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8화
그 말에 나를 바라보는 김숙자의 눈길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시선이 내 검과 갑옷을 차례로 훑었다.
“자네 클래스가 대체 뭐길래?”
물론 여기서 용사라는 클래스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숙자는 충분히 나를 의심스럽게 생각할 테니까.
적당한 변명도 생각해 두었다.
나는 검집에서 에이펙스의 광검을 뽑았다. 손에 들린 광검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클래스가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유효할 겁니다.”
희고 투명한 날은 아직 성검으로 진화하지 않았음에도 누가 보아도 성스러운 빛을 뿜고 있었다.
“그게 대체 뭐지? 성검이라도 되나?”
“성검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 스펙은 아니지만, 이 검은 마(魔) 속성에 절대적인 효과가 있어요.”
광검이 항의하듯 자신의 몸을 떨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거짓말해서 미안하긴 한데 네 주인이 허접 깡통 신세라 당분간 어쩔 수 없으니까 조금만 참아.
“이건 이우연 헌터가 직접 효과를 봤으니 보증해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
이우연은 내 말을 듣고 나와 검을 번갈아 보더니 이윽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언가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말을 꺼냈다.
“그건 맞습니다. S급 몬스터인 리치에게도 효과가 있는 걸 봤어요. 제가 보증하죠.”
물론 김숙자도 그리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런 아이템은 어디서 얻은 거지? 자네 이름은?”
이렇게 나선 이상 김숙자의 시선을 받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뭐, 내가 랭킹 1위라는 것만 들키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적당히 강한 신인 헌터라고만 알면 충분했다.
나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서 대답했다.
“……이름은 강예나입니다. 이 검은 얼마 전 돌발성 던전에 휘말렸다가 운 좋게 얻었습니다. 던전은 클리어 후 사라졌고요.”
“꾸민 것처럼 뻔한 대답이군. 신뢰가 가는 건 아니야.”
김숙자가 칼처럼 내 대답을 잘랐다.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이우연을 돌아보았다.
“이우연 헌터의 말만 듣고 이런 상황에서 무명의 헌터를 함부로 진입시킬 수는 없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누가 책임질 거지?”
“그거야 제가 책임지겠죠.”
이우연은 여전히 무언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김숙자가 이우연을 돌아보았다. 눈길이 사람을 죽일 것처럼 날카롭다.
“누가 들으면 세상 모든 던전 브레이크는 다 자네가 해결하는 줄 알겠어.”
놀랄 정도로 험악한 기세였지만 이우연은 움찔거리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제 이우연의 얼굴에서도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은 어쩐지 평소보다 한층 더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이우연은 허리에 찬 검자루를 쥐었다.
“평소에야 그렇지 않지만, 교수님은 지금 연이은 던전 공략으로 마력이 부족하시니 제가 나서야겠죠? 걱정 마세요. 제가 다~ 해결할 테니.”
명백하게 비꼬는 말에 김숙자도 잡고 있던 완드형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지자 주위를 호위하던 군인들이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내가 이런 식으로 깔보일 정도로 약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지금 당장 겨뤄 볼까?”
“제가 누구 좋으라고 그런 짓을?”
“우리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아직 띄워 놓았던 허공의 포화도 수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치는 조금씩이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시간이 별로 없다.
“그리고 김숙자…… 교수님. 생각해 보시죠. 지금 이우연 헌터가 들어가서 클리어한다면야 다행이지만, 만일 이우연이 도전했는데도 공략에 실패하면요? 이우연이 밖에 없다면 던전 브레이크를 초기에 진압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음.”
“그러니까 어차피 저 안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해요. 그리고 클리어 확률을 높이려면 마법사 클래스가 아닌 다른 포지션을 보내야 하고요.”
그리고 그 사람은, 무명이라지만 이우연이 보장하는 효과가 있는 아이템을 내세운 나다.
내 말을 들은 김숙자가 침묵했다. 그녀의 얼굴에 고뇌가 떠올랐다.
“잠깐만. 이리로 와 봐.”
김숙자가 침묵한 사이 이우연이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내가 뭐야, 싶어서 쳐다보니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휘둘렀다.
파직.
마력이 충돌하며 스파크가 튀었다.
김숙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소리가 유리되어 버린 공간 너머의 나와 이우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황당했다.
지금 이우연 이 자식, 김숙자 앞에서 소음 차단 마법을 건 거야? 대놓고 비밀 이야기를 하겠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냐?”
“확신해?”
하지만 이우연은 내 황당함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물었다.
“무슨 확신을 말하는 건데?”
“클리어할 수 있는 확신이 있냐고.”
“……그런 게 어디 있어.”
나는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성공을 확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변덕을 부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이번에 그런 것처럼.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헌터 중 내가 제일 클리어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 확실해.”
김숙자의 말대로 마법을 파훼하는 것에 특화된 클래스는 몇 없다. 성직자나 성기사 아니면 용사 정도다. 그리고 모두 다 드문 클래스였다.
그리고 그 드문 클래스의 인간이 딱, 여기 있다.
사실 나라고 용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만일 마법에 재주가 있었더라면 마법을 배웠을 텐데, 처음 타르토스에 떨어졌을 때는 무언가를 배울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으려 애쓰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얼렁뚱땅 용사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마법이 워낙 유용하니 늦게라도 배워 볼까 했었지만 루카스는 나한테 재능이 없다고 하고, 게다가 손에 들어온 장비라는 것들이 에이펙스의 광검에 앙겔루스의 가호에…… 결국 그대로 클래스가 고착된 채 살아온 지 몇 년째.
나는 이우연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남의 마법에 어깃장 놓는 건 내 전문이야. 봤지? 리치가 마법 시전하기 전에 목을 딴 거.”
“그거 참…… 듣기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마검사로서 듣기 싫은 발언이라고 해야 하나.”
“너야말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내 편을 다 들고, 괜찮겠어? 내가 실패하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텐데.”
“편들어 달라고 그렇게 눈치를 줘 놓고서는 무슨 소리야? 그리고…… 당신이 실패한다면 그 누가 들어간다고 해도 실패하겠지.”
진지하게 하는 말에 약간 심장이 두근댈 뻔했다. 나는 한 번 더 손으로 가슴 위를 꾹 눌렀다.
저, 저 속눈썹이 문제야.
정신 차려라, 강예나. 저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불여우니까.
나는 일단 헛기침을 한 번 해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에 말을 꺼냈다.
“……내가 그 정도로 너한테 확신을 줬다는 건 몰랐네.”
“합리적인 결론이지. 랭킹 30위까지 고려해 봤지만 딱히 항마법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고, 아니면 같은 마법을 부리는 몬스터를 화력으로 밀어 버려야 하는데…… 그건 나나 저기 있는 김숙자 교수님 정도지. 조한율은 힐링 계열 마법 전문이고, 그게 아니면 양태원 정도인데…… 지금 제주도에 가 있어서 오는 데 시간이 걸려.”
“양태원? 그건 또 누구야?”
“있어. 그런 새끼. 몰라도 돼. 중요한 건 당신 말대로 지금은 강예나 씨, 당신이 제일 가능성 있는 공략원이라는 거지.”
“믿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감사 인사는 받도록 할게.”
“하여간 이거나 풀어. 김숙자 교수님도 결정한 것 같으니.”
이우연이 힐끗 김숙자를 본 후 순순히 마법을 풀었다. 김숙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우연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미쳤나?”
“오늘은 제정신인 편인데요. 그래서, 결론은 내리셨습니까?”
“……그래.”
김숙자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서 나는 그녀의 결론이 어떨 것인지 직감했다.
“자네를 깔보는 건 결코 아니야. 다만 자네 하나만 믿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
“이해합니다.”
“지금은 내가 이 현장의 책임자야. 그 권한으로 자네의 던전 입장을 허락하겠네. 포션은 가능한 만큼 지원할 거고, 그 밖에도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시간이 닿는 한 구해 주지.”
드디어.
나는 검을 쥐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네를 투입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 이 시각부터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것을 예정하고 움직일 거야.”
나를 들여보내되, 내 실패를 전제하고 움직인다는 말이었다.
합리적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옆에 서 있던 이우연이 심기가 불편한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지금부터 던전에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넌 어차피 죽을 거란 소리라도 하고 싶은 건가요, 교수님?”
“아니, 그게 아니지.”
나는 이우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쳐서 불여우가 내뿜는 불을 가라앉혔다.
이우연이 나를 돌아보았다.
김숙자 교수와 시선이 마주쳐서, 나는 씩 웃었다.
“내 실패를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소리잖아.”
이만한 격려가 없었다. 김숙자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럼, 가게.”
그리고 금방 자리를 떠날 것 같던 김숙자는 망설이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건투를 빌지.”
* * *
- 해당 던전은 현재 공략이 진행 중입니다. 도중 입장하실 경우 업적치 정산에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입장하시겠습니까?
- 입장 가능 인원 (19/20)
“그럼, 간다.”
준비를 마친 나는 이우연에게 짤막한 인사를 남겼다. 이우연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던전 입장에 동의한 순간이었다.
서서히 빛 속에 잠식되어 가는 나에게 이우연이 이렇게 말했다.
“던전 입장 가능 인원이 더 늘어난다면 나도 들어갈 수 있게 돼.”
“뭐?”
“부디, 합리적으로 생각을 하도록…….”
이우연의 말이 도중에 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묻기 전에 나는 시야가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오감이 돌아온 것은, 코를 찌를 듯 만발한 풀과 꽃의 향기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 해당 던전은 공략 진행 중입니다. 던전의 클리어 조건 조회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시야를 뒤덮는 시스템 메시지들. 그 반투명한 메시지 너머로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저건…… 성?”
공략이 진행 중인 만큼 갑자기 치열한 전투 현장 한복판에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각오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시야에 먼저 보인 것은 드넓게 펼쳐진 푸른 들판이었다.
던전이라는 살벌한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들꽃과 풀이 무작위로 자라나 있었고, 풀을 뜯던 토끼가 내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라 빠르게 도망갔다.
던전 내의 날씨는 봄인 걸까? 따듯한 햇살이 들판으로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원의 한가운데, 거대한 성벽이 있었다.
한때는 웅혼했으리라 짐작되는 회색빛의 성벽은, 누가 버리고 떠나기라도 했는지 온갖 넝쿨과 식물에 잠식되어 바스라지고 있어 몹시 처량했다.
쿠궁!
지금도 돌조각이 바스러져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성벽 너머로 언뜻 보이는 높은 성 또한 방치된 지 오래된 듯, 첨탑의 일부는 비참할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이게 뭐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설마 저 성안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스템이 내 말에 반응했다.
- 필드, ‘유령의 성’을 인지하였습니다.
- ‘유령의 성’ 안에 진입하시겠습니까?
- 현재 ‘다섯 번째 밤’이 진행 중입니다.
……예? 유령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