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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99화 (10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99화

제목 : 한라산 엑스칼리버 뽑힘(실시간)

내용:

방금 시스템 전체 공지 뜬 거 봤냐?

‘방랑하는 구도자’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메시지 딱 뜨는데 솔직히 이제 플레이어명 좀 멋있어 보임

-작성자 나이가 몇인데 저게 멋지냐

-나는 내가 헛거 보는 줄 알았는데 실화야?

└나도 내가 헛거 보는 줄 알았는데 지금 속보 뜬다

-미쳤다;;;

-이게 무슨 뜬금 개소리냐

-방금 정부측 발표도 뜸 한라산 던전 클리어 확인됐고 현재 조사단 파견 헬기 띄움

└미쳤다 찐이네

└아니 근데 그럼 정부 측은 방구 정체 안다는 거임? 조사단 파견하는 거면;;;

└한라산에 파견한다는 거지 맥락맹아

└솔직히 모를 수는 없을 듯 정부는 알겠지

-그럼 드뎌 무슨 능력인지 발표되는 거임?

└졸라 기대된다 천부인 이름 걸었으면 솔직히 바다 정도는 갈라 줘야함

└그럼 제발 동해에 바닷길 막고 있는 몬스터 좀 없애줬으면 좋겠다 어민들 죽어요

└=3는 자기 정체도 안 밝히는데 파마검이 무슨 무기인지 잘도 말하겠다……

└ㅇㅈ 나 같아도 안말함 ㅋ세상 어떻게 될 줄 알고……

└요새 세상이 어떤데?

└길드간 충돌 장난 없잖아 여의도 던전땜에…… 근데 랭킹까지 매겨지니까 더 지랄남

└이거 나도 들음 요새 여의도 국회 의원들이 출근할때마다 보좌관들한테 개지랄한대 헌터들 싸움에 휘말려서 죽을까 봐

└왜 애꿎은 보좌관들한테 난리람

└여튼 =3가 저 개판에 끼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지않? 밝힐 건 밝혀야지

└그런데 아까부터 =3가 무슨 뜻임?

└랭1 써방명

└내가 =3면 니들부터 죽였다

-이쯤되면 파마검도 그렇고 랭1 정체 알아서 밝여야 하는 거 아님? 공익적으로

└이건 인정…… 국가적으로 무슨 조취 취해야지

└조취(X)조치(O)

└정부야 알고 있겠지 일반인이 개인 정보를 굳이 국민한테까지 까야함?

└랭커인 헌터들이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음? S급 헌터들은 던전 공략 의무도 있는데

└그런 거 강요하다 외국으로 튀면 대한민국만 손해…… 그래서 이제까지 능력치 자진신고제 채택했던거임

제목 : 헌터협회 실시간 기자 회견 하는데 실시간으로 이야기할사람

내용 : 냉무

-ㅁㅊ 실시간 기자 회견 ㅋㅋㅋㅋ

-모나미 나옴?

└안 나옴 길드장만 다섯 명 모임

-대표로 김성연이 이야기한다

-영원 길드장 요새 언론에 얼굴 자주 비추네

-나 지금 회사라 못보는데 누가 내용 요약좀

-지금 들리는 대로 적는 중임 [헌터 협회에 등록된 대한민국의 146개 길드는 대한민국 던전 공략의 최전선에 선 동료로서 현 랭킹 1위 플레이어인 ‘방랑하는 구도자’가 공익을 도외시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ㄴㅇㄱ

└쟤넨 대체 뭘 어쩌라고 저런 말을 하는 거임?

└=3보고 정체 밝히고 전면에 나서라는 거ㅇㅇ

└현피각 떴네

└말은 전체 길드협회인데 협회장이 영원길드장이잖아 영원길드가 직접 =3랑 붙겠다는 거?

└영원길드 입장에서야 대표 간판인 모나미가 2위로 밀렸으니 꼴받을 만함

-여윽시 모나미 얼굴값 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아직 모르지 길드장 독단일지도?

└하긴 김성연도 한 성깔한다는 소문이

-근데 랭킹 1위가 꺼릴 거 없으면 굳이 안 나서는 것도 이상하긴 함 엥간하면 국민영웅취급해 줄텐데 모나미랑 겨수님 보셈

└엥간하지 않을 수도

└꺼리는 게 있을 수도

-여튼 =3가 어떻게 나올지 팝콘각ㅋㅋㅋㅋㅋ

-하여간 헌터들끼리 충돌 심해지면 일반인 입장에선 손핸데…… 불안불안하다

*   *   *

화려한 장구 장단이 귀를 사정없이 때렸다.

굿판 주위로 둘러선 사람들 중 몇몇이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음악이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들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 커다란 소리가 귀에 꽂혀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당이 굿을 치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대강 알고 있었을 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악사가 흥을 돋우는 장단을 출 줄 알았더라면 귀마개라도 가지고 올 걸 그랬다.

물론 저 굿판 한가운데서 청동검을 가지고 선 양태원을 보면 이런 생각은 터무니없이 불경한 것 같기도 하지만.

무지개만큼이나 화려한 빛무리를 지닌 검이 양태원의 손에서 예술적인 곡선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검무를 추는 양태원의 앞에는 마계로 통하는 던전의 입구가 있었다.

마름모꼴의 문양이 떠오른 바로 밑의 문둥바위에는 내 피로 쓴 부적이 덕지덕지 붙었고.

어제 양태원이 굿을 준비하며 저기다 붙인 것이었다. 양태원은 바위에 꼼꼼히 부적을 붙이며 이렇게 설명했다.

“본래라면 봉인할 물건 위에 부적을 붙여야 하는데, 지옥으로 통하는 입구는 무형의 것이라서 이렇게 부적을 붙일 수밖에 없어요.”

“그럼 효과가 떨어지는 건 아니고?”

“직접 붙이는 것보다 못하기는 하져. 성공 확률도 보통은 떨어지고.”

“……이제 와서 불가능하다고만 하지 마라. 그럼 나 진짜 울 거니까.”

“에이, 설마요. 제가 한국에서 제일 센 무당이라니까요?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여기 있는 문둥바위가 채워 줄 거고.”

내 피로 쓰인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바위는 음산해 보이기만 했는데, 양태원은 생각이 다른 건지 눈부신 것을 보듯 바위를 쓰다듬었다.

“이 바위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된 이야기를 지녔거든요. 그렇게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믿음이 되고요. 그 믿음이 우리의 세계를 지켜 줄 거예요.”

턱도 없는 이야기였으나 청룡을 곁에 둔 소년이 이야기하니 그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묘한 현실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제 겪을 만큼 겪어 본 나는 그냥 긍정했다.

양태원이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지금, 검무를 추는 양태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의구심 반, 호기심 반이었다.

“저게 진짜 가능한 거야?”

“그야 모르지. 그래도 해 봐서 나쁠 건 없으니까.”

“저게 실패하면 다음 던전 브레이크는…….”

지금 양태원을 지켜보며 저들끼리 속삭이는 자들은 정부에서 파견된 조사단이다.

나는 청동검을 손에 넣은 후 곧바로 최민혁을 통해 정부에 연락을 넣었다.

이 청동검을 이용해 양태원이 마계로 이어지는 던전을 봉인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달한 것이다.

물론 정부 측에서는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의심하긴 했지만, 시스템이 내가 백록담 던전을 클리어한 사실을 전체 공지해 버린 덕분에 한번 시도해 보자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그만큼 지금 양태원의 손에 들려 있는 ‘청동검’의 위력은 컸다.

덕분에 내가 청동검을 손에 넣은 지 이틀 만에 이 수리산 도립 공원에 역대급 규모의 굿판이 준비된 것이다.

양태원의 손에 들린 청동검이 화려한 빛무리를 품고 휘둘러졌다.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의 눈에도 그 순간만큼은 경탄이 어렸다.

저게 진짜 우리나라 건국 설화에 나오는 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시스템상 거창한 이름이 붙은 아이템일수록 위력이 강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이미 입증된 바였다.

‘뭐, 성공하겠지.’

실패할 요소가 전혀 없었다. 양태원의 도력은 완벽했고, 옆에는 청룡이 붙어 있었으며, 청동검까지 있었으니까.

피도 이미 제공했겠다, 내가 여기서 더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제사를 조금 먼 곳에서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정부에서 사람이 모인다는 말에 시선이 귀찮아 ‘은의 장막’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나를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통 통제가 이루어진 덕분에 산에서 빠져나가는 길은 매우 한산했다.

나는 차도, 사람도 없는 넓은 도로를 걸어가다가 굿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즈음에 적당히 멈추어 섰다.

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겨울 날씨였다.

“춥다.”

도로변의 가드레일에 적당히 기대어 서자 바람이 사정없이 뺨을 때렸다. 숨을 뱉으니 흰 바람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 모양을 보며 한참 고민하던 나는 결국 품속에서 그것을 꺼내 들었다.

흰 곽에 무시무시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담뱃갑에 그려진 끔찍한 그림과 글씨를 빤히 노려보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이쪽 담배는 피워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피우지 않을 예정이었다.

담배란 건 정말 백해무익하다. 한 번 피우기 시작하면 전투할 때 폐활량에 무리가 오는 게 느껴질 정도고, 그 약간의 무리가 전장에서는 승패를 가를 수도 있다.

그렇게 뻔히 알면서도 왜 공항 편의점에 기어 들어가 이걸 달라고 했냐고 묻는다면, 그냥 내가 멍청해서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망할.”

사실 전투 운운은 루카스가 내게 잔소리하던 패턴인데, 그때마다 그건 네가 압도적으로 강하질 못하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이나 하는 거라며 싸우곤 했었다.

어쨌거나 결국 끊기는 끊었다만, 지금은 잔소리할 놈도 없는데 왜 그때 그 잔소리만 생각나는지. 담배라도 피우지 않고서는 못 견딜 기분인데, 애들이랑 한 약속을 생각하니 차마 피우지도 못하겠다.

그렇지만 마음이 영 심란했다.

그저께 던전을 클리어한 후 나는 청룡과 짧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물론 굿을 준비한다고 할 일이 많아 새벽까지 난리를 피우던 양태원이 잠든 후였다.

나를 내려다보는 온화한 눈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15년 전쯤 청룡이 내게 취했던 태도와 얼마나 극명한 차이인지 새삼 실감이 났다.

그러니까 정말로, 청룡은 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던전 속 재구성된 무대가 아니라,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과거’로 돌아간 게 맞단 말이지…… 이게 말이 돼? 던전을 통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 이미 일어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현실적인 말이기는 하다만 그 말을 뱉은 게 청룡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라 그런지, 전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툭 내뱉었다.

“과거로 갈 수 있다는데 ‘이미 일어난 것’이 무슨 소용이야?”

그래,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이미 한 번 간 거, 두 번 갈 수도 있겠지.”

내가 현재로 돌아와서 확인한 것은 정소현의 생존 여부였다.

그리고 알았다.

정소현은 죽었다.

한라산에서 내려와 양태원의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집에서 시간의 흔적뿐 아니라…… 저번에는 그저 무심히 스쳤던 여러 증거를 발견했다.

내가 보지도 않는 것 같은 TV 옆 탁자에 놓여 있는 액자를 집어 들자, 양태원이 서울로 떠날 짐을 싸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대꾸했다.

“아, 그거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사진이에요. 저랑 닮았죠?”

나도 안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보다도 어려 보이는 정소현이 한 남자와 갓난아기를 안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저는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이모 말이 크면 클수록 엄마랑 더 닮아 간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빠 유전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던데.”

“……그래.”

나는 액자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양태원이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기에 더 이상 쳐다볼 수도 없었다.

양태원에게는 아직 내가 그 애의 어머니를 만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체 뭐라고 말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백록의 시험이라는 게 과거 시점의 대한민국에서 돌발성 던브를 막는 거였고, 네 어머니는 시스템이 열리기 훨씬 전에도 이 세계를 구하려고 애쓰고 있었으며, 나는 네 어머니를 구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실패했다고?

그래,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이 실패를 만회하고, 그러고 나서 말하더라도 늦지 않다.

그래서 나는 청룡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부탁했다.

“다시 한번 과거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디 알려 줘.”

백록담의 백록은 내게 ‘청동검’을 넘겨준 뒤 호수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그의 영역을 침범해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대로 새로운 시험이 생성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청룡이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단지 던전이 제시한 시간 내에서만 정소현을 살리는 게 아니라, 그 이후로도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이번에 내가 저지른 실패를 만회할 수 있었다.

- 불가능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는 고개를 들고 청룡을 올려다보았다.

“왜? 어째서?”

- 백록의 시험은 특별하지. 그의 시험은 검의 주인 될 자의 자격을 시험하는 것이니 한 번 성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두 번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어.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대체 내가 뭘 성공했다는 거야? 정소현은 죽었고, 나는 그걸 바꿀 수 없었는데!”

그렇게 토해 내면서도 불합리한 소리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백록이 내건 시험에는 분명 통과했다. 백록이 지정한 시간까지 정소현이 살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정소현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 그래, 그 애의 죽음은 누구도 바꿀 수 없었어. 인간의 천명은 바꿀 수 없으니까.

“…….”

- 그러나 네 덕분에 소현이는 아주 조금 더 살았단다.

나는 멍청하게 반문했다.

“……뭐?”

- 네가 돌아가고 나서, 인간의 시간으로 1년 즈음을 더 살았거든.

입을 벌리고 멍하니 쳐다보자 청룡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잠시 청룡이 눈물을 떨구는 것은 아닐지 의심했으나 볼 수는 없었다.

- 기적 같은 시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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