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78화
그 대답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뭐야. 앙겔루스의 가호가 강제 해제되기라도 한 건가?
황급히 가슴팍을 더듬어 보았지만 딱딱한 갑옷의 감촉은 여전했다.
그렇다면 정신계 마법도 아닌데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이거 사기 아니냐?
나는 허탈함에 웃어 버렸다.
아니, 사실 웃을 기분은 아니긴 했다.
말의 진실성 여부와는 별개로, 타의로 진심을 내뱉게 된다는 것은 매우 불쾌한 기분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남의 진심을 사정없이 꺼내 버린 백록은 머리에 달린 커다란 뿔을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검고 커다란 눈동자는 청룡의 투명한 눈동자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었다.
백록은 한참을 더 나를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 이상하구나. 나는 어떠한 증명도 받지 못했거늘, 네게는 이미 자격이 있으니.
“뭐?”
당황스러운 선문답이 돌아왔다. 이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패턴이었다.
“누나, 무슨 일 있어여?”
저 멀리에서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알아차린 양태원이 크게 소리쳤다. 나는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 고민에 빠졌다.
백록의 반응 패턴이 달라졌다.
원래대로라면 백록은 내 첫 번째 대답을 듣고 그대로 사라지거나, 혹은 두 번째 질문으로 ‘어떻게 검을 손에 넣을 생각이냐.’라고 물었어야 한다.
이건 완전히 정형화된 패턴이었고 예외는 없었다. 어제 잠을 설친 김에 어플에 등록된 보고서를 하나하나 훑어보았으므로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게 과연 유의미한 변화일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사슴이 지껄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게 이미 자격이 있다고? 아니, 하지만 아무것도 증명된 게 없다잖아.
결국 나는 솔직한 심정을 내뱉었다.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
좀 더 교양 없이 말하자면 그냥 개소리로 들렸다.
그런 나를 보고 사슴이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문득 시선을 비틀었다.
‘뭐지?’
그 시선이 내 등 뒤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머리보다 한참 높은 곳을 잠시 스쳤다.
굳이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사슴이 무엇에 시선을 둔 건지 알 수 있었다.
지금 하늘에 떠올라 있는 것은 구름을 제외하면 청룡밖에 없을 테니.
하지만 그 일별은 아주 짧게 끝났다.
흰 사슴은 얼음 위에 선 채 우아한 몸짓으로 한차례 발을 크게 굴렀다.
- 순리에 따라 마땅히 흘러가야만 하는 것도 있다. 그러니 너의 자격을 인정해 줄 수는 없구나.
“그러니까, 헛소리는 그만하고 제대로 설명해. 나보고 뭘 어쩌란 건데?”
꽤 불량한 태도에도 나를 대하는 사슴의 자세는 여전히 우아했다.
- 파마의 검을 손에 넣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에 응하거라.
나는 입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우아하면 뭘 하나, 인간이 아닌 소위 상위 존재들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알아듣게 좀 이야기해라.
무엇보다 내가 지금 제일 열 받는 지점은, 내게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저 파마의 검을 손에 넣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저 흰 사슴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나.
검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 좋아. 그 시험이라는 거 받아 주지.”
한라산째로 검을 뽑는 거야 불가능하겠지만, 내게 가능한 일도 있을 터.
내가 동의의 말을 입에 올린 순간이었다.
-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가 시험에 동의하였습니다.
- 새로운 던전이 생성됩니다.
사슴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얼어붙어 있었던 호수의 표면에 서서히 파동이 퍼지기 시작했다.
호수가 거세게 출렁였다.
“어, 어?”
내 몸을 지탱하고 있던 얇은 얼음이 파사삭 깨졌다. 대응할 틈도 없이 한쪽 발이 물에 푹 잠겼다.
그리고, 천지를 진동시킬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 때가 왔구나.
뒤를 돌아보니 청룡의 몸체가 양태원을 떠나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고아한 푸른 비늘을 두른 몸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물에 빠지기 시작한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이 가라앉은 호수의 밑바닥, 아주 깊은 곳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내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 아주 작은 손길이 때로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 운명을 집어삼키지.
물에 잠겨 가고 있어서일까, 감각은 마치 노이즈가 끼기라도 한 것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들렸으나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물거품이 터지는 소리 같기도, 나비의 날개가 파닥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몸을 관통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 어디 한번, 세상을 구해 보거라.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야의 확보보다 숨을 쉬는 것이 더 급했다.
나는 목을 감싼 채 그대로 몸을 구부렸다.
까슬한 지면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쓰러져 있는 것 같았지만 일어설 기운이 없었다.
역한 느낌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숨 쉬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헉……!”
크게 숨을 들이쉬었으나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폐부를 채우는 공기는 생명이 아니라 독이었다.
온몸을 자극하는 고통 때문에 생리적인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내 이성은 슬슬 이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내가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세계.
그런 세계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대체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고통에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메시지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 시스템이 새롭게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를 인지합니다.
- 오류의 여파로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의 모든 장비가 해제되었습니다.
- 필드, ‘마계’에 진입하였습니다.
- 경고! 이 세계의 모든 존재가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 빠른 탈출을 권고합니다.
“……소, 소지창.”
나는 겨우 소지창에서 아이템을 소환했다.
앙겔루스의 가호와 에이펙스의 광검을 장비하는 동시에 겨우 숨통이 트였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마기를 정화합니다!
- 앙겔루스의 가호가 당신의 정신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컥!”
내 오랜 파트너들이 금세 나를 보호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받은 타격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젠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예상대로 시야에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시커먼 하늘, 붉은 달, 황량한 대지와 이 썩은 공기.
어딜 보나 마계 그 자체였다.
설마 시험이라는 게 용사답게 마계에 가서 마왕의 목을 따오라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이 등허리를 스쳤다.
두두두.
대지의 진동이 거세지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대지가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언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굳이 고개를 들어 시야를 확보하지 않아도 피부에 와닿는 살기가 찌릿찌릿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내 존재를 알아차린 마계의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벨리알 약 좀 작작 올릴 걸 그랬나.
이렇게 빨리 마계에 다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혹시 백록담의 수호령이 아니라 마계의 수족인 것 아닌가?
‘일단은 침착하자.’
흰 사슴 새끼가 실은 마계의 수족이든 뭐든, 나는 새로운 던전이 생성된다는 메시지를 보았다. 내가 던전에 입장한 이상 무조건 클리어 조건이 생성되었을 것이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른 후 시스템에 대고 말했다.
“던전 클리어 조건 조회.”
- 해당 던전 클리어 조건
다행히도 시스템 메시지는 지체 없이 떠올랐다. 조금 전 오류가 일어났다는 내용에 순간 가슴이 덜컥 떨어졌는데 다행이었다.
하지만 안도하는 것도 잠시였다.
- 해당 던전 클리어 조건은 아직 생성되지 않았습니다.
던전 클리어를 위해서는 필수 선행 조건이 존재합니다.
“침착 좋아하네!”
이쯤 되면 분노가 차오르는 게 아니라 차라리 머리가 식었다. 시스템 새끼한테 농락당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
죽이고 싶으면 그냥 말을 해라, 말을.
물론 죽어 줄 생각은 없다만.
이걸로 마계에 온 것도 세 번째였다.
익숙해질 법도 하련만, 내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는 메시지가 시뻘겋게 시야를 점령하고 있는지라 광경이 한층 더 을씨년스럽다.
어쨌거나 클리어 조건이 있기는 하단 말이지.
다만 선행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얼마 전, 저주에 걸린 성과 비슷한 종류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그나마 보스 몬스터의 손에 뒈지기 전에 알려 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물론 하나도 안 고맙다.
나는 주위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노와는 별개로 당장 죽기 싫으면 뭐든 찾아내야 한다.
일단 발밑으로는 검게 죽어 버린 땅이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이 보일 만큼 광활한 땅 곳곳에는 울퉁불퉁한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었고, 대지에는 잡초 하나 우거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에 닿는 냄새가 매캐했다. 계란이 썩는 것 같은 냄새였다.
‘이거, 본격적으로 예감이 안 좋은데.’
마계는 대강 4분할되어 4명의 마왕들이 각각 제 영토를 다스리고 있다.
구분되어 있다고는 해도 워낙 넓은 필드인지라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영토에 따라 특징이 명확한 편이라 누구의 영토인지 정도는 구분 가능하다.
지금 내 코가 맡는 냄새로 추측해 보자면…… 이곳은 지옥불을 다스리는 마왕의 영역이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졌다.
“젠장, 왜 하필이면 릴리스의 구역이야.”
운도 더럽게 없다.
벨리알도 끔찍하지만 릴리스는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게 하는 존재였다.
벨리알에게 붙잡히면 최악의 경우라도 죽는 게 끝이겠지만, 릴리스에게 붙잡히면 아마 영혼만 끄집어내져 영원히 노리개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 미친 여자가 오기 전에 어떻게든 나가야 하는데.”
하지만 어떻게?
고민할 여유는 길지 않았다.
지평선 너머부터 붉었던 하늘이 검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게 보였다.
같은 마계의 생물이라고 해도 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시스템상으로 분류된 등급이 아니라, 순수한 악의의 농도가 다르다.
불길한 하늘을 악의로 물들이며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S급 몬스터 : 마몬이 출현했습니다.
- 몬스터의 상세 정보를 조회하시겠습니까?
안 본다.
젠장, 운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저 녀석이 나를 바로 찾아내다니. 아무래도 이 세상의 모든 불운이 나를 찾아온 듯싶었다.
검은 새의 부리를 가지고 있는 악의의 결정체가 쏜살같은 속도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탐욕스러운 눈동자에 희열이 떠오른 것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찾았다!”
광활한 대지를 울리는 사념 덕에 뇌진탕이 올 것 같다.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답이 없다.’
시스템이 매긴 등급으로만 따지자면 데스나이트와 같은 S급이기는 하지만, 마몬은 데스나이트와는 수준이 달랐다.
내가 현재 능력치로도 데스나이트를 상대할 수 있었던 건 그놈이 제대로 된 이지가 없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릴리스는 벨리알보다 뭐든지 한 수 위고, 부리는 수족도 그랬다.
마몬은 릴리스에게 충성하는 악마 중 하나다. 인간의 탐욕을 이끌어 내는 악의의 화신.
릴리스가 하사한, 황금으로 처바른 궁전에서 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는 놈인 데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증오한다.
특히 용사인 나는 그의 페이버릿 증오 대상 1순위 정도에 속했다. 그러니 나를 붙잡으면 사지를 찢어 놓고 다시 붙였다가 또 찢어 놓을 거다.
결단은 빨랐다.
“용사를 기리는 망토.”
소리도 없이 긴 망토가 어깨 위로 얹혔다.
쿨 타임이 일주일이나 있기 때문에 정말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릴리스에게 걸렸다간 진짜 망하는 거다.
욕설을 한마디 내뱉고 나는 검을 들었다.
일단 최대한 빠르게 마몬을 처치하자. 이쪽으로 유인한 다음 망토를 발동하면 어떻게든 될 거다. 그리고 선행 조건을 찾아서 수행한 후 던전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하하하하하! 용사, 용사가 왔다!”
칠판을 긁는 것 같은 끔찍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젠장, 내가 왔다고 아주 광고를 하고 있네.
내가 이 답도 없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딸랑.
청명한 방울 소리가 사위에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뭐야?”
내 주위로 반투명한 원이 덧씌워졌다. 실드가 생성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뿌연 반원의 투명한 구가 나타난 순간 마몬이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섰다.
“이게 무슨 수작이지?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얼굴에서 김이 펄펄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분노한 악마 앞에서 얇고 희뿌연 실드는 별 소용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실드를 부수며 내게 달려들 기세였던 악마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하는 거로군.
마몬이 갈피를 전혀 잡지 못하는 날파리처럼 허공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디, 어디로 간 거지? 당장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겠나!”
하늘을 휘저으며 땅을 굽어보고 미친 듯이 발악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해졌다.
지금 저 녀석은 내가 보이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구현된 실드는 단순한 보호막 정도가 아니라 마족의 시야를 속일 수 있는 특별한 종류임이 분명했다.
심지어 마족의 홈그라운드인 마계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대체 누가 한 거지?
“잘못 본 게 아닌가 했는데, 정말 사람이잖아.”
그때, 바로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던 것을 확인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에 등줄기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나는 긴장한 채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음, 사람 맞죠?”
시선을 돌린 곳에는 다행히 사람이 서 있었다.
그렇다. 사람이었다.
마계의 생물이나 악마, 마왕 따위가 아니라.
서 있던 것은 오색찬란한 무복을 입은 여자였다.
여자의 발치에는 푸른 색깔의 불꽃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그 손에 든 것은 청동 방울과 푸른 술이 달린 부채였다.
유황 냄새가 나는 지옥과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인지’한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던전 클리어를 위한 선행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수호부가 먹힌 걸 보면 사람 맞는 것 같은데. 아, 혹시 말을 못 하시는 건가? 그렇다면 고개를 흔들어 주세요. 수화도 가능하긴 한데…….”
복장도 복장이고, 여자의 주위를 두른 기운도 놀랍고, 시스템 메시지도 경악스럽다.
그러나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 삼켰다.
무복을 입은 여자는 이 마계에서도 마치 초원에 서 있는 것처럼 평온했고, 그런 여자의 몸을 감싸듯 안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고아한 푸른 몸체는 마계의 하늘 아래에서도 선연한 빛을 뽐내며, 투명한 눈동자는 하늘의 악마를 오시하고 있었다.
“……청룡?”
거대한 푸른 용의 모습은 분명히 양태원의 몸을 감싸고 있던 존재와 동일한 것이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 선행 조건 : ‘정소현’과의 조우
- 해당 던전 클리어 조건 : ‘정소현’의 생존
내가 중얼거린 목소리를 들은 여자가 싱긋 웃으며 인사를 해 왔다.
“아, 역시 사람 맞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