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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52화 (5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52화

뛰어든 곳은 평범한 막사 안이어야 했는데, 존재하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메시지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 축하합니다! 히든 루트에 최초로 진입 달성하여 업적치 정산 시 가산됩니다.

- 히든 루트 진입 조건 : 후계자 ‘라인하르트’의 확보 및 설득과, 공작 ‘베른’의 포섭 동시 충족

“강예나!”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멈칫하자마자 밖에서 고함이 들렸다.

이우연도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공간이 분리되고 있어!”

“뭐?”

그러나 이우연에게 굳이 되묻지 않아도 이어서 주르륵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가 상황을 알렸다.

- 히든 루트 진입 조건을 충족한 플레이어가 보스 몬스터에 대한 선제 공격권을 가집니다.

“와…….”

“강예나! 듣고 있어?”

그것을 마지막으로 바깥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이우연의 고함도 들리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내 목소리도 바깥의 이우연에게 들리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설마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아무래도 라인하르트와 베른 공을 이용하면서 내가 의도치 않게 ‘히든 루트’를 열어 버린 모양이다.

설마 여기서 히든 루트 진입이 터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기야 공략 베이스를 쌓을 수 없는 돌발형 던전에서 이걸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신이나 예언가 정도겠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히든 루트란 플레이어가 어떤 특정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얻게 되는 일종의 특전이다.

업적치가 가산되면서 보상의 질이 높아진다든가, 혹은 보스 몬스터의 약점을 알 수 있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방금 이우연의 진입이 막힌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특전의 일부였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는 플레이어가 가장 많고 좋은 보상을 가져가기 때문에 던전 내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일도 많으니까.

다만 현재 내 능력치로는 보스 몬스터를 혼자 상대하기 어려워서 이우연과 함께 온 것인데, 이래서야 특전이 특전이 아니게 된다.

그나마 기대해 볼 만한 것은 단순히 선제 공격권만이 이 히든 루트의 특전은 아닐 거라는 것.

대개 특전의 질은 진입 조건이 얼마나 까다롭냐에 따라 비례한다.

따져 보면 라인하르트를 생포하고 설득한 것, 베른과 짜고 친 연극은 꽤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까 싶긴 한데. 적의 중요 인물들을 돌아서게 만든 거니까.

그것도 아주 단시간에 말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에 뜰 메시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 히든 루트 진입으로 인해 ‘진실에 침식된 군주’에게 걸린 제약이 강화됩니다.

- ‘진실에 침식된 군주’ 등급이 SS급에서 S급으로 조정됩니다.

- 단, 보스 몬스터의 등급 하락이 업적치에 반영됩니다. 차후 보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와!”

이 던전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등급 조정이라니, 이거 진짜 굉장한 디버프를 먹여 줬잖아.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는데.”

아니, 해볼 만한 정도가 아니라 이거 진짜 대박이잖아?

손에 잡힌 검이 미미하게 진동했다. 마치 내 말에 찬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S급이라면 내 클래스 보정이 마(魔) 속성을 상대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하면, 어렵긴 해도 지금의 능력치로 비벼 보지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장 얼마 전에 상대했던 리치도 강력한 몬스터이기는 했지만 S급이라 진언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보스 몬스터의 등급 하락으로, 받을 보상이야 좀 손해를 보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업적치 까이는 게 낫다.

어차피 내가 받고 싶은 것은 클리어 보상인 기사단장의 능력치니까.

다만 이쯤 되니 시스템이 날 죽이려는 건지 도와주는 건지 헷갈리는데…… 뭐, 아무래도 좋아. 당장 눈앞에 놓인 일부터 해치워 보자고.

곧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 새로운 임시 필드가 형성됩니다. 필드는 보스 몬스터의 심상에 기초하여 형성됩니다.

-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를 재인식하였습니다.

- 필드 입장에 동의하십니까?

- Y/N

동의하자마자 이번에는 시야가 새하얗게 변했다.

마치 공허한 우주에 외따로 떨어진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몸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가 다시 조립되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사지에 감각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주위의 풍경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눈앞에 비치는 풍경이 온통 하얬다. 자세히 보니 온통 대리석으로 발라져 있는 궁전 안이었다.

주위는 온통 고요했다.

보스 몬스터가 만들어 내는 필드인 만큼 낮처럼 전쟁터 한복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했는데,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붉은색의 기다란 비단을 따라 시선을 들어 보니, 높은 계단 위에 놓여 있는 왕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왕좌 위에 무언가가 앉아 있었다.

무겁고 화려한 보관을 쓴, 홀로 앉아 군림하는 것과 시선이 마주쳤다.

- S급 보스 몬스터, ‘진실에 침식된 군주’와 조우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쪽도 나를 인식했다. 보스 몬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파란색의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약간의 위화감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황제가 탄식하듯 말했다.

“이 무슨 신의 농간인가. 왜 네놈이 여기에 있는 거지?”

“왜긴 왜야. 네놈 목을 따기 위해서지.”

그리고 이것은 신이 아니라 시스템이 부린 농간일 뿐이다. 황제가 낮에도 보아 익숙한 왕홀을 집어 들었다.

“그래, 이유야 아무래도 좋겠지. 이게 꿈이든, 환상이든 무슨 상관이겠느냐.”

낮은 목소리는 나에게 말한다기보다는 마치 스스로에게 되뇌는 듯했다.

왕홀 주위로 마력이 응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해하려는 자는 반역으로 다스릴 뿐.”

물론 저 마법이 시전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상대방에게 마법을 시전할 여유를 주면 내가 진다.

“흡!”

나는 검을 쥐고 님페의 바람을 발동시키며 바닥을 발로 박찼다. 순식간에 왕좌 위의 보스 몬스터가 가까워졌다.

다시 한 발 더 내딛는 순간 보스 몬스터의 입이 열렸다.

입 모양은 생소하게 움직였으나 내게는 분명히 이렇게 들렸다.

“그래비티!”

주문이 떨어지는 동시에 내 몸을 짓누르는 압박이 거세어졌다.

다음 발을 박차기 전 나는 바닥으로 깊숙하게 처박혔다. 강제로 처박힌 두 발이 쾅, 하는 소리를 냈다.

여기까지는 낮에 보스 몬스터가 나를 공격했던 패턴과 같다. 온몸을 짓누르는 중력, 그 압박감.

발이 바닥으로 푹푹 패여 가는 것이 느껴졌다.

검을 드는 손이 압박을 느끼지 못하고 덜덜 떨렸다.

그래, 이건 확실히 낮과 같은 패턴이로군.

몇 시간 전, 나는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착용한 상태임에도 보스 몬스터의 마법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었다.

다만 지금은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씩 웃는데, 아까 전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는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진언이 아니라면 이쯤이야!”

쉽지!

- 에이펙스의 광검이 용사 클래스 보정을 받아 성검으로 진화합니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마(魔) 속성에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깡!

금속성의 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휘두른 검이 마력을 끊어 내며 마법을 쉽게 파훼했다. 반발하는 마력이 뺨을 찌릿, 하고 스쳤지만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나는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발을 박찼다.

보스 몬스터에게 가까이 파고들자 경악한 눈동자가 보였다. 입술이 달싹이며 말을 자아내려 했다.

대체 어떻게?

그러나 그 말이 이어질 일은 없었다.

“크아아악!”

에이펙스의 광검이 몬스터의 가슴을 깊숙하게 베었기 때문이다. 보스 몬스터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나는 혀를 찼다.

‘거리가 모자라!’

마법이 파훼된 순간 보스 몬스터가 반사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왕좌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완전히 잘라 내지를 못했다.

한 방에 끝낼 절호의 기회였는데.

다만 상대방은 나처럼 아쉬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크윽……!”

깊게 베인 가슴을 움켜쥐고서 간신히 마법으로 내 검이 닿는 거리에서 살짝 벗어나긴 했지만, 꽤 치명적인 상처였다.

게다가…….

“무슨 짓을 한 거냐!”

황제의 가슴에 입힌 상처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용암이라도 들끓는 것처럼 끔찍한 상처였다.

나는 그 증오에 불타오르는 시선을 마주한 채 씩 웃으며 희게 빛나는 검을 들어 보여 주었다.

“뭐랄까, 정의 구현?”

“같잖은 소리를!”

“같잖은 소리기는 한데 사실인걸.”

적이기는 했지만 참 안타깝다. 시야 한구석에 유독 번쩍거리는 메시지를 보여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상대를 ‘악’으로 인식하였습니다.

- 성검이 보유한 특성, ‘악의 처단’이 발휘되어 상대에게 추가 타격을 입힙니다.

나조차도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였다.

사실 ‘악의 처단’은 상대가 마족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잘 발휘되지 않는 특성이었다. 내가 쓰고 싶다고 한들 적이 성검의 기준에 들어맞지 않으면 터지지 않는다.

‘악’을 처단하는 성검이라니 웃기지도 않지만, 어쨌거나 이 특성이 터지면 나로서는 이득이었다.

아마 이번 보스 몬스터의 서사가 성검의 기준에서는 ‘악’으로 판정된 모양이다. 하기야, 일반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폭군이니까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유령의 복수를 위한 던전이라지만 이상할 정도로 몬스터들의 정보량이 많다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이쯤 되면 순수한 내 능력으로 상대를 궤멸시킨 게 아니라 상대가 알아서 제 무덤을 팠다고 봐야 했다.

당장 자기 자식을 그렇게 공개적으로 버리지 않았다면 라인하르트가 황제를 배신하지도 않았을 테니.

“그러니까 착하게 살았어야지.”

“큭!”

물론 내가 여유를 가지게 된 것과 별개로 보스 몬스터에게 여유를 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빠르게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마법을 시전할 틈이 없어 황제가 왕홀을 들어 검을 막으려 했으나 그 시도는 무참하게 썰렸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썰렸다.

스겅.

깔끔하게 잘려 두 동강 나는 왕홀을 바라보는 보스 몬스터의 표정이 아주 볼만했다.

그야 그렇지. 마법도 쓰지 않고서 일반 왕홀 따위로 내 검을 막을 수 있을 리가.

등급이 높은 마법사 클래스의 장점은 강력한 광역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마법을 시전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근접전에는 약할 수밖에 없다.

또 진언을 사용할 수 있는 SS급이라면 모를까, 일반 마법만을 사용하는 마법 계열의 몬스터라면 지금의 내 능력치로 얼마든지 파훼가 가능했다.

“애초에 마법사가 근접전, 그것도 일대일 상황에서 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 히든 루트, 정말 대박을 뽑았다. 역시 라인하르트는 잭팟이었어. 덜떨어진 놈이라고 욕해서 좀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황제 암습’ 루트의 진정한 특전은 등급 하락 따위가 아니었다.

마법사가 나 같은 검사를 상대할 때는 필연적으로 방어해 줄 방패가 필요하다. 얼마 전에 상대했던 S급 몬스터인 리치의 경우만 해도 ‘에너지 드레인’으로 사람들을 제 먹이통 겸 방패로 삼아 놓았다.

그렇지만 이 히든 루트의 이름은 ‘황제 암습’.

보스 몬스터의 주위에는 그를 보호해 줄 수 있는 호위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생겨난 필드조차 보스 몬스터의 심상에 기초하여 생겨났다. 황제가 그리는 자신의 공간은 아무도 없는 허무의 공간.

그 공간에 홀로 군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낮과는 달리, 보스 몬스터는 나를 상대로 필패할 수밖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네. 황제인 주제에 혼자라니.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야.”

하기야 아들도, 신하도 제 손으로 목덜미를 틀어쥐고 누르고 있었으니 그 주위에 누가 있었겠느냐마는.

황제가 내 비꼼에 이를 부득 갈았다.

“이 개자식이!”

“오, 불리해지니 입이 많이 험해졌는데?”

“감히 짐을!”

노호가 빈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으나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두 동강 나 짧게 잘린 왕홀을 쥐고 어떻게든 검을 피해 물러섰으나, 나는 그때마다 황제가 움직이는 길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큭!”

검기를 날린 자리마다 손이, 다리가, 허리가 잘려 나갔다.

캉!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휘둘러진 왕홀은 길이가 더욱 짧아질 뿐이었다.

이쯤 되면 가지고 노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간중간 마력이 모여들어 시전되기도 했으나, 가슴의 상처와 왕홀의 부재로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기를 두 번, 세 번, 네 번.

어느샌가 황제는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진 채 사지를 바르작대고 있었다.

나는 보스 몬스터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큭, 내가, 이 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황제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 몸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다.

원통함이, 억울함이, 거대한 슬픔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렇게 쉬울 거였나.

이렇게 쉽게 비참해질 것이었나.

그저,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

내가 아니었다면, 나 때문에…….

“아니야.”

나는 그 비명에 부정으로 답했다.

한때 내가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검을 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치 날붙이를 처음 잡은 사람처럼.

결코 그럴 리가 없는데도.

이번에는 마법 때문이 아니었다. 내 몸을 빌린 이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손끝의 감각을 순순히 내주었다.

칼이 천천히 피부를 베고,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황제는 날아오는 검날을 보며 눈도 감지 않았다.

그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기사단장은 황제의 처형을 집행했다.

그래, 네 죽음은 초라해야만 한다. 어떠한 장엄한 영광도, 숭고한 패배 따위도 없을 것이다.

내가 지켜보았던 모든 죽음이 그러했던 것처럼.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황제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허망한 눈이 바닥을 굴렀다.

그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오래도록 기다려 온 복수의 성취는 허무한 죽음이었다.

겨우 이걸로 된 거냐, 그렇게 반문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죽어 버린 이를 던전의 유령으로 만들어 버린 시스템이 대신 대답했으니까.

- ‘진실에 침식당한 군주’의 처치가 완료되었습니다.

- 해당 유령의 소원이 성취된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유령이 분노를 풀고 영면에 들었습니다.

- 당신은 해당 인물로서 훌륭하게 행동하였습니다! 던전 클리어 시 업적치 정산에 가산됩니다.

- 여섯 번째 밤이 강제 종료됩니다.

- 플레이어가 승리하여 임시 생성된 필드에서 벗어납니다.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점멸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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