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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2화 (3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2화

Chapter 5. 그런 순간이 있다.

나를 감싸는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원탁에 쪼르르 둘러앉은 우중충한 얼굴들이었다.

모두가 은색의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다들 내가 2주 전까지 타르토스에서 줄곧 보곤 했던 외양이었다. 머리는 노랗고 눈은 퍼렇고…… 뭐, 그랬다는 것이다.

하기야 성의 건축 양식이 서양의 그것이긴 했다.

음, 이렇게 보니 새삼 익숙한 풍경이었다. 솔직히 내게는 현대 한국의 모습보다 이쪽이 더 익숙한데…….

내가 좀 더 찬찬히 둘러보려고 할 때였다. 상황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한 놈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항복이 싫다고만 하실 게 아닙니다. 이미 성의 비축 식량조차 바닥이 났습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 다 죽자는 말입니까!”

상황은 모르겠으나 이건 확실했다. 나는 누가 나한테 손가락질하는 게 딱 질색이었다. 마침 눈앞을 보니 소박한 찻잔이 보였다. 안에는 찻물이 반쯤 남아 있다.

내가 찻잔을 보며 던질까 고민하는데, 손가락질을 하는 놈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자가 일어서서 그를 향해 검을 뽑았다.

“감히 단장님께 무슨 언사냐. 건방지다!”

“답답하니 하는 말 아닙니까! 이대로는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될 겁니다!”

“기사단의 명예를 저버릴 셈이냐!”

“죽으면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빙글빙글 잘도 돌아가는군.

나는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있는 곳은 아까 전 내가 있었던 황량한 폐허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눈앞의 벽에는 화려한 붉은색에 금실로 문양이 새겨진 휘장이 걸려 있었으며, 벽에는 각종 무구가 장식되어 있다.

내가 있는 방도 커다란 원탁이 놓여 있어 좁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바닥에는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어 소박한 인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스템 메시지에서 ‘해당 시간선’으로 편입된다는 말이 있었지.

그렇다면 이곳은 유령의 성이 무덤이 되기 전, 유령들이 살아 있던 시간선인가?

- 당신의 포지션이 수성(守城)으로 확정됩니다. 관련 보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는 아직 내가 보았던 마지막 메시지가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나는 일단 행동을 일으키기 전에 보상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 보상 : 해당 시간선의 인물 중 하나로 빙의하게 됩니다. 해당 인물은 플레이어와 가장 비슷한 성향을 따라 무작위로 선택됩니다. 해당 인물의 능력치와 기억을 일부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 당신이 빙의한 인물은 ‘■■한 ■■의 성’을 마지막까지 지킨 ■■의 기사단의 단장입니다. 상세 정보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 시간의 편차로 정보가 일부 제한됩니다.

- 해당 인물의 소원을 이루어 줄 시 미션이 클리어됩니다.

- 공략 팁 : 유령의 소원을 많이 이루어 줄수록 업적치 정산에 가산을 받습니다.

메시지가 우수수 떠올랐다.

일부 정보가 제한된다는 메시지가 뜨는 게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그래, 내가 단장이라 이 말이지? 게다가 이 성을 마지막까지 지킨 기사단의 단장이라.

무엇보다 해당 인물의 능력치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기사단장이라니. 아무리 약해 봤자 현재 나보다야 낫지 않을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 해당 인물의 능력치를 이어받았습니다. 미션 클리어 시 해당 능력치를 보상으로 수령 가능합니다.

플레이어명 : 방랑하는 구도자(상태 : 빙의)

LV.79 (LV.22)

특성 : 관철하는 아귀 (명예로운 전사)

클래스 : 용사 (기사)

체력 : 40 (+350)

근력 : 35 (+300)

민첩 : 25 (+200)

마력 : 750 (+100)

스킬 : 멸혼의 불꽃 lv.max 기사회생 lv. max 불멸의 의지-패시브 (스킬은 전이되지 않습니다.)

“미……!”

미친! 나는 흥분해서 일어나려다 테이블에 무릎을 부딪치고 말았다. 테이블에 금이 간 건지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마저 반갑게 느껴졌다.

한창 서로를 칼과 손가락으로 겨누며 말싸움을 하던 기사들은 그 소리에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선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해당 능력치를 보상으로 수령 가능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능력치 문제를 해결하려고 던전에 들어왔던 내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가 실제로 저 정도의 능력치를 가졌던 것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의 능력이라면 미스릴로 된 검을 휘두른다고 근육통을 느낄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내 본 능력치에 비하면 별것 없는 수치기는 했지만, 지금의 일반인과 다름없는 능력치를 생각하면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또 아직 용사 클래스 보정을 받지도 않았으니 아직 능력치를 더 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일 체근민 수치가 각각 세 자리 후반대만 되어도 일이 훨씬 쉬워진다.

적어도 랭킹전이 일어났을 때 허무하게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좋았어.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던전은 클리어한다. 유령이고 뭐고 다 와라, 이거야!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다, 단장님?”

누군가 단장, 아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빙의 상태라고 했으니 나는 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상태일 것이다.

나는 천천히 원탁에 둘러앉은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아까 전 나를 향해 삿대질했던 기사는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시뻘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회의 중에 다른 생각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상대에 대한 경멸이 가득 차 있는 말투였다. 내가 단장이라면 화를 내야 할까?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어서일까, 기사의 얼굴을 보니 화가 나기보다는 거울 속에서 보았던 비극이 먼저 생각났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예상이 가능한 장면들이었다.

성벽은 무너졌고, 해자는 물 대신 시체가 메웠으며, 사람들은 잔인하게 조롱당했다.

내 시간에서 이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유령이 되어서 던전 미션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미션을 클리어한들 그건 내 득이 될 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다.

“……쳇.”

영 입맛이 썼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밖에.

나는 허공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 당신은 해당 인물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 빙의한 인물의 소원을 이루어 줄 시 미션은 클리어됩니다.

- 단, 적에게 항복할 시 이유 불문하고 미션 실패로 판정됩니다.

- 당신이 지켜야 할 것은 ‘무고한 자들의 생명과 동료들의 명예를 지키는 것’입니다.

- 해당 미션에는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여덟 번째 밤이 오기 전 미션을 클리어해야 합니다.

과연, 그렇군.

던전에 입장했을 때부터 신경 쓰였는데 이제야 저 메시지의 뜻이 이해되었다. 이 성이 함락되기까지 여덟 번의 밤이 필요하다, 이거지.

그렇다면 이미 저주에 걸렸던 다른 헌터들은 현재 어디에 있을까? 분명히 같은 시간선에 편입되었을 텐데 그들의 포지션도 문제였다.

만일 나와 다르게 공성 포지션이라면 골치 아파지는데…….

“단장! 제 말이 들리긴 하는 겁니까?!”

나는 서서히 고개를 내려 일어선 기사를 바라보았다. 기사의 머리 위에는 흰 글씨로 기사의 이름이 띄워져 있었다.

헤이든 단테.

해당 인물의 기억도 일부 이어받는다고 하더니 이게 그 기억인 건가. 시스템이 ‘빙의’라고 했으니 나는 이 이름 모를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해당 인물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했지? 하기야 그래야 속이 풀리겠지.

즉, 나는 정말로 고구마를 너무 많이 먹어 죽어 버린 남의 속을 뚫어 주는 사이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야, 뭐.

나는 씩 웃었다.

내가 그냥 현대 한국인이라면 어느 이름 모를 기사단장을 흉내 내는 것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래 봬도 타르토스에서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다.

말투도 태도도 본받을 만한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헤이든 단테.”

나는 그를 보며 턱짓했다. 그 모습에 헤이든은 순간적으로 기가 질렸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야 그렇겠지. 아마 퍽 거만하고 권위 있어 보일 터였다. 대륙 최고로 오만하고 위대한 용병왕 알리시아를 따라 하는 것이니 틀림없다.

양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팔짱을 끼고서, 나는 앉은 채로 일어서 있는 헤이든 단테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를 위압하는 데 신체적 고하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

“뭐 해? 하던 거 해. 어디까지 하나 보자고.”

내가 그들의 대장이라면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기사단장은 원래도 꽤 권위 있는 인물이었는지 내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일순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내게 삿대질을 하던 헤이든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던 거 하라니까?”

질책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닌 모양이다. 헤이든은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허리에 찬 검을 원탁 위로 올려놓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검은 다행히도 내가 소지하고 있던 에이펙스의 광검, 그대로였다.

원탁에 둘러앉은 기사는 겨우 열 명이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서 낮게 선언했다.

“항복은 하지 않는다.”

“단장!”

“단장님!”

“정말로 모두가 죽을 겁니다!”

그렇게 외치는 헤이든의 얼굴은 두려움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공포는 전염되기 마련이다. 헤이든의 외침을 들은 기사들의 얼굴도 같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말은 마치 절박한 충신의 간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저라고 좋아서 증오스러운 자들에게 항복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절벽 끝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 성의 백성들을 지키려면……!”

“그래, 모두를 지켜야지.”

나는 검을 뽑았다. 근력 수치가 올라서인가, 검을 뽑는 순간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다, 단장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 검이 뽑히는 모습에 헤이든 단테가 깜짝 놀라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마 뽑지는 못했지만.

다른 이들도 내가 검을 뽑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나를 말리러 제각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장님!”

“고정하십시오! 물론 단테 경이 과하기는 했으나 모두 충심에서……!”

“충심이라. 충심, 좋은 말이야. 충심이야말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벼랑 끝에 서 있으니까.”

나는 낮게 웃으며 뽑은 검을 헤이든에게로 겨누었다. 희게 빛나는 검날이 향하자 헤이든이 긴장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갈색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적의가 타올랐다.

이건 내 감정이 아니다. 이미 죽어 버린 어떤 인물의 잔해다.

얼어붙을 것 같은 그 적의에 함몰되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아까부터 입안을 맴돌던 말을 뱉었다.

“그러니 절벽으로 내 등을 떠밀, 충심을 꺾은 간자부터 솎아 내야겠어.”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기사들의 얼굴이 헤이든을 향해 돌아갔다. 의심의 눈길을 받는 헤이든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단장! 증거 하나 없이 누명을 씌우다니요!”

“증거?”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아까 전부터 헤이든 단테라고 쓰인 이름 옆에 ‘배신자’라는 글씨가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증거고 뭐고, 이미 죽어 버린 네 단장님이 자네를 두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첩자라며 통탄하고 있는데.

다만 그 사실을 곧바로 폭로할 수는 없었다. 내가 보는 것은 시스템 메시지일 뿐 증거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또 기억이 온전하다면 모를까, 현재 내가 이어받은 것은 일부 기억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한들 여전히 할 말은 있었다. 나는 헤이든 단테에게로 검을 겨눈 채 말했다.

“이 상황에 항복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변심할 싹이 아니겠나? 애초에 뿌리를 뽑아야지. 불복하는 자는 죽음으로 다스리겠다.”

“단장, 진심이십니까?”

“그래.”

원탁 주위는 침묵으로 휩싸였다. 어떤 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혹은 두려운 얼굴로, 또 어떤 자는 결의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 모두와 시선을 마주쳤다.

“물론 삶은 무엇보다 중요하지. 죽으면 끝이야.”

이건 누군지 모를 죽어 버린 자가 아니라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정말로 이 시간에 살았었더라면 헤이든 단테처럼 항복을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죽으면 모두 끝이다. 명예고 타인의 목숨이고 내가 살아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와 달리 목숨보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람을 이미 알고 있고, 그가 어떤 식으로 제 명예를 지켜 왔는지도 안다.

루카스라면 이들 앞에서 어떤 식으로 말할까?

답은 간단했다.

나는 검을 가슴 앞에 세웠다. 내가 왕자님에게 배운 기사의 맹세법이다.

“그러나 이 삶을 바쳐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 있다.”

그래, 이들에게는 나와 달리 목숨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죽어서도 잊을 수 없던 것이 있었기에, 죽음조차도 소망을 위해 던져 소원을 이루어 줄 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 당신이 지켜야 할 것은 ‘무고한 자들의 생명과 동료들의 명예’입니다.

이미 죽어 버린 이의 이름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죽어서도 무고한 자들의 생명을, 동료들의 명예를 지키지 못해 운명을 거슬렀다. 죽어서도 바라는 것이라는 게 모조리 타인을 위한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소망을 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겠어.

아무도 동조하지 않을까 싶어 불안이 차올랐으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침묵은 조금도 이어지지 않았다. 곧이어 검이 뽑히는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따르겠습니다.”

나직하게, 다음 불꽃이 일었다.

맨 처음 헤이든 단테에게 검을 겨누었던 기사가 그렇게 말하며 검을 제 가슴 앞에 세웠다.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검을 세운 것은 푸른 녹음의 눈동자와 검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떠오른 이름은 엘리사 메이.

그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속이 또다시 내 것이 아닌 감정으로 벅차올랐다.

서글픔, 자랑스러움, 경애하는 마음.

“젠장, 분위기가 왜 이렇죠? 전 애초에 단장님 따라 뒈질 작정이었다고요!”

그리고 데이먼 오닐.

활달해 보이는, 주근깨가 인상적인 청년이 이를 갈며 헤이든을 쏘아보았다.

“저 자식이 괜한 소리를 하니까 다들 잠깐 어이없어한 것뿐이에요!”

“곧 죽어도 진중함은 모르겠구나, 데이먼.”

“젊은 게 좋기는 하구먼. 단장님, 저는 허리가 쑤셔서 검도 못 들어 올리겠습니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다들 농담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들을 시작으로 원탁에 선 기사들이 하나둘씩 검을 가슴 앞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분위기에 눌린 헤이든조차 눈치를 살피며 가슴 앞으로 검을 세웠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단장님.”

엘리사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세워지는 검들을 보며 웃었다. 아니, 이 자리에 있어야 했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아마 울고 싶은 것도 같았다.

“여기 바보들이 참 많네.”

그 말에 기사들 사이에서 웃음들이 터졌다.

엘리사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데이먼은 누구보다 크게 웃었다.

그래, 웃음은 언제나 절망을 극복하는 시작점이지.

가슴 앞에 세워진 검들이 창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래 보았자 고작 검 몇 개. 이들의 목숨을 꺼트린 어둠을 밝히기에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빛이었다.

그래도 한번, 해 보자.

- 여섯 번째 아침이 진행 중입니다. 05: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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