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4화
자, 이제 헌터들에게 최소한의 메시지 전달은 했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아직 있긴 했다. 수성 포지션이라면 대부분 성내에 있을 테지만, 공성 포지션인 헌터들에게 메시지 전달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니.
그래도 저주에 걸려 이쪽으로 올 때 ‘빙의’라는 형식을 빌리는 만큼, 다들 기본적으로 이 성의 주민에 빙의했을 거다. 그러니 혹시 공성 포지션을 선택했더라도 아직 이 성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이건 정말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내가 이 던전을 클리어할 때까지 가만히, 안전한 곳에 피해 있기를.
그걸 위해서라도 여덟 번째 밤까지 이 성을 반드시 지켜 내서 유령들의 저주를 풀어야 했다.
나는 먼저 성벽 위에서 성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둘러보았다. 내 시야 안에서 보이는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성전의 기본은 식량이고, 그다음으로는 무기의 수급이다. 그래서인지 병사, 일반 주민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돌멩이라도 하나 더 만들려고 집까지 허물고 있었다.
자신의 집을 허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절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모두가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다.
자신들이 이미 과거에 죽어, 지금은 그들의 원한조차 던전의 클리어해야 할 미션으로 취급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서.
나는 곧 혀를 차고 머리를 흔들었다. 몸이 한가하니 쓸데없는 생각만 들잖아.
그들의 과거를 내가 바꾸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깊게 생각해 보았자 심란해질 뿐이다.
하여간,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먼저 조금 전에 떴던 시스템 메시지를 수행해야 했다. 내게 주어진 미션의 대전제는 결국 기사단장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이니까.
성주를 만나려고 내성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자연히 수많은 병사와 성민들을 마주쳤다.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도 나를 본 그들 모두가 경례를 하거나 허리를 굽히려고 일손을 멈췄다.
나도 하나하나 답하느라 계속 고개를 숙이다 보니 내성에 도착할 즈음에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이니 누구 하나 나서서 내 탓을 하거나, 칼이라도 들이댈 법한데 모두 존경의 기색을 보일 뿐이다.
이쯤 되니 정말 이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국의 왕자님인 루카스조차 거리에 나서서 이렇게까지 존경받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데, 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렇게 인망이 두터운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성에 도착했다.
성에 들어가 커다란 홀을 지날 때, 누가 봐도 집사의 차림을 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내게로 달려왔다.
“단장님, 오셨습니까. 성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허어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으로 내 입을 찰싹 쳤다.
집사 할아버지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실은 집사 할아버지 옆에 뜬 이름이 무려…… 세바스찬이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남의 이름을 두고 웃을 뻔했네.
나만은 그러면 안 되지. 왜 이렇게 직업과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거야?
집사 세바스찬이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다, 단장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어디 아프신지…….”
“아, 아니에요. 마침 성주님에게 가는 중입니다.”
“네, 모시겠습니다.”
여기도 타르토스처럼 신분제 사회인 것 같은데 반말을 해야 맞는 건가?
그러나 시스템 메시지도 뜨지 않고 세바스찬 할아버지도 딱히 내 말투에 의아해하지 않는 걸 보니 기사단장은 예의가 바른 인물이었나 보다.
세바스찬은 안내하겠다는 말대로 내 앞을 바삐 걸어갔다.
거대한 홀에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는 노인의 한 손에 물이 가득 찬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들어 드릴까요?”
“이 노친네의 유일한 일거리를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단장님.”
“유일하다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물론 적이 성주님의 탑으로 쳐들어온다면, 이 한 몸 방패로 삼을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만.”
“그런 소리 마세요. 그러지 않기 위해 제가 있는 거니까.”
그 말에 세바스찬이 고개를 돌려 내게 웃어 보였다.
노인이 삶을 달관하며 짓는 웃음이란 언제나 이상하게 마음을 찌르는 구석이 있다.
“물론 그렇지요. ■■■■■ 님이 진작 ■■ 님과 ■■셨■■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에는 꽤 많은 노이즈가 발생했다. 순간적으로 귀가 아플 정도였다.
나는 티 나지 않게 입술을 깨물었다.
성주에게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길었다.
계단을 올라가고, 복도를 지나고, 또다시 길고 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도중에 힘들어하는 세바스찬을 부축해야만 했다.
도착한 곳은 내성에서도 가장 높은 첨탑.
이윽고 첨탑을 다 올라가자 육중한 나무로 된 문이 보였다. 세바스찬이 정중하게 문에 달린 쇠고리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세바스찬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편하게 말씀 나누십시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열린 문으로 방에 들어갔다.
높은 첨탑의 방 안에는 아주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만이 비출 뿐, 화려한 장식을 해 둔 성의 다른 곳과는 다르게 작은 방 안에는 그 어떤 고귀한 장식도 없었다.
방 안에 놓인 것은 침대 하나, 그리고 책 몇 권. 물그릇과 빵조각.
성주의 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죄인을 가두는 감옥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첨탑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는데도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 냄새였다.
침대에 누운 성주가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성주의 얼굴은 가면으로 모조리 가려져 있었다. 은으로 만든 얇은 가면이 얼굴의 전부를 가리고 있어 보이는 것은 눈동자뿐.
그것도 본래의 색을 잃은 흰 눈동자뿐이다. 그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성주의 옆에 이름이 떠오를 거라 기대했지만, 이름 부분은 노이즈처럼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기사단장의 기억은 아주 일부만 받았을 뿐이기에 나는 성주가 대체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 어째서 저렇게 산 채로 썩어 가는 꼴이 되었는지 경위를 전혀 모른다.
온몸을 가리고 있기에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성주가 아주 오래 앓았기에 이 성의 대부분의 권한을 기사단장에게 위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단장은 언제나 성주의 의견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상 전권을 위임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이 첨탑을 올랐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기사단장이 최초로 성주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이, 바로 투항이었다. 아마도 기사단장이 지키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이 성주였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 선택은 최악의 결과로 돌아와 죽은 후에도 통한으로 남았다.
“아…….”
나를 본 성주의 가면 뒤에서 흔들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미 색이 바래 버린 흰 눈동자가 한참을 흔들렸다.
성주에게 나는 결전을 앞둔 그의 충실한 기사단장으로 보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 당신은 해당 인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흉내일 뿐이지만.
“성주님.”
나는 침대 맡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누운 성주와 시선을 맞추었다.
성주의 목소리를 듣기까지는 한참의 침묵이 필요했다.
이윽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느리고, 참혹했다.
“왔나…… 기사단장.”
“예.”
“상황은? 투항하자는 의견이 있었다던데.”
세바스찬이 대강의 상황은 전달하고 있는 건가. 나는 성주의 물음에 간결하게 답했다.
“개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리고 짧지 않은 침묵이 이어졌다.
성주가 천천히 나를 보던 고개를 창문 너머로 향하도록 돌려 버렸다.
밖이 보고 싶은 걸까.
그를 도우려 했으나 성주가 손가락을 움직여 가까이 오지 말라는 거절의 기색을 내비쳤기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내게서 완전히 고개를 돌려 버린 성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뜻밖의 사과였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었으나 나는 곧 답을 찾아냈다.
이렇게 성안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을 보면 기사단장은 정말 기사 중의 기사였음이 틀림없다. 기사의 의무를 다하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진짜 기사.
그런 기사가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주군에게 할 말이라는 건 으레 정해져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약간 가벼운 기분으로, 손을 들고 정답을 말하는 학생처럼 대답했다.
“이 성을 지키는 것은 저의 의무입니다.”
“의무라…….”
성주가 가면 너머로 몇 번 눈을 깜박이는 것이 보였다.
눈동자에 비친 감정은 읽을 수 없었다.
“겨우 그깟 말에 내가 너무도 많은 것을 얽매었구나.”
아무것도 아닌,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단 한마디.
산 채로 썩어가는 이가 뱉어 낸 침중한 목소리가 내가 어설프게 흉내 낸 겉면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말에는 도저히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리 가볍게 대답하는 게 아니었다. 이 말에 대답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
내 침묵에 이윽고 성주가 눈을 감았다.
시커멓게 죽어 가는 눈꺼풀 속으로 견정한 의지가 담긴 시선이 사라지자, 성주는 정말로 시체처럼 보였다.
“이제 가라. 가서 네 할 일을 마쳐라.”
……이제까지 나는 나름대로 내가 빙의한 기사단장으로서 잘 처신해 왔다고 생각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방해하지 않는 걸로 보아서는 분명히 객관적으로도 잘 해내고 있다.
내가 그렇게 잘 처신할 수 있었던 것은 10년간 살았던 타르토스는 신분제 사회였고, 내 동료 중 하나는 고귀한 신분이었기에 곁에서 본 것이 많아서였다.
그러나, 결국 나는 주군을 모시는 기사의 기분이라는 걸 도통 알 수 없었다.
루카스는 내 동료이지, 주군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내 안에 차오르는 이 감정은…… 내가 알 리 없는, 기사단장의 감정이다.
내게 고개를 돌린 모습을 보자 무언가 속에서 아우성치는 것이 있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것에 목이 메었다.
그저 슬펐고, 애틋했고, 안타깝다. 찬란한 빛을 보듯이 저절로 눈이 부셨다.
당신은 이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자 했던 거로구나.
감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쪽을 차마 보지 못하는 성주를 향해 예를 취했다.
시스템이 지시한 사항을 지키기 위해서.
“……존명.”
- 여섯 번째 아침 페이즈가 종료됩니다.
- 여섯 번째 낮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기 시간이 주어집니다.
-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