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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56화 (57/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56화

“왜 조건으로 집을 걸었어?”

이우연이 숟가락을 건네주며 묻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최민혁의 명함을 챙겨 넣었다.

“사정이 좀 있어.”

나는 대답을 대충 뭉갰다.

이제껏 병원에 5년간 입원해 있느라 집이 없다고 내 입으로 말해 봤자 신용도만 떨어질 뿐이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일단 호텔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 타르토스에 돌아갈 방법이 없다면 정해진 주거 공간이 있는 게 당연히 편리하다.

그래서 나는 정부에 내거는 조건으로 머물 집을 하나 달라고 했다.

“뭐, 공짜로 집이 생기면 좋잖아.”

정부 입장에서도 S급 헌터가 겨우 집 한 채에 협력적으로 나온다면 나쁜 조건은 아닐 터.

아니, 오히려 쉬운 조건이다.

이제껏 정체를 숨기고 비협력적으로 굴었던 내가 겨우 이 정도 수준을 요구한다면 정부 측에서도 안심할 거란 계산도 있었고.

내 짐작대로 최민혁의 예상보다 훨씬 쉬운 조건이었는지, 그는 즉석에서 오케이를 외쳤다.

정확한 매물은 돌아가 상부에 결재를 올리긴 해야겠지만, 괜찮은 후보군을 가리는 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쪽에서 제시한 기간은 일주일.

이 병원에서 3일 정도 더 정양한다 치고, 나머지 3일 정도는 다시 호텔에라도 가지 뭐.

하지만 이우연은 내 조건이 영 불만인 모양이었다.

“랭킹 1위라면 정부가 아니라 어느 길드에 가더라도 그 정도 대우야 당연히 해 줄 거라고. 사람이 왜 이렇게 소박해?”

아니, 집을 해 달라는 게 그렇게까지 소박한 조건은 아닌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보니 던전 등장 이후 S급 던전 3개가 서울로 몰리면서 서울 집값이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쉽게 접근할 가격은 아니었다.

그만큼 수도권의 던전 포화도 관리가 안정적이라는 말이 되겠지.

물론 이우연의 말도 이해는 갔다.

헌터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만든 길드는 대부분 사기업의 형태여서, 그쪽에 들어간다면 정부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확률이 높겠지.

“길드에 들어가면 내 정보를 비공개로 두는 건 힘들 거 아니야.”

그렇지만, 한국의 길드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는 이쪽 사정을 몰라도 뻔했다.

내가 랭킹 1위라는 것을 밝히고 길드에 들어가게 되면 내 이름값을 이용하지 않을 리 없다. 현재 영원 길드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이 이우연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차라리 적당한 대우를 받으며, 정부가 요구하는 최소치의 요구만 맞춰 주면서, 내 목적을 위해 움직일 자유를 확보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지구에서 얻을 부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다.

내 목적은 다른 것이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정보 노출을 꺼리는 거야? 그냥 밝혀도 되지 않아?”

그러나 그런 사정을 굳이 말하지 않은 만큼 이우연은 내 선택이 영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청 끈질기네, 이 자식.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내가 미쳤냐?”

“그야 얼굴은 팔리긴 하지만 여러모로 살기 편해져.”

그렇게 말하며 이우연이 슬쩍 웃었다.

“당신도 공개하면 인기가 많아질 것 같고.”

노골적인 아부였다.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아무래도 간신배 같다.

“인기가 많은 게 무슨 소용이야? 밖을 돌아다니는 것만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

이우연이 광화문에서 나를 마중 나올 때만 해도 목도리에 선글라스까지 챙긴 걸 보면 움직이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닌 것 같던데,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방법이야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 적절하게 공개하면 의외로 도움이 꽤 된다니까 이게.”

일단 들어나 볼까. 이 녀석 성격에, 설마 길거리 나갈 때 환호받는다는 게 즐겁다는 건 아닐 거다.

“……어떤 면에서?”

“가령 긴급 상황에서 다들 무의식적으로 내 지시에 따른다든가? 편리해.”

아, 나는 납득했다. 돌발성 던브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이우연의 지시를 따랐던 게 생각났던 것이다. 물론 그건 천사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연출 탓도 있겠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건 확실히, 이득이긴 하군.

어차피 모든 던전을 혼자 공략할 수는 없다. 다른 헌터들의 협력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온다. 그런데 내가 랭킹 1위라는 걸 밝힌다면 내 판단에 꽤 무게가 실릴 테고…… 여러모로 편리하긴 하겠지.

뭐, 이우연이 추천하는 이유는 알겠다.

하지만 이우연은 지금의 내가 당장 완벽한 능력치를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랭커들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나도 이우연에게 사실을 밝힐 생각은 없기에, 이유를 대충 뭉개어서 말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정보를 가지고 이리저리 씹어 댈 걸 생각하면 영…….”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랭킹 1위 정체 추측글 따위를 보면 소름이 돋는 판국에, 얼굴까지 공개하면 세간이 얼마나 들썩일까.

맛집 정보를 찾아보려고 들어갔는데 ‘=3’을 운운하며 내 목격담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얼마나 소름이 돋겠어.

그건 싫다.

이우연은 내가 영 꺼림칙해하는 기색이자 더 설득하려 들지는 않았다.

“뭐, 천천히 생각해 봐. 급할 건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주거 공간까지 받을 정도면 거의 정부 소속이나 다름없게 되는데, 괜찮겠어?”

“어차피 S급 헌터는 나라에서 부르면 소집되는 거잖아. 다를 게 있나?”

이것도 최민혁이 설명한 사항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상 헌터들은 국가의 긴급 소집에 부응할 의무가 있다, 고 하던가.

대규모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경우, 혹은 S급 던전 포화도가 한계치에 이르는 경우에는 강제 소집령을 받게 된다고 한다.

“당연히 있지. 솔직히 나라에서 부르는 건 무급 노동이니까. 지금이야 안정됐지만 던전 공략 초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나갔어. 그런 점에서 길드 소속이 되면 무차별적인 소집에서는 보호되는 편이랄까.”

아무래도 이우연은 그 무차별적인 소집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네가 있는 영원 길드에라도 오라고?”

“그건, 뭐…… 딱히 추천하지는 않아.”

그건 또 의외였다. 이우연 성격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길드를 추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원 길드에 문제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내가 묻는 시선을 보내도 이우연은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을 돌렸다.

“사실 우리 사이만 나빠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어느 소속이 되든 상관없긴 하지.”

“딱히 정부 소속이 된 건 아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부랑 길드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다?”

“좋기는 어렵지. 헌터로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과, 헌터가 공적 자원이길 바라는 정부 사이가 좋을 수가 없지 않겠어?”

머리 아픈 이야기가 나오는군.

타르토스의 신분제 사회도 깨부수고 싶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울 듯싶었다.

여기서 이야기가 길어지면 적당히 끊을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이우연이 먼저 씩 웃었다.

“그리고 당장 살 곳이 문제라면 내 집에도 방은 많아.”

이건 좀 웃겼다. 농담치고는 재미없지만.

내가 웃고 무시하자 이우연이 한 번 더 말했다.

“괜찮지 않아? 움직이기 편할 텐데.”

……저거 농담이 아니라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지?

나는 미심쩍게 이우연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투명한 검은 눈동자는 여전히 그 속내를 읽기가 어려웠다.

이번 던전 클리어에서 저 녀석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꽤 인상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숨이 걸린 전장에서 함께 싸우게 되면, 사실 그 상대에게 나쁜 인상을 갖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솔직히 말해 지금 현재, 이우연에게 나름대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한국은 현재 ‘최종 던전’이라는 목표도 없는 상태. 게다가 현실에서 갖추고 있는 기존 화력도 만만치 않아서, 솔직히 헌터가 되지 않아도 살 만했다.

그런데도 이우연은 제가 알아서 필사적으로 능력을 개발했고, 그 결과 타르토스의 강자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그런 강자가 되었는데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는 자신의 판단에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해졌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최전선에 나서려고 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어디에도 없음에도.

그런 태도는…… 타르토스에 남겨 둔 내 친구들을 생각나게 하는 면모가 있었다.

꼭 집어서 말하면 루카스랑 아리아드네.

저런 녀석을 이유도 없이 싫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목적이 없는 놈은 아니야.’

다만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내게 잘해 주는 게 뻔히 보인다.

일단, 이우연이 던전 공략에 상당히 집착한다는 건 확실했다. 그 점에서 내가 그의 가장 효율적인 파트너가 되기에 내 등장을 반기는 거고.

그렇지만 ‘왜’ 던전 공략에 집착하는지는 영 모르겠단 말이지.

타르토스에서도 목숨을 건 던전 공략을 즐기는 놈들은 있었지만…… 이우연은 쾌락주의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따지고 재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

즉, 호감이 있긴 하지만 속내를 보여 줄 정도로 믿지는 못하겠다.

현재 내게 이우연이란 인물은 딱 그 정도였다.

내가 이우연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자 이우연은 눈을 깜박이다가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대답도 안 해 주네. 혹시 화났어? 내가 너무 나갔나? 화내지 마. 응?”

살살 눈웃음을 치는 것이, 이쪽의 눈치를 살피는 게 너무 뻔해서 귀여울 정도였다.

저게 아무래도 이우연의 버릇인가 보다. 상대방이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저렇게 웃음으로 넘기려는 거.

“……딱히 화난 건 아니야. 뭐, 고려해 보지.”

이우연의 집은 광화문에서 가깝고, 서울의 중심부인 만큼 던전 접근성도 용이하다. 저번에 가 본 바로는 관리도 깔끔하게 하는 모양이고.

정 선택지가 없으면 나쁠 거야 없지.

내 대답에 이우연은 눈을 한 번 크게 떴다가 하하, 하고 웃었다.

“화가 안 났다니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나는 당분간 바쁠 거야. 미뤄 둔 일이 많아서. 당장 이번 던전 공략 보고서부터 작성해야 하거든. 나밖에 할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눈치를 보아하니 즉, 이번에 내가 할 일도 저 녀석이 다 떠안았다는 말이로군.

“아, 그래. 잘~ 가라.”

해 준다는데 그냥 고맙다고 받아먹어야지.

귀찮은 일은 사양이다.

그리고, 이우연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계속 저 녀석이 옆에 있으면 내 운신의 폭만 좁아진다.

혹이 옆에 있어서 좋을 게 없다.

그래도 그 인사로 끝내기에는 정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가져다준 소고기 미역국은 잘 먹을게.”

이우연은 내가 깨어난 이후 내내 옆에 붙어 있다가 한 번 집으로 돌아가더니, 보온병에 미역국을 담아 가져왔다.

다행히 의사에게서 이건 먹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져서 바로 맛을 보았는데 제법 맛있었다. 덕분에 생일도 아닌데 직접 끓인 미역국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그나저나 요리는 잘하는데 사과는 왜 저렇게까지 못 깎는 거야?

“별거 아니야.”

내 말에 이우연은 답지도 않게 약간 쑥스러워하는 눈치였지만, 곧 원래의 태도를 회복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바로 인사하기 있어? 섭섭하게 구네. 내가 삐지면 어쩌려고 그래?”

뭘 어쩌라고.

내가 멀뚱하게 쳐다보자 이우연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래, 내가 뭘 바란담. 그래도 연락은 계속하자. 아이템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그러지.”

“아. 참고로, 퇴원하면 뭐 할 거야?”

이우연한테 이 정도는 이야기해 줘도 되겠지.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아, 알아볼 게 좀 있어서. 예전 집에 좀 찾아가 보려고.”

“예전 집?”

그래, 예전 집.

하지만 예전 집에 찾아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기는 했다.

물론, 던전 클리어 보상을 받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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