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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71화 (72/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71화

놀랍게도 병문안을 와 준 것은 이선 헌터였다.

이선은 병실에 들어와 쾌활하게 인사했지만 내 손에 칭칭 감긴 붕대와 깁스를 보고 곧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전해 듣기로는 아주 심각한 상처는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 보기에는 완전히 중환자인데요?”

“그 정도 상처는 아니에요.”

나는 곧바로 부정했다.

실제로도 상처 자체는 별것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 의사를 만났을 때 왜 이렇게 과한 처치를 했는지를 먼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물었을 때 나를 바라보는 의사 선생님의 눈길이 얼마나 살벌하던지.

아무리 고쳐 놔도 소용이 없네, 하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고막에 서늘하게 박혔더랬다.

원한마저 느껴졌다.

말을 듣지 않는 환자는 깁스와 붕대로 침대에 묶어 버리겠다는 의도가 아주 잘 전해졌다.

나는 약간 어깨를 떨며 이선 헌터에게 이어 설명했다.

“헌터들이 그렇게 링거 맞다가 긴급 콜 들어오면 뛰쳐나간다고, 저는 그러지 말라고 묶어 놓으신 거래요.”

내 설명을 들은 이선 헌터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헌터 전용 병원에 계시는 의사 선생님들은 그러실 만해요. 저도 올 때마다 얼마나 혼났는지.”

“……던브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링거 뽑고 뛰쳐나가기라도 했어요?”

“와, 그런 짓 하면 절대 안 된답니다. 드라마가 사람들 다 망쳐 놨다니까요? 아픈 건 둘째치고 이 주위에 피가 얼마나 튀는지 알아요? 그거 다 청소하려면 얼마나 일인데요!”

“그런데 그걸 왜 알고 계시죠?”

“어, 물론 불가피한 상황이었달까…….”

역시 다른 놈들도 비슷한 짓을 해서 그런 거였다. 나는 던전이 생겨 버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업인에게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사죄하기로 했다.

이선 헌터가 당시를 떠올렸는지 턱을 긁으며 하하하, 웃었다.

“그래도 요새는 안 그래요. 다 옛날 일이죠.”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던전이 생긴 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저 옛날이란 게 얼마 전의 일인지는 모를 일이다.

하여간, 남이 고쳐 놓은 몸을 함부로 쓰기도 그러니 나도 오늘 하루는 권유받은 대로 얌전히 병원에 있을 예정이다.

게다가 포션으로 상처를 대충 메워 놓은 것과, 몸에 직접적으로 포도당을 꽂아 넣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느껴지는 회복 속도가 완전히 다르다.

나로서는 현대 의학 쪽이 더 마법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와, 맛있다.”

그나저나 이선이 선물로 들고 온 딸기 크림 롤케이크가 아주 맛있었다. 딸기 라떼는 덤이었다. 일반식을 금지당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쵸, 맛있죠? 여기 제가 좋아하는 케이크 집이거든요.”

불편한 손 때문에 내게 케이크를 떠먹여 준 이선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참고로 본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우연이가 예나 씨는 단 걸 좋아한다고 하길래 요새 제일 인기 있는 메뉴로 사 왔죠.”

그런 이야기는 또 언제 했는지 모를 일이다. 입안에서 씹히는 딸기의 과육이 상큼했다. 나는 딸기 라떼를 쭉 빨아들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제가 정부에 원한 조건은 정보 통제였던 것 같습니다만.”

내 말에 이선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어떻게 이선 헌터가 정보를 알게 되었는지는 뻔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헌터 전용 병원의 VIP실이고, 이 병실에 입원한 것 자체가 정부의 입김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 소속 헌터인 이선에게 정보가 흘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다만 내가 정부에 내건 조건은 내 정보를 최대한 통제해 달라는 것. 정체는 물론이고 내 움직임이 여기저기로 퍼지는 것은 아직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야 완벽한 통제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선 헌터가 반가운 것과는 별개로 한 번은 형식적으로나마 걸고넘어져야 할 일이었다.

“음, 불쾌했다면 사과할게요. 이번 정보는 최민혁 씨를 통해서 저에게 왔고, 저 외의 다른 헌터는 모르는 일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이선이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건은 생명의 은인인 예나 씨를 다시 보기 위해 약간의 수를 썼다고나 할까? 저번엔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해서 못 온 게 마음에 걸렸었거든요.”

깔끔한 사과에 적절히 감정을 건드리는 말.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따질 마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싱그러운 웃음이 이선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전화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런 건 얼굴 직접 보고 하는 게 좋으니까요. 저번에는 고마웠어요.”

“……별말씀을.”

맥이 빠지네, 이거.

나에게 저번 던전 공략은 분명한 나만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행한 일이었고, 보상도 충분히 얻었다.

또 사실 이선 또한 도중에 던전 공략을 포기할 수 있었음에도 제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 가며 대규모 마법을 펼쳐 주었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이선도 그 던전 내에서 죽었을 것이다.

사실상 이선 헌터는 내게 빚진 것 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것에 가까우니, 내가 감사를 받을 이유도 없다.

이선이 포크로 딸기 케이크를 푹 떠서 한 번 더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또 예나 씨도 정부 측에 이야기할 일이 있을 때 제대로 된 직통 창구가 하나쯤 있는 게 더 낫잖아요?”

“그 역할은 최민혁 씨가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분은 예나 씨가 활동할 때 필요한 절차를 도와줄 일반 공무원이고요, 헌터로서 건의 사항이 있을 때는 제가 맡는 게 낫죠. 처리도 더 빠를 테고.”

이선이 말하다 말고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며칠 전 일산 던브 사건도 그렇고요. 우연히 예나 씨 덕에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아무리 하급 던전이라도 대규모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잖아요. 당연히 그쪽으로 최우선 배치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당시 다른 곳에서도 무슨 일이 있어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아, 여의도에서 길드끼리 가벼운 충돌이 일어났던 건 사실이지만 우선순위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쪽은 장소가 장소라 예민한 인간들이 좀 있거든요. 뭐, 이리저리 복잡해서…… 최민혁 씨 위치에서는 당장 일산으로 달려가라고 말해 봤자 씨도 안 먹혔던 거죠.”

음, 나는 딸기 라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이렇게 전말을 들으니 대충 상상이 가긴 했다.

즉, 높으신 분들이 위험할지도 모르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경비 인력으로 헌터들이 차출되었다. 그래서 일개 공무원이 그런 행사를 갑자기 깨고 소집령을 내리기가 어려웠다는 거로군.

재수 없다.

“진짜 재수 없지 않아요?”

이선도 나와 비슷한 감상이었던 모양이다. 빈 일회용 컵이 이선의 손안에서 찌그러졌다.

“그러네요.”

나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타르토스에 있을 때부터 나는 소위 높으신 분들과는 딱히 맞지 않는 인간이었다.

“하여간, 앞으로 긴급 지원이 필요할 때는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혹시 제가 공략 중이라 연락이 안 되면 김숙자 교수님께 연락해도 되고.”

그렇게 말하고 아차, 한 이선이 한마디 덧붙였다.

“참고로 숙자 교수님한테 예나 씨가 ‘그거’라는 걸 말한 건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알아채신 거지.”

“아, 예…….”

‘그거’라 함은 내가 랭킹 1위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잠시 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김숙자 교수의 깐깐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람, 랭킹 3위였지.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 만에 잘도 이렇게까지 굵직한 인물들에게 들킬 수 있다니,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뭐, 필요한 게 생기면 요청할 사람들이 많아져서 좋네요.”

이미 들켜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모르긴 몰라도 현재 내 정체를 아는 랭커들 중에 내 뒤통수를 치면서까지 1위를 노릴 만한 인물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역시 그렇죠? 인맥은 많아서 나쁠 게 없다니까요. 헤헤헤.”

이선은 내 복잡한 심경과는 별개로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선 헌터는 설마 피 튀기는 랭킹전 따위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선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그냥 마법사는 대체로 이상하다는 편견이 한 번 더 증명됐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두고 보니 성격 자체가 긍정적이고 밝은 것 같았다.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한 용병이 얼마나 빠르게 인간성을 잃어 가는지 보아 왔던 나는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고 있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긍정적인 사고를 유지하는 것은 기이할 정도의 일이다.

그렇다고 뭘 몰라서 순진한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여간 심지가 굳은 게 아니라면, 밤마다 사라졌다가 쓰러진 채 발견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홀로 며칠을 버틸 수는 없을 테니까.

원래 한의사가 꿈이었다고 했던가?

그러나 지금 이선은 한의사가 아니라 헌터로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했고,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것만 봐도 호감이 가는 것은 분명했다.

“아, 그런데 이야기가 어쩌다 이렇게 왔지? 하여튼 최민혁 씨가 얼마나 난리던지. 엄청 걱정했어요.”

“최민혁 씨가요?”

저번에 나를 데려다줬을 때부터 태도가 눈에 띄게 쌀쌀맞았던 것 같은데…….

오늘 아침에 절차나 비용 처리는 알아서 밟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회복에 집중하라는 문자가 오긴 했었지만 내 상태를 물어보진 않았기에 떨떠름했다.

“제 담당이라 그런 건가? 궁금하면 그냥 저한테 직접 물어보면 될 것을.”

“그게, 약간 기에 눌린 것 같던데요?”

“예?”

“저도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는데.”

이선이 인상을 약간 찌푸리며 턱에 손을 괴고 내 얼굴을 빤히 관찰했다.

“확실히 그러네. 저번에 만났을 때와 느낌이 좀 달라요.”

“무슨 느낌이요?”

“저는 괜찮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딱 봤을 때 흠칫할 정도랄까? 지나가던 사람이 봐도 역전의 용사 같아요, 예나 씨.”

순간적으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선은 아마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었는지 모를 것이다.

그나저나 저건…… 힘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나는 경우 자연스럽게 위축되는 현상을 말하는 거지?

흠,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저번에도 최민혁이 왜 두 번째 만남부터 쌀쌀맞아졌는지 약간 마음에 걸리긴 했었다. 다만 해당 던전이 마계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 넘어갔을 뿐.

그도 그럴게, 최민혁이 일반인이라 능력치 차이를 느끼고 나에게 위축될 거라면 초면부터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는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가 센 성격이구나, 했던 것이다.

물론 별일도 아니니 대충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짚이는 것이 좀 있다. 공교롭게도 최민혁과 두 번 만나는 사이에 변한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시스템 안정화 때문일 수도 있겠군.’

나의 존재와 한국의 시스템 간의 마찰이 안정화되었다는 메시지가 떴었다.

소속이 완전히 변경되었다는 메시지도.

즉 엄밀히 말해, 나는 시스템 안정화 전까지는 한국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한국에 속한 사람들이 내 존재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것이 시스템 안정화를 계기로 바뀌었다, 이거지.

……그래 봤자 중요한 일이 아니기는 했다. 그냥, 시스템 새끼가 제대로 일이란 걸 하기는 했다는 증거가 늘어났다는 것 정도다.

나는 그냥 화제를 돌려 버리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마침 이선 헌터도 요청할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하셔서 말인데요.”

실제로도 최민혁에게 요청하려고 했던 사항인데, 이선 헌터가 직접 오니 오히려 잘되었다.

이선이 고개를 기울였다.

“음?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문제가 있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가.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적당한 단어를 찾는 것에 실패했다.

“양태원 헌터를 좀 만나 보고 싶은데요. 소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원래부터 말재주가 있는 편은 아니다.

내 말을 들은 이선의 눈이 동그래졌다.

“태원이를요? 갑자기요?”

“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적어도 한 달 내에 소개받고 싶은데 양태원 헌터 쪽 스케줄이 어떤지 모르겠네요.”

“어, 소개…… 그야 소개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닌데요. 저기, 우연이는 혹시 알고 있나요……?”

이선이 말을 더듬었다.

여기서 이우연이 왜 나와?

“네? 모르는데요. 걔가 알아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어, 없긴 하죠. 알면 안 되지…… 음.”

무언가를 고민하던 이선 헌터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선의 눈동자에 결연한 빛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예나 씨.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타인을 끌어들이지 말고 일단 서로 대화로 푼 다음에…….”

“잠시만요.”

나는 그제야 이선이 대체 무슨 오해를 했는지 이해했다.

턱이 빠질 뻔했다. 턱에도 깁스를 해 달라고 할 걸. 깊은 한숨을 쉰 후 이선의 오해를 정정했다.

“……그런 게 아니고요. 양태원 헌터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요.”

아하, 이선이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긁었다.

민망한 건 이쪽입니다.

“아이고, 하긴. 그럴 리가 없죠. 저는 또 예나 씨가 태원이랑 우연이 싸움이라도 붙이려는 줄 알고…….”

“그건 좀 구경해 보고 싶긴 하네요. 저는 양태원 씨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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