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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45화 (46/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45화

이우연의 검 끝에서 일어난 불길이 대지를 잡아먹고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이선은 생각했다.

“저건 완전 불붙었고.”

이선은 이우연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신났지, 아주. 미친 듯이 달려 나가더니 저럴 줄 알았다.

푸른 불이 생명을 재로 만들어 가는 광경은 마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장혜원이 옆에서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저, 저거 일반 주문은 아니죠?”

“네, 진언이에요.”

장혜원은 경탄과 경악이 뒤섞인 기색으로 눈앞의 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그럴 법도 했다. 같은 마법사 클래스더라도 시스템이 레벨에 따라 알려 주는 일반 마법과, 마법사 개인이 깨닫는 진언 마법의 위력 차이는 무척 컸으니까.

이 5년간 한국에서 진언을 깨우친 마법사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대장님!”

강수현이 이선을 불렀다.

본래 사용하는 헌터라는 호칭 대신 대장으로 통일하기로 한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괜히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성주의 명령으로 자율성은 보장받았지만 이제 주위 사람을 물릴 수는 없으니까.

“적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 적군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크게 보았을 때 이우연이 잡아먹은 적군들은 아직 일부에 불과했으므로, 나머지 군사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성벽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지난한 싸움이 되겠군.

통나무를 둘러멘 적군들이 다가옴과 동시에 성벽에 대기하고 있던 군사들이 활시위를 당겼다.

“쏴라!”

부단장이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 신호와 함께 해자에 다리를 놓으려던 적군에게 화살비가 쏟아졌다.

강수현은 명백하게 긴장한 얼굴이었다.

이선이 직접 면접을 보고 뽑은 헌터로 이제 겨우 이십 대 중반인 나이였다. 입술은 파랗고 긴장한 채였다.

그럴 법도 하지.

이제껏 상대한 몬스터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몰려오는 것들은 인간이었으니.

머리로는 저것들은 몬스터와 다름없는 유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인간처럼 보이는 것에서 오는 거부감은 대단할 것이다.

시각적 정보를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은 무척이나 적다. 이선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이선은 말 그대로 발밑의 인간들을 학살하고 있는 청년의 등에서 눈을 돌리고, 강수현에게 짧은 어조로 명령했다.

“밑을 보지 마세요.”

“예, 예?”

“힘들다면 하늘만을 보고, 실드를 펼쳐요.”

적군의 한복판에서 투석기가 준비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선은 신입 헌터들에게 당장 네 눈앞의 적군을 찌르고 가르라 말하지 않았다. 대신 저 하늘을 날아 이 성벽을 무너뜨릴 공격에 대비하라고만 했다.

신입들이 직접 손을 쓰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은 했다. 그래서 마법사 클래스가 아닌 헌터들은 마력 보조 담당으로 돌릴 예정이었다.

“아, 아닙니다.”

강수현이 파랗게 질린 채 고개를 저었다. 완드를 쥔 손에는 푸른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살아남아야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안색은 파리했지만, 도망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선은 강수현을 다독였다.

“그래도 긴장은 나쁘지 않아요. 헌터들은 언제나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될 테니까.”

자신의 임무는 이 절박한 상황에 밀어 넣어진 한국의 헌터들을 지키는 것.

이선은 자신의 완드를 들며 화살비가 쏟아지는 성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적군들은 이제 화살을 맞는 것을 감수해 가며 방패를 위로 든 채 해자를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돌을 던져라!”

기사의 호령에 맞추어 화살을 든 병사 대신 돌 주머니를 짊어진 주민들이 성벽에 나섰다.

그들은 힘껏 방패 위로 돌을 던졌다.

쿵!

돌이 떨어질 때마다 방패가 찌그러지고 대열이 주춤했다. 게다가 해자에는 온갖 오물과 독을 풀어놓은 상태. 해자를 건너오더라도 잠시간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이다.

“어, 생각보다 진군 속도가 느린데요. 해자가 깊어서 그런가.”

투석기를 방비할 실드를 구성하고 있던 최석원이 그렇게 말했다.

던전 내에서는 가장 마력이 강대한 마법사로, 정부 내부 판정으로는 A급. 경력에 따라 차후 S급으로 올라갈지도 모르는 인재였다.

이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으니.”

그러나, 성 쪽의 인원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적다. 화살도, 집을 허물어 만든 돌덩이조차 부족했다.

게다가 버텨야 하는 시간은 앞으로 이틀. 길어질수록 패배는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이선은 냉정하게 승률을 계산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해.’

만일 수성전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이선은 헌터들의 포지션을 바꿔서라도 탈출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던전 공략이 실패하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 하지만 어차피 실패할 거라면 차라리 빠르게 미래의 인재들을 탈출시키는 편이 나았다.

이우연이 이르길 바깥에서도 포화도가 높아졌다는 상황을 알고 군대를 투입하는 등, 방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바깥의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터.

게다가 이 안에는 자신을 포함한 랭커가 셋. 서울에만 S급 던전이 세 개나 있는 한국에서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인적 자원이었다.

또 이우연도 이우연이지만 그중 하나는 아직 신원 미상인 랭킹 1위에, 심지어 귀하디귀한 물공 타입에 항마 속성까지 보유한 듯했다.

차라리 던전 브레이크를 진압하는 게 낫지, 이 시점에서 이런 랭커들을 잃는 것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땐 치명적이다.

이선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에 불타오르고 있는 것은 정의감이라기보다는 공무원이자 이 자리에서 가장 어른인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이 던전에서 누구도 죽게 하진 않겠다.

적들은 이제 해자에 빠진 시체를 타고 넘어 점차 성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돌과 화살비를 뚫는 압도적인 숫자.

그리고 성벽 공략용 첫 번째 사다리가 걸쳐졌다.

“사다리를 쳐 내라!”

지휘를 담당하는 부단장이 지시를 내린 것을 듣자마자 이선은 완드를 휘둘렀다.

공교롭게도 오늘 장착한 완드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였다.

악령을 쫓는 힘이 있다는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가 마력에 반응한 동시에 사다리에 불이 붙었다.

사다리를 오르려던 적군의 손에 불이 닿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으아아악!”

“불, 불이다!”

“불붙은 놈은 해자로 뛰어들어!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지 마라!”

그러나 겨우 그 정도로 진압될 불이 아니었다. 불에 휩싸인 병사들이 괴로워 몸부림치는 동안 불은 비정상적인 속도로 다른 적군에게도 옮겨붙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선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 성의 기사단을 이끄는 부단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에 스치는 짧은 의구심을 발견한 순간, 부단장은 정확히 필요한 것만을 물었다.

“저 마법, 몇 번이나 가능하지?”

방금 사용한 것은 기초적인 마법인 파이어 볼이었다.

다만 저 기초 마법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마력을 섬세하게 운용하여 다른 자들에게 옮겨붙도록 한 것은 오로지 이선의 역량이다.

본래대로라면 단발성으로 끝날 공격 마법이라 이선의 수준이라면 몇 십 번은 더 사용 가능했다.

하지만 이선은 다른 대답을 했다.

“몇 번 안 됩니다. 다음부터는 계획대로 투석기 방어에 집중할 거니까요.”

“알겠다. 몇 번은 더 가능하다는 거로군. 그럼 투석기가 준비되기 전은 부탁하지.”

부단장은 별로 실망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선도 그럴 생각이었기에 긍정했다. 성벽 위에 적이 올라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다만, 이 전쟁터에서 헌터들을 모두 챙기며 실드도 유지하고, 동시에 이우연이 위험해질 것 같으면 전장에도 뛰어들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실패의 가능성이 커지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서라도 모두를 밖으로 탈출시켜야 했다.

이 성이 품고 있는 사정이 딱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곳은 어디까지나 공략해야 할 던전에 불과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헷갈린 적은 없다.

유령의 성에서 죽은 것처럼 잠든 헌터들을 보며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어진 선은 명확했다.

완드를 꾹 쥔 채 이선은 자신의 전장을 바라보았다.

지난한 전투의 시작이었다.

*   *   *

“윽!”

그로부터 5시간 후.

해는 완전히 떨어졌다.

완연한 밤이 찾아든 시각.

이선은 가물가물해지려 하는 시야 때문에 제 뺨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장비를 제외한 옷은 성한 곳이 없었다.

예상했지만 추측했던 것보다도 훨씬 힘겨운 싸움이었다. 적군은 유의미한 성과를 낼 때까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쉴 새 없이 성벽 밑으로 화살을 쏘며 돌을 때려 넣고, 끓는 기름을 들이부었지만 적군의 숫자는 너무도 많았다.

깊게만 보였던 해자는 이제 시체로 즐비해 헤엄칠 필요도 없이 모두가 밟고 올라올 수 있을 정도였다.

땅과 다를 바가 없다.

“돌을 더 가져와!”

“뭐든 상관없으니까 무거운 걸로!”

다행히 병사와 주민들의 분전으로 성벽을 타고 올라온 적군은 아직 많지 않았다. 타고 올라온 적군들은 기사들과 헌터들의 손에 대부분 제거되었다.

“어딜 올라오려고!”

잠시 쉬며 마력을 회복하던 장혜원이 롱 소드로 사다리를 다 올라온 적군의 배를 찌른 후 밑으로 굴러 떨어트리는 것이 보였다.

마법사고 뭐고, 이쯤 되니 다들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되 적에 불과했다.

“헌, 아니, 대장님! 또 날아옵니다!”

공중도 문제였다.

마법으로 펼친 실드라고 해도 물리적 공격에 아예 깨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15번의 공격을 버틴 후 실드는 깨어졌다.

게다가 적군도 바보가 아니었다.

투석기가 던지는 것은 돌뿐만이 아니었다. 투명한 실드를 타고 온갖 오물과 사체들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시각적으로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다행인 것은 적군도 던질 것이 떨어졌는지 투석기로 공격해 오는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이쪽의 마력도 충분치 않다.

지금까지는 조를 나누어 잠깐씩 쉬어 가며 실드를 펼치고 있었지만 슬슬 한계가 왔다.

“컥!”

예상대로 헌터 중 가장 마력이 약한 편인 송지현이 가장 먼저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피를 토하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뒤로 빠지세요!”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어요!”

“토 달지 말고!”

적군의 투석기는 또다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 더 버텼어야 할 실드는 송지현의 부재로 이미 희미해지고 있는 상태.

“다음 조 대기 중입니다!”

최석원이 외쳤다. 투석기가 다시 준비되기까지 잠깐의 틈이 생겼다.

이선은 전장을 살폈다.

적군으로 빽빽이 들이찬 전장.

그 전장의 가운데, 이상하게도 일직선의 빈자리가 보였다. 중심에 선 이가 달려 나갈 때마다 적군의 전열에는 빈틈이 생겼다.

‘진짜 미친 자식아!’

이 5시간 동안, 이우연은 단 한 번도 성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날개를 펼치고 광역 마법으로 인간을 쓸어버리던 것도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마력이 부족한지 직접 땅에 내려서 검을 휘두른 것이 3시간이다.

틈을 봐서 이선도 광범위 공격 마법으로 보조하긴 했지만, 그것도 수성에 집중하느라 끊긴 지 족히 1시간이 넘었다.

그럼에도 이제 적군들은 이우연이 휘두르는 검을 피해 전열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의 분전이었다.

이우연이 걱정되었지만 저 녀석이 왜 그러는지도 알았기에 이선은 안타까웠다.

저렇게 싸우고 있는데도 아직 상대는 많았다.

“3만을 죽여야 한다고 했던가?”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려면 달성해야 할 최소한의 숫자.

무시무시한 숫자였는데, 역시나 막상 전장에 서 보니 더욱 까마득한 숫자처럼 보였다.

“으, 으으…….”

“대장님, 저, 저 도저히…….”

그리고 등 뒤의 헌터들은 모두 한계였고, 잠시 검을 들고 분전하던 장혜원도 탈진 상태였다.

이선은 입안에 고인 피를 애써 깔깔한 목구멍 뒤로 삼켰다.

씁쓸한 기분이 자리했다.

“잠시 다들 물러나서 쉬어요. 잠깐이라면 나 혼자 버틸 수 있으니까.”

완드에 마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투석기에 얹혀 있는 거대한 돌이 보였다. 저걸 막아 내지 못하면 성벽이 무너진다.

- 최석원 헌터, 잘 들어요.

실드를 시전하는 동시에 이선은 최석원에게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그는 신입 헌터 중 유일하게 텔레파시 스킬이 있는 헌터였다.

최석원은 깜짝 놀라 이선을 바라보았다.

“네, 네?”

잠입 요원은 못 하겠어.

평가서를 미리 써 둘 걸 그랬다. 이선은 최석원에게 필요한 것을 빠르게 전달했다.

- 만일 성벽이 무너지고 내가 죽으면, 그 즉시 다른 헌터들을 이끌고 공성 포지션으로 바꿔서 던전을 탈출해요.

“네?!”

- 텔레파시로 대답하고!

“아, 네, 넵!”

- 그게 무슨 소리……!

- 이제 대답 그만해요. 정신 사나우니까. 알아들었죠? 그럼 잘 부탁합니다.

허공에 실드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선도 자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성이.

이선은 잠시 전장에 나서 있는 이우연을 바라보았다. 이우연과 시선이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선은 이우연을 믿었다.

제 목숨은 챙기는 놈이고, 던전 공략에도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녀석이다. 던전 공략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한다면 당장 강예나를 데리고 탈출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접는 게 맞다.

젠장, 여기가 내 묫자리기는 한가 보다.

투석기를 가장 먼저 떠난 돌 하나가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드디어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올라온 적군들도.

이선이 이를 악물고 완드를 치켜들었다. 실드를 유지하는 동시에 진언을 시전할 생각이었다.

일반 마법과 진언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극심한 마력 소모를 필요로 한다.

누구 하나 엄호해 줄 사람이 없는 지금 진언을 사용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지만, 이왕 뒈질 거라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게 옳다.

오로지 그것을 위해 이선은 입을 열었다.

“이 영역…… 윽!”

그때였다.

“하지 마!”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등 뒤를 강타하는 충격이 느껴졌다.

습격인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흙덩이 같은 것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비켜!”

저 멀리, 성으로부터 이어지는 길에서 돌풍이 일고 있었다.

이선은 깜짝 놀라 두 눈을 비볐다.

하지만 상대를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성벽까지 휙 뛰어오른 인영이 이선의 한쪽 어깨를 손으로 턱 짚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성벽을 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모두가 그 모습을 따라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지상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치열한 전장이었으나, 어두운 하늘에서는 고고한 달이 희미하게 빛날 뿐이었다.

그 달을 압도하는 빛이 깃든 검이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이선은 겨우 자신이 본 것을 확신했다.

“강예……!”

“단장님!”

피를 뒤집어쓴 참담한 몰골의 부단장이 먼저 애타게 외쳤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뒷모습뿐.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이선은 그 부름에 그녀가 응답하고자 한다고 느꼈다.

빛나는 검이 휘둘러졌다.

검로 앞에 있는 것은 성을 향해 날아들던 거대한 돌덩이였다.

말도 안 돼, 그렇게 생각했으나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압도하는 법.

반쪽으로 갈라진 돌덩이가 힘없이 지상으로 낙하했고, 여자는 떨어지는 돌덩이를 다시 걷어차며 도움닫기를 했다.

탁.

멋지게 회전한 후 성벽 위에 착지한 여자가 잠시 몸을 돌려 전장을 훑었다.

상대를 인지해 시각 정보가 이미 정상적으로 돌아온 이선에게는 그 여자의 얼굴이 정확히 보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젊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렇게 비명이 깊은 전장에서 보니 더욱 어리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런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에서는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판단될 정도로.

그러나 전장을 훑는 눈빛에서는 노련함이, 입매에서는 고집이, 칼을 휘두르는 손에서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엘리사 메이!”

호령하는 목소리에 놀라운 광경에 잠시 넋을 빼놓고 있던 부단장이 대답했다.

“네, 단장님!”

“뭘 하고 있나. 정신 차려! 그리고, 마법사!”

그것이 자신을 호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선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렇지, 이선 헌터라고는 부를 수 없을 테니까.

“네?”

“실드에만 집중해. 괜한 짓 해서 수명 단축시키지 말고!”

아, 더블 캐스팅으로 공격 마법을 쓰려던 것을 알아차린 거로군. 이선은 아직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서 있던 최석원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멋있다…….”

……그러게.

이선은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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