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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8화 (39/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8화

역시 이 세계에도 마법이 존재하는 거 맞잖아. 그런데 왜 나더러는 사술이라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개수작……!”

내가 아이템을 사용해 받아치려 했으나, 그 전에 희한한 메시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 앙겔루스의 가호가 당신의 정신을 방어합니다.

“악!”

목소리가 퍼지는 동시에 내 주위에 있던 기마병들이 모두 귀를 막았다. 심지어 한둘은 말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 달려가 살피니 귀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정신 계열 마법인가? 저 말소리 자체가 정신을 침범하는 마법이라는 건가?

나는 오랜만에 아주 당황했다.

마법을 시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매개체, 거리, 마력이 아니던가. 이렇게 먼 거리에서 말 한마디를 매개체로 즉각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마법사는 무척 드물었다.

그런데 저 단상 위에 서 있는 자가 그 정도 수준의 마법사라고?

“네놈들이 어떤 간악한 수작을 부린다고 한들 너희들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 거다.”

그자의 손에 들린 왕홀이 쿵, 쿵 하고 바닥을 찧는 것이 보였다. 그에 따라 적군의 병사들이 들고 있던 깃발을 따라서 바닥에 찧었다.

쿵, 쿵!

대지가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와 기세.

성벽 위에서도 그에 맞서 뿔 나팔을 불고 북을 두드렸으나 숫자의 압도적인 불리함 때문에 확연하게 밀리고 있었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 보스 몬스터와 조우하였습니다.

- SS급 몬스터 : 진실에 침식된 군주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적군의 수장이 보스 몬스터인 건 놀라운 게 아니었다.

이곳은 유령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클리어되는 필드고, 적군에게 학살된 유령의 입장에서 가장 증오스러울 것은 적군의 수장이다.

그래서 예상한 바였다.

그런데 등급이 SS급이라고?

얼마 전에 상대한 리치는 S급이었고, 그건 고위 던전으로 분류하는 던전에서는 제법 나오는 보스 몬스터 등급이었다.

하지만 SS급은 정말 드물었다.

타르토스를 멸망으로 이끌고 가던 SSS급 몬스터인 옵타티오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 정도의 몬스터가 고정형 던전의 보스로 군림하고 있다면, 그 구역은 이미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나 현실 세계 또한 몬스터가 차지하는 구역이 되었을 터다.

이건 본래의 내 능력치가 존재하더라도 혼자서는 상대하지 못한다.

“윽.”

앙겔루스의 가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조차 저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두통이 일었다.

나는 머리를 짚었다.

혼란한 한편, 그제야 이해되는 것도 있었다.

사실 휘하의 기사와 병사, 심지어 주민들까지 사기가 충만한데도 어째서 기사단장은 투항을 결정한 것인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저런 괴물이었다는 말이지.

물론 현재 내가 있는 곳은 던전이고, 유령들의 소원을 이루려 재구성된 필드이지만, 결국 이미 흘러간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적군의 수장은 저 정도 수준의 마법사였으리라.

아무리 육천의 병사와 충성심 있는 기사들이 사기에 충만한들, 이건 기세만으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아무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네놈들의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들판에 뿌릴 것이다! 새들이 네놈들의 눈을 쪼고, 동물이 내장을 파먹도록 할 테다!.”

“흑, 으흑……!”

견디지 못한 병사 하나가 말 위에서 낙마했다. 내 정신은 앙겔루스의 가호가 보호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서 있는 이는 무릎을 꿇었고, 말에 탄 이는 말 위에 엎드렸으며, 누군가는 기절했다.

그저 목소리만으로 완전히 이 전장이 압도되었다.

심지어는, 적군들조차 그랬다.

특히 거리가 가까운 단상 근처의 병사들이 피눈물을 뿌리며 땅으로 엎어지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병사들조차 파괴하는 말소리는 멈추지 않고 전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의 자랑스러운 후계자여.”

천에 묶여 말에 짐짝처럼 실린 청년은 귀도 막지 못한 채 그 말을 들어야만 했다.

“자결해라.”

그 말을 들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수치를 안다면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다! 너의 명예는 스스로 지켜라.”

청년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 이름 모를 곳은 재수 없는 신분제가 존재하는 세계이니 후계자라고 한다면 가족이거나 적어도 친척일 텐데, 자결하라는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고?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 시간 편차로 인해 일부 정보가 제한됩니다.

의문을 가진 순간 마치 여기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말라는 듯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 해당 인물의 소원을 이루어 줄 시 미션이 클리어됩니다.

- 당신이 지켜야 할 것은 ‘무고한 자들의 생명과 동료들의 명예’입니다.

- 공략 팁 : 유령의 소원을 많이 이루어 줄수록 업적치 정산에 가산을 받습니다.

다행히 클리어 조건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야 클리어되는 건 아니라는 거지. 업적치를 쌓으려는 게 아니라면 굳이 저걸 처리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이 성을 이틀간 지켜 내는 것. 그거면 된다. 저 보스 몬스터를 처리할 필요까지는 없다.

문제는 그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다, 단장님……!”

이름도 모르는 아군의 병사 중 하나가 벌벌 떨면서도 내게로 기어 왔다. 제 귀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그는 손을 뻗어 열려 있는 내 귀를 막으려 했다.

나는 고개를 저어 그 움직임을 막았다.

이미 근방은 거의 초토화되었다.

내가 이끌던 기마병을 비롯해 성벽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조차 제대로 구실을 못 하게 된 상태였다.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내 마력도 부족한 상태지만, 무슨 수든 짜내야 했다.

나는 어느 정도 충격을 각오하며 에이펙스의 성검을 들어 올렸다.

마력이 담기자 검날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SS급 몬스터의 마법이라지만, 내 클래스와 아이템이 모두 항마법 속성을 지닌 만큼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 터였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마(魔) 속성 몬스터에게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 보스 몬스터의 마법, ‘압도적인 패자의 선언’을 일부 파훼하였습니다.

그 순간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큭!”

검자루를 잡은 손의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리치를 쓰러트렸을 때보다 능력치가 한참 올랐음에도 그때보다 더한 반동이었다.

심지어 겨우 일부 파훼라고? 대체 무슨 괴물이야?

- 마법 파훼에 실패하였습니다.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 체력, 근력, 마력 수치에 제한이 걸립니다.

- 경고!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붉은 창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으려고 검으로 바닥을 짚었다. 오장육부가 진탕되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숨을 이어 가기도 버거웠으나, 지금은 쓰러질 때가 아니었다.

검을 짚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실패까지 했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아무리 저게 SS급 몬스터라고 한들 지금은 거리가 멀다.

마법을 일부 파훼하자 아군 병사들이 덜덜 떨면서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잡은 손가락이 고통 때문에 덜덜 떨리는 것을 감추며 데이먼을 불렀다. 여기서 나까지 무너지면 정말로 끝장이었다.

“데이먼 경!”

부름에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데이먼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지가 돌아온 눈빛에 수치가 담겼다.

나는 보지 못한 척 고개를 돌렸다.

“성으로 돌아간다. 병사들을 수습해!”

“예, 예!”

“모두 정신 차려!”

성에 신호하자 해자의 다리가 내려왔다. 적군이 더 진군하기 전에 어서 건너야 했다.

모두가 말에 올라타 급히 달렸다.

다행히도 적군 또한 저 피아를 가리지 않는 마법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먼저 정신을 차린 이쪽의 행동이 빨랐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은 빠르게 개방되었다. 해자의 다리를 건넌 기마병들이 하나둘씩 성문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병사가 해자의 다리를 건너 성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나는 후방을 경계하며 최후에 말머리를 돌렸다.

“하늘의 뜻을 거스른 자들을 모두 찾아내어 반드시 죽일 것이다. 그것이 최후의 군주인 나의 의무다!”

그때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

아까 마법의 일부 파훼 메시지가 뜬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일부라도 깨트렸으니 저쪽도 어느 정도의 타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지?

마법을 파훼한 후 타들어 가고 있는 손은 감추기 힘들 정도였다. 마력도 내 감각으로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여기서 섣불리 한 번 더 마법을 깨트리려 했다가 실패했다간 정말로 죽는다.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젠장, 어떻게 해야 여기서……!

“허튼소리!”

그때 성벽 위에 누군가가 올라섰다.

이번에는 내가 발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섭리를 거스르는 마법이 아닌, 이미 그 섭리에 휩쓸려 버린, 아무 힘도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목소리.

엘리사 메이가 성벽 위에 올라서 피를 토하듯 소리치며 검을 들었다.

“누구도 죽게 두지 않는다!”

그 목소리는 적군에게는 닿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강대한 마법이 지배하는 전장. 절망적인 고통,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었다.

“너나 죽어, 이 개자식아!”

고개를 들어 보니 긴 성벽 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수성에 지원한 일반인들까지도 적군을 향해 몸을 내밀고 있었다.

제대로 무기와 갑옷을 갖춘 적군과 달리 그들 모두가 남루한 차림이었다. 표정은 어두웠으며, 기사의 패기 대신 비참한 끈질김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한두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누가 사악하다는 거야!”

“나쁜 새끼!”

“대체 저게 어딜 봐서 군주라는 거냐고!”

“우리는 성주님을 모신다!”

무엇 하나 제대로 끝맺지 못한 말. 그곳에 담긴 두려움. 그리고 볼품없이 떨리는 목소리들.

그들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 앞에 이미 한 번 굴복했어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 목소리는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았다.

“……그래.”

나는 이를 악물었다.

목구멍 저 밑에서 피가 역류하는 것을 참으려니 헛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전장을 바라보았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 이우연이 말한 게 생각났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라고 했지.

그래, 나도 알아.

여기는 그저 내 능력치를 올리려고 참가한 미션이었고, 이미 죽은 사람들이며,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여기에 없다.

어쩌면 차라리 여기서 이 미션을 포기하고, 이미 이 던전을 탈출한 헌터처럼 히든 미션을 찾아 몸을 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SS급 몬스터를 혼자 상대하느니 바깥에서 이 던전 브레이크 현상을 막는 게 살아남는 데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단장님! 어서요!”

병사들을 먼저 성문으로 들여보낸 데이먼이 절박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엘리사도 성벽 위에서 애타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못 된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깜냥도 되지 않고, 사실 이게 정말로 누군가를 구하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서서 버티려 하는 것은…… 내가 한때 이런 도움의 손길을 바랐었기 때문에.

값싼 동정심이라도 좋아. 아무런 연이 없는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그 누구라도 상관없어.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좀 도와주세요.

그런 말이야 무시해도 상관없었을 텐데, 아무런 이득도 없이 대답해 준 사람이 있었다.

간절히 타인의 도움을 바랐던 내게 누군가가 손을 뻗어 주었기에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 누군가로서 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웃음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 이것저것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다 집어치우고, 그래도 기사단장에 빙의한 체면이 있지.

이대로 패배해서야 되겠어?

“다, 단장님?”

뒤에서 데이먼이 움직이지 않는 내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흑마에서 내렸다.

흑마가 의아하게 나에게 코를 킁킁대며 가져다 댔다.

“고마웠다. 이제 돌아가.”

나는 흑마의 궁둥이를 철썩 두드렸다. 흑마는 영특하게도 내 의도를 알아채고 성문으로 홀로 달려갔다.

“뭐 하시는 겁니까, 단장님!”

“어서 들어오세요!”

나는 그들의 말을 무시한 채 시스템을 불러냈다.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내 어깨 위에 덧입혀지는 망토가 깃털 같은 무게를 더했다.

-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장비합니다.

- 해당 아이템은 용사 클래스의 플레이어만이 사용 가능합니다.

- 해당 아이템을 사용할 시 사용자의 영혼이 기억하고 있는 최대 능력치를 구현합니다. 활성화 시간 00:10:00

- 상태창이 갱신됩니다.

시스템창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나는 검을 내리쳤다.

적의 마력으로 충만한 공간에서 내리쳐진 성검이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손을 태우지 못했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마(魔) 속성 몬스터에게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 보스 몬스터의 마법, ‘압도적인 패자의 선언’을 파훼하였습니다!

- 보스 몬스터에게 일정 타격을 주었습니다! 업적치 정산 시 가산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저 너머 단상 위에 서 있는 보스 몬스터가 살기를 내뿜는 것이 느껴졌다.

이쪽을 제대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과연, SS급다운 살기였다.

아니, 이 시대에 맞추어 군주라고 불러 주어야 하나?

“왕의 목을 한번 따 보는 게 내 버킷 리스트기는 했어.”

이 반역에 주어진 시간은 단 십 분. 왕의 목을 따는 데 이 정도면 괜찮은 장사였다.

난 언제나 신분제 따위는 아주 질색이었거든. 누구나 그렇지. 안 그래?

나는 씩 웃으며 구시대의 유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러니까 어디 한번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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