의 뒤에 서 있는 나조차 그 가시를 느꼈는데, 이우연은 그런 김숙자의 날카로운 말투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럼 가면서 브리핑해 주시죠. 아, 이쪽은 제가 스카우트한 헌터. 같이 들어도 되겠죠?”

“……뭐?”

상황이 상황이라 내게는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김숙자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드문 일이군. 우연 군이 누구랑 같이 다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영원 길드 소속인가?”

“김성연 길드장님 사람은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걸 물어보시는 거라면.”

“그런 걸 물은 건 아니니 부디 오해하지 말게. 그래, 이쯤하지. 같이 와도 좋아.”

둘의 대화는 빠르게 지나쳐 갔지만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꽤 많았다.

영원 길드의 김성연 길드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건가. 김성연도 랭킹 순위에 있었는데, 이건 기억해 둘 만한 정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니, 나도 김숙자와 이우연이 걸음을 옮기는 것에 보폭을 맞춰 따라갔다.

군인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김숙자가 걸음을 옮기며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을 알게 된 건 30분 전이야. 헌터 하나가 중도에 던전에서 떨어져 나왔어.”

“떨어져 나왔다, 하심은?”

“히든 클리어 조건을 저도 모르게 충족시킨 모양이야. 그래도 덕분에 다행히 던전 안의 상황을 알게 되었어.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클리어 조건은 물론이고 던전 내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더군.”

“클리어 조건은 뭡니까?”

“해당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섬멸하는 것.”

나는 숨을 집어삼켰다.

한국의 던전 등급 분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타르토스에서는 이 정도면…….

“S급으로 격상시켜야겠네요. 몬스터의 종류는 몰라도 조건이 섬멸이라.”

이우연의 말과 내 의견이 일치했다.

그 말대로였다.

고위급 던전들을 공략하는 일은 물론 어렵지만, 그래도 클리어 조건 자체는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충족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클리어 조건이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섬멸하는 것일 경우, 섬멸 자체도 문제지만 클리어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아무런 대비 없이 들어갔다가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기 십상이다. 아니, 무인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나쁘지.

“그럼 지원은 광역기를 가지고 있는 마법사들을 위주로 해야…… 교수님은 당연히 가실 테고.”

“아니.”

김숙자가 짧게 대답했다. 이우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김숙자의 옆얼굴을 쳐다보았으나, 김숙자는 이우연을 돌아보는 대신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내 기억으로 대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정문이 있었던 곳에는 이제 커다란 마름모 모양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김숙자가 말했다.

“먼저 던전 포화도부터 조회해 보게. 설명은 그다음에 하지.”

던전 포화도란 고정형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까지의 수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고정형 던전을 주기적으로 클리어하게 되면 이 포화도가 낮아지는데, 반대로 공략을 실패하게 되면 포화도가 높아지고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고정형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게 된다.

“던전 포화도 조회.”

김숙자의 말대로 던전 포화도를 조회해 보니, 눈앞에 붉은색의 게이지 바가 떠올랐다.

- 해당 던전의 포화도는 ‘위험’ 상태입니다.

이런. 옆에 서 있던 이우연도 포화도를 조회했는지 약간 놀란 듯 숨을 삼켰다.

이 상태라면 앞으로 1, 2번만 공략을 실패해도 포화도가 넘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것이다.

고정형 던전 브레이크의 위험성은 바로 돌발형과 달리 구역 제한 없이 몬스터가 현실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돌발형 던전 브레이크는 해당 구역 내의 모든 사람이 죽겠지만, 고정형 던전 브레이크는 구역 제한이 없다.

물론 이 경우 한국이라면 최신식 무기의 화력을 이용할 수 있으니 타르토스보다야 사정이 낫겠지만, 그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곳은 위치상으로도 던전 브레이크가 터질 경우 아주 위험했다. 근처에 대형 병원이 있는 데다 유동 인구도 많은 곳이니까.

이우연이 날카로워진 어조로 김숙자에게 물었다.

“가-18 던전은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곳이잖아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교수님?”

“물론 관리하고 있어. 선이가…… 아니, 이선 헌터가 정부 소속 헌터들을 데리고 정기 공략을 진행 중이었네. 포화도는 어제까지만 해도 안정 범위였고.”

“그럼 포화도가 이렇게 단숨에 올랐다고요? 히든 클리어로 나온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

“아무 말도 안 해. 넋이 빠져 있어.”

“뭐라고요? 대체 왜요? 아무리 신입이라지만 그래도 기초 교육은 받았을 텐데.”

“그걸 모르니 답답한 거야. 클리어 조건만 겨우 말한 뒤에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아무 말에도 대꾸를 안 해.”

김숙자가 천막 안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누군가가 간이용 침대에 누워 의료진들의 처치를 받는 것이 보였다.

이우연은 무언가를 물어보려는 듯 그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김숙자가 제지했다.

“할 수 있는 처치는 다 해 봤어. 그렇지만 마냥 정보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바로 입장…… 뭐야 이게.”

이우연이 던전 입구에 다가섰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인원 제한?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앞으로 한 명이라고요?”

“그래.”

김숙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따라 시스템을 조회해 보았다.

- 해당 던전의 공략 상황을 조회하시겠습니까?

- 해당 던전은 현재 공략이 진행 중입니다. 던전 공략을 위해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됩니다.

- 입장 가능 인원 (19/20)

나는 이우연의 황당하다는 얼굴을 살펴보았다.

김숙자와 이우연의 반응을 볼 때 한국에서 인원 제한이라는 조건이 붙은 던전이 출현한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타르토스의 경우 이미 던전이 출현한 지 20년이 되는 시점이었고, 그쪽에서는 인원 제한이 걸린 던전이 이미 드물지도 않았다.

심지어 인원 제한이 걸린 던전 클리어 시 나오는 아이템을 독점하려고 용병들 간의 싸움도 자주 일어나곤 했다.

다만 그런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이 고정형 던전이 이미 숱한 노력으로 클리어되어 공략집이 완성된 다음에야 나오는 이야기다.

지금은 아직 이 던전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아무런 데이터도 없는 상황.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이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야.”

설명을 모두 끝낸 김숙자가 품 안을 뒤져 담배를 꺼냈다.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기 전 잠시 나에게 양해를 구한 후 불을 붙였다.

이우연이 그걸 보고 말했다.

“금연하시겠다더니.”

“피우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니 그렇지. 포화도는 앞으로 한두 번 공략 실패할 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정도로 위험하고, 그런데 지금 안에 있는 헌터는 이선을 제외하면 A급 던전 첫 공략을 목표로 꾸려진 햇병아리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헌터는 단 한 명이야.”

여러모로 난장판인 상황이긴 했다.

그러나 이우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럼 교수님은 어제까지 부산 쪽 던전을 공략하고 오셨으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자네를 부르지 않았겠지.”

“예, 제가 갑니다.”

그렇게 말한 이우연의 시선은 던전 입구만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선택지는 고려해 보지도 않은 사람처럼.

그 표정에서는 아까 보이던 장난스러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묘할 정도로 잘 다듬어진 옆얼굴이 저물어 가는 햇빛을 등지고 있었다. 섬세한 속눈썹이 눈 밑으로 처연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제가 할게요.”

그 광경에 왠지 모를 뻐근함을 느껴 나는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왜, 왜 이러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던전 브레이크가 터질 경우를 대비하는 게 좋을 겁니다. 싫으시겠지만 영원 길드에도 연락을 넣어서…….”

이어지는 이우연의 말을 듣고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 차리자.

“잠깐만요.”

그 말에 이우연과 김숙자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허리에 찬 검을 툭 건드렸다.

“물론 이우연 헌터의 광역기 화력은 인정합니다만, 이미 진입한 파티에 부족한 포지션을 보충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그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야.”

초면이라 김숙자가 내 의견을 무시할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관대한 모양이었다.

김숙자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고개를 돌려 연기를 뿜었다.

“이번에 던전에 들어간 헌터들. A급 던전에 들어갈 정도니 아주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S급 지도하에 첫 공략 중. 그렇기에 부족한 포지션이고 뭐고 없어. 일단 화력이 필요하다는 거지.”

“이선 헌터는요?”

“나와 같은 마법사라 광역 마법도 사용 가능하니 몬스터 섬멸이 조건이라면 아주 최악인 건 아니야. 그리고 이우연 군도 갈 테니까.”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천막 안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켰다.

“아무리 A급 첫 공략이라지만 일반적으로 저렇게까지 넋이 빠질까요? 그것도 이미 히든 조건 클리어로 나와서 안전해진 상황인데.”

그렇게 말하자 이우연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그는 일주일 전에 나와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를 클리어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이선 헌터의 능력에 맞추어 가장 상성이 좋지 않은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말이지?”

“그래.”

원래 고정형 던전은 입장하는 플레이어의 능력과 관계없이 정해진 몬스터와 고정된 환경이 나타나지만, 지금은 던전 입장과 동시에 완전히 환경이 달라진 상황이다.

이우연의 특성에 맞추어 ‘리치’가 소환된 것처럼, 현재 던전 내에서 마법사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몬스터가 나타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법사가 가장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같은 마법을 쓰는 몬스터지. 그래, 그렇다면 저 신입도 이해가 가. 정신계 마법에 당했을 수 있겠군.”

이우연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고, 김숙자는 거의 다 피운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나를 향하는 김숙자의 시선이 칼처럼 날카로웠다. 의심이 가득한 눈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갑자기 듣도 보도 못 한 헌터가 튀어나와 아는 척 지껄이고 있으니까.

……솔직히 랭커인 김숙자에게 주목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이우연부터 보냈다간 던전 내 인원이 모두 몰살당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여러모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김숙자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이우연이 끼어들었다.

“교수님, 이 사람 말이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건에 대해 정기 회의에서 보고하고 정식으로 표본을 모아 보려고 했어요.”

“……그래도 나는 이우연 헌터가 최선일 것 같은데. 마법사 속성의 몬스터와 궁합이 좋은 클래스라고 해 봤자 몇 없고,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헌터 중에는 더더욱 없어서.”

“아니요.”

나는 허리에 찬 검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에이펙스의 광검이 미미하게 진동했다. 마치 앞으로 할 일을 기대라도 하듯이.

“제가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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