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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81화 (82/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81화

정소현의 스쿠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익숙한 외관의 집이었다. 내가 봤던 것보다 조금 더 깨끗하고 정리가 잘된 것 같기는 했다만.

그 집의 모습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가장 다른 점은 지붕에 걸려 있는 깃발이었다. 갖가지 색깔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나에게도 어느 정도 친근한 그림이다.

정소현은 스쿠터를 담벼락에 세우고 허둥지둥 대문 앞에 섰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노란색으로 화사하게 칠한 봉고차가 도로 저편에서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더니,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정소현이 두 팔을 벌리고 뛰어나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태원이 어린이집 잘 다녀왔어?”

“다녀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것은 조그마한 어린아이였다. 그거야 그렇지. 다섯 살은 조그맣지.

노란색 모자를 쓰고 하늘색 원복을 입은 꼬맹이는 얌전하게 귀여운 가방을 크로스로 매고 있었다.

충격적일 정도로 귀엽고 얌전한 모습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양태원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한데도 순간 내 기억을 의심할 정도로.

게다가 이렇게 보니 모자 안의 얼굴은 무섭도록 닮아 있었다.

아이는 정소현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네, 내일 아침에 봐요.”

“태원이, 안녕~.”

비슷한 나이의 꼬맹이들이 저마다 까맣게 선팅된 창문에 달라붙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양태원도 따라서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차가 떠났다.

양태원은 차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더니 그제야 정소현의 몸을 감고 있는 청룡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청룡 님도 안녕하세요. 다녀왔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내 시야에는 청룡의 눈이 기쁨으로 가늘어지는 것이 보였다.

- 그래.

“가방 무겁겠다. 이리 줘 봐.”

조그마한 가방을 굳이 받아 든 정소현이 양태원의 손을 잡고 대문 안으로 걸어갔다.

“오늘 어린이집 어땠어? 재밌었어?”

“응, 재밌었어.”

“점심 뭐 먹었어?”

“미역국 먹었어.”

“맛있는 거 먹었네. 간식은 뭐 먹었어?”

“과자 먹었는데 사과 잼이 흘러나와서 바닥에 흘렸어.”

“어이구, 그랬어?”

나는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그런 모자를 바라보았다.

정소현은 마당을 지나 집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를 흘끗 바라보았지만, 손짓으로 먼저 가라고 했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어갔다.

양태원도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연신 흘끗댔지만 딱히 엄마에게 나에 대해 물어보거나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아마 낯선 방문자에게 익숙한 모양이었다.

어린애다, 어린애.

양태원은 어리고, 정소현도 어렸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이 다정해 보였다.

나는 잠깐 기다린 후, 그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양태원이 나를 하루 묵게 해 주었던 때와는 모습이 판이하게 달랐다. 사람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는, 확실하게 생활감이 있는 집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파괴왕이라고 한 게 농담이 아니었는지 꼬마 양태원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까 전까지 얌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단숨에 일변했다.

꼬맹이는 현관 앞에 옷과 가방을 내팽개치고 거실 한구석에 있는 장난감 무더기로 달려갔는데, 도중에 정소현의 손에 화장실로 연행되어 손과 발을 씻고 나와서 그대로 장난감 무더기를 거실에 어지르기 시작했다.

정소현이 거실에 온통 널브러진 장난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 놀고 난 다음에는 정리해야 된다.”

“네~.”

“대답만 잘하지. 대답만.”

꼬마가 정신없이 레고를 조립하기 시작하는 걸 보던 정소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육아의 고충이 느껴졌다.

“그래도 혼자서 잘 노네요. 제가 놀아 줄 필요가 있어요?”

“저러다가 레고 삼킬지도 몰라요. 저번에 그래서 병원 갔다니까.”

청룡이 동의하듯 바닥에 꼬리를 부드럽게 문댔다. 투명한 터라 먼지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눈 떼면 안 되겠네.”

“괜찮으면 저녁 준비할 때까지만 부탁할게요.”

내 몫은 괜찮다고 만류하려 했지만 정소현은 이미 부엌으로 가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뭐라도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꼬맹이 양태원이 가까이 오더니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뭐야?”

“누나.”

다섯 살 꼬맹이에게서 묘하게 스무 살의 모습이 겹쳐졌다. 꼬맹이가 아직 어벙한 발음으로 제법 또박또박하니 말했다.

“기운이 맑으시네여.”

“………….”

자그마한 꼬맹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스무 살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 줄이야.

이곳이 던전인 이상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시스템이 구현해 낸 과거의 모습일 뿐인데 이렇게 보니 묘한 느낌이었다.

내가 눈만 끔벅이자 꼬맹이는 반응이 없는 게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곧 제 목적을 말했다.

“누나, 축구할 줄 알아여?”

그러고 보니 어디서 가져온 건지 품 안에 제 머리통만 한 작은 공을 가지고 있다.

공놀이는 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으니 내게 온 건가. 환심을 사려 대뜸 칭찬부터 한 건 기특하다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축구할 줄 몰라.”

내가 공을 차면 그건 축구가 아니라 공 터트리기 대회가 되지 않을까.

꼬맹이가 명백하게 실망한 기색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어른이 왜 축구도 할 줄 몰라여? 제가 배울 수 있어요.”

“배울 수 있다가 아니라 가르쳐 줄 수 있다.”

꼬맹이는 몇 번 내 말을 따라 해 보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사양할래.”

“사양이 뭐예요?”

“태원이, 마당에서 축구할 거면 유리창 깨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부엌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었던 건지 정소현이 큰 소리로 대화를 끊어 준 덕분에 국어사전을 펼치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

결국 내 참여를 얻어 내는 것은 포기한 꼬맹이는 혼자 거실에서 마당으로 통하는 커다란 창문을 열고 순식간에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거대한 몸체를 거실까지 뉘이고 있던 청룡이 한쪽 눈을 슬쩍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한 존재의 눈에 우습게도 걱정이 가득했다.

“……에휴.”

어쩔 수 없이 나는 꼬맹이를 따라 마당으로 따라 나갔다.

그래, 저러다가 돌이라도 주워 먹고 탈 나면 어쩌겠어. 그게 횡액의 정체는 아니겠지만.

그때부터 나는 한참 동안 애 보기에 동원되었다. 물론 그래 봤자 신나게 달리는 양태원 발치에 위험할 것 같은 돌덩이가 있으면 치워 주는 정도였다만.

그나저나 다섯 살 때 애는 원래 저렇게 활기가 넘치나? 스무 살 양태원은 등산 몇 시간 만에 헥헥거렸는데 꼬마 양태원은 한참을 공을 가지고 뛰어다녔다.

공 하나 가지고 노는 게 질릴 법도 한데 지치지도 않는다.

물론 그 와중에 꼬맹이가 내게 공을 던져 달라고 하는 것처럼 쳐다보았지만 그쪽은 단호하게 외면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건지 모르겠군. 이렇게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는데.

차라리 당장 전투가 시작되니 나가서 칼 한 자루 들고 몬스터를 처치해라, 그렇게 말한다면 그러려니 하겠다. 욕이야 하겠다만.

그렇지만 이래서야 뭔가를 대비해 방비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꼬맹이가 혼자 노는 동안에도 정소현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도 거실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애를 씻긴 다음에는 재우기까지가 세트였다. 재운 다음에도 내일 유치원 갈 때 입을 옷과 가방을 준비했다.

진짜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쁘다.

일단 나도 옆에서 도우려고 해 봤지만 영 손에 익은 일이 없었다. 심지어 애를 돌보는 게 주된 일이다 보니 자신도 없었고.

게다가 정소현도 손님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며 극구 사양하기에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소파에 앉아서 멀뚱히 있기를 몇 시간째.

“따뜻한 차 한잔 어때요?”

그렇게 정소현이 겨우 숨을 돌리고 내 옆자리에 착석한 것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정소현은 따뜻한 둥굴레차를 들이켜며 푸욱 숨을 내쉬었다.

“애 키우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요.”

나는 집 안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거실 한구석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작은 레고 조각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집 안에 반투명하고 거대한 청룡이 한 마리 누워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평범한 집이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마계의 악마들을 상대하던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래 보이네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것도 진심이었다. 어린애 하나 키우는 데 들어가는 수고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리고 굳이 사정을 캐묻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정소현 혼자 양태원을 키우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양태원도 정소현 혼자 자신을 돌본다는 것에 익숙해 보였고.

물론 익숙하다는 게 힘든 것을 경감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아까 하던 말이나 이어서 할까요.”

목이 말랐던 건지 금세 비어 버린 잔을 탁 내려놓으며 정소현이 씩씩하게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전환이 빠르군.

나도 따뜻한 둥굴레차가 담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옥에 가는지 물어봤었죠.”

정소현이 양태원을 돌보고 생활하는 이 광경을 보니 더 궁금해진다.

키우는 아이까지 있는데도 그렇게 위험한 곳에 들어간다는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그게 이번 던전의 클리어 조건이자, 정소현이 겪을 위기와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정소현은 곧 입을 열었다.

“지옥의 마귀가 현세에 강림하는 걸 막는 것.”

생활감이 넘치는 평범한 공간에서 내뱉는 말에는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내가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자 정소현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손을 뻗었다.

어느새 그 손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청동 거울이 들려 있었다.

어떻게 한 거지. 이 시대에는 시스템이고 소지창이고 없을 텐데.

“지금도, 보세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죠?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걸 봐요.”

그 말을 따라 거울을 본 순간,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이 비쳐야 할 거울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수많은 균열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유독 크게 비치는 균열 사이로 익숙한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메마른 땅과 붉은 하늘.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계의 매캐한 공기가 연상되었다.

그걸 본 순간 벨리알의 말이 떠올랐다.

세계와 세계 사이에는 틈이 존재하며, 소환자의 부름을 받으면 틈새 사이로 마계를 빠져나가는 악마들.

슬슬 이 이야기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 틈새 사이로 악마가 기어 들어온다는 건가요?”

“그래요. 이해가 빠르시네요.”

거울을 거두어 가며 정소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 간의 경계는 때때로 무너지고 부서져요. 그걸 그대로 두면 결국 악귀가 이 세상을 침범하게 되는 거고요.”

“그래서 마계에 가는 겁니까?”

“네, 부서지는 경계를 막아야 하거든요. 제 도력은 꽤 쓸모가 있어요. 지옥의 악귀를 모두 멸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화’할 수 있죠. 그렇게 균열을 조금씩 막는 거예요.”

문득, 여자의 검지에 다채로운 색깔의 기운이 서렸다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 균열이라는 건 아무 곳에서나 생기는 건가요?”

“맞아요. 시도 때도 없죠. 얼마나 귀찮은지 모르겠다니까.”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거, 시스템이라는 요소가 배제되어서 그렇지, 결국 던전 포화도가 넘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공략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었다.

다만 현시점의 대한민국에서는 수립산 도립 공원 외 다른 ‘균열’, 즉 던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쪽의 난이도가 높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경계가 부서지는 걸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매번 마계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한데…….”

“없어요. 그런 방법.”

잠시 침묵하자 집 밖의 도로에 자동차라도 지나가는 건지 엔진 소리가 시끄럽게 그 자리를 채웠다.

정소현은 눈을 내리깔고 웃었다.

“참 신기하네요. 이런 이야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남에게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단 한마디로 정소현 본인은 입에도 올리지 않은 기구한 사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2005년의 대한민국에는 시스템도, 던전도 없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한다고 한들 그걸 믿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일 이 던전이 정말 실제로 있었던 과거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시스템이고 체근민 수치나 스킬 따위의 가시화된 능력도 없는 이 시점에서…… 홀로 마계에 들어가 악마들이 한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양태원의 모친인 정소현이고.

같은 시야도, 경험도 공유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정소현은 홀로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침묵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네? 대답했잖아요. 주기적으로 정화해 주지 않으면…….”

“그러니까요.”

그게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될지는 몰라도, 굳이 정소현이여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제야 내 질문을 이해한 정소현이 놀란 듯했다가 픽 웃었다.

“저밖에 할 사람이 없어서?”

“…….”

“이렇게 큰 신을 모시는 건 한국에서 저뿐이거든요. 저 말고는 아무도 버티지 못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정소현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분노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데자뷔 뭔데.’

대략 15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서 듣는 같은 말은, 그 인물 간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아, 진짜.”

약간 울컥한 나는 잔을 테이블 위에 쾅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란 정소현이 토끼처럼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물었다.

“이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혹시 죽고 싶은 건 아니죠?”

어리둥절해하던 정소현이 그 말에 파안했다.

“설마요.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나마 다행이네.”

설령 죽고 싶어 환장했다고 한들 내버려 둘 수가 없거든.

적어도 내 눈앞에서는.

- 해당 던전 클리어 조건 : ‘정소현’의 생존

메시지의 내용이 가증스러웠으나, 그래도 나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 뭐.

어떻게든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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