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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90화 (91/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90화

Chapter 10. 쉬울 리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소현에게 마몬을 제외한 이 수많은 악마들을 몽땅 맡길 수는 없는 노릇.

마몬을 상대하러 가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 둘 작정이었다.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마치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파리들을 보며 검을 빼 들었다.

아무래도 이번 2차 몬스터 웨이브에서 A급쯤 되는 몬스터는 마몬 정도인 것 같았다.

나머지는 대부분 B급에서 C급. 몸풀기에 딱 좋은 상대들이었다.

돌발성 던브라 한꺼번에 다 죽일 수야 없다만.

- 님페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하압!”

나는 땅을 박차고, 떨어져 내려오는 악마를 향해 뛰었다. 바람이 몸을 기분 좋게 감쌌다.

중력을 거스르고 높게 뛰어오른 시야에 악마가 빠르게 다가들었다. 증오와 욕망만이 번들대는 눈동자가 코앞에 있었다.

하지만 빛나고 있는 건 내 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당신의 의지를 받들어 성검으로 진화합니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상대를 ‘악’으로 인식하였습니다.

- 성검이 보유한 특성, ‘악의 처단’이 발휘되어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힙니다.

에이펙스의 광검이 붉은 달빛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환한 빛을 내뿜으며 포효했다.

길어진 날에 스치는 모든 감각이 날카로웠고, 벤 생명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펑!

퍼펑!

칼에 베인 마족의 시체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질 때마다 남은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검이 미처 베지 못한 악마들도 높이 솟아오른 성수의 물줄기에 맞아 괴로워하며 땅에 떨어져 갔다.

그리고 대지에는 본래 홀로 이 재앙을 막았던 무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발밑에서 오색 창연한 기운이 퍼지는가 싶더니, 쇠사슬처럼 변한 무형의 기운이 악마들의 몸을 잡아 바닥에 내리 꿇렸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허공에서 한 번 더 발을 박찼다.

때때로 악마들의 몸을 밟아 가며, 몸은 끝도 없이 위로 치솟았다.

아주 상쾌한 기분이었다.

마침 비가 그쳐서 공기가 산뜻하기도 했다.

“뭐, 뭐야?”

그리고 마침내.

공중에서 나를 발견한 마몬의 뱀 같은 눈동자가 의아함에 가득 찼을 때.

나는 이미 공중에서 크게 허리를 틀고 있었다.

뻐억!

“컥!”

검은 부리 옆 뺨을 주먹으로 한 대 치자 북 치는 소리가 났다.

야, 이거 강냉이를 아주 제대로 털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

- 악(惡) 속성의 몬스터를 조우하여 용사 클래스 보정이 적용됩니다.

- 악(惡) 속성의 몬스터에게 추가 타격을 입힙니다.

밸패의 맛을 봐라, 이 새끼들아!

나는 내게 처맞고 그대로 밑으로 처박히려 하는 마몬의 목을 잡아챘다. 중력을 거스른 마몬의 얼굴이 훅 앞으로 끌려왔다.

이번에는 나도 중력의 힘을 빌렸다.

빠악!

“억!”

대가리로 박치기를 먹은 마몬의 몸이 바닥까지 일직선으로 처박혔다.

젖은 흙바닥이라 흙먼지조차 일으키지 않고 고대로 곱게 처박힌 마몬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무릎부터 그대로 그 얼굴 위에 착지했다.

콰앙!

땅이 내려앉았다.

마몬은 그대로 화석처럼 땅과 내 무릎 사이에 찌부러졌다.

이번에는 신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야 그렇겠지. 얼굴을 중심으로 처맞았으니까, 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을 거다.

나는 마몬의 얼굴에서 무릎을 치우며 일어섰다.

순식간에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고, 머리가 깨지고, 상판까지 깨진 채 땅에 박힌 마몬의 꼴이 아주 볼만했다.

발에 감도는 님페의 바람이 아주 훈훈하다.

“이야아, 진짜 오랜만에 한 건 했다.”

사이다라도 한 병 들이켠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마계에서 당한 굴욕이 이제야 좀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군자의 복수는 아무리 늦어도 늦지 않는다더니 이게 그 말인 것 같았다.

이렇게 갚아 줄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하지만 다 갚아 주려면 아직도 멀었다.

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마몬에게 다가가 긴 머리채를 잡고 몸을 들어 올렸다.

철근을 들어 올린 것처럼 무거운 몸이었다. 보기에는 일반적인 인간과 다를 바 없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타격 상대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손맛이 좋은 법.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흐, 흐어억!”

머리채를 잡고 일으켜 세운 탓인지 잠시 기절했던 마몬이 눈을 떴다.

피떡이 된 얼굴 속에서 나를 발견한 눈동자가 순식간에 증오로 물들었다.

“이, 인간 따위가!”

“아, 정신이 들었구나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상냥한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올 정도였다.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다.

모름지기, 팰 놈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타격감이 살아나는 법이니까.

“잘됐다, 진짜.”

빡!

무릎으로 코를 올려 차자 명쾌한 감각이 전해졌다. 나는 그대로 마몬의 이마를 발로 짓눌렀다.

“너 이 새끼, 기억나냐? 기억나?”

그 말에 마몬의 얼굴이 혼란에 물들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머리를 굴리는 게 뻔히 보였다.

“나, 나는…….”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신없이 흔들리던 눈동자가 무엇을 본 건지, 갑자기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나는 태연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몬의 입이 열렸다.

“요, 용사! 너, 용사냐?”

“시스템상으로는 그렇지.”

“젠장, 어쩐지!”

저 말이 과연 시간을 초월하여 ‘나’를 알아본 걸까, 아니면 내 클래스가 ‘용사’라는 걸 깨달아서 한 말일까?

청룡이 만일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알아보았다면, 악마인 마몬에게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지도 모른다.

그게 궁금해서 내가 잠시 시간을 준 사이에 악마의 얼굴은 급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이게 마족의 무서운 점이지.

인간계에서 아무리 역보정을 먹는다 해도 일반적인 몬스터보다 훨씬 더 재생이 빨라 숨통을 끊기가 어렵다.

그렇게 후드려 팼는데도 마몬의 부리가 어느새 매끄러워졌다. 마몬이 때를 놓치지 않고 내 발목을 두 손으로 틀어쥐었다.

새의 발고리처럼 생긴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려 했다.

“어리석은! 내가 인간 따위에게 이렇게 당할 것 같으냐!”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지 그래. 날 기억해, 아니야?”

“너 같은 건 모른다, 빌어먹을 용사 놈!”

오호라.

그렇다면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겠네.

나는 검을 들어 마몬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아아아아악!”

물론 성검의 ‘악의 처단’이 여전히 발휘되고 있는 터라 그 타격은 아주 거셌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마몬의 몸이 경련했다.

“아, 기억이 안 나신다고요?”

사실 마몬과 나의 인연은 제법 오래된 것이다.

얼마 전 마계에서 스치듯 마주친 것을 제외하고, 내가 타르토스에서 마계로 떨어졌을 때.

한동안 마몬 새끼에게 붙들려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마몬에게 당한 것은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의 일이다.

“그런데 내 기억엔 있는데 어쩔 거냐고.”

그걸 내가 고려해 줄 필요는 없지. 안 그래? 나는 이 새끼한테 처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아, 혹시 이게 타임 패러독스라는 건가?

“그때 네가 내 손톱 밑에 바늘을 박았지, 개자식아.”

하여간 내가 마계의 독기에 정신도 못 차리고 있을 때 이놈이 내게 한 짓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금은보화에 미쳐서 날 거꾸로 매달아 놓고 털던 건 기억나냐, 이 파리 놈아.”

뻑!

어깨를 검으로 고정한 채 발로 얼굴을 걷어차자 이번에야말로 얼굴뼈가 완전히 뭉개졌다.

“바늘을 가지고 내 폐에 구멍을 냈던 건?”

얼굴엔 더 이상 때릴 곳이 없기에 이번에는 주먹으로 갈비뼈를 두드렸다.

아그작, 아주 명쾌하게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끄어어어.”

마몬의 부리 사이로 숨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정말이지 숨통이 끈질긴 놈들이었다.

나는 검집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죽지도 않는데 검으로 베는 것보단 패는 게 좀 더 속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소싯적에 야구 경기를 몇 번 본 적이 있었지.

퍽!

콰득!

이거 안타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빠악!

“인간 세상에 왔으면!”

“흐어억!”

빡!

이건 홈런이다. 장외 홈런급이다. 아마 만루였을 거다.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그러니까 죽어라, 이 악마 새끼야.

그렇게 나는 한동안 신명나게 마몬을 후드려 팼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 나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곤죽이 된 마몬에게서 손을 떼어 냈다.

내 손이 아플 지경으로 팼더니 아무래도 진짜 죽은 것 같다. 정말로 숨을 안 쉬네.

그래 봤자 역소환되어 마계에 돌아갔겠지만.

휴, 다음에 마계에 갈 일이 있으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 2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 : 02:01

2차 몬스터 웨이브 시간이 어느새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끝났어요?”

멀리서 정소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당연히 마몬을 패는 동안에도 정소현의 상황을 틈틈이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때마다 마몬이 기어오르려 들었지만 성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정소현은 상황을 확인하더니 이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왔다. 긴 옷자락이 땅에 끌려 더러워졌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아무리 악귀라도 어떻게 저렇게까지 패지?”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무당의 주위에도 멀쩡한 악마의 몸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정소현은 청룡이 곁에 없다고 약한 소리를 했으면서 무척이나 분전했다.

몸 전체를 두른 찬란한 빛깔의 기운이 악마들을 잠식하고, 부적이 날아다니며 악귀를 불태우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아무리 내가 어느 정도 도왔다고는 해도 놀라운 성과였다.

정소현이 내 곁으로 다가와 바닥에 곤충 표본처럼 짓눌린 마몬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감탄했다.

“와, 진짜 곤죽을 만들어 놨네. 혹시 이 악귀가 그쪽 집안에 3대째 달라붙어 패가망신 시킨 놈이기라도 해?”

“겨우 저딴 놈한테 패가망신 당할 집안 같은 건 없는데.”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네. 하여튼, 거의 대부분 전멸했어.”

정소현이 손을 탁탁 털며 자랑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검집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그 말대로였다.

- 2차 몬스터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 최대 업적자 : 방랑하는 구도자

- 3차 몬스터 웨이브까지 대기 시간이 주어집니다. 00 : 20 : 00

내가 대꾸할 것까지도 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먼저 울렸다.

그래, 우리가 승리했다.

“어라, 악귀가 내려오는 게 또 멈췄네. 이거, 무슨 패턴이라도 있는 건가?”

동시에 정소현이 제법 날카로운 지적을 내뱉었다.

나는 딴청을 피웠다.

“그런가? 나는 모르겠는데.”

“강예나 씨, 진짜 거짓말 못 하네. 누가 봐도 짚이는 게 있는 표정인데?”

대체 내 표정이 어떻길래 다들 저러는지 모르겠군.

나는 농을 거는 정소현을 뒤로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론, 마몬을 패면서도 신경 쓰고 있기는 했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했다.

이제 몬스터 웨이브는 3차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남은 전력을 살펴야 할 때였다.

먼저 정소현.

“에라, 모르겠다.”

정소현이 질퍽한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분전한 만큼 꽤 체력이 고갈된 모습이었다.

포션을 건네면 3차 웨이브 전까지 어느 정도 회복할 수야 있겠지만 충분한 전력이라고 치기는 힘들다.

애초에 정소현은 내가 지켜야 하는 대상이니까.

그리고 묻어 두었던 성수 폭탄 또한 거의 다 소진되었다.

중간중간 성검으로 악마의 숫자를 꽤 줄였는데도 2차 몬스터 웨이브인 만큼 많은 숫자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

나는 잠시 정소현의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상태창을 불러냈다.

플레이어명 : 방랑하는 구도자

LV.79

특성 : 관철하는 아귀

클래스 : 용사

체력 : 790

근력 : 685

민첩 : 525

마력 : 850

스킬 : [멸혼의 불꽃 lv.3], [기사회생 lv.4], [불굴의 의지-on]

스킬은 모두 정상적으로 사용 가능하고, 내 비장의 수단인 ‘용사를 기리는 망토’의 사용 시간도 남아 있다.

3차에서는 대개 보스 몬스터가 출현하고, 2차의 몬스터 웨이브를 보면 보스 몬스터의 수준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겪었던 던전 브레이크처럼.

그때는 3차에서 S급의 리치가 출현했었지.

그때와 난이도가 아주 차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이번 보스 몬스터도 S급일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다만,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내게 쓸 수 있는 패가 아주 많았다.

일단 상대가 마족인 만큼 내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좋았어.”

상황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페이스대로라면 할 만할 것 같다.

나는 그렇게 가열차게 희망 회로를 돌렸다.

- 3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1 : 00 : 00

- 3차 몬스터 웨이브에는 ‘보스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 보스 몬스터가 해당 구역을 벗어나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분 후.

“X발.”

나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저 새끼가 여기에서 왜 나와.

그리고 나를 인식한 개암빛 아몬드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졌다.

뱀처럼 두 쪽으로 갈라진 혀가 입술을 훑는 것이 보였다.

“아니, 이게 무슨 행운이람.”

- 보스 몬스터와 조우하였습니다.

- S급 몬스터 : 욕망하는 화염

릴리스.

여기서 최악의 패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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