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08화
“너무 늦은 거 아니야?”
차에 기대어 서서 기다리고 있던 이우연이 나를 보고 과장되게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
나는 그런 이우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숙자 교수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정말 이우연을 믿어도 되나?
“뭐야. 왜 그렇게 봐?”
이우연이 차에 타지 않는 나를 눈을 깜박이며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차에 탔다.
“됐다. 집에나 가자.”
“늦은 건 당신이거든.”
차에 올라탄 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우연은 처음에는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내 표정이 가라앉은 걸 알아차렸는지 따라서 침묵을 지켰다.
‘눈치도 빠르고.’
그래서 확실히 같이 있을 때 편하기는 했다.
물론 다소 까칠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상종하지 못할 정도로 못된 놈도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타인을 저버리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으로 저질러진 일에 책임을 질 줄도 알았다.
유령의 성 던전에서는 제법 도움을 받기도 했다. 보스 몹 앞에서 나를 구하러 온 것도 그렇고, 이우연과 이선 없이 던전을 공략하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이우연의 능력치는 현 대한민국에서 랭킹 2위의 업적을 쌓을 만큼 뛰어났다. 대규모 마법을 진언으로 구현 가능한 데다, 검사로서의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나마 걸리는 점이라면 성격이 좀 얄밉고 남들한테 공격적이라는 건데…… 이 정도야 개인적인 성격이니 넘어갈 만했다. 김숙자 교수의 말대로 나한테 나쁘게 대하는 것도 아니니까.
타르토스에서 이런 놈을 발견했다면 파티 화력이 부족할 때 분명히 써먹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 보면, 사실 김숙자의 말이 맞았다.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이우연에게 청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확실히 써먹을 구석이 많은 녀석이니까.
성격적인 면으로 보았을 때도 김숙자가 해 준 충고를 그대로 내게 해 줬을 법하고.
그래, 인정하자.
솔직히 오늘 솔방울 간호사를 만나 뜻밖의 정보를 듣지 않았다면 이우연에게 망설임 없이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것이다.
애초에 사실 이 건 때문에 이우연에게 만나자고 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 모종의 사정으로 ‘미공략 던전’을 찾아 공략해야 한다. 그래서 던전을 공략하려면 네 도움이 필요하다, 고도.
그런데 그러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는 지금 이우연이 의심스러웠다.
“……후.”
내가 한숨을 내쉬자 이우연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겨우 이런 걸 가지고 고민하느니 차라리 시원하게 물어보는 게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입을 여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혹시, 이우연이 정말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겼다면?
이성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수 공원에서의 일을 나에게 숨긴다고 한들 이우연에게 돌아갈 이득 따윈 없으니까.
그렇지만, 혹시, 설마.
그런 가능성이 종벌레처럼 무언가를 갉아먹고 있었다.
솔직히 이제까지 내가 이우연에게 어느 정도 의지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유령의 성 던전 안. 보스 몬스터 앞에서 내게 손을 뻗어 일으켜 세워 주던 이우연의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니 만일, 나를 속인 것이라면 이제껏 이우연을 인상 깊게 봤던 만큼 배신감으로 돌아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에게 무언가를 털어놓는 것도, 캐묻는 것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음, 정말 교수님이랑 무슨 일 있었어?”
한참 내 눈치를 살피던 이우연이 살살 말을 꺼냈다.
저렇게 운전하는 내내 조수석에 앉은 내 안색을 기민하게 살펴보는 게 모두 가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잘한다…… 뭐, 확실히.’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 이우연이 내게 잘하는 건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을 종합해 보면 누구에게나 저러는 타입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렇다고 목적도 없이 타인에게 호의를 흩뿌릴 타입도 아니다.
다만 그렇기에 이 별것 아닌 의심이 내 안의 위화감을 좀 더 크게 키우고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다. 이우연에게는 묘하게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그런 이우연이 나한테는 저렇게 입안의 혀처럼 구는 건 분명 무슨 이유가 있다…… 그런 생각도 존재했고.
뭐랄까, 내 도움을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사람처럼 굴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내 도움을 받으려는 이우연의 목적이 도저히 예상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 이우연이 나를 불러낸 목적은 미공략 던전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이제까지도 이우연은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에 묘한 집착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던전 클리어광이라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던전 클리어 자체에 승부욕을 느끼는 것이라면 최대 업적자가 누가 되느냐에 연연하기 마련인데 그런 집착이 없었으니까.
내가 랭킹 1위를 차지해도 별다른 적의를 보이지 않은 것부터가 그 증거였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우연이 도대체 ‘왜’ 던전 클리어에 집착하느냐, 인데…….
나는 이우연의 옆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매끈하게 깎아 놓은 듯한 얼굴에서는 그 어떤 결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나한테 이야기할 생각은 딱히 없어 보이지.’
역시, 이우연과의 관계는 이대로 유보하되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지금 저 녀석이 내게 상당한 호의를 보이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무언가 독자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상, 이우연의 목적과 내 목적이 달라진다면 언제든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우선순위는 분명했다.
“……별 이야기 안 했어.”
내가 한참 후에나 입을 열자 이우연의 얼굴에 약간 안도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까 걱정되잖아.”
“걱정은 무슨.”
그렇다고 척을 질 필요까지는 없다.
당장 여의도 던전만 해도 이우연과 함께 조사단에 편성될 테니, 앞으로도 어느 정도 괜찮은 관계를 구축하는 건 필수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 허탈해졌다.
‘대체…… 누가 가식적인 건지 모르겠네.’
어쩌면 진심일지도 모르는 상대방의 호의를 의심으로 해석하는 게 익숙해진 나 자신에게 약간의 탈력감이 느껴졌다.
그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이우연이 한층 편해진 기색으로 말문을 틔웠다.
“김숙자 교수님이, 지금 내가 소속이 없다 보니 이것저것 조언해 주시느라.”
“오, 조언이라. 무슨 조언? 어디 길드가 좋다고 추천이라도 하셨어? 김숙자 교수님 성격에 정부로 들어오라곤 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의외였다. 물론 사실이기는 했지만 이우연이 김숙자 교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리 친근한 사이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어?”
“본인부터가 딱히 출세욕도 명예욕도 없는데 괜히 정부에 발목 잡혀서 자문 위원으로 엄청나게 고생하고 계시니까. 서로 얼굴 붉힐 일이 많은 만큼 내가 제일 잘 알지.”
“길드 소속 헌터들과 얼굴 붉힐 일이 많단 말이야?”
“그래, 저번에 신촌 던전에서도 봤잖아?”
하기야 던전 입장을 가지고도 엄청나게 실랑이를 해 댔었지.
지금 생각하니 김숙자 교수가 정말 잘도 나 같은 신원 미상의 헌터가 던전에 입장하는 걸 허가해 줬다, 싶다.
“정부 측 헌터들은 공략 순서가 밀리는 던전 클리어 뺑뺑이 돌아야 하고, 긴급 사태 터질 걸 대비해서 24시간 4교대로 스케줄 근무도 돌고. 심지어 출장도 잦아.”
이우연이 슬그머니 정부 헌터로서의 단점을 더 들이밀었다. 그런데 들어 보니 정말로 지옥 같은 조건이었다.
“이선 헌터, 엄청 고생하겠네. 그런데 그럼 다들 왜 길드가 아니라 정부 소속이 되는 거야?”
“이점이 있긴 해. 일단 공무원이잖아? 던전 공략에 필요한 아이템 및 포션을 지원받을 수 있거든. 물론 그래 봤자 한계가 있지만.”
“그런 건 길드에 들어가도 해 주는 거 아냐?”
“길드도 길드 나름이지.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처음부터 금전 상황이 좋은 길드가 많지는 않았어. 게다가 던전 입장 자체를 국가에서 관리하다 보니 정부 측 입김이 세질 수밖에.”
생각보다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러고 보니 헌터 스토어도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기업이라고 했었지.
하기야 어지간히 공권력이 유지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질 좋은 마석을 얻을 수 있는 여의도 던전 같은 곳이 진작 전쟁터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타르토스와 비교했을 때 사회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싶더니, 이쪽은 정부 측이 초반에 시스템을 잘 잡았나? 김숙자 교수의 공로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대강 돌아가는 사정은 파악했다.
“소속을 정할 거면 잘 생각해. 괜히 이상한 길드에 들어가면 고생만 할 테니까.”
이우연은 내 기분이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평소의 톤을 거의 되찾았다.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고 교수님이 영원 길드를 추천하진 않으셨는데.”
“나도 별로 추천하진 않아. 저번에도 말했잖아? 우리 사이만 나쁘지 않다면 다른 길드에 들어가도 괜찮다고.”
그러고 보니 이우연이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때도 의외로 자기 길드에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영원 길드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문제라…… 이번에 당신 관련 언론 보도만 봐도 알 만하지 않나?”
이우연이 핸들을 잡은 손가락을 툭툭 두드렸다.
“김성연 길드장은 꽤 성공한 사업가지만 인간적으로 훌륭한 그릇은 못 돼. 김숙자 교수와는 반대지.”
“교수님이랑 사이가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리고 그러는 너는 영원 길드에 들어가 있잖아?”
“효율의 문제였지, 당시에는. 그땐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이 개판이었잖아.”
“……흐음.”
이건 일산 호수 공원에서 살아 나온 다음 이야기겠지? 기사로 어느 정도 파악하긴 했지만 직접 듣는 쪽에서는 확실히 현장감이 느껴졌다.
이우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던브로 현실에 쏟아진 몬스터를 처리할 때는 군대 화력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결국은 던전 공략이 최우선이었어. 사회 기반 시설을 죄다 날릴 수는 없잖아.”
“그거야 그렇지. 포화도 자체를 낮추지 않는 이상 던브가 끝나지는 않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이! 그래서 정신이 없는 사이에 김성연 길드장이 쓸 만한 헌터들을 죄다 자기 길드에 넣었더라고.”
“그래도 리더십은 있나 보네.”
“실력도 없는 편은 아니야. 그러니 김성연 길드장이 이끄는 영원 길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거지.”
본인이 속한 길드인데도 딱히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 따위가 엿보이지는 않았다.
“그 길드의 간판은 너잖아?”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지만 현재 영원 길드만큼 내 공략대를 제대로 지원해 주는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서. 물약값이든, 헌터들 풀이든.
결국은 또 던전 공략의 효율성 문제로 이야기가 돌아왔다.
“도대체 왜…….”
왜 그렇게 던전 공략을 열심히 하는 건가.
그렇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나는 도중에 입을 닫았다.
만약 대답하지 않는다면 더욱 의구심이 생길 게 뻔했다. 어차피 숨기는 게 있다면 건드리지 않는 편이 현명했다.
내가 입을 다시 닫아 버리자 이우연이 나를 곁눈질로 훑어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뭐냐, 저거.
“……진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하여튼 이번에는 같이 던전 공략할 수 있겠네. 저번 던전 이후로 한 달 만인가?”
“겨우 그거밖에 안 됐나?”
체감상으로는 몇 개월 정도 더 흐른 것 같은데, 달력을 보니 정말로 겨우 그 정도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이우연이 낄낄대며 팔꿈치로 내 어깨를 찔렀다.
“그럼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강예나. 랭킹 1위만 믿고 있을게~?”
“날 믿지 말고 네가 제대로 일해라.”
“오, 자신 없어? 무슨 일이래~.”
까분다, 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차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데 괜한 정신력 소모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까 전 김숙자 교수, 그리고 이우연과 잠정적으로 합의한 날짜는 앞으로 일주일 후.
그때까지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인터뷰할 때는 애매한 질문 있으면 나한테 꼭 물어보고 답해. 알았지?”
그래, 가령 언론사와의 인터뷰라든가.