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1화
내 말에 경악한 이선의 눈이 떨렸다.
“저주라니.”
“마법사가 다루기 가장 까다로워하는 것 중 하나죠.”
같은 마(魔) 속성이기에 같은 마법으로는 대응할 방법이 무척 적다. 처음 겪는 상황이니 더 오래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이선은 빠르게 당황을 수습하고서 내게 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저주라는 걸 상대해 보셨다는 거네요. 알려 주세요. 대체 저주가 뭐예요?”
나 또한 저주에 아는 건 적었지만 이것만큼은 대답할 수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물어봤던 질문이니까.
나는 아리아드네의 말을 떠올려 대답했다.
“저주란 건, 이미 죽은 누군가가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며 아직 이 세상에 남은 무언가를 ‘매개체’로 삼아 남긴 소망입니다.”
“소망이라니, 저주인데요?”
이선이 내게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한편, 에이펙스의 광검은 아까 저주를 간파한 이후부터 계속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용사의 검이 판정하기에 ‘저주’란 악이기 때문일까?
나는 검자루를 쥐며 대답했다.
“아마 지금쯤 저 사람들은 저주 속에서 꿈을 꾸고 있을 거예요.”
물레의 바늘에 찔려 잠든 공주, 라는 말을 괜히 한 것이 아니다.
저주에 걸리면 정신력에 따라 다르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에는 정신을 잃고 그대로 깨어나지 못하는 자가 많았다.
잠자는 것처럼 죽으면 운이 좋은 거고, 대개는 아주 고통스럽게 죽는다.
혹시 운이 좋게 도중에 저주에서 풀려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주 오래,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험을 치렀다고.
“그 꿈은 저주를 만들어 낸 당사자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미련을 이루려고 만들어 낸 겁니다. 그래서 소망이라는 거죠. 그 소망을 이루려는, 일종의 미션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네요.”
그 말을 들은 이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럼 설마…….”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이선의 답에 긍정하고서 다시 한번 시스템 메시지를 띄웠다.
- 해당 던전 클리어 조건 : 해당 던전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의 섬멸
클리어 조건은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나는 허공을 노려보며 물었다.
“해당 던전 내의 모든 저주를 정화, 혹은 파훼하는 것이 클리어 조건이야?”
마치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 해당 던전의 클리어 조건 일부가 해금되었습니다.
- 클리어 조건을 상세 조회할 수 있습니다.
- 상세 조회 : 모든 저주를 정화 또는 파훼하는 것은 클리어 조건 충족으로 판정됩니다.
나를 따라 시스템을 조회했던 이선의 얼굴이 굳었다.
“정말로,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라는 게 저주였던 거군요. 상상도 못 했어요.”
저주라니, 이선은 그렇게 말하며 소름이 돋았는지 양팔을 문질렀다.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우, 하긴 마법도 있는데 저주라고 없으리란 법은 없죠.”
“그렇게 이해하면 편하긴 해요.”
솔직히 나도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 중 무엇 하나 납득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른 세계로 넘어간 것도, 다시 지구에 돌아온 것도 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 받아들였을 뿐.
“그럼 예나 씨, 저주를 풀 방법은 있나요? 설마 동화 속 이야기처럼 왕자님의 키스는 아닐 테고.”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으나 이선이 가벼운 농담을 했다.
그런 걸로 저주가 풀린다면 루카스의 입술이 꽤 값싸져야겠는데.
나는 상황도 잊고 잠시 웃었다. 이선도 따라 웃었다.
그래, 이런 상황일수록 웃음은 중요하다. 그게 우리가 이기는 시작점이 될 테니까.
“방법은 두 가지예요.”
클리어 조건 중 하나인 정화는 쓸 수 없다. 저주를 정화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기사와 신관 같은 클래스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용사 클래스도 마(魔) 속성에 강한 클래스 중 하나지만 그렇다고 저주를 정화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베어 없애는 것뿐.
내 클래스가 참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려고 했지만, 내가 당장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념에 잠겨 있을 틈은 없다.
“첫 번째는 이들이 건드린 저주의 매개체를 부수는 것. 이게 파훼예요.”
“그럼 성안에 들어가서 짐작 가는 물건을 모두 다 부수면 되는 건가요?”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죠. 클리어 조건인 섬멸도 충족시킬 수 있을 테고.”
나의 경우 저주가 걸린 물건을 찾아 파괴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내 에이펙스의 광검은 꿩을 쫓는 사냥견처럼 저주를 찾아낼 테니까.
대개 저주를 파훼할 때 반동이 오지만 이것도 앙겔루스의 가호가 있다.
그러니 아마도 이게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다.
다만…… 나는 이선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매개체를 파괴한다고 해서 이미 저주에 걸린 사람들의 저주가 풀린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요.”
던전이 클리어된 후 밖으로 나간다고 한들, 지구에는 신관이나 성기사처럼 성력을 다루는 클래스가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니 치료를 받을 방법은 요원할 거다.
내 말을 이해한 이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결국은 이거였다.
던전 클리어를 가장 우선시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이들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
이선의 눈길이 이제껏 자신이 지켜 온 헌터들의 얼굴로 향했다.
움켜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2주일간 홀로 버텨 왔음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이선은 던전 클리어로 향하는 지름길을 앞에 두고 처음으로 절망에 잠식되려 하고 있었다.
그 심정을 계속 맛보게 두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건 일단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기로 하죠. 두 번째 방법은…….”
만일 상대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방법은 쓸 수 없기에, 나는 이선의 눈동자를 깊숙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두 번째는…… 저주를 들어주는 겁니다.”
“예? 저주를 들어준다고요?”
“해주(解呪)라고도 하죠.”
내가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해당 던전의 클리어 조건이 모두 해금되었습니다.
- 상세 조회 : 모든 저주를 해주하는 것은 클리어 조건 충족으로 판정됩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까 전 메시지가 ‘일부’이기에 찜찜하다 했지.
이제 확신은 얻었다.
“간단히 말해 저주란 게 죽어 버린 이들의 소망이라면, 그 소망을 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그야말로 왕자님의 키스인 셈이죠. 이 경우 매개체 파훼랑은 다르게 헌터들에게 걸린 저주도 풀릴 거고요.”
사실 타르토스에서도 저주라는 것은 그리 흔하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발견되더라도 해주는 거의 하지 않는다.
정화나 파훼가 정석이다.
그러나, 아리아드네.
내가 해주라는 방법에 익숙해진 것은 아리아드네 때문이다.
아리아드네는 대륙에서 손꼽히는 신관이었고 저주를 정화할 수 있는 성력이 충분했다. 그래서 전 대륙에서 그 애한테 저주를 정화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리아드네는 저주를 정화하는 대신, 시퍼런 얼굴과 얼음장 같은 손을 하고 매개체를 붙든 채 며칠이고 잠에 빠졌다.
저주가 걸린 매개체에 일부러 홀려, 이미 죽어 사라져 버린 자의 소망을 듣고 꿈속에서나마 그 소망을 이루어 준다.
그것이 아리아드네가 말하는 해주였다.
그때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말라고, 당장 그거 부숴 버리기 전에 그만두라고 그렇게 화를 냈었다. 뭐, 아리아드네는 나한테 화 못 내겠지? 본인이 줄곧 했던 짓인데.
“네? 그럼 일부러 저주에 걸리시겠다는 말이에요? 그걸 방법이라고?!”
“말이 좀 심하시네…….”
하지만 도박이란 건 확실했기에 나는 이선의 화가 난 목소리를 묵묵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들 저주에 걸려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예나 씨가 저주에 걸려 봤자 환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것뿐이잖아요! 그게 무슨 해결 방법이죠?”
“저는 좀 다르죠.”
용사니까, 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나는 에이펙스의 광검을 가리켰다.
“저는 항마 속성이 있는 장비를 착용하고 있으니, 저주에 걸려도 방비가 가능해요. 신입들과 달리 꿈에서 미션 수행을 할 만한 여력이 된다는 말이죠.”
나는 에이펙스의 광검을 들어 보였다. 누가 봐도 성검처럼 생긴 검이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내 검을 보고서도 무언가를 말하려는 이선에게 나는 못을 박았다.
“이건 저만 들 수 있는 검이에요. 다른 사람한테는 못 넘깁니다.”
“그, 그래도 절대 안 됩니다. 예나 씨가 경험 많은 헌터라는 건 알겠어요. 그렇지만 누군가 저주에 걸려서 미션을 클리어해야 한다면 그건 저예요.”
이선의 목소리는 간절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게 저고, 남아 있어야 하는 누군가가 바로 이선 헌터겠죠.”
나는 누워 있는 헌터들을 가리켰다.
저주에 걸렸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얼굴이 다들 창백하게 보였다.
그들을 보니 이우연이 내가 던전에 입장하기 직전에 꽤 의미심장한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사실, 나는 이우연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의미를 이해했다.
만일 이 던전 공략이 실패로 이어져 포화도를 넘겨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그때는 한두 명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김숙자 교수는 던전 브레이크를 예상하고 움직이겠다고 했고, 이우연이 있다지만, 어쨌건 그럴 경우 희생은 필연적인 것이다.
심지어 던전 바로 옆은 대형 병원. 대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여기서 상태가 좋지 않은 신입 헌터 몇 명을 희생해 누군가가 던전으로 진입할 수 있다면?
그편이 이우연의 말대로 합리적일 것임은 분명했다.
“물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 게 최우선이에요. 그런데도 지금 해주를 시도하려는 근거는 단 하나. 밖의 시간이 안의 시간보다 느리게 흐른다는 거죠.”
나 또한 던전 브레이크가 당장 일어난다면 이선이 말리더라도 내가 먼저 저 성을 통째로 파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던전 안팎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밖에서 포화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는 이유도 시간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입 헌터들이 꿈속에서 미션을 몇 번이고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다른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
즉 내가 꿈속에 들어가 미션을 클리어한다면 아무 희생도 필요하지 않다.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살릴 수 있다면 살리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뭐, 게다가 이쪽이 더 내 클래스에 맞는 행위지 않겠어? 이게 다 내 능력치를 위한 일이었다.
나는 이선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일단 해 봅시다.”
나를 바라보는 이선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꼭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 * *
이선은 결국 내 작전에 동의했다.
나는 이선과 저주에 걸려 잠에 빠진 공주들을 두고서 성안으로 홀로 진입했다.
성안은 밖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황량한 무덤 같았다. 거대하고 화려했을 홀에는 여기저기 약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금으로 장식했으리라 짐작되는 벽은 이제 흉물스러운 자국을 남긴 채 을씨년스러울 뿐이다.
시간이 있다면 찬찬히 훑어보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저주에 걸린 매개체를 찾으려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저주를 간파했습니다.
- 앙겔루스의 가호가 당신의 정신을 방어합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떠오르는 메시지.
밤에 홀로 들어가 하나씩 사라졌다더니, 그냥 성안 전체가 ‘건드려서는 안 될 것’투성이다.
“유령의 성이 아니라 저주의 성인 수준인데.”
이 정도면 성안에 있는 모든 게 저주에 걸려 있고, 이선의 정신 방벽이 생각보다 견고해 그녀만 무사했던 것에 가깝다.
나도 앙겔루스의 가호가 있으니 내가 원한다면 저주에 걸릴 일은 없겠으나, 나는 지금 일부러 저주에 걸려야 하는 상황. 앙겔루스의 가호가 항의하듯 은은한 흰빛을 띄웠으나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나는 이윽고 성의 가장 커다란 홀을 찾아냈다. 홀로 이어지는 복도는 창도, 조명도 하나 없이 어둡고 외로웠다.
거대한 홀도 엉망진창인 꼬락서니였다. 찢어져 떨어진 커튼, 파괴된 벽화,
가장 커다란 벽에는 화려한 거울이 깨진 채 걸려 있었다. 온전한 것은 얼굴을 보기도 힘들 만큼 작은 조각들뿐.
에이펙스의 광검이 검은 연기를 잡아채고, 앙겔루스의 가호는 여전히 내 정신을 방어했으나, 그럼에도 저주에 걸리는 방법은 알고 있다.
누군가의 소망을, 목소리를 듣는 법. 아리아드네가 내게 그것을 가르쳤다.
“죽어서도 생전의 무언가를 잊을 수 없어 족적을 남긴 거예요. 가엾지 않아요? 제가 듣지 않으면 누가 듣겠습니까?”
그것은 결국 누군가를 동정하고 사랑하는 법이다.
너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 아닌데도.
손가락이 아주 자그마한 조각만이 남은 거울에 닿았다. 거울의 표면이 일렁였다.
비참한 잔해만이 남았는데도 어디선가 들어온 빛이 아름답게 반사되어, 그 안의 풍경을 비추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저주를 간파했습니다!
아니, 거울 속에 비친 것은 저주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누군가가 살해당하고, 짓밟혔는데도, 아무도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외치고 몇십 번이고 바랐는데…… 어쩌면 몇 백 년 동안 아무도.
- 히든 퀘스트 : ‘유령의 소원을 이루어 주기’가 발견되었습니다.
- 이 퀘스트를 수행할 경우 당신의 포지션은 ‘수성(守城)으로 지정되며 바꿀 수 없습니다. 동의하는 경우 해당 시간선으로 일시 편입됩니다.
- 동의 Y/N
저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으레 그러리라 짐작했는데도, 허공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살아서 이루지 못한, 죽어서도 잊지 못한 바람.
저주란 어쩌면 마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마법이란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며 일으키는 기적이고, 저주 또한 자연의 섭리조차 거부하며 일으키는 일이니까.
인간의 의지가 작용되어 자연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점에서는 같지 않은가.
운명조차 거부하며 일으킨 기적이라면, 그래.
그런 바람이라면 이번에는 아리아드네 대신 내가 듣겠다.
거울에 닿은 손가락을 중심으로, 거울 속의 풍경에 물결이 퍼지듯 파동이 일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이 천천히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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