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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03화 (10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03화

뜻밖의 정보에 들고 있던 젓가락이 주먹 안에서 휘어졌다. 솔방울이 놀란 기색으로 나와 젓가락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약간 이성을 되찾은 후 말없이 구부러진 쇠젓가락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솔방울이 한층 더 놀랐다.

“와, 와…… 근력을 많이 올리셨나 봐요. 퇴원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셈이죠.”

나는 젓가락을 상 위에 올리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솔방울이 한 말의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5년 전에 나를 봤다고?’

내 체감상으로는 10년 전, 한국의 시간상으로는 5년 전.

나는 내가 도대체 어떻게 타르토스로 이동하게 되었는지 도통 기억하지를 못했다.

마지막 기억은 편의점 봉투를 달랑거리며 호수 공원 벤치를 찾아 헤매던 기억뿐이었다.

일산 호수 공원에 다시 돌아가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당분간은 그때 기억을 찾는 걸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전혀 뜻밖의 곳에서 5년 전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심지어 내가 입원해 있던 병원의 간호사가 내 행적을 알고 있었다니.

기막힌 우연이었다.

‘우연인가?’

다년간의 경험 때문에 그런 의심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눈망울이 순한 송아지 같다고 해도 외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솔방울이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타르토스의 레나라면 모를까, 한국에서의 나는 대외적으로는 아직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물론 이것도 솔방울이 내가 랭킹 1위의 헌터라는 걸 모른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으로 향할 뻔한 손을 내려놓고서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왜 그런 인연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이제까지 우리, 대화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닌데.”

만약 솔방울이 그럴 의지만 있었더라면 강원도 시내에서 나를 마주쳤을 때, 아니면 서울의 병원에서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오늘에서야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지 궁금했다.

그러자 솔방울이 다소 곤란해하는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음…… 사실 말씀드리는 걸 망설이기는 했어요.”

“왜죠?”

“제가 예나 씨를 발견했을 때, 이미 예나 씨는 쓰러져서 의식 불명인 상태였거든요.”

“제가 쓰러져 있었다고요?”

“네, 그러니 예나 씨는 저를 모르는데 저만 일방적으로 아는 상황이라 말해 보았자 뭐 하나, 싶었거든요.”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다, 그렇게 이야기하려다 관두었다.

나 스스로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슨 애송이도 아니고, 이렇게 날을 세울 필요가 없는데.

타르토스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커다란 목표 앞에서는 다소 사소해서 지나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스스로의 기억에 공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게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 말을 들어 보자.’

설령 그가 무언가 목적을 갖고 접근해 정보를 푼다고 할지라도, 일단 내 손에 아무런 패도 없다면 상대방의 말을 들어 봐야 했다.

그 후 얻어 낸 정보에서 허와 실, 득과 손을 가르는 것이 내 몫이다.

나는 약간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뜻밖이긴 하네요. 전 솔직히 그때 당시의 상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절 어디서 발견하셨는데요?”

“일산 호수 공원이었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던 장소와 일치했다.

솔방울은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는지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상황이 끔찍했죠. 시스템 메시지란 것부터 생소한데, 던전이니 뭐니…… 저는 상황에 그냥 휩쓸리기만 했어요. 탈출할 때까지 제대로 된 도움이 되지도 못했고…….”

“도움이요?”

“아, 던전 내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합류할 수 있었거든요. 사실 그 사람들이 아니면 저는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솔방울은 그렇게만 말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솔방울이 말하지 않은 사실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일산 호수 공원에서 던전이 발생했고, 솔방울은 거기에 휘말렸다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 정신을 잃은 내가 섞여 있었고……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걸 보면, 그 무리는 무사히 던전을 클리어하고 살아남았다.

즉, 의식 불명인 나를 누군가가 살렸다.

“말이 돼?”

“예?”

“말이 되냐고요. 내가 던전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다면서…… 요.”

나는 식탁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똑, 똑.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솔방울의 말을 듣고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 제일가는 의문점은 바로 이거였다.

“내가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한국에서의 내 몸이 5년간 병상에 누워 있었다니까, 무슨 사고가 났으리라는 건 짐작하긴 했다.

하지만 설마 애초부터 던전 안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 그런 상황이라면 높은 확률로 나는 이미 죽었을 테니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혼란스러웠을 텐데, 의식 불명에 사지를 가누지 못하는 나를 데리고 던전을 탈출했다고요?”

나는 딱히 인류의 선의나 악의 중 하나를 특별히 맹신하는 건 아니었다. 후자를 더욱더 많이 겪었지만 그렇다고 전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건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였다.

물론 던전이라는 게 무엇인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어떤 것인지 경험을 쌓은 지금의 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른 대다수의 헌터들도.

하지만 그때는 아무런 경험도 없을, 명실상부한 처음이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의식 불명인 인간을 데리고 멀쩡하게 탈출했다고?

내 얼떨떨한 표정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솔방울이 잠시 즐거운 낯을 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죠. 아직도 기사가 가끔 뜨더라고요. 호수 공원의 기적, 장장 한 달여간의 생존, 엘리트 헌터들의 첫 만남 같은 타이틀로.”

“……잠깐만. 엘리트 헌터라고요?”

나는 그 익숙지 않은 단어에서 약간의 불안감과, 어쩐지 다음에 올 말을 예감하며 눈을 찌푸렸다.

솔방울이 발랄한 대답을 내놓았다.

“김숙자 교수님, 김성연 길드장님, 한율 씨를 비롯해서 면면들이 굉장했어요. 그때는 일반인이었지만 다들 엄청난 적응력을 보였죠. 덕분에 저 같은 사람들도 살았고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그중에서 이우연 씨가 제일이긴 했지만요.”

*   *   *

그 후로 솔방울은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시려나? 뉴스에 보면 자주 나오는 사람들이에요. 특히 이우연 씨는 랭킹 2위더라고요. 정말 대단하죠…….

“……대단하긴 하네.”

이제껏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한 걸 보면 말이야.

나는 솔방울과 헤어지고 나서 약간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몇 가지 대응되는 검색어로 기사를 찾아보았다.

일단 대충 훑어만 보았지만, 언뜻 보기에도 기사의 내용은 솔방울이 말한 것과 일치했다.

5년 전, 한국에 던전이 무작위로 열렸던 시기.

대부분의 던전들이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사이에 결판이 났다.

살든, 죽든 간에.

그런데 호수 공원에 나타난 던전은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생존자들이 탈출할 수 있었다.

당시 공원에 있었던 걸로 추정되는 120명 중 대략 30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고 해당 던전을 SS급으로 분류했는데, 등급을 생각하면 놀라운 생존률이었다.

물론 클리어하지는 못했다.

기사에 따르면 히든 클리어 조건을 만족시켜 탈출했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나 거기에 의식을 잃은 나까지 있었다고 하니까.

대체 어떤 몬스터가 등장했기에 SS급으로 분류된 건지, 또 소위 엘리트 헌터를 제외한 생존자에 대한 기사는 더 없는지 자세한 내용을 좀 더 찾아보고 싶었지만, 어느새 이우연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일단 다시 강남 헌터 스토어 앞으로 향했다.

물론 ‘은의 장막’을 착용한 채였다.

헌터 스토어 앞의 빈 벤치에 잠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솔방울을 우연히 만나 이런 정보를 얻은 건 분명히 행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 기억의 공백에 대해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정보가 넝쿨째 들어온 셈이니까.

덕분에 계속해서 의문이었던 한 가지 사실이 명명백백해지기도 했다.

‘근데 이게 왠지 영…… 애매한 기분이란 말이지.’

얼마 있지 않아 나는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깨달았다.

이건 불쾌감이었다.

지금의 이 상황은, 우연이 겹쳐 만들어졌다기에는 과했다.

나는 던전에 휘말린 채 정신을 잃었다. 본래라면 거기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던전에 함께 휘말린 사람들이 모두 헌터로서 특출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인 데다, 심지어 그들은 모두 선량해서 의식 불명의, 초면인 사람 하나를 끝까지 짊어진 채 아득바득 살아 나왔다.

그저 행운이라고 부르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잘 짜인 우연이 아닌가.

다만 누군가 인위적으로 꾸몄다고 하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컸다.

애초에 던전이 터진 것부터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그러니까 즉, 답은 하나였다.

시스템이 나를 이용해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다.

그렇기에 교묘하고도 과장된 우연을 가장해 나를 살렸다.

‘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있었나?’

5년 전 나는 그냥 아무런 능력도 없는 초보에 불과했으니 시스템은 내 목숨을 구명할 필요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약간의 무력감이 덮쳐 오는 듯했다.

그저 행운이나 우연을 넘어서,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것이 굴러가고 있는 것 같은 감각.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그저 휩쓸려 가는 조각배나 다름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감각.

‘우리는 운명에 순응하는 존재예요.’

아리아드네는 자주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상념에 잠겨 있던 나를 깨운 건 핸드폰 진동이었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이번에야말로 이우연이었다.

“…….”

하고 싶은 말은 많다만 일단은 평범하게 대응하자.

약간의 고민 후 전화를 받자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경쾌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이제 한 블록 남았어. 스토어 앞 사거리에 나와 있을래?”

“차 몰고 왔어? 설마 그때 그 눈에 띄는 차는 아니겠지.”

나로서는 가볍게 농담을 한 셈이었다. 내게 가면까지 쓰고 오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눈에 띄지 않는 자동차를 골랐겠거니,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우연은 내 예상 밖의 말을 했다.

“나, 이래 봬도 검소하고 생활력이 강한 편이야. 오픈카를 깔별로 사는 허세에 가득 찬 짓은 백사현 같은 놈이나 하는 짓이지.”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나는 멀리서 신호등에 걸려 있는 차 한 대를 발견했다. 낯익은 번호판의 빨간색 스포츠카였다.

이우연이 장난스럽게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내 차는 이 한 대가 전부야. 빨간색이 마음에 안 들면 도색이라도 할까?”

나는 순식간에 마음을 정했다.

“그냥 목적지 알려 줘. 택시 타고 갈게.”

“에이,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소리야. 어차피 가는 길인데 그게 웬 돈 낭비래?”

내가 무어라 더 말할 겨를도 없이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대로변에 빨간색의 스포츠카가 부드럽게 멈추어 섰다.

물론 그것만으로 행인의 시선이 몰리지는 않았다. 강남에는 비싼 외제차가 흔치 않게 다니는 편이니까.

그렇지만 그 스포츠카 운전석에서 이우연이 내린 순간, 그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입을 벌렸다.

“이, 이우연이다!”

심지어 여긴 헌터 스토어에, 이우연 소속 길드인 영원 길드까지 인접해 있는 곳이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 대부분이 이우연을 알아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우연이 자신에게로 몰린 사람들의 시선에 빙긋 웃으며 짧게 손을 흔들어 주다가 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얼른 타, 자기야.”

……저게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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