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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40화 (41/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40화

베인 몬스터가 볼품없이 뒤로 넘어졌다. 훌륭한 갑옷은 내 검 앞에 종이처럼 베여 스러졌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눈은 마지막까지 경악에 가득 차 있었다.

“어, 어떻게……?”

물론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씩 웃으며 나자빠진 보스 몬스터를 향해 중지를 들어 주었다.

“알 거 없잖아.”

내가 방금 발동한 것은 ‘기사회생’ 스킬.

이 스킬의 개방 조건은 위기의 순간, 마지막 생명이 꺼지려 할 때도 꺾이지 않고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것.

죽는 그 순간에도 두 눈을 감지 않고, 두 다리를 꺾지 않고, 무엇도 잃지 않으려 하는 의지…… 아니, 어쩌면 욕망.

내 특성인 ‘관철하는 아귀’와 딱 들어맞는 스킬이었다.

다만, 이 스킬은 내가 발동하고 싶다고 해서 발동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시스템이 사용자가 신체적 죽음에 당면했다고 판정했을 때를 한정해 발동된다.

이 기사회생 스킬이 가진 효과는 신체적 죽음을 맞이하게 한 결정적인 단 한 번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는 것.

그러니 만일 군주가 왕홀로 내 목을 꿰뚫는 대신 마법으로 유효타를 여러 번 날렸더라면, 이 스킬이 발동된다고 한들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마법을 파훼하는 대신 완전히 당해 준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는 종류의 인간이라면, 내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고 느꼈을 때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고 들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 예상은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그래도 도박이었지만.

아리아드네가 보았다면 몇 번 얻어맞았을 것이다. 루카스가 있었어도 품위가 없다며 잔소리를 했겠지.

사실 욕도 욕이지만 그 두 사람이 있었다면 기사회생 스킬을 쓰기도 전에 내가 정말로 맞아 죽었을 거다. 둘 다 내가 저 스킬을 쓰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두 명이 다 내 옆에 없다.

그래서 이런 짓도 하는 거지.

“뭐, 너희들 같은 새끼야 어디든 있고, 하는 짓도 똑같지.”

상대방이 약자라고 판단되면 어떻게든 철저하게 모욕을 주고 깔아뭉개려고 하는 거 말이야.

타르토스에서도 자주 만난 인간 군상이다 보니 내 기사회생 스킬은 이미 만렙을 찍은 지 오래였다.

나는 갑옷 위에 발을 얹고 메시지가 뜨지는 않는지 허공을 먼저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보스 몬스터가 패배를 인정했다거나, 혹은 완전히 죽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흘렀는데도 기다리던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왜지?

나는 발밑에 놓인 보스 몬스터의 몸과 떨어져 나간 머리를 바라보았다.

꿈틀.

발밑에 놓인 몸체가 아직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을 느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망할!”

나는 검을 밑으로 향하도록 고쳐 잡았다. 목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살아 있단 말이야?

역시 SS급 몬스터라 이건가. 나와 같은 스킬이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클리어될 때까지 베는 수밖에. 이번에는 보스 몬스터의 심장을 노리고 내리 찌르는 순간.

- ■명■의 한계로 플∞이어의 생명을 ∑■하지 못

- ■■의 ■■한 반대…… 중도 취소 불가

부서진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 나는 본능에 의거해 내리 찌르던 검에 더욱 힘을 실었다.

어찌 됐든 저건 죽이고 봐야……!

- 경고! 당신의 생명력이 극도로 저하되어 있습니다. 안정을 취하십시오.

- 일정 생명력이 회복될 때까지 적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 최소 안정화까지 00:05:00

그러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사지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스턴이 걸린 것처럼, 사지를 통째로 사슬이 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검을 바라보았다. 검은 아슬아슬하게 적의 몸통에 꽂히기 직전.

헛웃음이 나왔다. 안정화 시간이라고?

내 검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는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장 이거 안 풀어?!”

그러나 허공에 대고 아무리 외쳐 보아도 시스템 메시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나의 무심함, 그대로였다.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지구로 돌아온 이후부터 유독 처음 보는 난해한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확실한데, 이게 도통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니 더 답답했다.

마치 세계가 온통 내 목을 죽으라고 조르는 것만 같은 느낌.

“이 상황에서 뭘 어쩌라고!”

보스 몬스터를 앞에 두고 나는 이를 갈았다.

시스템 메시지의 의문도 의문이었지만 당장 이 5분 동안 생명이 위험한 판이었다. 클리어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는 이상 나는 여전히 적진의 한복판에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슬슬 상황을 파악한 주위의 군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들 왕의 목이 떨어지면서 마법이 사라지자 겨우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가장 먼저 옆으로 달려온 것은 성장(盛裝)을 한 기사들이었다. 한 명이 애타는 목소리로 외쳤다.

“폐하!”

“폐하의 옥체에 손을 대다니!”

“찢어 죽여도 모자랄 것!”

“그런 말해도 되겠어? 그 옥체, 지금 내가 당장 찢어발길 수 있는데. 아, 이미 베었다만.”

“감히!”

내 이죽거림에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기사가 내게로 검을 세웠으나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저 가까이 오지 못한 채 이를 갈고 있을 뿐.

허세를 부리고는 있었으나 등골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 시체를 빌미로 한 인질극이 얼마나 버텨 줄까?

나는 시체의 심장을 내리 찌르는 자세를 취한 채 나를 향하는 검을 향해 웃어 보였다.

허세를 부리려니까 입꼬리가 아픈데.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움직여 봐. 네놈들 왕을 이대로 찢어발겨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내 상태창을 곁눈으로 확인해 보았다.

플레이어명 : 방랑하는 구도자(상태 : 빙의)

LV.79 (LV.22)

특성 : 관철하는 아귀 (명예로운 전사)

클래스 : 용사 (기사)

체력 : 440 (+350)

근력 : 385 (+300)

민첩 : 325 (+200)

마력 : 750 (+100)

스킬 : 멸혼의 불꽃(사용 불가), 기사회생(사용 불가), 불굴의 의지-on

스킬, 기사회생의 사용 후 일정 시간 동안 체력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개전 직전 용사의 클래스 보정으로 오른 수치였지만 그래도 십만의 군사를 뚫고 지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또 스킬 두 개는 모두 사용 불가.

원래 기사회생 스킬은 한 번 사용하면 해당 필드에서는 다시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사기적인 스킬인 만큼 사용 후에는 일정 정도의 너프를 감수해야 했다.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은 상태였다.

용사를 기리는 망토 또한 활성화 시간이 종료되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내게 남아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자칫하면 이번엔 진짜로 죽는다.

- 안정화까지 00:03:22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지는 5분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 딱 3분 남짓.

버틸 수 있을까?

저 안정화라는 이름의 스턴 상태가 끝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성까지 돌아가 상태를 정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요원해 보였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이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기에 나는 목소리를 더 키우며 외쳤다.

“다가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대로 시체를 난자해도 상관없나?”

“끝까지 무도하구나!”

“사악한 ■■를 따르는 주제에!”

“신께서 너를 벌하실 것이다!”

시체를 끌고 인질극을 하는 내 꼴이 우스워질 지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접근하려는 기사들 사이를 허겁지겁 헤치고 온 자가 있었다. 학자처럼 생긴 인상에 두른 것은 바닥까지 끌리는 로브였다.

마법사인가? 손에 든 것도 지팡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꽤 높은 지위인지 뛰어온 그가 손을 들자 기사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그가 내게 호통을 쳤다.

“당장 그 발을 떼지 못할까!”

“그걸 원한다면 군사를 물려. 간단한 조건이잖아?”

그들 주군의 시체를 인질로 잡고 있는 만큼 약간 동요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마법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건 불가능하다. 이건 성전이니까.”

“성전?”

남은 시간은 이제 1분 50초.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나는 대화에 흥미가 있는 척하며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마법사가 결연한 얼굴로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이것은 이 시대에 남은 마지막 경배의 의식. 감히 신을 거역한 자들에게 내리는 천벌.”

그것을 말하는 자가 너무도 광신도처럼 신앙에 가득 차 있었기에, 나는 어차피 시스템이 정보를 차단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즉, 너희가 군사를 물리지 않는 이유가 우리를 벌하기 위해서라고?”

“당연한 소리! 가증스럽구나! 그래, 사악한 종자 주제에 아직도 신의 힘을 빌려 쓰고 있으니 오죽할까!”

“솔직히 뭐가 뭔지,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30초.

나는 시간을 재며 천천히 손가락의 신경에 집중했다. 조금씩 구속이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천벌이 아니야.”

덜덜덜.

힘으로 내리누르는 검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기사들 중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몇 번이고 재구성된 필드.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전쟁과 일방적으로 학살되었던 본래의 역사. 그건 모두…….

“너희들이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신벌이라는 말은 집어치우라고.

내리누른 검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살을 파고드는 감각이 손으로 전해졌다.

- 안정화까지 00:00:07

“폐하!”

그러나 검은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걷어차여 땅 위로 나뒹굴어야 했다.

“컥!”

하지만 고개를 들기 전에 누군가 내 등을 콱 짓밟았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하,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쪽도 저쪽도 목을 땄는데 둘 다 살아나면 이거 불공평한 거 아니야?

아니, 한 바퀴 돌아서 오히려 공평한 건가?

도로 목이 붙어 버린 왕이 곁에 다가온 신하의 부축으로 일어나 다시금 그 손에 왕홀을 쥐었다.

살아난 오만한 시선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리석기는. 최후의 군주인 내가 정녕 너 같은 자의 손에 목숨을 잃을 줄 알았더냐?”

- 공략 팁 : 진실에 침식된 군주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권속의 30% 이상을 먼저 처치해야 합니다.

“이런 미친 X 같은 시스템 새끼야!”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는 순간 정말 오랜만에 배 안쪽부터 무언가 들끓었다.

분노였다.

그딴 조건이 있었으면 진작 토해 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냥 죽여라, 죽여!

아니, 젠장. 이건 내 실수였다. SS급 몬스터이니 부활 스킬 정도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정했어야지.

그러나 한가롭게 욕할 여유도 없었다. 내 등을 밟고 있던 기사가 검을 검집에서 뽑아 내게로 겨눴다.

“폐하! 손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곁에 모여들어 있었던 기사들이 검을 내지르며 달려오려 했으나 군주가 노호성을 지르며 모두를 물렸다.

“아무도 오지 마라! 이자는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다!”

“오, 원한이 가득한데.”

“너는 아직도 입이 살아 있구나.”

나는 왕홀을 들고서 내게로 다가오는 보스 몹을 올려다보았다. 목이 잘린 후로 완전히 여유가 사라진 왕이 다가와 뾰족한 끝을 나를 향해 다시 내리찍었다.

퍽!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 지팡이가 흙과 돌을 튀기며 뽑혔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몸을 굴려 파고드는 공격을 피했다.

“윽!”

이제 이건 마법도, 검술도 아니었다. 시정잡배의 주먹다짐이나 다름없는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왕홀을 휘두르는 왕의 손길에는 분노와 증오가 담겼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콱!

다시 한번 깊숙이 패인 왕홀을 짚고 군주가 한쪽 무릎을 땅에 짚었다.

“지독하구나. 그 투기만큼은 인정하마.”

“허억, 헉.”

“그러나 그것도 끝이다.”

나도 느끼고 있었다. 왕홀로 마력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스킬은 사용 불가.

아이템은 쿨타임 대기 중.

기사회생 스킬의 후유증으로 보스 몬스터의 마법을 파훼할 수 있는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까진가.

“이제 그만 죽어라.”

나는 가물가물해지는 시야를 들어 성벽 쪽을 바라보았다. 성벽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그저 까만 점으로만 보였다.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었는데, 미안하게 되었군.

나는 눈을 감았다.

“눈 감지 마. 그거 우리 사이엔 아직 이르잖아?”

귀를 파고 들어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피부에 뜨거운 열감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푸른색의 불지옥이었다.

온 들판에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길은 날름대며 초원 위의 생명을 모두 집어삼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지옥도가 구현된 필드.

그러나 내가 고개를 들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햇빛을 가리는 거대한 날개였다.

우아하게 날갯짓을 하다 떨어지는 깃털이 하나, 내 이마에 닿아 녹듯이 사라졌다.

- 플레이어명 : 이필연을 인식하여 시야 제한이 해제됩니다.

현세에 지옥을 구현한 천사가 사뿐한 동작으로 내 앞에 내려앉았다.

이우연이 천천히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투명한 검은 눈동자는 여전히 미심쩍었으나, 그가 든 검이 향하는 자리는 분명했다.

내가 아닌 군주를 향해 겨눈 그 검.

이우연이 웃으며 내게로 손을 뻗었다.

“그러니 일어나, 강예나.”

깊게 한숨을 쉬고서, 나는 그제야 내가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순간이 있다.

이 장면이 영원히 내 안에 남아, 내 영혼의 일부를 구성하리라는 예감이 드는 순간.

나는 이우연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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