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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72화 (7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72화

그로부터 이틀 후.

양태원 헌터 쪽에서 약속 장소를 지정했다. 약속 장소는 종로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프랜차이즈 카페.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지난 느지막한 오후라서인지 카페는 한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단 한 번 가게 안을 둘러본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어느 쪽 자리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 꽉 차 있더라도 누가 양태원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카페 안에는 확연하게 눈에 띄는 녀석이 하나 있었으니까.

“…….”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일단, 침착하자.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일단 카운터로 향했다. 주문한 메뉴가 다섯 개가 넘어갈 즈음 카운터의 알바생이 포장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각종 메뉴가 쌓인 쟁반은 꽤 무거웠다. 쟁반을 가지고 테이블로 향하는데 등 뒤를 찔러 오는 시선이 따가웠다.

내가 주문할 때부터 메뉴가 너무 많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카페 알바생들은, 내 목적지가 하필 ‘저’ 테이블인 것을 알게 되자 이 상황이 더더욱 흥미진진해진 모양이었다.

좋아진 청력 때문에 그들이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둘이 아는 사인가?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먹방하는 사람들 아냐? 동영상 찍는 사람들.”

“먹방할 복장은 아닌 것 같은데……?”

저건…… 무시하자.

나는 테이블로 다가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 안녕.”

테이블에 쟁반을 올려놓으며 인사하자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남자가 비딱한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화면 속에서는 귀여운 캐릭터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저거, 현실에서 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나?

이쪽을 올려다보던 청년의 눈동자가 내 얼굴과 내가 가지고 있던 쟁반 위를 몇 번 반복해 오갔다.

뭐라고 하려나, 괜히 긴장한 순간.

청년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기운이.”

“음?”

“기운이 아주 맑으시네요.”

……사이비냐? 그래도 그 뜬금없는 말 덕에 긴장이 탁 풀렸다.

나는 의자에 앉으며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그거 칭찬이야?”

“당연히 칭찬이죠. 강예나 헌터, 맞으세요?”

“그래.”

건너편에 멀뚱히 앉아 있는 청소년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러모로 심란해졌다.

‘이 녀석이 양태원이라는 말이지.’

열 손가락에 모두 낀 해골 문양 반지, 현란한 프린팅의 티셔츠, 찢겨진 청바지와 무거운 부츠, 귀와 입술에 뚫은 피어싱까지.

현란한 형광빛 분홍 머리카락은 덤이었다.

백사현도 그런 면이 있긴 했지만 그쪽은 그래도 사회와 카메라 마사지를 받아 세련된 맛이 있었다면, 이쪽은 전체적으로 흑염룡을 품고 있을 것 같은 날것의 불량한 청소년이다.

어쨌거나 평일 직장인들을 상대하는 알바생들이 보기에는 좀 과격한 복장인 건 틀림없었다.

‘……그래, 스무 살 같긴 하다.’

스무 살이 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무 살 즈음에는 다들 패션으로 흑역사를 쌓는 법이지.

물론 나는 대한민국에서 흑역사를 쌓을 기회가 없었지만, 대학교 들어간 사촌 오빠가 해가 바뀌자마자 심란한 패션을 선보였던 기억이 아직 강렬히 남아 있다.

그나저나 이런 꼬맹이가 그런 마계에 들어갔다, 이건가.

실물을 보니 심정이 더 복잡해졌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미성년자의 공식적인 헌터 활동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양태원의 경우 그가 없으면 공략이 불가능한 던전이 있었기에 이제까지 S급 헌터 하나, 혹은 A급 헌터가 셋 이상 붙는 조건하에 공략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던전이 바로 마계와 연결된 던전이었고.

“그런데 이건 누구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산 거예요?”

불량 청소년, 양태원 헌터가 쟁반 위의 케이크와 빵 더미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많아? 그냥 있는 대로 집어 왔는데…….”

“이게 다 얼마치래. 뭐, 저 주신다고 사신 거죠? 초면에 얻어먹으려니 죄송한데 잘 먹을게요, 누나.”

누, 누나.

그렇게 부를 줄은 몰랐기에 깜짝 놀랐다. 겉모습과 다르게 의외로 붙임성이 좋았다.

나는 덥석 포크를 들어 티라미스를 한 조각 베어 가는 청소년을 빤히 주시했다.

커피 가루를 몽땅 떨어트리며 케이크를 주워 먹는 양태원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후 히죽 웃었다. 웃음 때문인지,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있었을 때는 모를 만한 덧니가 드러나서인지 인상이 확 누그러졌다.

“아, 저보다 누나라는 건 이선 누나가 알려 줘서 알았어요. 기분 나쁘진 않으셨죠?”

“음? 상관없어. 마음대로 불러.”

“그럼 누나도 그냥 편하게 태원이라고 부르세요. 저는 그쪽이 편하거든요. 대신 저도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이미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여전히 약간 떨떠름하기는 했지만 나야 나쁠 것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양태원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어, 이거 맛있네요. 누나도 좀 드세요.”

그나저나…… 정말 잘 먹는군.

양태원의 먹성은 거침이 없었다. 카페에 있는 모든 종류의 빵을 쓸어 왔는데 부족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햄 치즈 프렌치토스트를 두 입에 해치우는 건 거의 묘기였다.

“그런데 누나가 시킨 음료는 뭐예요?”

“무슨 초콜릿이라던데.”

초콜릿이 들어간 프라푸치노 메뉴라면 불패라고 생각해 시킨 것이었는데 생각대로 맛있었다.

양태원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것도 맛있겠다.”

“……하나 시켜 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것을 양태원이 서둘러 손을 내밀고 제지했다.

“아뇨, 괜찮아요. 다음에 먹어 보겠다는 말이었어요. 저는 사실 단 음료는 별로라서.”

“단 게 별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사람이 있어?”

“네, 여기에 있네요. 그나저나 진짜 누나도 좀 먹어요. 저 혼자 먹기 좀 민망한데.”

“난 됐어. 밥 먹고 왔거든.”

어차피 이 녀석을 먹이려고 산 것인 만큼 내가 손을 대기도 그랬다.

나는 턱을 괸 채 양태원이 먹는 모습을 구경하며 물었다.

“오늘 약속 말이야, 이선 헌터가 뭐라고 했어?”

“어떤 헌터를 소개시켜 줄 건데 무서운 사람이니까 말 잘 들으라고요.”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

“요약하자면 그랬어요. 최근 정부 소속으로 들어온 헌터고, A급이지만 사실상 실력은 S급이나 다름없다면서요. 그럼 무서운 거죠.”

그렇게 소개했군.

이선에게 대강 알아서 내 신분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저런 식의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딱히 걸리는 점은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다른 건?”

“못 들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들으라고 하시던데.”

“……그래, 네 도움을 청할 일이 좀 있어서 만나자고 했다.”

양태원을 소개해 준 이선에게도 대강 핑계를 댔을 뿐, 정확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번 건은 정부 소속 헌터에게 상세한 내용을 설명하기엔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선도 상세한 내용을 묻지 않았다. 그게 내 사정이 곤란하다는 걸 알아채서인지, 아니면 양태원이라는 인간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양태원을 향해 몸을 약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네가 쓴 수리산 던전의 공략 보고서를 봤어. 거의 다 네가 공략을 주도했던데.”

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필로 쓴 몇십 회 분량의 보고서가 생각났다. 핸드폰은 곧잘 하면서 왜 보고서는 자필로 쓴 건지 궁금한데 그걸 물어봤다간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샐 것 같으니 넘어가자.

양태원은 빵을 먹으면서도 성실히 대답했다.

“그야 특수성이 있어서 저 외의 헌터는 공략하기 힘드니까요. 일반적으로는 마기에 침식당해서 3시간 내에 질식사해요.”

“너는?”

“저는 최대 5일. 참고로 수호 부적으로 타인을 보호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3일까지고. 그래도 인원은 최소한이 좋아요. 클리어 조건 채우기에는 적당하죠.”

그렇게 말하는 동안 샌드위치와 빵 대여섯 개를 순식간에 해치운 양태원이 손을 짝짝 털었다. 먹은 자리는 놀라울 만큼 깨끗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더 안 먹어도 돼?”

내가 그렇게 묻자 양태원이 잠시 생각하듯 허공으로 눈을 돌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예요. 적어도 누나가 원하는 말을 듣는 정도로는요.”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알고?”

“에이, 알면서 그러신다.”

양태원이 다시 한번 히죽 웃었다.

“제 몸에 감겨 있는 이거, 보이는 거 아니에요?”

나는 입을 닫았다.

양태원의 히죽 웃는 얼굴 너머로, 카운터에 서 있는 직원들이 아직도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양태원의 차림새를 기묘하게 생각하는 반면, ‘저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척이나 기묘하게 느껴졌다.

양태원은 빙글빙글 웃으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의 찜찜함과 기묘함은 있었으나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결국 나는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 보여.”

사실 카페에 들어왔을 때부터 보였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카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용이었다.

푸른색을 띤 비늘로 이루어진 뱀과 같은 몸체. 하지만 그 거체에 두른 신비함과 웅장함은 뱀보다는 용에 더 가깝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 거체를 통과하는 것을 보아 실체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압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거대한 용은 양태원의 몸을 휘감은 채 지금,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꿰뚫어 볼 것 같은 시선 때문에 아까 전부터 피부가 간질간질하는 중이다.

내 대답을 듣고 양태원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휘파람을 불었다.

“오, 대단하다.”

“……보인다는 거 알고 물은 것 아니었어?”

“아뇨, 딱히. 그냥 물어본 건데. 반신반의했어요.”

양태원이 남은 음료를 쭉 빨아 마시며 태평하게 대꾸했다. 이거 말렸군.

“각성한 사람들이라고 다 보는 것도 아니거든요. 기감이 민감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것도 기운에 따라 갈려요.”

“그 기준이 대체 뭔데?”

“글쎄, 원래도 귀문이 열려 있던 사람? 저도 잘 모르겠네요. 헌터들 사이에서도 못 보는 사람이 태반이라서. 이게 보이면 저한테 함부로 대하는 놈들이 좀 줄어들 텐데.”

예를 들어 이우연이라던가, 하고 양태원이 중얼거리며 콧바람을 흥, 하고 날렸다.

이우연 그놈은 안 끼는 곳이 없군. 대체 왜 그렇게 사방에 시비를 걸고 다니는 거야?

그나저나, 나는 허공을 흘끗 바라보았다.

저렇게 비현실적인 존재가 양태원의 몸을 두르고 있는데도 시스템 메시지는 조용했다.

그러니까 저것, 청룡 또한 시스템상 몬스터는 아니라는 것.

이거 재밌네.

그렇다면 저 청룡은 즉, 시스템이 인정하는 힘으로는 없애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명보다는 개념에 가까운 존재.

어떤 의미에서는 악마인 벨리알과 가깝다.

청룡의 눈동자가 아주 천천히 깜박여졌다. 벨리알의 그것과 비슷해 보이는 파충류의 눈동자.

하지만 그 앞에 섰을 때의 감각은 완전히 달랐다.

벨리알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던 투지가 이번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언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배부른 짐승 앞에 맨몸으로 던져진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청룡의 시선이 나에게서 양태원으로 옮겨 갔다.

둘은 눈을 잠시 마주치는가 싶더니 양태원이 곧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가능하다고 하시는데요.”

“뭐, 뭐가?”

허를 찔린 바람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러게요. 뭐가 가능하다는 건지는 저야 모르죠. 제 신께서는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라. 그런데 그게 누나가 원하던 질문의 답이래요.”

나는 양태원의 몸을 두르고 있는 청룡을 바라보았다. 청룡은 언제 나를 뚫어져라 주시했냐는 듯 어느샌가 눈을 감고 있었다.

“와, 기운 빠져. 배고파.”

그리고 양태원이 갑자기 테이블 위에 머리를 대고 뻗어 버렸다.

“괜찮아?”

“아뇨,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여.”

양태원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는 재빠르게 카운터에 가서 당장 집어 올 수 있는 머핀 종류를 몇 개 주문해 가져왔다. 쟁반째로 가져다주니 양태원이 힘없이 머핀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제 턱이 아픈데.”

맛있는 걸 먹고 있는데도 우울한 목소리였다. 하기야 거의 의무적으로 먹는 것이니 그럴 법도 했다.

아니, 무려 신의 답을 듣는데 겨우 이 정도의 대가를 필요로 한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건가.

타르토스에 있을 때도 성직자가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을 보아 왔지만,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대답을 받는 것은 보지 못했다.

물론 타르토스의 성직자가 모시는 것은 시스템이므로 저것과 같은 신이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초월적인 존재가 존재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머핀 몇 개를 억지로 씹어 삼킨 양태원이 겨우 다시 기운을 차렸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먼저 용사님이 가져와야 하는 물건이 있다고 하시는데요. 누나 클래스가 혹시 용사예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우와.

“진짜 용하네.”

내 말에 양태원이 씩 웃었다.

“제가 특별히 용한 무당이기는 하죠.”

그렇다.

양태원의 클래스는 바로 무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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