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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58화 (59/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58화

그리고 이틀 후, 나는 드디어 퇴원을 했다.

나를 담당한 의사는 내가 퇴원하기 전에 이렇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간 빨리 죽습니다, 헌터님. 되도록 포션 남용하지 마시고요. 술 담배는 안 하신다니 다행이고, 앞으로도 하지 마세요.”

“아, 예.”

“그리고 되도록 또 입원하지 마시고요. 아하하, 하하, 하하하…….”

웃는 얼굴이 웃는 게 아니었다.

의료진의 노고가 가슴에 깊게 아로새겨졌다.

별 방비 없이 겨울 날씨의 던전에 진입했다가 죽을 뻔했을 때, 아리아드네가 내 뺨을 마구 후려치면서 ‘죽으면 죽여 버릴 거예요!’ 하고 외쳤던 표정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걔는 왜 그렇게 사람을 잘 치냐고. 성직자 아니냐?

그리고, 이게 내가 무리하기 싫은 것과는 별개로 상황이 그렇게 된단 말이지.

결국 내 팔자가 문제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병원에서 찜찜한 기분으로 퇴원했다.

환자복 외에 입을 옷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우연이 퀵으로 캐리어를 부쳐 주었다.

확실히 이런 센스가 있으니 편했다.

덕분에 나는 번거롭게 옷을 새로 살 필요 없이, 편한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고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캐리어를 끌어안고 신촌 버스 정류장에서 일산으로 향하는 광역 버스를 잡아 탔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예전 집’이 일산에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10년도 더 된 일이라 가는 길을 헤매지 않을까, 했는데 버스 번호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1000번을 타고 대화역에 내린 후, 기억을 따라 예전에 살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입구에 서서 캐리어를 쥔 채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출입구를 드나들던 몇몇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고 지나갔다.

물론 아는 얼굴은 없다.

그나저나 이 건물은 무사했군. 혹시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려서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싶었는데.

나는 잠시 더 멀쩡한 건물을 보다가 근처 부동산을 찾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내가 살던 오피스텔은 이미 전세 계약이 종료되어 타인이 살고 있었다.

“다른 방도 있는데, 꼭 그 호수에 살고 싶으신 거예요?”

부동산 업자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렇게 물어보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라도 빈방으로 남겨 두었다면 곤란하니 처리하려고 했던 것뿐이니까. 제대로 처리되었다면 상관없다.

어차피 이제 내 주거지는 정부에서 줄 테니까 말이지.

나는 부동산에서 나온 후 캐리어를 털털 끌며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내 기억대로라면 역 두 개 정도의 거리에 커다란 공원이 있을 거다.

내가 그 공원을 찾아가는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내 체감상으로는 10년 전. 한국 시간으로는 5년 전.

나는 입시를 끝내고 대학교에 합격한, 대한민국에서 아마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기의 학생이었다.

독서실과 집, 학교를 오가던 생활이 끝났지만 딱히 친구도 없었던 터라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인강용으로 샀던 컴퓨터에 메X플이나 깔아 놓고 빈둥거리던 시절.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게임을 하다가 배가 고파 야식을 사러 편의점에 가려고 집을 나섰던 거였다.

밤새 게임을 하면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편의점으로 가, 막 성인이 된 참이라 신이 나 신분증을 보여 주고 캔 맥주랑 오징어를 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있었는데, 밤바람이나 쐬러 갈까?

마침 내가 당시 살던 오피스텔 옆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 공원이 있었다.

좋은 생각 같아 봉투를 달랑달랑 들고서 호수 공원으로 향했고, 적당히 좋은 자리를 잡고 호수를 보면서 맥주랑 오징어를 깠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나는 어두운 숲속에 홀로 버려져 있었다.

어리바리하게 숲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몬스터 토벌차 숲에 들어온 용병들과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즉, 일산의 호수 공원에서 타르토스의 버려진 숲속으로 이동했다는 거다.

뭐 이런 X발.

이세계로 보내 준다는 트럭에 치인 기억도 없고, 갑자기 무슨 신의 간택을 받아서 다른 세계에서 성황쯤 된 것도 아니고, 맥주랑 오징어 까던 기억밖에 없는데, 나는 대체 왜 타르토스로 간 건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일단 이 근처로 오면 무슨 생각이라도 나지 않을까.

또, 애초에 나는 10년 전…… 아니, 5년 전 한국에서 타르토스로 이동했으니, 한 번 더 이동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애초에 왜, 어떻게 그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 그 시점을 짚어 봐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온 거였는데…… 나는 호수 공원 입구에 서서 거대한 조형물을 올려다보았다.

평일 한낮에 추운 겨울이라 그런가, 광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자전거를 타는 어린아이들과 산책을 하는 몇 명 정도.

평화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여긴 하나도 안 변했네.’

아니, 변하긴 변했지만 유의미하게 변한 풍경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조사한 바로는 거대한 인공 호수 한가운데 있는 인공 섬에 고정형 던전 하나가 생겨났다는데, 그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야, 너 왜 여기에 있어? 네가 다음 공략 순번 아니야?”

“재촉 좀 하지 마. 안 그래도 이것만 먹고 공략하러 가려고 했거든?”

“너 그래 놓고 또 늦게 가려고 하지? 다른 애들 다 입장하고 가려고? 그러다 다른 헌터들한테 쥐어 터진다.”

패스트푸드점 앞을 지나는데 살벌한 대화가 들리기에 슥 쳐다보니 누가 봐도 나 헌터다, 싶은 복장을 한 사람이 두 명 서 있었다.

저번에 최민혁이 걸고 있던 것과 비슷한 목걸이를 패용한 걸 보니 정부 소속 헌터인 모양이다.

그들은 저렇게 몸을 갈아 가며 던전을 정기적으로 공략해,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지 않도록 포화도를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다음 달부터는 저렇게 한 달에 열 번씩은 던전 공략을 해야 한다는 거지, 음.

저 호수 공원 인공 섬에 생겨난 던전은 그래도 하급 던전으로 분류되었지만, 아무리 하급 던전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채워야 하는 클리어 조건은 있을 터.

슬라임 30마리를 처리해야 하는 던전이라고 한들 노동은 고된 법이다.

지쳐서 햄버거도 겨우 집어 먹는 직장인들을 보니 어쩐지 내가 괜한 선택을 했나, 후회되려고 한다.

심지어 이우연이 말한 대로라면, S급 헌터라는 이름 아래 나는 꽤 상위 던전을 클리어해야 할 거다.

으음, 벌써부터 고생이 예상되었다.

그래도 일단은…….

“녹차 프라푸치노에 에스프레소 휘핑 나왔습니다~.”

나는 쓴맛과 달콤함이 혼재하는 휘핑크림을 잔뜩 베어 물었다.

겨울에는 역시 프라푸치노지. 당을 맞이한 신체가 비명을 지르듯 짜릿해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당 충전을 해 줘야 머리도 돌아간다니까.

사실 이 며칠간 병원의 환자식 외에 먹은 거라곤, 이우연이 초반에 가져다준 고구마 라떼와 소고기 미역국밖에 없다 보니 속세의 맛이 너무 그리웠다.

좋아, 저녁에는 이 근처의 맛집을 찾아가야지. 이왕 한국에 돌아온 김에 즐길 수 있는 건 다 즐겨 놔야겠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호수 공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던 나는, 뜻밖의 방해에 부딪치고 말았다.

“아,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응?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사람이 내 길을 막아섰다. 나는 기분 좋게 프라푸치노를 마시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인데요?”

설마 던전 브레이크라도 터진 건 아니겠지.

“죄송합니다. 지금 이쪽 광장에서 프로그램 촬영 진행 중이라서요~ 지금은 휴식 중이긴 한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호수 공원 메인 광장 앞쪽에 촬영을 하는 카메라들과 임시로 설치된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뭐야, 별일 아니었잖아.

괜히 긴장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다른 데로 갈게요.”

뭐, 사실 메인 광장에만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 기억상으로, 나는 5년 전에도 대강 아무 벤치에 앉아서 맥주를 깠었다. 그래서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한 후 길을 돌아가려던 때였다.

임시로 설치된 의자 중 가장 끝 열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아차.

“어, 강예나!”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과 저쪽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건 동시였다.

나는 깜짝 놀라 눈만 껌벅였고, 갑자기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은 스태프가 경악하며 방청석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크게 말씀하시면 마이크에 소리 들어가요!”

“죄, 죄송합니다!”

스태프에게 혼나고 있는 방청객은 바로.

……이름이 뭐였지?

“우성연! 우성연이야!”

그래, 우성연.

그가 힘차게 외쳤다.

나는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가 가장 처음으로 생각난 말을 내뱉었다.

“백수라더니 알바해?”

“야, 너는 어떻게 만나자마자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냐? 그래! 방청 알바 중이야. 공부하다가 숨도 좀 돌릴 겸.”

그래, 방청객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박수를 치기에 아르바이트겠거니 했다.

참고로 내게 말을 걸었을 때는 다행히 촬영이 잠시 쉬어 가려던 참이라 우성연은 그리 많이 질책받지 않았다.

역시 은근히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본격적으로 쉬는 시간이라, 우성연은 자리에서 빠져나와 내가 찾은 근처 벤치에 함께 앉아 있었다.

“그나저나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만나지? 안 그래도 찾고 싶었거든.”

“왜?”

“왜긴 왜야. 아이템 돌려주려고 그랬지!”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녀석한테 내 아이템을 빌려줬었지. 그리 좋은 아이템도 아니었기에 잊고 있었다. 현재 내게는 딱히 필요 없는 아이템이기도 했고.

우성연은 주위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아이템을 소환해 꺼냈다.

“헤어질 때 내가 챙겨서 돌려줬어야 하는데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어서…….”

“……됐다.”

솔직히 다시 만났더라도 저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잊어버리고 있었을 텐데 양심적이었다.

조금 둔하고 멍청해서 그렇지, 애는 착한 타입인가 보다.

“그리고 그 던전 앞에 있었던 아저씨 말이야, 진짜 악질이었어. 조사해 보니까 실종자 신고가 수십 건이나 있었던 게 밝혀졌다더라고.”

그리고 뜻밖의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본인이 신고한 형태가 된 만큼, 우성연은 수사 결과를 어느 정도 전달받았는지 내게 꽤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나저나, 악질적인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간접적으로 죽였을 줄은 몰랐다.

이걸 알았더라면 그렇게 몇 대만 패는 게 아니라 정말로 던전 안에 던져 줄 걸 그랬다. 감옥에 가두는 것 정도로는 영 성에 안 차는데.

“그런데 그걸 어떻게 자백시켰대? 설마 갱생해서 본인 입으로 실토하지는 않았을 거고.”

“강원도 경찰 쪽에 유명한 사람 있잖아. 자백 스킬 쓰는 사람. 그 사람한테 취조받았다더라.”

그 유명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인 사람이 그런 스킬을 발현시켰다니, 잘됐다. 던전 안에서 죽어 버린 사람은 아무도 찾지 못할 테니 자칫하면 완전 범죄가 될 뻔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제대로 처벌을 받을 거라고 그러더라. 검사도 벼르고 있다고 담당 경찰이 말해 줬어.”

“그래, 다행이군.”

“이게 다 네 덕분이지 뭐야. 너 아니면 나도 죽을 뻔했잖아. 덕분에 정신 차리고 공부에나 매진하기로 했다구.”

그건 정말 본인을 위해 다행인 이야기였다.

헌터가 되겠다는 가당찮은 꿈도 버리고 나름대로 건실하게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건 그를 위해서 좋은 변화였다.

던전에 들어가면 누구나 시스템창을 개방하고 자신의 능력치를 개발할 수는 있지만, 그게 본인에게 꼭 좋은 일인 건 아니니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은 하는 게 아니다.

특히나 이런 현대 사회에서 몬스터를 칼로 썰고 마법으로 학살하는 게 적성에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성연은 나를 우연히 만난 게 어지간히 반가웠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헌터라는 직업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오늘 인터뷰하는 백사현 헌터도 실물 보니까 더 멋진 것 같고.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어라.

이거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었다.

백사현, 백사현이라…….

내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우성연이 흥분한 채로 물어보았다. 왜 돌진하는 무사 특성인지 잘 알겠군.

“그러고 보니까 예나 너도 사실 엄청 강하잖아. 혹시 서로 아는 사이라거나 그래?!”

“……아니, 전혀.”

“아, 정체가 비밀이라서 그런가? 하여튼 진짜 멋있다니까~.”

알아서 좋은 쪽으로 해석해 주니 딱히 첨언할 게 없다. 나는 남은 녹차 프라푸치노나 마저 마시기로 했다.

그 남자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를 풍경으로, 인위적으로 염색한 것 같은 백금발의 남자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키가 훌쩍 크고, 덩치가 좋고, 등 뒤에는 바스타드 소드를 메고 있다.

저게 백사현이군.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겠다.

등에 매고 있는 바스타드 소드가 아니더라도, 그는 누가 봐도 내가 주인공이라고 외치고 싶은 듯 상당히 화려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거의 흰색에 가깝게 물을 뺀 백금발에, 렌즈를 껴서 파랗게 보이는 눈동자.

그걸 보니 백사현이라는 남자를 내가 왜 알게 되었는지 기억이 났다.

“아, 그 연예인 병……?”

“야, 야!”

우성연이 깜짝 놀라 내 팔을 잡았다.

“들릴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아, 그러게.

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하여튼, 요새 백사현이 유명한 이유는 그거였다.

연예인 병에 걸린 관심 종자.

최근 한국의 가장 핫한 화제는 랭킹 10위권의 헌터들이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백사현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꽤 핫하게 달구는 인물이었다.

화제성만으로 따지자면 이우연과 비슷했다.

나조차 이름을 알 정도니 알 만했다.

최근 인터넷을 달구는 그 글의 요지는, 요약하자면 백사현이 괘씸하단 거였다.

능력도 안 되면서 랭커인 척했는데 알고 보니 실상이 까발려졌다.

뭐, 그런 류의 글들을 본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그 내용에는 딱히 공감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는 30위권인 것 같던데, 그 정도면 훌륭한 편 아닌가. 대한민국에 인간이 몇 명인데.

그냥 폼 잡는 모양이 재수 없어서 깐다면 모를까, 영 공감 가지 않는 이유였다.

역시 내 정보를 까 봤자 내게도 그런 미래나 기다리고 있겠지.

솔직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인간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떠들든 관심은 없지만, 커뮤니티에 들어갈 때마다 내 이야기를 보게 된다면 사양하고 싶다.

안 그래도 ‘방랑하는 구도자’의 서치 방지용 이름이 ‘=3’인 점이 영 불만인데, 이것도 정부에 요청하면 바꿔 줄까?

“헉, 이제 다시 촬영 시작한다. 나 가 볼게!”

“어, 그래라.”

우성연은 그렇게 말해 놓고서 잠시 우물쭈물하며 스태프의 부름에도 걸음을 옮기지 않다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그, 혹시 번호는…… 안 줄 거지.”

“응, 잘 가.”

“……옙.”

우성연이 터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프라푸치노의 마지막 모금을 빨아들였다.

음, 역시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걸 어쩐다…….

“저기요.

대체 나는 어쩌다가, 그리고 어떻게 타르토스로 가게 된 걸까? 그 당시를 기록한 CCTV 따위가 있을 리도 없고…… 아니, 정부 측에 요청하면 찾아 주려나.

“저기요.”

뭐,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단 쓰레기통을 찾아서 빈 컵을 버리고, 새로운 프라푸치노나 한 잔 더 마셔야겠다. 이번에는 녹차 말고 초콜릿으로 사야지. 당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기요!”

그나저나 누가 이렇게 크게 고함을 치는 거야? 아무리 공공장소라고 해도 그렇지, 촬영도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나?

나는 대체 누가 저러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쩐지 가까운 위치까지 걸어온 백사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요, 그쪽이요.”

“……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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