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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60화 (61/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60화

이런 X발.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눈앞의 메시지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이제 하다 하다 퀘스트라고?

“이게 대체 무슨 지랄이야? 죽일 거면 그냥 죽여!”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떠오른 메시지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잠시 분에 못 이겨 차오른 숨을 골랐다.

진짜로, 시스템 뒤에 있는 무언가를 당장 끌어내서 죽어라 패지 않고서는 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이렇게 화를 내 보았자 이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빡쳤다.

“퀘스트라는 게 뭔데.”

- 퀘스트 내용은 현재 일어난 ‘고정형 던전 브레이크’ 의 완전 소멸입니다.

“……젠장.”

어차피 해야 하는 거잖아.

나는 혀를 찼다.

“왜 보상은 고지 안 하는 거지?”

- 보상 내용은 퀘스트 달성에 플레이어가 기여한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완전 제멋대로군.”

결국 업적치를 높게 가져오라는 이야기지.

이가 절로 갈렸지만, 나는 일단 머리를 흔들어 숱한 감상을 떨쳐 내 버렸다.

아무 단서도 없이 허탕만 쳤다고 생각했는데…… 원하지 않은 잭팟이 터져 버렸는걸. 아니, 잭팟이 아니라 폭탄인가?

어찌 됐든 나도 시스템과의 접촉을 바랐으니, 아무 수확도 없이 털레털레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인 걸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 말에 시스템이 응답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게 패턴화된 것 같다는 건데…….

그 순간,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이 세게 진동했다.

예상하지 못한 진동에 움찔하는 순간 공원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다.

“재난 문자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대!”

“아니, 포화도 관리도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이게 말이 돼?”

“지금 그게 문제야? 일단 호수 근처를 벗어나라잖아.”

핸드폰을 확인하니 정말로 재난 문자가 와 있었다. 정부 측에서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린 모양이었다.

“여기 근처 대피소는 경찰청 근처네! 빨리 가야겠어.”

“그래도 멀지 않아서 다행이지. 이게 뭐야!”

“아직 시간 있으니까 뛰지 마!”

다행히 사람들의 혼란은 예상보다 심하지 않았다.

고정형 던전 브레이크는 생각보다 소소한 규모로 자주 일어나는 편이니 사람들도 어느 정도 적응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부 대응도 체계화된 것 같고.

게다가 공원의 길이 넓고 사람이 적은 편이라 사람들이 대피하다가 다칠 일은 없다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었다.

나는 일단 안력을 돋워 호수 안의 인공 섬을 살펴보았다. 이미 그 근처에 모여 있던 헌터들은 급하게 회의라도 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 나도 일단 저쪽에 합류할까. 일단 헌터의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어, 그러고 보니.

나는 문득 아까 전 만났던 헌터 하나를 떠올렸다.

그래, 백사현이 여기에 있잖아. 클래스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꽤 순위권의 헌터이니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쪽은 아직도 메인 광장에 있나? 촬영 중이었으니 제작진까지 대피시킨 후에야 움직일지도 모르겠다.

내 예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다음이었다.

“걱정 마세요.”

공원 내에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명백하게 아이템을 써서 크게 만들어 낸 목소리에 사람들의 혼잡하던 발걸음 소리는 차차 멈춰 가고 있었다.

웅성거림이 들렸다.

……뭐지? 사람들을 주도해서 대피소로 피난 유도라도 하려는 건가?

나는 일단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님페의 바람을 이용해 근처 나무로 올라탔다. 그리고 커다란 가지 위에 자리를 잡고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 쪽을 내려다보았다.

햇살이 비치는 메인 광장에서는, 바스타드 소드를 등에서 뽑아낸 백사현이 보란 듯이 검을 뽑아 인공 섬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때맞추어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겨울의 오후, 햇빛에 유리 조각처럼 빛나는 물줄기를 배경으로 백사현은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이 백사현이 있으니까.”

그렇게 이어지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검자루를 꽉 쥐었다.

그건 누가 보아도 확연한 연출이었다.

이우연이 던전 브레이크로 혼란한 사람들 앞에 날개를 펼치며 내려 앉은 것처럼.

심지어 이건 카메라를 의식한다는 점에서 더 꼴보기가 싫었다.

저걸 확, 한 대 쥐어 팰까?

……아니, 일단 진정하자.

저걸 연예인 병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관종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백사현도 나름대로 순위권에 드는 헌터가 아니던가.

이우연도 처음에는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었던 것처럼 백사현도 그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저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사실 고블린 자체는 딱히 위협적이지 않다. 다만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게 문제인데, 광역 화력을 가진 마법사라면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즉, 백사현이 저렇게 말하는 건 본인이 마법사거나, 광역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닐까?

……그런데 아까 등 뒤에 바스타드 소드를 메고 있지 않았어?

아, 아냐. 마검사겠지. 이우연 같은 거겠지.

“………….”

나는 잠깐 침묵한 후에 소지창에서 아이템을 꺼내어 장착했다. 귓가의 파란 귀걸이에 손을 대자 금방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푸른 인연의 귀걸이를 사용하였습니다!

-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 중입니다…….

- 상대방의 의사가 확인되었습니다!

― 무슨 일이야?

다행히 이우연은 금방 연락을 받았다. 시간이 없으니 나는 다짜고짜 용건부터 물었다.

“야, 이우연. 혹시 백사현이라는 헌터 알아?”

저번 강남 돌발성 던브 때 이우연 본인은 한국의 상위 헌터들은 어지간히 안다는 식으로 말을 흘렸기에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 예상이 맞았다.

답 메시지는 금세 떠올랐다.

― 당신 입에서 왜 그 새끼 이름이 나오는 거지?

생각보다 공격적인 어조네. 앞뒤 따질 것 없이 그 새끼라고 하는 걸 보니까 알 만했다.

나는 혀를 찼다.

아무래도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상황이 급해서 그런데 묻는 말에만 대답해 줘. 백사현 헌터, 혹시 광역 스킬 있어? 마법사야?”

― ……당신이 필요한 광역 스킬이 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마법사냐고 묻는 걸 보니 광역 공역 가능 여부를 말하는 거겠지? 없어.

이우연이 눈치가 빠른 건 이럴 때 매우 쓸 만했다. 이 상황이 궁금할 텐데도 필요한 말만 해 주는 걸 보면.

“즉, 눈에 보이는 대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검사다, 이거지?”

― 그래, 아마 클래스도 검사일 거야.

“어째 말투에 확신이 없어 보이는걸.”

― 예리하네. 맞아. 본인은 검사라고 하고, 실제로 무기도 바스타드 소드를 쓰는데, 검술 실력이 딱히 훌륭한 편은 아니거든.

“뭐?”

이건 뜻밖이었다. 검사 클래스인데 검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랭킹 순위는 높은 편 아니야? 업적치는 그럼 어떻게 쌓은 건데?”

― 그 녀석 랭킹이 높은 건…… 몇몇 던전에서 백사현 포지션이 매우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야.

“포지션?”

― 그놈의 스킬, 광역 도발이거든.

허어?

그리고 이우연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시야 한구석에 치워 놓았던 게이지 바가 드디어 끝까지 차올랐다.

- 경고! 포화도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합니다.

인공 섬 위에 떠올라 있던 마름모꼴의 문양 사이로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키에엑!

녹색 피부를 한 괴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던전과 현실의 틈새 사이로 벌컥벌컥 튀어나오고 있었다.

보통 사람의 무릎까지 올 크기일까, 흉측한 모습을 한 요정들이 헌터들을 향해 이빨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당장 호수를 뛰어넘으려고 할 때.

“섬 바깥으로 못 나가게 결계부터 쳐!”

섬 주위로 희뿌연 마력의 결계가 생성되었다.

당황한 나는 발을 멈췄다.

“저 녀석들, 수영도 잘하니까 흘리면 안 돼!”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한 마리씩 잡는다!”

인공 섬에 있던 헌터들이 침착하게 고블린들을 막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오.”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올 만큼 빠른 대처였다. 다들 갑작스럽게 포화도가 올라가서 당황했을 텐데.

마법사들은 섬 주위에 결계를 형성해 고블린들이 호수에 뛰어드는 것을 막아 냈고, 검사들은 침착하게 몬스터를 한 마리씩 처리해 나갔다.

강남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와 비교하면 비교할 수도 없이 침착한 대응이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나는 섬 안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도 더 많이 튀어나오는데.’

고블린들이 던전 밖으로 튀어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꾸역꾸역 몰려나오는 꼴이, 곧 스무 명 정도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아질 것이 뻔해 보였다.

그럼 결국 아무리 대처를 잘해 봤자 시간을 버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이거지.

나는 빠르게 해당 던전 입장 가능 여부를 체크하기로 했다.

- 해당 던전의 공략 상황을 조회하시겠습니까?

- 해당 던전은 현재 공략이 진행 중입니다. 던전 공략을 위해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됩니다.

- 입장 가능 인원 (6/6)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입장 가능 인원이 생성된 동시에 이번에는 인원이 모두 찬 상태였다.

사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는 던전 브레이크 자체를 없애 버려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해서 포화도를 낮추지 않는 이상 던전 브레이크는 멈추지 않으니까.

포화도가 한 번 극에 달한 이상, 한 번의 클리어로는 포화도가 내려가지 않는다. 적어도 수십 번의 시도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래서야 내가 직접 던전 안에 입장해서 빠른 클리어를 반복해 포화도를 낮추는 방법은 쓸 수 없다.

“상황이 이러면…… 큰일이군.”

이렇게 되면 남은 방법이…… 나는 나무 위에서 메인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와, 대단하다!”

“믿습니다, 백사현 헌터!”

환호성을 받으며 백사현은 묵묵히 서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는 것이다.

다만 그 모습을, 카메라가 여전히 찍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프로그램 엠씨가 흥분한 기색으로 카메라에 대고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

어딜 보나 카메라를 의식한 모습이었다.

호수만 하나 건너도 헌터들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저러고 있다니. 물론 아직은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위험한 상황임에는 분명했다.

―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내가 갈까?

그때 상황에 골몰하느라 깜박 잊고 있었던 이우연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그제야 내가 아직도 이우연과 연락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참. 너랑 연락 중이었지.”

― 너무하네! 나 정말 화낸다?

차라리 이우연을 부를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금방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이쪽에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는 것은 정부도 알고 있다. 최민혁이 알아서 이선이든, 김숙자에게든 연락을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퀘스트 수행 중이었다.

이우연 놈이 오면 최대 업적자는 고사하고 내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끝나 버릴 거다.

“굳이 올 필요는 없어. 나 혼자서도 감당 가능한 상황이니까.”

― 정말이야? 거짓말 같은데.

“그렇다고 쓸데없이 잡담할 시간이 있는 건 아니고. 정보는 고맙다.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 아니, 잠깐만……!

이우연이 무어라 더 대답하려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일단 아이템을 해지해 소지창에 넣었다.

“자, 그럼 일단.”

저 백사현이라는 놈을 이 상황에서 빼 버려야겠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만 저쪽에서 카메라가 아직 돌아가고 있고 사람들 눈도 많이 있으니 이대로 나설 수는 없다.

일단 얼굴을 가리기라도 해야…….

“아니, 근데요! 저쪽부터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메인 광장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백사현을 향해 외친 것이다.

나도 메인 광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송 같은 거 찍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던브가 터졌다는데…….”

또박또박 말하는 폼이 제법 용감하고 똑똑하다, 싶었는데.

나는 떨떠름하게 발화자를 바라보았다. 이건 꽤 놀라웠다.

‘저번에 배운 게 있긴 했나 보네.’

그렇게 말한 것이 우성연이었기 때문이다.

백사현은 검을 잡고 카메라 앞에서 온갖 폼을 잡고 있다가, 우성연의 말을 듣고 픽 웃었다. 우성연의 말이 가소로운 듯 했다.

“물론 그렇게 할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안전하게 대피할 때까지 뒤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니까.”

“오, 오오!”

“멋지다!”

“힘내세요!”

뻔하디뻔한 말이었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던 말이기도 했다. 좋은 장면이기도 하고.

물론, 실제로는 카메라 앞에서 좋은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사람들의 대피 시간을 지체시켰다는 건 제외했을 때 말이다.

“그럼, 다들 안전히 돌아가십시오.”

짧고 굵직한 말을 던진 백사현이 검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씩 웃었다.

백사현의 모습을 찍던 제작진도 대충 각을 잡았는지 빠르게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대피 문자도 떨어진 차에 늦은 감은 있었지만, 아직 섬에 둘러진 결계는 깨지지 않았다. 이 아슬아슬한 대피 타이밍까지 계산한 거라면 꽤 난놈일 텐데.

“자, 그럼 제작진 안내를 따라 주세요!”

“일급은 미리 받았던 계좌에 입금될 테니까 걱정 마시고요~.”

제작진의 유도에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씩 백사현을 향해 응원을 건네며 멀어져 갔다. 나름대로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는 것까지 알차게 카메라에 담겼다.

저렇게 ‘구국의 영웅’ 이미지가 만들어진 거로군.

“수, 수고하세요!”

용감하게 한마디 던졌던 우성연이 퍼렇게 질린 얼굴로 백사현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다들 광장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꽤 진중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백사현은, 그제야 어깨에 잔뜩 들어 있던 힘을 풀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 있던 매니저인 듯한 남자가 백사현에게 차가운 음료수를 건넸다.

“사현아! 이것부터 좀 마셔. 오늘 진짜 멋있었어. 완전 최고다!”

“입에 발린 말은 됐어. 차는 어딨는데? 빨리 가자. 피곤해.”

“어? 지금 이렇게 간다고?”

“내가 여기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남아 있어?”

백사현은 바스타드 소드조차 소지창에 넣어 버리고 편해진 양팔로 기지개를 쭉 폈다. 의욕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그 모습에 매니저가 얼이 빠진 듯 섬 쪽을 가리켰다.

“그, 그런데 이렇게 갈 거야? 아까는 공략 돕는다면서.”

“아, 방송 한두 번 해? 그냥 장면만 뽑은 거야! 내가 미쳤다고 무급 노동을 하게 생겼어?”

“어, 어어……그래도.”

매니저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던전 브레이크 상황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일반인의 시력으로도 섬의 상황이 보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반투명한 결계 너머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으니.

매니저가 음료수를 들이켜는 백사현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여기 남을 줄 알고…….”

그 말에 백사현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나한테 맡겨 놓기라도 했어? 왜 나한테 자꾸 강요를 해?”

“그, 강요가 아니라……미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기분 나쁘니까 조심 좀 해. 카메라도 없는 데서 구국의 영웅 노릇할 생각은 없으니까.

……설마 저대로 가려는 건가?

그럼 곤란하지.

나는 소지창에서 활을 꺼내어 장착하고서 백사현의 발치 주위를 겨냥해서 쏘았다.

화살을 대체한 마력이 바람을 가르며 시멘트로 된 바닥을 산산조각 냈다. 미처 대응하지 못한 백사현이 깜짝 놀라 검을 소환했지만 늦었다.

특이한 것은, 아까 전까지 들고 있던 바스타드 소드가 아닌 단검을 소환했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그렇지 않아도 백사현의 태도에 긴장하고 있던 매니저가 뜻밖의 습격에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다.

“으아악!”

“젠장, 뭐야! 습격인가?”

단검을 든 백사현이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마력이 날아온 방향조차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역시, 저거 이상하지.

이우연은 검술이 뛰어나지 않다고는 했지만, 그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몸을 쓰는 헌터는 주위의 기척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흠, 설마.

약간의 호기심과 필요에 의거해 나는 화살 없는 활을 들어 백사현을 겨냥했다.

안력이 돋우어진 눈에 비추어지는 얼굴이 쓸데없이 희었다.

일단 한 번 더 시험해볼 필요성은 충분했다.

- 무명의 활이 당신의 의지를 대행합니다.

- 당신의 마력이 화살을 대체합니다.

피슝!

마력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활시위를 떠났다.

이번에도 바닥의 파편이 튀며 백사현의 볼을 가볍게 스쳤고, 매니저가 기겁했다. 두 방이나 바닥에 직격한 화살 덕에 광장 바닥은 처참한 꼴이 되어 있었다.

“으, 으아아아! 사람 살려!”

“아, 형! 돌았어? 어디 가? 야!”

백사현이 뒤에서 외쳤지만 매니저는 계속되는 공격을 견딜 수 없었는지 백사현은 안중에도 없이 부리나케 도망쳤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그리고 드디어, 백사현이 볼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두 번째에는 알아차렸다.

이쪽을 응시한 백사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친 순간, 나는 나무 위에서 메인 광장으로 뛰어내렸다.

백사현이 물었다.

“당신,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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