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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75화 (76/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75화

“잘못했어여.”

양태원이 결국 얻어맞은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울상을 지었다.

물론 양태원의 본가가 제주도라는 것은 비행기 안에서 이미 들었고, 실제로 묵으러 오라고 한 것도 순수한 호의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또 집채만 한 크기의 반투명한 용을 둘둘 감고 있는 불량 청소년은 초현실적인 느낌이어서 그런지, 날것의 불쾌함을 맛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하는 설교는 이미 대략 몇십 분을 들여 양태원의 뇌리에 때려 박았다.

물론 나이가 나이다 보니 그 설교가 얼마나 먹혔을지는 모르겠다.

……이거 진짜 꼰대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 없군.

그렇지만 체감상 양태원은 나보다 열 살쯤 어린 어린애란 말이다.

아무래도 저런 행동을 하면 반사적으로 혼내게 되는 것이…… 이거 진짜 꼰대 같네.

됐다. 그냥 꼰대하고 말지 뭐.

“일단 너는 집에 가. 나는 근처 호텔로 갈게. 내일 아침에 합류하면 되잖아. 집까지는 얼마나 걸려? 택시 불러 줄까?”

“그런데 진짜 우리 집으로 안 오실 거예요?”

가벼운 농담조의 말이 남에게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수십여 분에 걸쳐서 설명한 보람이 있는 건지, 이번에는 약간 진지한 말투였다.

“방은 많아서 따로 잘 만한 공간도 있어요. 내일 아침에 같이 한라산으로 출발하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아서 그래요. 또 한라산 던전 공략 데이터도 집에 쌓아 둬서 누나도 미리 읽어 보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아주 청산유수였다. 진작 이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내 대답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진지하게 거절했다.

“그래도 그건 좀 그렇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너무 민폐 끼치는 것 같아서.”

“제가 괜찮다는데 무슨 민폐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양태원이 몸에 감겨 있는 청룡의 형상을 두 팔로 껴안았다.

그 모습은 마치 실체가 있는 것을 껴안은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졌다.

“청룡 님이 누나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거든요. 혹시 알아요? 기분이 좋아지시면 힌트를 더 주실지도 모르고.”

이건 유효한 한 방이었다.

결국 나는 두 손 들고 항복을 표시했다.

“……그럼 하룻밤 신세 좀 질게.”

“진작에 그러실 것이지! 그럼 빨리 가요.”

“그래, 그럼 택시나 부르자.”

“택시는 무슨 택시예요, 돈 아깝게. 근처 주차장에 제 오토바이 주차해 놨어요, 그거 타고 가면 돼요.”

“오토바이?”

“아, 설마 오토바이가 위험하니 타지 말란 소리를 하실 건 아니죠?”

이 녀석이, 내가 잔소리 좀 했다고 진짜 무슨 청학동 어르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다.

나는 양태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토바이도 좋지만 안전 운전해라.”

“아니, 저도 헌터예요, 누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오토바이를 주차해 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양태원은 제 오토바이를 보자마자 먼지가 쌓였다며 한참 요란을 떨다가 겨우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오토바이는 길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125cc 오토바이 모델 중 하나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약간 디테일이 다른 게 신형 모델일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한국에서도 5년의 시간이 흘렀으니까 신형 모델이 나오는 게 당연하지.

검은색의 오토바이를 빤히 쳐다보니 어쩐지 소회가 깊었다.

“뒤에 타세요, 누나.”

오토바이에 올라탄 양태원이 껄렁한 태도로 내게 헬멧 하나를 던져 주었다.

“하나밖에 없으니까 이건 누나가 쓰시고.”

나는 양태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공교롭게도 지금 불량 청소년은 석양을 등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불량 청소년이 멋지게 등장하는 소설의 주인공 같았다.

제 몸보다 더 커다란 청룡이 그를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서.

퍽!

내가 냅다 도로 던진 헬멧에 갈비뼈를 얻어맞은 양태원이 아파했다.

“억, 누나! 아파요!”

그렇지만 너한테 과태료를 물릴 경찰은 그걸 못 볼 거 아니냐.

“자업자득이지. 오토바이를 타는데 헬멧을 안 쓰려고 했냐?”

“그렇지만 헬멧은 하나뿐인데요…… 그럼 누나는 택시 타실 거예요?”

에휴. 나는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됐다. 내가 어린애랑 무슨 말을 하겠다고.

“이 근처에 오토바이 렌트 업체 있지?”

양태원의 눈이 커졌다.

뭘 그렇게 놀라냐.

내 체감상 약 10년 전 일이긴 했지만, 나도 2종 소형 오토바이 면허를 취득했다.

*   *   *

공항 근처에는 오토바이를 렌트해 주는 업체가 꽤 많았다.

의외로 모델의 종류를 꽤 많이 구비해 둬서 고르는 데 약간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나는 적당히 추천받은 기종을 고른 후 1박 2일 예정으로 오토바이를 빌렸다.

사실, 면허를 취득한 게 오래 되었다 보니 운전이 가능하긴 한 건지 스스로도 궁금했는데 막상 해 보니 의외로 잘 됐다.

요령을 떠올리니 운전쯤은 금방이었다. 오히려 한창 면허를 따려고 준비할 때보다 지금이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시험 운전을 할 때 옆에서 지켜보던 양태원도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누나, 오토바이 되게 잘 타시네요. 관련 스킬이라도 있으세요?”

그런 게 있겠냐.

그야 고등학교 때부터 125cc 이하의 스쿠터 정도는 타긴 했다. 하지만 그간의 공백을 고려하자면 예전의 경험보다는 체근민 수치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때보다 몸 쓰는 감각이 워낙 발달하기도 했고.

다만 오토바이를 고른 것도, 운전을 하는 것도 문제없었다만 솔직히 도중부터 그냥 자동차를 빌리는 게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큼은 말해 두겠다.

그도 그럴 게 맨몸으로 오토바이를 타려니 너무 추웠다. 패딩이라도 챙겨 올 걸.

하여간, 그렇게 대략 한 시간 정도를 달린 끝에 우리는 양태원의 집에 도착했다.

“여기야?”

양태원의 집은 평범하게 보이는 주택이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도로와 동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는 점이었다.

“네, 여기가 제 집이에요.”

양태원이 담벼락 옆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나도 따라서 정지했다.

“여기 주차하면 돼?”

“네, 그럼요. 누가 훔쳐 갈 일도 없는데, 뭐.”

훔쳐 갈 일이 없다기보다는 아예 근처에 인가가 없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 살 때는 아파트가 빽빽한 도심 위주에서 살았으므로 이런 광경이 꽤 특이하게 느껴졌다.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가 제법 스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양태원은 익숙하게 핸드폰으로 손전등을 켜고 대문의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들어오세요. 아, 배고프다.”

양태원을 따라 집 안에 들어서자 평범한 가정집의 풍경이 펼쳐졌다.

거실에는 다 낡은 소파와 오래된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푼 흔적이 없는 깨끗한 문제집들이 쌓여 있었다.

양태원이 내 눈치를 흘끔 보았다.

“어, 수능 끝나고 버리려고 했는데 까먹었네.”

“그래, 그런 것 같다.”

문제집 표지를 보니 십 년 전쯤 쳤던 수능이 떠오르려고 한다. 양태원이 민망한지 하하하, 웃으며 부엌으로 도망쳤다.

“일단 앉아 계세요. 녹차 드실래요? 티백 몇 개 남아 있는데.”

“아니, 괜찮아. 그나저나 저녁 시간인데 뭐 시켜 먹을래?”

“여기 근처는 배달시키려면 한참 걸려요. 지금 시간에는 영업하는 데도 없고요. 보자, 집에 뭐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리더니 와장창, 하고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

냄비라도 떨어트렸나.

그나저나, 역시 혼자 사는 건가.

나는 길게 이어진 청룡의 반투명한 몸체 사이로 집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청소나 정리한 흔적이 보이긴 하는데 어쩐지 어설펐다.

뭐랄까, 같이 사는 어른의 흔적은 없다고 해야 할까.

집에 오라고 하면서 가족 언급을 하지 않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긴 했다만.

……뭐, 꼭 가족과 함께 살라는 법은 없긴 하지.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 집인 것이 분명했다.

양태원도 이 집은 거의 잘 때만 사용하는 건지, 소파 한구석에 낡은 담요가 놓여 있었다.

방은 두 개가 있는 듯했는데, 하나는 신당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방문 앞에 부적이 붙여져 있었다. 그게 유일하게 이 집에서 양태원이 무속인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였다.

“누나, 라면 세 개 있는데 라면 먹을래요?”

양태원이 큰 소리로 묻는 것이 들렸다.

아무래도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근처 슈퍼에서 뭐라도 사다 보급해 줘야겠다.

나는 양태원이 라면을 끓이는 사이 인터넷으로 한라산 던전에 대해 좀 더 검색해 보기로 했다.

얼마 전 최민혁이 정부의 공략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할 수 있는 헌터 전용 어플을 보내 주었다.

정부 24

헌터 공략 데이터 열람 어플

사용자 이름 : 강예나

정보 접근 허용 등급 : 2급

아직 미숙한 부분은 많지만,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많았다.

내가 한국의 헌터 중 몇 명이나 무속인으로 등록되어 있는지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어플 덕분이었다. 헌터가 어플에 가입하려면 클래스와 스킬명을 등록해야만 했고, 작성 결과는 어플 데이터에 반영된다.

다만, 나는 내 클래스를 검사로 등록했다.

아마 특이한 클래스는 이런 식으로 숨기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은데. 배우 클래스인 백사현만 해도 검사로 등록되어 있을 테고.

사실상 이건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 데이터일 수 있겠다.

공략 보고서란에 한라산을 검색하자 검색 도출 결과는 대략 462건.

한라산 던전을 공략 시도한 후 공략 보고서를 제출한 헌터가 462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이건 이거대로 짜증 나네.”

462건을 다 보기는 좀 그렇고, 적당히 중요한 정보만 취합해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는데.

나는 적당히 상위에 노출된 공략 보고서를 클릭했다.

“공략 데이터 보시는 중? 밥 먹고 하세요.”

그사이 큰 냄비에 라면을 끓여 온 양태원이 냄비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나는 핸드폰을 든 채 화면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이걸 보고서라고 썼냐.”

“헐, 정부 어플로 보는 중이에요? 그걸 진짜 보는 사람이 있구나.”

“보라고 만든 거 아니냐?”

“그거야 그렇지만요. 정부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거다 보니 다들 형식적으로만 쓰거든요.”

그렇기는 했다. 제출 날짜, 공략 인원, 공략 내용으로 이루어진 형식에 한두 줄 쓰여 있는 것이 다니까.

“그리고 솔직히 공략 끝나고 지쳤는데 정부 보고까지 챙기기가 너무 귀찮다고요.”

“그런 것치고 너는 자필로 몇십 장이나 썼던데.”

“학교 수업 시간에 써서 제출했거든요. 수업 시간에 딴짓하니까 재밌는 거 있죠.”

……왜 자필로 썼나 했더니 그런 배경 때문이었냐.

나는 결국 관자놀이를 짚으며 어플을 껐다. 영양가 없는 정보를 보면서 머리를 썩이느니 밥이나 먹자.

양태원이 젓가락을 쥐여 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한국 헌터치고 백록담 안 가 본 사람 없는데 누나 진짜 특이하시네요. 저라면 클래스 용사 뜬 순간 백록담 직행했을 텐데.”

유감이지만 클래스가 용사가 되었을 때 나는 한국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러는 너는? 뽑으려고 시도해 봤어?”

“그야 당연하죠. 천부인이잖아요? 제를 올리기 위한 검이니 당연히 무속인이 뽑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실패하긴 했지만.”

음, 그건 그렇지.

나도 아무리 타르토스에서 10년을 보내왔다지만 대한민국의 학생으로서 20년간 교육을 받았던 몸이다.

사실 전설로만 들었던 물건이 시스템이 나타나자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도 매우 신기했다.

다만 저 청동검이 진품일지는 의문이다.

내 에이펙스의 광검이나, 이우연이 가지고 있는 레바테인만 해도 그렇다.

이런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구현해 내는 것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믿는 설화를 짜 맞춰 적당히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뭐, 이건 시스템을 만들어 낸 놈이 직접 대답해 주지 않는 이상 풀 수 없는 의문이다만.

아니지, 이제 물어볼 수 있나? 타르토스는 몰라도 한국의 시스템은 나를 굴려 먹을 생각이 가득해 보이니까 말이지. 게다가 특별 관리 대상이라는 모양이고.

그나저나 라면은 굉장히 맛있었다.

뭐야, 엄청 잘 끓이잖아.

“하여튼, 인터넷에서야 찧고 까불고 하는데, 이제까지 일정 수준 이상의 헌터가 접근하면 ‘시험’ 메시지가 떠올랐던 건 사실이에요.”

양태원이 라면을 집어 올리며 설명해 주었다. 실속 없는 보고서보다 이쪽이 낫다.

그나저나 청룡은 여전히 양태원의 몸을 감싼 채 가만히 잠을 자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아까 전엔 천부인의 청동검을 언급했으면서, 막상 이 화제가 나올 때는 입을 다무는군. 힌트라도 주면 좋을 텐데.

“시험 메시지라고?”

“네. 백록, 파마의 검을 수호하는 수호령이 있거든요. 검에 가까이 접근하면 수호령이 이렇게 물어요.”

이어지는 어조는 다분히 연극적이었다.

“이 검으로 무엇을 하려 하느냐? 그게 첫 질문이에요.”

“추상적인 질문이군.”

“그래서 그에 대한 대답도 어지간히 나왔죠. 사적인 것부터 공적인 영역까지. 아마 보고서마다 헌터들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나와 있을걸요?”

“그럼 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양태원은 라면을 한 젓가락 더 집어 먹으면서 무심하게 대꾸했다.

“이런 게 더 이상 보이지 않도록, 제 눈을 닫는 데 쓸 거라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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