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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9화 (4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9화

- 여섯 번째 낮이 진행 중입니다. 03:34:20

아직도 여섯 번째 낮이 반절조차 지나지 않았다. 끔찍할 정도의 난도로군.

“단장님!”

기사단장을 부르는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리는 것 같았으나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홀로 뛰쳐나가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차라리 성에 틀어박혀 이틀간 수성에 집중할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건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SS급으로 설정된 이상, 저 보스 몬스터가 마지막 수성전에 출전할 것은 뻔한 일이다.

이틀간 쓸모없는 소모전으로 심력을 낭비하다가 허무하게 져 버리느니, 그나마 풀 컨디션인 지금 부딪힐 수 있는 만큼 부딪혀 보는 게 나았다.

운이 좋아 내가 조금이라도 저 보스 몬스터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누군가는 저 SS급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님페의 바람을 발동시키며 허공으로 뛰어든 순간,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던전 클리어 조건이 추가됩니다.

- 보스 몬스터 처치 시 클리어 판정됩니다.

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고오맙다, 이 새끼야!”

가끔 이렇게 시스템이 내 상황에 맞춘 메시지를 띄워 줄 때면 나더러 죽으라는 건지, 아니면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으라고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물론 딱히 고마운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SS급 보스 몬스터인데 저런 클리어 조건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인심이라도 쓴 거야, 뭐야? 이걸 혼자서 클리어해 낼 수 있으면 내가 왜 여기 있냐고! 진작 타르토스로 돌아갔겠다!

속으로 욕설을 내뱉는 동안에도 그간의 고생에 길들여진 몸은 착실히 움직였다.

나는 허공으로 높이 뛰어오른 채 적군들의 머리 위로 발을 디뎠다.

한 발, 누군가의 비명이 들리고 다시 한 발.

끔찍한 감각이 닿았다. 다시 한 발을 내딛기 전 나는 검을 든 팔을 크게 휘둘렀다.

“위다. 위에서 온다!”

“막아! 빨리!”

검에 아롱다롱 매달려 있던 검기가 사방으로 유리 조각처럼 비산했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발밑으로 흩어진 검기가 빛 대신 핏방울을 매달며 숱한 목숨을 앗아 갔다. 아까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숫자의 병사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 보스 몬스터, 진실에 침식된 군주의 권속을 처치하였습니다.

- 진실에 침식된 군주의 마력 회복 속도가 느려집니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했는데 적군의 병사들은 보스 몬스터의 권속으로 처리되는 모양이었다.

이제야 메시지가 뜬 것을 보면 방금 공격으로 겨우 유의미한 숫자를 쓰러트린 걸까.

그러나 이 역시 그리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높게 떠오를 때마다 대지에서 멀어져 인간들의 머리가 숱한 까만 점처럼 보였다.

결국 이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검으로 베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광역기가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다 처리할 수 없는 숫자니까.

그래도 해 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나는 검기를 흩뿌리며 그들의 머리 위를 밟았다.

한 발 한 발, 군주에게로 다가가는 나를 향해 병사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저기에 있어!”

“화살을 쏘아라!”

기사들은 분주히 활을 쏘라 독촉했으나 나는 적진의 한복판,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누군가가 성검에 반사되는 빛에 눈을 감았고, 그렇게 감은 눈을 다시는 뜨지 못했다.

나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하늘을 쏜살같이 달려갔다.

단상 위에 선 보스 몬스터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타르토스에서 자주 보았던 ‘왕’의 모습과 정말로 비슷했다.

농담 삼아 반역이라고는 했지만, 내가 빙의한 기사단장은 정말로 역도의 수장이라도 되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역사의 전모를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군주든 왕이든,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야만 한다는 것.

내가 왕좌를 향해 한 발 더 크게 내디디며 검을 다시 한번 휘두르려 할 때였다.

“감히!”

벼락같은 목소리가 내리쳤다.

그 목소리가 퍼진 순간, 허공에 떠오른 내 몸을 감싸는 공기가 무거워졌다.

“윽!”

나는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크게 휘청거렸다. 앙겔루스의 가호의 방어 메시지가 떠올랐으나 그래도 충격은 피할 수 없었다.

무슨 마력이 이렇게 무지막지해!

속절없이 추락해야 했으나,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바닥으로 검기를 쏘아 보내며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런 젠장!”

“내려와라, 이 비겁자야!”

방금 전 내가 추락할 뻔한 대지에 서 있던 병사들이 야유를 보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지금 땅으로 추락했다간 수많은 군사들의 칼날이 꼬챙이처럼 몸을 꿸 테니.

그나저나 이 위력은 대체.

나는 허공에 떠오른 채 아직 약간 멀리 있는 단상 위의 보스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보스 몬스터답게 그의 주위에는 병사들이 개미처럼 모여 있었는데, 그들조차 마법의 영향을 받은 건지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귀를 막고 있었다.

아군조차 거동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다니.

“미친 던전 보스 같으니라고.”

그렇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다음 발을 옮기는 것이 너무나 무거워졌으니까.

이래서야 보스 몬스터의 마력 회복 속도가 느려지건 어쨌건,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내가 땅으로 떨어질 판이다.

거리가 멀 때와는 체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심지어 거리가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성검의 날조차 닿지 못할 거리였다.

숨을 내뱉는 것이 버겁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래, 사실 SS급 몬스터쯤 되면 자연스레 내뿜는 위압감이 있어 일반인들은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기사단장도 항복한 것이겠지. 누가 온들, 전세를 뒤집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감히, 라는 말.”

그러나, 여기 있는 것은 나다.

다시 한번 마력이 검에 모여들었다. 조금 전과 같은 마력 수치라고 해도 활용할 수 있는 정도가 완전히 달랐다.

마력은 영혼이 가진 힘이지만 단련되지 않은 신체로는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충분히 단련된 검이었다.

“그거 진짜 재수 없어!”

콰아앙!

검을 내리치는 것과 동시에 폭발음이 일었다. 검을 내리친 자리에 있던 적군의 병사 수십 명이 쓰러지고 땅은 움푹 파였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마(魔) 속성 몬스터에게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 보스 몬스터의 마법, ‘압도적인 패자의 선언’을 파훼하였습니다!

- 보스 몬스터에게 일정 타격을 주었습니다! 업적치 정산 시 가산됩니다.

- 다수의 적을 상대로 놀라운 업적을 세웠습니다! 업적치 정산 시 가산됩니다.

떠오르는 숱한 성공 메시지.

그렇지만 반갑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멀어!’

절로 이가 악물렸다.

내 망토의 활성화 시간은 이제 7분 남짓.

아직 한참 멀어 보이는 단상 위에 선 군주가 들고 있던 왕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검은색의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파지직.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마력의 반동에 살갗이 타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법을 두 번이나 파훼했으니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SS급 상대로 너무 무른 생각이었나.

무언가,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것이 준비되고 있었다.

“신께서는 이 몸으로 하여금 이미 저질러진 인간의 어리석음을 단죄하시니.”

“쿨타임도 없어?!”

보스 몬스터의 입에서 진언이 흘러나온 순간 나는 허공에서 비명을 질렀다.

미쳤다.

아무리 SS급이라지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마법을 파훼했는데 쿨타임도 없이 연속으로 진언을 사용한다고?

젠장, 이런 보스 몬스터가 있는 던전에 20명만 들여보내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냐고! 이백 명이 있어도 부족할 판에!

이렇게 된 이상 다시 한번 시작된 진언이 끝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마법을 깨거나, 적어도 버틸 방비를 마쳐야 했다.

아니면 이대로 죽거나.

나는 흘끗 시스템 메시지를 보았다.

- 용사를 기리는 망토 활성화 시간 00:06:45

6분 동안 저 목을 딸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다.

내가 그렇게 판단을 내린 순간 다음 진언이 쏟아졌다.

진언에 따라 커진 마법진이 드넓은 전장의 필드를 순식간에 잡아먹었다.

“최후의 군주인 내가 신의 뜻을 대행하노라.”

시야가 깜깜해졌다.

어둠이 지배한 시야 속에서 온몸을 거대한 중력이 잡아 내리눌렀다.

님페의 바람은 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나는 순식간에 땅으로 처박혔다. 턱부터 땅에 찧었는지 뼈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종막 같은 어둠이 시야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들리는 것은 나의 숨소리뿐이었다. 쥐고 있는 검의 존재감조차 꺼져 버릴 것 같은 어둠…… 아니, 빛을 잡아먹는 빛.

그렇군. 이건 강제로 인간을 제 앞에 무릎 꿇리는 마법인 건가.

“컥!”

팔을 짚고 땅에서 일어서려 했으나 거대한 중력이 잡아먹은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땅에 짓눌린 채로 입안에 고인 침을 땅에 뱉었다.

피 맛이 비릿했다.

이래서 진언이 싫은 거다.

정형화되어 있어 대비하기 쉬운 주문과 달리 마법사의 영혼에 새겨진 단어는 그 의지를 나타낼 뿐. 그 주문이 어떤 기적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으니까.

……이건 어떻게 상대할 수가 없잖아.

사기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에이펙스의 성검에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얼마나 더 땅에 처박혀 있었을까. 숨통은 여전히 막힌 채였으나 서서히 시야가 밝아졌다.

“한낱 어리석은 인간이 신의 행사를 거역하느냐.”

보스 몬스터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신체를 압박하는 중압감이 점점 더해지고 있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찬양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소리. 들리지 않을 터인 애타는 비명.

이윽고, 누군가 내 턱을 들어 올렸다.

왕홀 지팡이의 끝부분이 날카롭게 내 목을 찌르기 직전에 멈추어 서서, 투구를 쓴 군주가 내 얼굴을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타락한 형제의 곁에 아직도 이런 물건이 남아 있었던가.”

이번에는 진언도 무엇도 아니었다. 귀에 곧바로 꽂히는 인간의 목소리.

젊지는 않은, 중후한 느낌의 남자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보이는 손은 빈틈없이 장갑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장갑 위조차 화려한 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것은 뛰어들기 전에 본 청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검푸른 눈동자.

그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내 손목을 발로 짓밟았다.

거센 힘이었다.

“윽!”

손가락 하나하나를 밟혀 손가락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보지 않아도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으리라.

“투지는 훌륭했다.”

타르토스에서 익히 들어왔던 어투였다.

개 같은 신분제 사회 같으니. 특이하다 싶으니 물건을 차지하듯 내 목에 목줄을 채우고 싶어 하던 치들.

“내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살려 두고 싶지만…… 나는 주제 모르는 개를 싫어하거든.”

그 말과 함께 군주가 왕홀을 높이 치켜들었다. 잠시 옅어졌던 마력이 새롭게 그 주위로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마력이 모여들수록 내 몸은 땅으로 더 깊숙이 처박히기 시작했다. 뾰족한 지팡이의 끝이 목 위의 피부를 찔러 오고 있었다.

이제 신음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끝을 예감했다.

목의 피부가 뚫리는 감각이 아주 먼 곳에서,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죽어라.”

‘그렇게 나는 한 번 죽었다.’

- 시스템이 플레이어명 : 방랑하는 구도자의 죽음을 인지하였습니다.

- 용사를 기리는 망토 활성화 시간이 종료됩니다.

순식간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 ‘기사회생’ 스킬의 발동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나는 팔을 뻗어 내 목을 관통한 왕홀 끝을 잡았다. 목에는 다시금 끔찍한 고통이 덮쳐 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기꺼웠다. 고통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피가 시야를 가렸으나 정신은 맑았다.

“이게 무, 무슨……!”

군주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내가 지팡이를 잡고 있어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군주는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내게로 당겨져 끌려왔다. 균형을 잃고 내 쪽으로 쓰려지려는 군주의 배를 나는 다리로 힘껏 걷어찼다.

“컥!”

우그적.

갑옷이 뭉개지는 소리가 났다.

목에 났던 구멍이 천천히 덮이는 것이 느껴져, 나는 그제야 말을 꺼냈다.

“그래, 이제야 가깝네.”

이제야 눈높이가 맞추어졌다. 한 번 부러졌던 손가락뼈가 우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얻어맞은 충격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군주의 투구 깃을 한 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이 무엄한!”

군주가 발악하듯 소리치며 왕홀을 움직이려 했으나 마력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야 그렇겠지. 아무리 네가 SS급 몬스터라고 한들 설마 세 번이나 진언을 사용한 후 바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그래서, 그걸 노렸다.

일반적으로 혼자서는 절대로 해치울 수 없는 SS급 몬스터를 잡으려면 한 번쯤은 죽어 줘야겠지.

검을 쥐는 손에 힘이 돌아왔다. 이거면 왕의 사형을 집행하는 데는 충분했다.

나는 씩 웃었다.

“이제 네가 죽을 차례다.”

그리고 내 검이 군주의 목을 깊이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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