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97화
- 님페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지금 갈 테니까!”
그렇게 외치며 정소현을 향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려던 순간이었다.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릴리스가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나의 수족들이여! 용사를 공격해라!”
“이 X같은 새끼가!”
반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릴리스의 그 말과 함께 백록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모든 마물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제각기 피에 미쳐 날뛰던 짐승들은 왕의 명령을 충직하게 받들었다.
거대한 바실리스크가 허공에 떠오른 나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고, 코끼리 마수는 코에 다른 악마들을 휘감아 나를 조준해 던져 버렸다.
물론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악(惡) 속성의 몬스터에게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내 파트너가 가로지르는 자리마다 휘황찬란한 빛이 터졌다.
본 능력치를 되찾은 만큼 악마들이 아무리 날뛰어 봤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길게 늘어진 검신이 쓸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악마들이 재로 화해 갔다.
하지만, 성검의 검신을 아무리 길게 늘려 휘둘러도 숫자의 차이는 절대적이었다.
정소현을 향해 달려가는 길에는 족히 수십 마리에 달하는 코카트리스가 한꺼번에 달려들고, 검을 휘둘러 정화하려는 순간에 바실리스크의 꼬리가 휘둘러진다. 꼬리를 피하려 하면 코끼리 마수가 던지는 악마가 화살처럼 날아왔다.
“아하하하! 잘도 피하는구나.”
그 모든 연계를 지휘하는 것은 물론, 릴리스였다.
이제까지 여유를 부리던 릴리스가 드디어 직접 부하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릴리스 본인도 공격의 손을 늦추지 않았다.
설령 저 모든 악마들의 방해 공작을 뚫고 빈틈이 생긴다고 한들 그때마다 릴리스의 마법이 등 뒤를 노렸다.
퍼펑!
공중에서 폭발이 일었다. 나는 릴리스가 쏘아 보낸 수십 개의 불화살을 소멸시키며 이를 갈았다.
정소현의 상태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악마들을 처리하며 릴리스의 공격을 맞받아치느라 그조차 여의치가 않았다.
그저 클리어 실패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는 걸로 보아 아직 죽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겁한 새끼!”
릴리스가 날아드는 검신을 피하며 샐쭉 웃었다.
“용사의 분노와 절망은 칭찬이지. 악마는 인간과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존재가 아니란다. 그저 미혹하고, 홀리고, 환몽에 끌어들이지. 그렇게 악을 세상에 퍼트리는 거야.”
“헛소리 집어치워!”
성검이 빛을 발할 때마다 검을 마주하는 릴리스의 손톱이, 손가락이, 뼈가 날아가 난도질되고 있었으나 릴리스는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내게도 릴리스의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검을 든 것이 아니었다.
이런 빈틈을 허용한 나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기적은 무슨. 내가 잠시 미치기라도 했나?
너무 빠르게 정소현이 청룡과 접촉해 저 상황을 벗어났으리라 믿어 버리고 말았다.
웃긴 일이었다. 릴리스의 말마따나 이 내가 기적을 믿었다는 게.
정소현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을 때 진작 깨달았어야 했다.
청룡과 접촉해 정소현이 탈출에 성공하는 것보다, 릴리스가 정소현을 확보해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망할, 망할, 망할!’
그랬더라면 정소현이 저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 스스로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비켜!”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는 모조리 눈앞의 악마들에게로 쏟아졌다.
하지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의 숫자는 잔혹할 정도로 빠르게 줄어가고 있었다.
- 용사를 기리는 망토 활성화 시간 00:05:52
“인간들은 운명을 잔혹하다고 표현하더구나. 그거야말로 웃기지 않니?”
그렇게 말하는 사이, 마침내 릴리스의 한쪽 손가락이 전부 날아갔다.
그럼에도 릴리스는 즐거운 듯 나를 상대했다.
“실은 그 모든 것은 너희들이 차곡차곡 쌓아 온 인과의 결과물인데 말이야.”
릴리스의 헛소리를 귀에 담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괴물들의 아우성에 묻혀 들릴 리 없는 인간의 고통이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백록담 위를 훑는 릴리스의 눈에 잠시 경탄이 어렸다.
“정말 대단해. 내 수하의 절반이 뒈져 버렸네.”
그 말대로였다.
내가 검을 휘둘러 대며 미친 듯이 날뛴 덕분에 악마의 숫자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소현의 곁까지 도달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악마가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심지어 상대가 그걸 알고 있기에 더더욱 불리했다.
“‘그걸’ 사용한 지 5분이나 지났나?”
릴리스의 시선은 내 어깨에 두른 망토에 적나라하게 꽂혀 있었다.
릴리스가 아이템에 대해 알아차리는 건 당연했다. 시스템 권한마저 참견할 수 있는 악마가 아이템에 대해 모를 리 없으니까.
그래서 되도록 늦게 이 아이템을 꺼낸 것이기도 했는데,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쯤 되는 아이템이라면 활성화 시간에도 제한이 있을 테고. 기껏해야 몇 분이나 더 남았겠군.”
- 용사를 기리는 망토 활성화 시간 00:04:12
소름 돋게 정확한 추측이었다.
릴리스는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쪽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그래, 화풀이는 슬슬 끝났나?”
“겨우 이딴 걸로 될 것 같아?”
그 여유로운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릴리스의 관자놀이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악마가 빙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더 날뛰겠다면 저 여자의 숨통을 확실히 끊도록 하지.”
릴리스가 제 목을 찍 긋는 시늉을 했다.
나는 검을 멈춘 채 릴리스를 노려보았다.
- 3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05:35
……과연, 이렇게 나온다 이건가.
릴리스는 슬슬 이 승부를 결론지을 때가 왔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성검을 버려.”
“어차피 항복해 봤자 정소현도 나도 죽일 셈일 텐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나는 그렇게 욕심 많은 악마가 아니란다. 내 성에 장식할 아름다운 것은 하나로 충분해. 언약을 해도 좋아.”
악마의 손가락 끝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네가 내 손에 들어오겠다면 저 여자는 살려 주마.”
- 욕망하는 화염이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에게 내기를 제시하였습니다.
“어때? 제법 공평한 조건 아니야?”
하……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뚫린 입이라고 마음대로 지껄이는구나, 릴리스. 내가 겨우 이깟 일에 내 목숨을 값싸게 팔아넘길 인간인 것 같아?”
“값싸다니, 농담이겠지? 네 목숨의 값어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란다. 널 가지기 위해 내 금쪽같은 수하들을 절반이나 날리고, 내 몸의 반쪽도 못 쓰게 되었잖니.”
릴리스가 너덜너덜한 자신의 손을 보이며 소리 높여 웃었다. 두 팔을 벌린 모습은 상처투성이였으나 승자처럼 보였다.
“물론 나야 네가 내기를 받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어. 내기에 응하지 않겠다면 어디, 아까 전처럼 나를 베어 보렴. 성스러운 검으로 내 몸을 기꺼이 난도질해 보려무나.”
“…….”
“아하하하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악마의 웃음소리가 쨍하게 울렸다.
“그래, 입으로는 뭐라고 지껄여도 결국에는 내 목을 베지 못하는 것이 너라는 인간이지. 숭고함이란 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이가 절로 갈렸다.
악마의 말은 모두 틀렸다. 숭고함 따위 내 알 바가 아니었다.
“…….”
나는 냉정하게 현재의 상황을 가늠해 보았다.
애초에 내가 정소현의 목숨을 지키려고 한 것은 이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였다.
이 던전을 클리어해서 천부인 중 하나인 청동검을 손에 넣고, 한국과 마계로 이어지는 던전을 봉인하는 게 내 목표였다.
그런데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내가 죽어 버리면 아무 소용도 없지 않나.
여기서 릴리스에게 굴복하면 나도 죽고, 내가 한국에 저질러 놓은 사고도 수습할 사람이 없다. 정소현 하나 죽는 것보다 그쪽이 더 심각한 인명 피해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한마디로 받는 게 호구인 내기였다.
이걸 받으라니, 내가 미쳤냐?
정소현이 붙잡힌 시점에서 이미 내가 졌다. 그리고 이미 진 싸움이라면 차라리 릴리스의 목이라도 한 번 따는 게 내 정신 건강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
금속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내가 떨어트린 성검이 볼품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멍청한 호구 새끼.”
스스로 내뱉은 욕설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냥 죽자, 죽어.
검을 놓은 내 모습을 본 릴리스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맺혔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 용사를 기리는 망토 활성화 시간 00:01:22
- 3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02:05
이 망할 던전이 끝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정소현의 모습을 확인하려 했다. 도와주겠다고 당당히 나선 주제에 이렇게 실패했으니 무어라 할 말도 없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어?”
내가 이상한 것을 ‘한 번 더’ 알아차린 것은 그때였다.
동시에 무언가가 팔과 복부를 스쳤다. 아릿한 고통이 인지보다 느리게 찾아왔다.
- ‘앙겔루스의 가호’가 당신의 정신을 방어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방어 성공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 걸려 있던 광경이 싹 바뀌었다.
맙소사.
내가 상황을 채 깨닫기도 전에 릴리스의 주먹이 내 뺨을 갈겼다.
“윽!”
둔중한 일격에 몸이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땅바닥을 몇 번 구르는 동안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빨을 드러낸 마물과, 웃음기를 싹 걷어 없앤 릴리스의 얼굴뿐이었다.
힘없이 나무에 걸려 있던 정소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릴리스에게 얻어맞은 탓에, 나가떨어져서 약간 떨어진 곳에 놓인 내 파트너가 온몸을 분노에 떨며 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의 언어는 아니되 해석 가능한 울음이었다.
아마도 ‘이제 알았냐, 멍청아?’ 정도겠지.
시선을 내리자 그제야 앙겔루스의 가호가 띄웠던 숱한 방어 시도 실패 메시지가 보였다.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망할 정신계 마법!”
뻔한 일이었다. 멍청하기는!
그나마 앙겔루스의 가호가 있었기에 몇 분 만에 환상에서 벗어난 게 다행이었다.
갑옷마저 없었더라면 저 악마의 현혹에서 평생 동안 벗어날 수 없었을 테니까.
물론 그 몇 분이 지금 상황에서 매우 치명적이기는 했지만.
“알리시아가 있었어야 하는데!”
릴리스가 저럴 걸 예상했어야 하는데, 막상 누군가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니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이럴 때 알리시아나 하다못해 루카스라도 있었다면 내 뺨이라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해 줬을 텐데.
지금만큼 나 혼자라는 게 사무칠 때가 없었다.
퍽!
릴리스가 발로 내 복부를 걷어차는 것을 피하지 못하고 한 번 더 얻어맞았다.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려고 바닥에 몸을 굴리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하하하하!”
어이가 없다.
이렇게까지 내 허를 완벽하게 찌른 릴리스도, 릴리스의 수작에 당해 버린 나 자신도.
그러나 동시에 분명해진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거지.’
내가 끝까지 믿지 못한 기적은 사실은 진작 일어났던 것이다.
정소현이 정말로 이 지옥에서 탈출했다.
나는 진심으로 정소현에게 일어난 기적에 감사했다.
- 용사를 기리는 망토의 활성화 시간이 종료됩니다.
- 능력치가 갱신됩니다. 상태창을 확인하십시오.
그러나 더 이상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용사를 기리는 망토’의 활성화 시간이 종료되었다.
상태창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당장 릴리스가 뻗어 오는 주먹을 피하는 동작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방금 전과는 달리 여유 없이 한 끗 차이로 공격을 피하자 릴리스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릴리스가 내 아이템의 활성화 시간이 끝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걸 나도 동시에 알았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탓!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검을 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등이 릴리스의 공격에 완전히 노출되겠지만 감수해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등 뒤 전체를 뒤덮는 고통이 잇따랐다.
“컥!”
날카로운 것이 등의 살갗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피가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공격을 감수하면서까지 검을 향해 뛰었는데, 아직도 검을 잡아채는 데까지 두 발 정도의 거리가 모자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다음 발을 떼는 순간에, 저 검을 잡고 반격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끝이다.
‘할 수 있어.’
다음 순간, 내 손가락 끝이 검자루를 아슬아슬하게 긁었다.
‘닿았다!’
이제 이 검자루를 쥐고 등 뒤를 덮치는 릴리스의 손을 베면 된다.
마력 핵의 위치는 아까 전 릴리스를 공격할 때 이미 파악했다.
그러니 아주 조금, 조금의 틈이라도 있다면 이 검을 쥐고 릴리스를 끝장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검에 손이 닿는 동시에 직감했다.
‘여기까진가.’
등 뒤를 덮쳐 오는 손의 거리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끝내 검을 휘두르지 못할 것이다.
릴리스가 나보다 빨랐다. 내가 검을 잡기 전에 릴리스가 먼저 내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잡아챌 것이다.
‘기사회생’은 같은 필드에서 두 번 사용할 수 없으므로 이번에야말로 죽는다.
내게 부족한 시간은 단 1초.
겨우 그 정도의 시간이 부족했으나 그건 나 혼자서는 절대 극복하지 못할 간극이었다.
그래도,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릴리스의 손이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꼴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나도 릴리스의 머리를 벤 후에 뒈질 거다.
절대로 포기 안 해.
그렇게 다짐하며 마지막까지 손을 뻗었을 때.
툭.
누군가 내 등을 세게 밀었다.
그렇게 등을 떠밀려서, 타인의 힘에 의해 한 발자국을 더 내디뎠다.
덕분에 절대로 쥐어지지 않을 것 같던 검자루가 손안에 감겨들었다.
거짓말 같은 순간이었다.
내 손에 들어온 에이펙스의 성검은 기다렸다는 듯 눈부신 흰빛을 내뿜었다.
그렇게 검을 든 채로 뒤를 돌아본 순간에.
나는 릴리스의 손이 육체를 뚫고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
‘지켜보았다.’
“허, 억.”
숨이 내쉬어졌다가 들이켜는 그 짧은 순간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깜짝 놀라 굳어 버린 내 몸을 정소현의 팔이 한 번 더 뒤로 밀쳤다.
강하지도, 단련되지도 않은 그 힘에 나는 한 발자국 또 물러서고야 말았다.
너무 놀랐기 때문에, 혹은 정소현의 그 팔에 혼신의 힘이 담겨 있어서.
그러나 둘 중 아무것도 변명이 되지 않았다.
그 릴리스조차 깜짝 놀란 듯 정소현의 배를 꿰뚫은 제 손을 빼지도 않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일순간의 적막을, 정소현이 고통에 악을 쓰며 와장창 깨트렸다.
“강예나아아아아아!”
불가능해 보이던 간극을 메운 그 절규에 정신을 차렸다.
내뻗은 검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고통에 몸을 수그린 정소현의 머리 위로 성검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성검이 인간에게 덜미를 잡힌 악마의 오른쪽 안구를 꿰뚫었다.
파삭.
검 끝에 마력 핵이 깨어지는 감각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